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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가 승리호했다. 아, 아니, 승리호가 승리했다.

코로나19로 극장가가 얼어붙고 개봉이 밀리고 밀리던 ‘승리호’는 결국 2월 넷플릭스 단독 개봉을 택했다. 공개 2일 만에 28개국에서 스트리밍 1위를, 5일간 전세계 스트리밍 1위를 차지했다. 항간에서는 K-컬쳐의 대단함이니, 21세기에도 등장하는 90년대식 가족주의 신파니 하며 여러 가지 평이 엇갈린다. 하지만 어쨌거나 넷플릭스 증후군(Netflix syndrom, 콘텐츠를 보는 시간보다 고르는데 시간을 더 쓰며, 결국 예고편만 보다가 마는 행동을 말한다)이 난무하는 OTT 시장에서 승리호는 승리했다.

승리호 포스터
[그림 1] 출처: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의 장점은 보고 또 보기다. 콘텐츠가 재미있었다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승리호 재탕, 삼탕을 거쳐 사골까지 탕으로 우려낼 애청자를 위한 뼈공계(뼈속까지 이공계)가 알려주는 쓸데없는 승리호 속 과학 상식.

스포일러? 없을 리가. 애초에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냥 개봉 첫날 아무것도 검색하지 말고 일단 영화부터 보시길. 포털 창에 영화 제목 검색하고 정보 찾으면서 스포일러 당했다고 울지말고….

관전포인트 하나, 우주 쓰레기

SF영화에는 벽이 하나 있다. 복잡하고 그럴싸한 과학 용어들이 난무하는데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가령 ‘4D 증강현실 렌즈 단면 디스플레이, 경량 레이저 블라스터 소총, EMP 지뢰(이상 장 선장의 발명품)’라는 대사가 들릴 때 저게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알아듣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_@ 하는 표정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문제는 저런 복잡다난한 용어가 전체 서사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때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데 하나씩 설명해 가며 맥락을 끊을 수도 없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 쓰레기’는 아주 직관적인 단어다.

우주 쓰레기는 말 그대로 우주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말한다. 1957년 발사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에서부터 시작한 쓰레기들이다. 발사에 실패하거나, 수명을 다하고, 고장난 인공위성과 관련 잔해들이 지구 주변을 돌고 있다. 그 개수는 1cm 이상인 쓰레기만 샜을 때 수십만 개에 이른다. 다만 이들의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는 게 문제다. 초속 7.9km~11.2km로 움직이는데, 대충 계산해 보면 말라비틀어진 작은 페인트 조각 하나가 지상에서 250kg짜리 오토바이(스쿠터 아니다!) 한 대가 시속 100km 속력으로 충돌하는 것과 같은 파괴력을 가진다.

오토바이의 순수한 무게가 249kg
[그림 2] 이 오토바이의 순수한 무게가 249kg! 출처: 네이버 자동차

2013년에 개봉한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 쓰레기가 인공위성이나 국제우주정거장(ISS) 같은 우주 구조물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보여준다. 실제로 우주비행사들이 거주하는 ISS에서는 종종 그래비티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 우주감시망원경으로 추적관찰하던 우주 쓰레기가 ISS로 근접할 때면 우주비행사들은 급하게 탈출 캡슐로 들어간다. 지난해 9월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2092년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2014년에는 10cm 이상되는 우주 쓰레기를 약 2만 3000개로 추정했지만 현재는 4만 개 가까이 될 것으로 본다. 승리호의 배경인 2092년에는 지구 바깥에 인공도시를 건설하고, 궤도 엘리베이터를 통해 오가며, 화성에 거주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본격 우주 시대다. 인공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건축폐기물이 나오고, 이 폐기물이 우주 쓰레기가 됐을지는 감조차 오지 않는다. ‘우주 쓰레기 청소부’가 등장한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 쓰레기들. 지구를 얇은 막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저궤도 쓰레기, 가로로 넓게 위성 궤도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정지궤도 쓰레기다. 출처: ESA
[그림 3]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 쓰레기들. 지구를 얇은 막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저궤도 쓰레기, 가로로 넓게
위성 궤도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정지궤도 쓰레기다. 출처: ESA

관전 포인트 둘, 청소부와 나노봇

우주 쓰레기 청소부는 우주 쓰레기 문제가 제시된 이후 꾸준히 함께 논의된 주제다. 인공위성 2개가 그물을 잡고 우주 쓰레기를 포획하거나, 자기장을 발생해 궤도를 비틀어 지상으로 떨어뜨리는(크기가 작은 우주 쓰레기는 지상으로 떨어지는 동안 대기와의 마찰열로 모두 타 버린다) 아이디어가 제시되곤 했다. 미국의 한 발명가는 가스를 분사해 빗자루질을 하는 것처럼 특정 위치로 쓰레기를 모은 다음 처리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러시아의 어떤 스타트업은 끈끈한 물질을 쏜 뒤, 이 물질에 붙은 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수많은 아이디어가 제시됐지만 아직까지 현실적인 방안은 없다. 비용과 기술력, 모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이 3차원으로 어마어마하게 커 우주 쓰레기가 생각보다 넓게 퍼져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전직 우주 비행사 마이크 멀레인에 따르면 텍사스 주(프랑스 국토보다 크다!)에서 자동차 5대가 퍼져있는 정도라고.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은 2025년 첫 번째 시행된다. 로켓에 우주 쓰레기 로봇을 실어 발사한 뒤, 로봇이 우주 쓰레기를 붙잡고, 방향을 틀어 지구로 재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유럽우주국(ESA)이 ‘클리어스페이스1’이라고 명명한 프로젝트로, 2013년에 발사했던 인공위성 베스파의 잔해를 수거한다. 베스파의 잔해는 무려 100kg으로, 현재 지구상공 800km 궤도에 있다.

[그림 4] 2013년에 발사했던 베스파 위성. 수거할 부분은 위성체의 상단부다. 출처: ESA
[그림 4] 2013년에 발사했던 베스파 위성. 수거할 부분은 위성체의 상단부다. 출처: ESA

승리호의 우주 쓰레기 청소부들은 클리어스페이스1과 비슷한 일을 한다. 로봇팔이나 작살로 빠른 속도고 이동하는 거대한 쓰레기들을 잡고 움직임을 끌어당긴다. 이 쓰레기를 ‘공장’이라고 부르는 우주 공간 속 인공 소도시에 가져가 보상을 받는다. 공장에서는 쓰레기를 해체해 재활용을 하는 듯하다.

큰 쓰레기는 현실이건 영화건 직접 하나씩 치운다 치고, 작은 쓰레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에선 아직까지 답이 없다. 대신 영화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개념을 도입했다. 정체는 ‘나노봇’.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가는 중심 키워드자 도구(?)인데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주요 역할은 쓰레기 분해다.

나노봇은 이름에서 풍겨오든 나노미터(nm, 1nm는 10억 분의 1m) 크기의 로봇을 말한다…고정의를 말하지만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실 언제 만들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작아도 너무 작다. 현재 인류가 다룰 수 있는 최소 단위는 나노단위다. 나노 단위로 만드는 반도체칩과 다른 전자 장비가 합쳐져야 비로소 ‘로봇’이 된다. 현재 수준에서 가능한 것은 사실상 마이크로미터(μm, 100만 분의 1m) 단위 로봇인 마이크로봇. 의료용으로 주로 많이 연구되며 연구 성과도 종종 발표된다.

[그림 5] 2019년 최홍수 DGIST 교수팀이 개발한 심혈관질환 치료용 마이크로봇. 폭이 마이크로 단위다. 출처: DGIST
[그림 5] 2019년 최홍수 DGIST 교수팀이 개발한 심혈관질환 치료용 마이크로봇. 폭이 마이크로 단위다. 출처: DGIST

잠깐 크기가 커졌는데, 다시 나노 단위로 돌아와 보면 이 수준에서 실제로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을 찾아보면 세균이나 그보다 작은 바이러스다. 세균은 대략 1000~5000nm(1~5μm) 수준, 바이러스는 100nm 이하 급(참고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80~100nm)이다. 승리호의 나노봇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세균(Pseudomonas putida)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대사도 좀 그렇고.

관전 포인트 셋, 라그랑주점

업동: 야, 근데 라그랑주점에서 온 것치고는 진짜 멀쩡하네. 이 정도면 나노봇들이 벌써 다 갉아 먹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아, 이거 나노봇들 설마 우리 배에 옮는 거 아니야?
타이거 박: 뭘 옮아? 원래 여기저기 다 퍼져있는 거를.
업동: 그냥 나노봇이 아니잖아. 라그랑주 나노봇이 얼마나 독한 애들인데. 걔네 죽지도 않아.

나노봇 이야기를 하며 저 대사를 놓고 보니, 라그랑주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승리호에서 라그랑주는 ‘우주 쓰레기 정체 구간’으로 소개된다. 우주 쓰레기가 모여있고, 따라서 이 구역에 있는 나노봇은 분해에 특화돼 있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이곳에 진입했던 승리호는 나노 단위로 분해돼 거의 죽을 뻔하기도 했고.

라그랑주점은 천문학 용어로 일종의 중력 균형점이다.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조제프-루이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 1736-1813)가 발견했다.

라그랑주점은 대략 이렇다. 질량이 큰 천체(A)가 있고, 이 천체 주변을 공전하는 질량이 약간 작은 천체(B)가 있다. 이 때 A와 B 사이에는 이 두 천체에 영향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질량을 가진 C가 정지해 있을 수 있는 지점이 있는데, 이 지점을 라그랑주점이라고 한다. 라그랑주점은 천체가 2개일 때 지점 5개를 갖는데 대충 아래 그림과 같다.

[그림 6] 노란원 천체와 파란원 천체 사이의 라그랑주점. L1~L5가 라그랑주점이다.
[그림 6] 노란원 천체와 파란원 천체 사이의 라그랑주점. L1~L5가 라그랑주점이다.

라그랑주점은 SF는 물론,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인기가 좋은 지역이다. 천체 사이에 정지해 있다는 점은 아주 유용하다. 예를 들어 태양과 지구 사이의 L1 지점에는 1995년 발사한 태양관측위성인 소호(SOHO)가 있다. 언제나 지구를 등지고, 태양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관측 위성으로서 이만한 위치가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 3월 발사 예정이었던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은 태양-지구의 L2에 자리 잡을 예정이었다. 태양-지구 L2 지점은 언제나 지구 그림자에 가려져 있기에 먼 우주를 관찰할 망원경이 상대적으로 태양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위치다. 지구로 치면 항상 밤이기 때문이다.

라그랑주점은 종종 인공위성 궤도와 헷갈리곤 한다. 두 천체의 중력이 균형을 이뤄 어느 한쪽으로도 끌려가지 않는 지점(라그랑주점)과, 원심력과 중력이 평형을 이뤄 끌려가지 않는 지점(인공위성 궤도)가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애초에 스케일이 다르달까.

이 스케일을 승리호 제작진이 간과한 점이 옥의 티다. 뼈공계적 감각으로 라그랑주점에 우주 쓰레기가 과연 모일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겨 몇가지 숫자를 찾으며 추정을 해봤다(다시보기가 무한으로 가능한 넷플릭스 만세!).

일반적인 저궤도 위성의 높이는 250~2000km. 우주 쓰레기도 이 구간에 집중돼 있다. 지구에서 더 멀리 떨어진 정지궤도 위성(3만 5786km)까지를 범위에 넣더라도 최대 4만km를 넘어가지 않는다. 즉 우주 쓰레기가 퍼져있고 모일 수 있는 곳은 지구를 중심으로 이 범위 안이란 뜻이다. 게다가 지구와 UTS의 인공 도시를 잇는 궤도 엘리베이터의 고도(다시 보기로 잘 찾아보시라!)로 보건데 도시의 고도는 아무리 높아봐야 지구 상공 300km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도시와 우주 쓰레기는 모두 지구 상공 4만 km 이내에 있으며, 우주 쓰레기가 모이는 구간이 있더라도 이 범위 안이어야 한다.

반면 라그랑주점은… 좀 많이 멀다. 지구-달 라그랑주점 중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L1 지점을 예로 들어 보자. L1 지점은 지구 보다 달에 가깝다. 즉 중간에서도 달쪽에 가깝다는 뜻이다. 지구-달 사이의 거리는 약 38만km. 지구-달의 중간 지점이라고 해도 지구에서 약 19만km 떨어져 있다. L1 지점은, 더 멀다….

[그림 7] 승리호의 속도를 구해보자!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7] 승리호의 속도를 구해보자! 출처: 네이버 영화

라그랑주점을 제외하면 의외로 우주선 속도는 제법 흥미롭다(좋은 의미로!). 특히 폭탄을 피해 5132.464km를 달아나는 마지막 장면은 의외로 계산이 잘 맞아서 아주 흥미로웠다. 이 부분은 독자 여러분의 재미를 위해 남겨 둘까한다. 힌트는 영화 후반부, 대략 1시간 44분이 지난 시점부터. 인공 드론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이다. 과연 승리호의 속도는 얼마이며, 이 거리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을까?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https://blog.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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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