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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수학자의 연구 노트] 생명의 비밀 파헤치는 수학자

  •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세계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를 위해 2011년 대한민국이 설립한 연구기관입니다. 수학 분야에서는 5명의 연구책임자가 이끄는 3개의 연구단이 활발한 연구를 펼치고 있습니다. IBS는 설립 10주년을 맞아 <수학동아>와 함께 IBS 수학자들의 연구와 삶을 소개하는 시리즈 <나의 삶, 나의 수학>을 연재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24시간의 생체리듬을 갖고 있습니다. 계절과 온도에 따라 이 주기가 변동될 것 같지만 생체리듬은 늘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생명체가 생체리듬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메커니즘은 60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는 생명과학 분야의 난제였습니다. 지난 2015년, 한 수학자가 수학 모델을 토대로 이 난제를 해결할 열쇠를 발견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재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의생명 수학 그룹 CI(연구책임자.KAIST 수리과학과 교수)입니다. 수학을 도구로 생명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는 김재경 CI를 만났습니다.


김재경교수 사진

Q. 처음 수학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거창한 경험은 없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국어 과목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데도 국어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반면, 수학 성적은 좋아서 자연스럽게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친구들이 수학 내용을 모를 때마다 저를 찾았고, 저 역시 수학 문제를 설명하는 순간이 즐거웠어요. 수학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건 자신 있어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학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Q. 수리생물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항공과학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였습니다. 우연히 ‘수학을 이용해 심장 질환을 연구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충격 받았어요. 심정지가 올 때 심장에서는 특이적으로 소용돌이 형태의 전류가 발생하는데, 이 원인을 규명하고 심정지 발생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려 한다는 내용의 연구였습니다. 4년 내내 수학을 공부했지만, 수학에 이런 연구 분야가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곧장 도서관에 달려가 관련 분야 책을 찾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수학이 도움을 준다는 것에 끌렸어요. 고민 끝에 수리생물학 분야로 유명한 미국 미시건대 대학원에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Q. 생소한 분야를 연구하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생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하려면, 우선 생물학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생물학과 1학년 수업부터 대학원 수업까지 모두 청강하며 시간을 쪼개어 썼습니다. 수학 전공 수업과 병행하려다 보니, 주말‧평일 할 거 없이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공부만 했던 것 같아요. 신기한 건 몸은 힘들지만 즐거웠다는 거예요. 문제가 풀리지 않아 맘고생도 했지만, 실력이 는다는 게 느껴졌어요. 또, 교과서에서만 봤던 수학 교수님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차츰 수학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생물학적 주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연구자가 본 김재경교수에 대한 의견이미지.김재경CI는 얼핏 보기에는 수학과 관련없어 보이는 문제를 수학으로 푸는 연구자입니다. 저는 김CI와 함께 항암 치료영역에서 투여 시기에 따른 약물효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CI가 병원에서 생성되는 숫자들의 패턴을 수학적으로 접근해 창의적으로 풀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감탄합니다. 수학에 대한 열정과 능력이 다른 분야에 대한 열린사고, 따뜻한 마음과 공존할 때 세상을 바꿀 중요한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을 두루 겸비한 김재경 CI가 다방면으로 활약하기를 기대합니다.

Q. 지금까지 한 연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는 무엇인가요?

2015년 발표한 연구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해 안정적인 생체리듬을 유지할 수 있는 생물학적 회로를 설계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또 수학 모델링을 이용해 생체시계가 제때 작동하는 원리를 발견해 국제학술지 셀의 자매지 몰라큘라 셀(Molecular Cell)에 발표했습니다. 생체시계는 온도 변화와 상관없이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이런 성질은 1954년 발견됐으나 그 작동 원리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저는 미분방정식을 이용한 수학 모델을 세워 생체시계 속도를 조절하는 핵심 요소를 찾아냈는데 실제 실험으로도 검증돼 학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Q. 현재 어떤 연구를 진행 중이신가요?

여러 생명과학 및 의학 분야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2019년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Pfizer)와 함께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간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과 사람마다 약효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밝혀냈습니다. 최근에는 수면과 관련한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삼성병원과는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경찰 등이 어떻게 수면을 잘 취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연구팀과는 ‘항암제를 오전과 오후 중에 언제 투약하는 게 좋을까’에 대해, 분당 서울대학교병원과는 수면무호흡증 진단법을 개선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가뭄이 들 때 식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 중이고요. 이런 연구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몇 가지 변수를 이용해 설명할 수 있는 같은 분야라 할 수 있죠.

Q. IBS에 합류한 이후 연구나 주변 상황 등 달라진 점이 있나요?

김재경교수 사진

학제 간 협동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IBS를 찾는 연구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수리생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고 이를 활용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연구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IBS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있어 의생명 수학 그룹이 생물학, 의학, 약학 분야를 이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Q.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으신가요?

생명 시스템 분야에서는 한 가지의 이론과 도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생명과학, 의학, 약학 연구실 등과 협력해 생명 시스템과 관련된 모든 주제를 망라해 다양한 수학 이론을 이용해서 연구하고자 합니다. 특별한 소망이 있다면 제가 학창시절 제일 좋아했던 대수기하학을 적용해 생명과학 난제를 푸는 것입니다.


Q. 교수님께 수학이란 무엇인가요?

수학은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유를 주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몸은 약 100조 개 세포로 이뤄져 있고, 각 세포는 약 100조 개 분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생명 시스템을 컴퓨터의 도움 없이 인간의 직관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식을 이용해 생명 시스템을 묘사하는 수학 모델을 세우면 수백 만 번의 가상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실제 실험 결과와 일치할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수식이 단순할수록 아름답고 강렬하다고 느낍니다.


| 홍아름 수학동아 기자

도움 | 김재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의생명 수학 그룹 CI

사진 | Studio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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