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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본 노벨상]_Vol.5 2021 노벨 화학상 : 분자 만드는 독창적 도구, '제3의 촉매' 개발

2021년 노벨 화학상은 분자를 만들기 위한 ‘독창적(ingenious) 도구’를 개발한 두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 2021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왼쪽)와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 [훗카이도대, 프린스턴대 제공]
▲ 2021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왼쪽)와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 [훗카이도대, 프린스턴대 제공]

라이벌이자 동료인 두 과학자는 2000년, 각각 유기물질(탄소를 포함한 물질)을 촉매로 사용하는 새로운 분자 합성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전까지 아주 오랫동안 화학자들은 촉매가 금속과 효소의 두 가지 유형만 존재한다고 믿었는데, 이 정설을 깨고 ‘제3의 촉매’를 찾아낸 것이다. ‘비대칭 유기촉매’라 불리는 이 촉매는 두 교수를 포함한 많은 유기화학자들의 기여로 오늘날 학계를 넘어 산업계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분자 합성이 필수인 제약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노벨 화학상의 꽃, 촉매

의약품에서 유기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유기물질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데, 현대 사회는 여전히 새로운 유기물질 개발을 통한 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매년 한해 FDA에 새로 등록되는 신약의 60% 이상이 작은 유기분자를 기반으로 한 합성물질이라는 점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유기화학 반응은 이러한 물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새로운 유기반응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이뤄져 왔고, 이중 특히 촉매를 기반으로 한 반응들이 혁신적 성과를 냈다. 지금까지 총 7번의 노벨 화학상이 촉매 분야에서 주어졌다는 점이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올해 수상자들은 이전에 사용되던 촉매들과는 다른 종류의 촉매를 이용하여 차별적인 반응을 가능하게 했다. 이들의 연구 이전에는 생체촉매(효소)나 전이금속촉매를 이용한 연구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카이랄성(거울상 이성질성)을 지닌 유기물질을 선택적으로 얻는 비대칭 반응에 있어서는 이 두 종류의 촉매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 분자식은 서로 같지만 서로 다른 물리‧화학‧광학적 성질을 갖는 분자를 이성질체라고 한다. 카이랄성 이성질체(거울상 이성질체)는 두 이성질체가 서로를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은 형상을 띈 경우다. 위 그림은 대표적인 카이랄성 이성질체인 리모넨 분자. 리모넨은 아로마의 일종으로 S형과 L형에 따라 레몬향과 오렌지향을 낸다. 두 유형의 거울상 이성질체들은 각각 다른 성질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원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특정 이성질체를 선택적으로 만들 수 있는 비대칭 반응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기반응 중 하나이다. [출처: 노벨상 위원회]
▲ 분자식은 서로 같지만 서로 다른 물리‧화학‧광학적 성질을 갖는 분자를 이성질체라고 한다. 카이랄성 이성질체(거울상 이성질체)는 두 이성질체가 서로를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은 형상을 띈 경우다. 위 그림은 대표적인 카이랄성 이성질체인 리모넨 분자. 리모넨은 아로마의 일종으로 S형과 L형에 따라 레몬향과 오렌지향을 낸다. 두 유형의 거울상 이성질체들은 각각 다른 성질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원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특정 이성질체를 선택적으로 만들 수 있는 비대칭 반응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기반응 중 하나이다. [출처: 노벨상 위원회]

잊혀진 연구에서 찾은 ‘진흙 속의 진주’

1990년대. 당시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리스트 교수 역시 효소를 이용한 화학반응을 연구하고 있었다. 효소는 아미노산 수백 개로 이뤄진 거대한 분자다. 리스트 교수는 아미노산이 효소의 일부여야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지, 아니면 아미노산 자체가 그 기능을 할 수 있는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특정 아미노산이 효소에 포함되지 않은 분리된 상태에서도 촉매로서 작동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됐고, '프롤린(Proline)'이라는 아미노산을 문득 떠올렸다. 프롤린을 사용한 비대칭 분자 내 반응은 이미 약 25년 전인 1970년대에 보고된 바 있지만 (Hajos-Parrish-Eder-Sauer-Wiechert 반응), 후속연구가 없는 상황이었다. 프롤린의 촉매기능을 계속 연구한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놀랍게도, 프롤린은 케톤과 알데히드 분자간의 탄소 원자를 결합하는 반응(알돌 반응)에서 촉매로서 작용했다. 1970년대의 연구와 달리, 리스트 교수는 프롤린의 명확한 반응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기존 알려진 비대칭 분자 내 반응을 넘어 비대칭 분자 간 반응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비대칭 반응은 복잡한 구조 안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프롤린이라는 작은 천연물만을 촉매로 사용하여도 하나의 카이랄성 분자를 선택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 베냐민 리스트 교수가 보고한 프롤린 촉매를 이용한 알돌 반응. 리스트 교수는 수백 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효소 중 일부 특정 아미노산이 촉매로서 반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프롤린이라는 아미노산이 화학 반응에서 촉매로 작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던 중,프롤린의 질소 원자가 전자를 주고받는 화학반응을 통해 비대칭 촉매 작용을 유발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출처: 노벨상위원회]
▲ 베냐민 리스트 교수가 보고한 프롤린 촉매를 이용한 알돌 반응. 리스트 교수는 수백 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효소 중 일부 특정 아미노산이 촉매로서 반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프롤린이라는 아미노산이 화학 반응에서 촉매로 작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던 중,프롤린의 질소 원자가 전자를 주고받는 화학반응을 통해 비대칭 촉매 작용을 유발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출처: 노벨상위원회]

기존 촉매의 한계 극복한 ‘유기촉매’의 탄생

같은 시기에 데이비드 맥밀런 교수 역시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리스트 교수가 ‘효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면, 맥밀런 교수는 ‘금속촉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이금속촉매를 기반으로 한 반응들은 다양하게 알려져 있었지만, 금속 촉매는 매우 민감하고 정제가 어려워 산업에서 사용하기 어렵고, 가격이 비싸다는 한계가 있었다.

맥밀런 교수는 금속을 대안 할 촉매로 유기분자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촉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값싼 ‘페닐알라닌 아미노산’을 사용하여 새로운 카이랄성 유기분자를 설계했다. 그리고 이 촉매를 다이엔과 알켄 분자간의 비대칭 고리화 첨가반응(딜스-알더 반응)에 적용한 결과, 뛰어난 촉매 작용을 확인했다. 맥밀런 교수팀은 탄소 원자를 기반으로 구성된 이 촉매에 ‘유기촉매(organocatalyst)’라는 이름을 붙였다.

▲ 특정금속 촉매는 매우 민감하여 산소와 물기가 있는 환경에서 사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맥밀런 교수는 더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촉매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이미늄 이온을 형성할 수 있는 단순한 분자를 설계하고 이를 ‘유기촉매’라 명명했다. 개발된 촉매는 딜스-알더 반응(아래 그림)에서 뛰어난 촉매 작용을 했으며, 일부 유기촉매는 비대칭 촉매 작용에도 탁월했다. [출처: 노벨상위원회
▲ 특정 금속 촉매는 매우 민감하여 산소와 물기가 있는 환경에서 사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맥밀런 교수는 더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촉매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이미늄 이온을 형성할 수 있는 단순한 분자를 설계하고 이를 ‘유기촉매’라 명명했다. 개발된 촉매는 딜스-알더 반응(아래 그림)에서 뛰어난 촉매 작용을 했으며, 일부 유기촉매는 비대칭 촉매 작용에도 탁월했다. [출처: 노벨상위원회

세계 최초 보다는 명확한 연구

리스트 교수와 맥밀런 교수가 ‘세계 최초’로 유기물질을 촉매로 사용하고, 비대칭 반응을 성공시킨 연구자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Hajos-Parrish-Eder-Sauer-Wiechert 반응 이외에도 유기물질 간의 수소결합을 이용한 촉매반응 등 다른 유형의 비대칭 반응들이 1990년대에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다른 연구는 반응 메커니즘의 이해가 부족했고, 이로 인해 유기물질들의 촉매로서의 잠재성을 입증하는 데는 실패했다. 두 수상자는 반응 메커니즘을 명확히 확립했고, 이 유기촉매가 화학 산업계에 미칠 긍정적 영향까지 제시했다.

두 수상자의 연구 이후 유기촉매에 대한 연구는 급격히 늘어났다. 수많은 유기촉매들이 새롭게 개발되었으며, 이들은 다양한 비대칭 반응에 적용될 수 있게 됐다. 유기촉매는 실용적이며 친환경적인 새로운 분자 합성법을 제공함으로서, 인류가 비용, 시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도왔다. 기존 전이금속촉매나 생체촉매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유기촉매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반응체계가 확립됐고, 두 촉매와 함께 가장 널리 쓰이는 ‘제3의 촉매’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신약개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 발생하는 질병에 대응하는 치료제 개발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기촉매가 이런 의약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두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이 타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들의 초기연구 이전에 유기촉매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선구자들과 유기촉매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많은 후배 연구자들의 업적 또한 함께 기억되어야 하겠다.

촉매 개발: 현재 동향과 미래

유기촉매의 새로운 반응체계는 기존 전이금속촉매나 생체촉매로는 불가능했던 반응을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반대로 두 촉매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반응에서는 유기촉매가 작용을 못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각 촉매물질에 내재된 성질의 차이 때문인데, 이러한 이유로 전이금속과 생체촉매에 대한 연구 또한 여전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기촉매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어느 종류의 촉매든 각자의 한계점은 아직 존재하는데, 이를 해결하며 기존에 불가능했던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촉매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뤄져야겠다. 특히 새로운 물질 개발에 있어 카이랄성 이성질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이를 선택적으로 만드는 새로운 유형의 비대칭 반응이 다양하게 연구되어야 하겠다.

필자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역시 비대칭 반응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성과들을 발표해왔다. 2019년 화학 분야 권위지인 ‘네이처 카탈리시스(Nature Catalysis)’에 발표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당시 우리 연구진은 자연에 풍부한 탄화수소화합물로부터 의약품의 필수재료인 카이랄 락탐을 제조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다. 이 촉매는 필요에 따라 99%의 정확도로 카이랄성을 선택할 수 있다. 현재도 계산화학과의 협업을 통해 고부가가치 원료를 제조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를 연구해 나가고 있다.

▲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2019년 두 종류의 카이랄성 감마-락탐 중 필요에 따라 한쪽 유형만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다.
▲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2019년 두 종류의 카이랄성 감마-락탐 중 필요에 따라 한쪽 유형만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다.



| 서상원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연구위원(YSF)

편집 | IBS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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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14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