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물질의 성질을 밝히는 펌프-프로브 분광법분광학은 빛과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이용해 물질의 정보를 얻는 기술입니다. 그 중에서도 펌프-프로브 분광법이란 짧은 펄스 형태의 빛을 조사해 어떤 성질이나 반응이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분광 기술이라고 볼 수 있지요. 물질을 들뜬 상태로 만드는 ‘펌프(pump)’ 펄스를 받고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에 ‘프로브(probe)’가 들어오면서 분광학적 정보를 읽어내는 방식입니다이지요. 이는 시간에 따른 물질의 변화를 프로브를 통해 관찰할 수 있어서, 시분해 분광법(time-resolved spectroscopy)라고도 합니다. 들뜬 상태에서의 정보를 얻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분자는 들뜨지 않은 기저 상태(ground state)로 남아있기도 하고, 들뜬 상태에서의 변화 및 반응으로 인해 여러 가지 신호가 뒤섞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신호를 잘 해석할 수 있다면 물질 내에서 일어나는 광유도 반응, 에너지 전달 과정 및 전하 운반체의 동역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물질에서 이와 같은 정보는 그 성능과 효율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비동기 광학 샘플링(asynchronous optical sampling)이란?빛에 의한 반응은 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도 일어나는데, 그 중에는 수 펨토초(10-15초) 내에 끝나는 것들도 있습니다. 시분해 분광법에서 이와 같은 찰나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는 펌프 펄스와 프로브 펄스 사이의 시간차를 빛의 속도를 이용해 정밀하게 제어합니다. 빛은 1초에 약 30만 km를 이동하므로, 펌프 빛이 이동하는 경로와 프로브 빛이 이동하는 경로의 길이를 다르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경로에 0.3 mm 차이가 난다면, 두 빛의 펄스 사이에는 1 피코초(10-12초)의 시간차가 생기지요. 다만, 이 방식은 경로차를 조절하는 장비를 이용하다 보니 길이에 한계가 있고, 기계적으로 경로를 움직이고 안정화 하는 데 시간이 소모됩니다. [그림1] (왼쪽) 경로차를 통해 펌프-프로브 시간차를 만드는 방식과 비동기 광학 샘플링의 비교, (오른쪽) 프리즘, 카메라 등을 이용한 방법과 간섭계를 통한 파장 분해법의 비교., 비동기 광학 샘플링은 이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경로차를 생성합니다. 이는 두 펄스가 생성되는 주기, 즉 반복률을 조금 다르게 설정하여 자연스럽게 시간차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한 펄스가 1.1초마다 생성이 되고, 다른 펄스가 1초마다 생성이 되면, 처음에는 두 펄스가 동시에 만들어지지만, 다음 펄스는 0.1초의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지고, 그 다음은 0.2초의 차이를 두고 생성되는 식입니다. 이를 활용하면 펨토초 수준부터 나노초(10-9초) 이상까지 넓은 시간 범위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스캔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검출기로 다른 종류의 정보를 얻는 ‘비동기 간섭 계측형 순간 흡수 분광법’하지만 비동기 광학 샘플링만으로는 펌프-프로브 시간에 대한 정보만 얻을 수 있고, 빛의 파장에 따른 정보는 얻기 어렵습니다. 파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정보를 구분 해내기 위해서는 간섭계(interferometer)라는 장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프로브 빛을 두 갈래로 나누고 다시 합쳐 간섭 신호를 만들면, 이를 푸리에 변환이라는 방법으로 분석해 빛의 파장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간섭 신호의 획득 과정은 수 밀리초 정도가 걸리지만, 그 과정에서 비동기 광학 샘플링으로 인해 나노초 수준에서 펌프-프로브 시간차가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카메라로는 분석이 어렵습니다. 대신 하나의 광 검출기로 시간에 따라 신호를 연속적으로 읽으면 빠른 속도로 프로브 펄스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분석할 때는 시간 분할 다중화(time division multiplexing)라는 기술을 이용해 각기 다른 시간 간격을 설정하고 구간 별로 분석해서 신호를 관찰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수 나노초(10억분의 1초) 간격으로 프로브 펄스의 시간 변화를 보고, 수 밀리초 간격으로는 간섭 신호에서 파장 정보를 얻으며, 수 초~수 분 단위에서는 물질이 변화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는 숲을 찍은 사진에서 확대하는 정도에 따라 나뭇잎을 하나 하나 관찰할 수도 있고, 다른 나무끼리 비교할 수 있고, 숲 전체를 볼 수도 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비동기 광학 샘플링과 간섭계를 이용한 계측법을 합쳐서 탄생한 기술이 ‘비동기 간섭 계측형 순간 흡수 분광법(AI-TA)’입니다. [그림2] 페로브스카이트 나노물질에서 일어나는 빛에 의한 반응을 나타낸 모식도. 펨토초 레이저 펄스가 나노 물질의 광반응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물성 측정을 위한 도구로 쓰인다. AI-TA를 이용한 신소재의 빛으로 인해 변질되는 물성 탐구논문명: In situ and real-time ultrafast spectroscopy of photoinduced reactions in perovskite nanomaterials, Nature Communications, 2025 이토록 빠르게 측정이 가능한 분광법에서는 빛이 분광 계측의 툴로 사용될 뿐만이 아니라, 광유도 반응을 일으키는 시작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기존 시분해분광법으로는 자체적으로 빛에 취약한 성질이 있는 물질이나, 빛에 취약한 환경 또는 상황에 놓인 물질의 분석이 쉽지 않았는데 빠른 측정 기술을 통해 정보 획득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지요. 최근 필자가 속한 연구팀에서는 AI-TA 기술을 활용하여 ‘페로브스카이트’라는 신소재의 빛에 의한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태양전지와 LED와 같은 차세대 광전자 소자에 사용될 수 있는 주목받는 소재입니다. 페로브스카이트에 포함된 할로젠 원소는 빛을 받을 때 클로로포름과 같이 외부 용액의 할로젠 원소와 교환이 일어날 수 있음이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인 시분해 분광법으로는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나노물질의 물성을 측정하기 쉽지 않았을테지만, AI-TA로는 내부 조성이 브롬(Br)에서 염소(Cl)로 바뀌면서 에너지의 밴드갭이 넓어지고, 전자가 빠르게 기저 상태로 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림3] AI-TA로 얇은 판 형태의 페로브스카이트 나노물질을 측정한 결과, 빛에 의해 응집되며 나타내는 파장 변화(오른쪽 위)와 동역학 변화(오른쪽 아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더하여, 얇은 판 형태의 페로브스카이트 나노물질은 콜로이드 상태에서 빛을 받으며 서로 뭉치는 응집 현상을 보입니다. 이 때 나노 판의 응집 정도에 따라 들뜬 상태의 에너지 손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물질의 구조 변화와 광학적 반응 간의 상관관계를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물질의 구조 변화가 에너지 손실과 같은 광학적 성질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더욱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AI-TA의 미래AI-TA 기술은 물질의 동역학적 성질이 빛에 반응하는 도중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스템의 동역학을 해석하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앞으로 신소재 및 다양한 화학 물질의 동역학을 탐구하는 새로운 분석 기술이기에, 차세대 소재 개발은 물론, 다른 물질을 탐구하는 응용 연구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https://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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