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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 인류, 진화읟 ㅗㅇ력은 기후변화 그렇다면 앞으로는?


대학 1학년 때였다.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우연히 ‘기후와 문명’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인류의 4대 문명이 왜 온대 기후대에서 시작됐는지, 지독한 홍수와 가뭄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등등 흥미로운 주제들을 한 학기 동안 배우게 됐다.

대기과학과에 가면 물리학이나 역학 같은 어려운 공부만 할 줄 알았는데 이 수업을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입는 옷, 사는 집뿐 아니라 문화와 역사, 경제, 정치 등 문명의 발전과 흥망성쇠 뒤에 기후가 있었다. 그때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과연 대기과학을 전공했을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올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후모델과 고고학 자료를 이용해 인간 진화의 수수께끼가 밝혀진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은 기후 자료와 화석, 식생, 고고학 자료를 결합해 인류의 조상이 살던 과거의 시공간을 복원해냈다. 서로 다른 기후 조건에서 살아가던 고대 인류 종은 어느 시점부터 기후변화에 따라 이동하고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살아남아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아주 오래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춥고 건조해진 기후, 나무에서 땅으로

과거의 지구는 대체로 온화했다. 5,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 공룡은 대멸종을 맞았다. 당시 지구의 평균기온은 25℃를 넘나들었다. 현재 평균기온이 14.5℃ 정도니 10℃ 이상 높았다. 공룡의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종족인 포유류가 등장하면서 신생대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이후에는 곧장 다시 추워졌다. 원인은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에 있었다. 거대한 히말라야산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침식 작용이 활발해지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흡수되는 화학적 풍화가 일어났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떨어지며 기온도 계속 내리막이었고 추위의 거센 입김에 남극과 북극에 거대한 빙상이 자라났다.


사진1(Source: Earle (2016)) 지난 7,000만 년간 지구의 온도 변화
사진1(Source: Earle (2016)) 지난 7,000만 년간 지구의 온도 변화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의 지구보다는 온난한 시기였다. 약 250만 년 전을 기점으로 지구의 기후는 현재의 지구보다 더 냉랭하게 변해갔다. 온난다습한 신생대 플리오세(530만~250만 년 전)에서 한랭건조한 플라이오세(260만~1만 1,000년 전)로 접어든 것이다. 차고 메마른 기후 속에 인류의 조상도 지구 곳곳에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했다.

300만 년 전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했다. ‘남쪽의 유인원’이라는 뜻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프리카의 무성한 숲에서 원숭이처럼 열매를 먹으며 생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플라이오세에 접어들며 열대우림은 건조한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인류의 조상은 생존의 위협에 맞부딪히게 됐다. 결국 280만 년 전 나무 위에서 내려와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사바나의 수풀을 걷게 됐다. 사라진 나무 대신 땅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190만 년 전부터는 불과 도구를 사용하고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는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했다.

200만~100만 년 전에는 호모 에스가스테르와 호모 하빌리스가 등장했다. 초기의 아프리카 인류는 춥고 건조하긴 했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에서 좁은 영역에 머물며 생활했다. 그런데 100만~80만 년 전부터 지구의 기후가 더욱 이상해졌다. 보통 4만 년 주기로 반복되던 빙하기와 간빙기의 주기가 10만 년으로 길어진 것이다. 4만 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혹독한 빙하기가 훨씬 길게 이어지면서 인류의 이동과 진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슈퍼컴퓨터로 200만 년 진화의 수수께끼 풀다

IBS 기후물리연구단은 바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역대 최고로 긴 과거 200만 년의 기후 시스템을 복원했다. 빙하의 발달과 쇠퇴, 온실가스 농도의 변화, 지구의 자전축과 공전궤도 변화 등 천문학적 강제력까지 모두 반영해 과거 200만 년 동안 기온과 강수량 자료를 계산해낸 것이다. 여기에 화석과 고고학적 유물 자료를 결합시켜 기후에 따른 인류의 진화를 추정할 수 있었다. 분석 대상은 크게 5개의 그룹으로 ①호모 사피엔스 ②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③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④호모 에렉투스 ⑤호모 에스가스테르·호모 하빌리스였다.

시뮬레이션에는 한국에서 가장 빠른 연구용 슈퍼컴퓨터 중 하나인 알레프(Aleph)가 사용됐다. 화석의 시간 연대를 무작위로 섞어서 반복 분석했는데 생성된 데이터만 500테라바이트(TB)에 달했다. 분석에만 6개월이 걸릴 정도였다. 한국뿐 아니라 독일, 스위스팀이 공동으로 기후 모델링과 인류학, 생태학 분야에서 협업했기에 이룰 수 있는 작업이었다.


사진2 (출처: 과기정통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유라시아 지역으로 이동해 매우 춥고 건조한 환경에 적응했다.
사진2 (출처: 과기정통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유라시아 지역으로 이동해 매우 춥고 건조한 환경에 적응했다.


100만~80만 년 전 아프리카에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라는 초기 인류가 살고 있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진화한 호모 에렉투스보다 큰 뇌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화석을 보면 빙하기가 길어지자 이들은 식량을 찾아 다양한 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80만~16만 년 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유라시아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뇌가 커진 만큼 석기를 다듬는 능력이 더 정교해졌고 불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됐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40만 년 전 유라시아에서 데니소바인으로, 유럽에서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로 분화됐다. 남아프리카로 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라틴어로 현생 인류를 가리킨다. 80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류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진화의 최종 단계인 호모 사피엔스가 태어난 것이다.


사진3(출처: IBS) 기후 변화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사진3(출처: IBS) 기후 변화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

서로 다른 인류 종이 같은 지역에 공존하면 서식지가 겹치는 현상을 통해 인류 진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계통도 밝혀졌다.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인류 화석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특징을 보여줬다. 그런데 26만 년 전 화석에서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 함께 나타났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는 강력한 증거다. 기후변화에 따른 인류의 이동 양상은 실제 유전자 분석이나 화석 증거와 매우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사진4(출처: John Gurche)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얼굴을 복원한 모습
사진4(출처: John Gurche)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얼굴을 복원한 모습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후손 중 현생 인류로 진화한 것은 결국 호모 사피엔스였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뇌가 더 컸다. 남성의 키가 167cm에 이를 정도로 선사 시대 기준으로 상당히 큰 편이었다. 신체적인 능력만 봤을 때 호모 사피엔스보다 월등했던 것이다. 그러나 빙하기의 극심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도태되거나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하는 능력이 진화의 성공을 좌우한 셈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기후라는 시스템이 인류가 진화하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지구에서 수십만 년 단위로 느리게 진행된 기후 변화에 인간의 조상은 적응하고 살아남았다. 이번 연구는 인류 진화의 단면을 기후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줬다.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산업화 이후 2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진행 중인 현재의 기후위기에 인류가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말이다.


사진5 (출처 guyhowto.com) 인류의 진화 과정사진5 (출처 guyhowto.com) 인류의 진화 과정


기후위기에 인류는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2021년 발표된 IPCC 6차 제1 실무그룹 보고서에는 2019년 기준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410ppm를 돌파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같은 농도는 과거 200만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고 지구의 평균온도는 산업화 전보다 1.09℃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사진6(출처: 미 해양대기청(NOAA)) 올해 5월 하와이에서 관측한 이산화탄소 농도가 421ppm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사진6(출처: 미 해양대기청(NOAA)) 올해 5월 하와이에서 관측한 이산화탄소 농도가 421ppm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2022년 5월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421ppm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구 배경 대기 관측소인 하와이 마우나로아에서 측정된 값으로 전 지구 평균 농도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420ppm선을 넘었다는 충격을 안겨줬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지구의 평균온도는 산업화 대비 1.15℃ 상승했다. 파리협정에서 인류 생존을 위한 마지 노선으로 설정한 ‘1.5℃’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사진7(출처: WMO) 2022년 기준 전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15℃ 상승했다.
사진7(출처: WMO) 2022년 기준 전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15℃ 상승했다.


과거 기후 변화에 인류의 조상이 다른 대륙으로 이동했듯 이미 기후위기로 인한 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기후난민은 해수면 상승이나 가뭄, 홍수 등의 기후재난으로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전 세계적으로 1분에 약 41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보다 기온이 0.5℃ 더 오르면 약 1억 명에 달하는 난민이 생겨나고 3,500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됐다.


사진8(출처:University of Reading) 산업화 이후 2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지구의 온도는 1℃ 넘게 상승했다.
사진8(출처:University of Reading) 산업화 이후 2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지구의 온도는 1℃ 넘게 상승했다.


2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이후 1만 년 전부터는 지구의 기온이 4℃ 올랐다. 플라이스토세의 빙하가 물러나고 홀로세라는 우호적인 기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의 기온 상승이 1만 년에 걸쳐 느리게 일어났다면 지금은 200년도 안 돼 1℃ 넘게 올랐다. 과거의 인류는 이동과 적응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인류는 폭주 기관차처럼 빠른 기후변화에 또다시 적응하고 생존할 수 있을까.


사진9(출처:climatenetwork.org) ‘손실과 보상’이라는 의제를 처음으로 채택한 COP27
사진9(출처:climatenetwork.org) ‘손실과 보상’이라는 의제를 처음으로 채택한 COP27


11월 6월-18일까지 이집트에서 기후변화협약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가 개최됐다. 전 세계 197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적응, 완화, 그리고 개도국의 손실과 보상이라는 주제가 논의됐다. 과거의 기후 변화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면 현재의 기후위기는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로 초래됐다. 온실가스 배출에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적응을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의 문제에 불공평과 부조리가 존재한다면 전 세계가 한마음으로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기는 어려워진다.

11월 6월-18일까지 이집트에서 기후변화협약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가 개최됐다. 전 세계 197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적응, 완화, 그리고 개도국의 손실과 보상이라는 주제가 논의됐다. 과거의 기후 변화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면 현재의 기후위기는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로 초래됐다. 온실가스 배출에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적응을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의 문제에 불공평과 부조리가 존재한다면 전 세계가 한마음으로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기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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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