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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입자의 떨림 하나에 물리법칙이 흔들리다’
(미국 뉴욕타임스)

‘뮤온: 새로운 자연계의 힘에 대한 강력한 증거 발견’
(영국 BBC)

‘표준모형이 깨졌는가? 물리학자들이 뮤온 결과에 환호하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한국시간으로 4월 8일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린 논문 한 편에 전 세계 물리학계가 흥분에 휩싸였다. 해외 주요 매체는 제목에서부터 ‘물리법칙(Law of Physics)’ ‘증거(evidence)’ ‘환호(cheer)’ 등 강렬한 단어를 나열하며 중대한 결과임을 암시했다. 2012년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발견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설렘과 기대였다.

왜 표준모형이 깨졌다고 표현했나

(그림 1) 표준모형은 12개의 기본 입자와 힘을 매개하는 4개의 입자, 그리고 힉스로 이뤄졌다. CERN 제공
(그림 1) 표준모형은 12개의 기본 입자와 힘을 매개하는 4개의 입자, 그리고 힉스로 이뤄졌다. CERN 제공

표준모형(Standard Model)은 현대물리학의 근간으로 불린다. 표준모형은 자연계를 이루는 기본 입자 12개(쿼크 6개, 렙톤 6개)와 이들 사이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게이지 입자) 4개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까지 총 17개의 입자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한다.

1970년대 쿼크의 존재가 처음 확인되면서 이후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입자 16개가 하나씩 발견됐고, 표준모형은 물리법칙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힉스만은 수십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012년에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실험에서 처음 나타났다. 힉스 발견으로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채워지면서 마침내 표준모형이 완성된 것이다. 힉스 발견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당시 전 세계 물리학계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번 결과는 이런 표준모형을 흔든다.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현상이 과학적 사실로 판명나면 표준모형의 17개 기본 입자 외에 새로운 입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는 다시 말해 표준모형을 대체할 새로운 이론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브린 맥코이 미국 워싱턴대 물리학부 교수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온라인 회의 당시 새로운 발견에 다들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며 학계의 고조된 분위기를 전했다. 마크 랭커스터 영국 맨체스터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BBC에 “이번 실험 결과는 표준모형에서 예상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을 이뤄낸 실험의 신뢰도가 4.2시그마라며 과학적 사실에 매우 근접했다고 판단했다. 4.2시그마는 이 발견이 통계적으로 우연히 발생했을 가능성이 4만 분의 1이라는 뜻이다. 신뢰도가 3시그마(99.7%)면 ‘힌트’의 범주에 들어가고, 5시그마(99.99994%) 이상이면 과학적으로 ‘발견’이 인정된다. 힉스 발견 당시 신뢰도가 5시그마였다. 표준모형이 깨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주인공은 전자의 ‘무거운 형제’ 뮤온

(그림 2) 뮤온 g-2 실험의 핵심 장치인 뮤온 저장링. 페르미국립연구소 제공
(그림 2) 뮤온 g-2 실험의 핵심 장치인 뮤온 저장링. 페르미국립연구소 제공

이번 발견을 이끈 주인공은 뮤온이라는 입자다. 연구진은 미국 페르미국립연구소(페르미랩)에 설치한 지름 15m의 뮤온 저장링 장치를 이용해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킨 뒤 그 속에서 뮤온 입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궤적을 추적했다.

뮤온은 전자의 ‘무거운 형제’ 같은 입자로 고에너지 양성자 입자를 충돌시킬 때 생성된다. 전자보다 무거워 다른 입자와의 상호 작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새로운 입자를 추적하기에 좋다는 이유로 선택됐다.

수명은 약 2μs(마이크로초·1μs는 100만 분의 1초)로 태어나는 즉시 사라질 만큼 매우 짧지만, 저장링에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면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라 뮤온에게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면서 측정에 충분한 수준인 64μs까지 수명이 늘어난다.

뮤온을 강력한 자기장 속에 놓으면 이동하면서 수평 방향으로 살짝 흔들리는데, 이를 g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뮤온의 g 값을 표준모형에 따라 이론적으로 계산하면 2보다 약 0.1% 크다. 그래서 실험 이름도 ‘뮤온 g-2’다(‘-’는 ‘마이너스’로 읽는다).

연구진은 뮤온 g-2 실험에서 뮤온의 g 값을 측정해 표준모형에서 이론적으로 계산한 g 값과 비교했다. 표준모형이 맞다면 실험으로 측정한 g 값은 이론값과 일치해야 한다. 만약 다르다면 뮤온은 우리가 모르는, 즉 표준모형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입자나 힘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된다.

표준모형으로 계산한 g의 이론값은 ‘2.00233183620’이다. 그런데 뮤온 g-2 실험에서 얻은 g의 측정값은 이보다 아주 살짝 큰 ‘2.00233184122’이었다(소수점 여덟째 자리부터 숫자가 달라진다). 이는 뮤온이 예상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흔들린다는 뜻이다.

브룩헤이븐에서 페르미랩까지 5000km 이동

(그림 3) 2013년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페르미랩으로 5000km 운반 중인 뮤온 저장링. 페르미국립연구소 제공
(그림 3) 2013년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페르미랩으로 5000km 운반 중인 뮤온 저장링. 페르미국립연구소 제공

페르미랩에서 이 실험이 시작된 건 2017년이지만, 사실 뮤온 g-2 실험은 1997년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처음 시작됐다. 1997~2001년 실험을 진행한 결과 g의 측정값이 이론값과 달랐고, 실험의 신뢰도가 3.7시그마로 힌트 수준은 넘어서 미지의 새로운 입자의 존재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해볼 만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10년 넘게 뮤온 g-2 실험은 중단됐다. 2013년 페르미랩이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뮤온 저장링을 운반해 와 실험 장치를 재단장하면서 2017년 극적으로 실험이 재개됐다.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페르미랩으로 뮤온 저장링을 운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5000여km 떨어진 먼 거리도 문제였지만, 코일의 모양 변형은 0.25인치(약 6.35mm) 이내, 평탄도는 0.1인치(약 2.54mm) 이내를 유지하며 700t(톤)에 이르는 대형 장치를 운반하기 위해 한 달에 걸쳐 바지선과 트럭으로 옮겨야 했다. 실험 장치를 새로 제작하는 것보다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장치를 옮기는 비용이 10분의 1로 훨씬 저렴하다는 점도 흔치 않은 장치 대이동이라는 장관을 만들어냈다.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참여

(그림 4) 2014년 페르미랩의 뮤온 g-2 실험에 참여하는 국제 공동 연구진이 뮤온 저장링을 구축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도 2014년부터 연구에 참여했다. 페르미국립연구소 제공
(그림 4) 2014년 페르미랩의 뮤온 g-2 실험에 참여하는 국제 공동 연구진이 뮤온 저장링을 구축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도 2014년부터 연구에 참여했다. 페르미국립연구소 제공

이번 발견에는 200여 명의 국제 공동 연구진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국내 연구진도 7명이 포함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은 실험 설계 단계였던 2014년부터 참여했다. 연구단은 뮤온 저장링 내부의 자기장이 균일하게 유지되도록 돕는 광학 편광계를 개발해 설치했고, 뮤온의 궤도 진동 오차를 줄이는 연구도 진행했다.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2001년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뮤온 g-2 실험의 팀 리더로 저장링의 정전기 시스템을 총괄하는 등 단장을 맡기 전부터 이 실험에 깊숙이 관여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이 페르미랩의 뮤온 g-2 실험에 참여한 계기도 세메르치디스 단장의 역할이 컸다.

이번 발견에서 연구단은 뮤온 저장링 구동과 빔 역학 분석 등에 기여했다. 이명재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연구위원은 “뮤온 입자가 저장링에서 회전하는 동안 자기장 때문에 옆으로도 흔들려 새로운 오차를 만들어낸다”며 “이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정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궤적을 예상하고, 오차를 일일이 평가해 실험 결과를 보정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현재 2년 차와 3년 차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네 번째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실험이 예정돼 있다.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지금까지 분석한 데이터는 뮤온 g-2 실험이 모을 전체 데이터의 6%에 불과하다”며 “첫 실험 결과부터 표준모형과 흥미로운 차이를 보여준 만큼 향후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입자물리학 메카, 페르미랩 영광 되찾나

(그림 5) 페르미국립연구소 전경. 뮤온 저장링이 도착했을 때 촬영해 저장링을 실은 빨간색 트럭이 잡혔다. 페르미국립연구소 제공
(그림 5) 페르미국립연구소 전경. 뮤온 저장링이 도착했을 때 촬영해 저장링을 실은 빨간색 트럭이 잡혔다. 페르미국립연구소 제공

이번 페르미랩의 새로운 발견이 더욱 반가운 이유는 페르미랩이 입자물리학 역사에서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다. 1993년 페르미랩이 완공한 가속기 ‘테바트론’은 테라전자볼트, 즉 1조 전자볼트(1TeV)의 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하는 장치라는 뜻으로 둘레 길이만 6.28km에 이르고 양성자들이 1TeV로 부딪치는 세계 최고의 가속기였다. 1995년 표준모형의 기본입자 중 계속 확인이 안 되던 ‘톱쿼크’를 테바트론 실험에서 찾아내며 페르미랩은 명실상부 입자물리학 연구의 메카로 떠올랐다.

하지만 2011년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경기 침체를 겪으며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가속기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테바트론도 셧다운(가동 중지)이 결정되며 페르미랩의 영광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2009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완공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의 영향도 컸다. LHC는 테바트론보다 더 큰 둘레 27km에 양성자 가속 에너지도 7조TeV로 테바트론의 7배였다. 더 크고 더 센 LHC 등장에 미 의회는 테바트론에 예산을 지원해 줄 명분을 찾지 못했고, 결국 페르미랩은 테바트론의 셧다운과 함께 입자물리학의 메카라는 타이틀을 CERN에 넘겨줘야 했다. CERN은 LHC 실험으로 2012년 표준모형의 마지막 조각인 힉스를 찾아내며 전성기를 맞았다.

페르미랩의 뮤온 g-2 실험이 CERN이 완성한 표준모형을 깰 수 있을까. 그렇다면 표준모형을 대신할 이론은 뭘까. 뮤온 g-2 실험의 다음 데이터 분석 결과를 기다려보자.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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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