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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놀이다 : 장난감으로 풀어보는 과학 이야기

로봇사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의 인간’을 뜻하는 말이다. 인간은 유희라는 놀이로부터 정신적인 창조 활동을 통해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고대 이래로 인간은 의식주와 관련된 삶의 활동을 마치고 나면,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자유로운 놀이 활동을 영위해왔다.

오늘날 집에 아이가 있으면 아이에게 다양한 장난감을 안겨준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즐기고 놀면서 시청각, 인지력, 조절능력 등 다양한 능력을 배우게 되며, 지능, 운동능력, 정서적 및 사회적 발달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아이의 발달 수준에 맞추어 적절한 장난감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의 학습에 장난감을 사용하는 사례도 많이 발견되는데 특히 과학 교과에서 장난감을 이용하는 예가 많다. 최근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등의 국제성취도 비교평가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과학과 수학의 성취도는 높으나 과학(수학)에 대한 자신감이나 흥미는 국제적으로 최저 수준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더욱 심화되는데, 과학학습에 장난감을 활용하면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은 장난감을 이용한 과학학습이 의미 있는 교육적 시도라는 것을 알려준다.

과학학습과 장난감이 연계된 가장 대표적인 장난감이 레고다. 레고는 블록을 기반으로 하는 완구로 레고 블록을 이용한 다양한 과학교육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상용화하고 있다.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구현한 수동전동기계세트(simple and powered machine & mechanisms)는 물론 실생활에서의 로봇공학을 경험하게 해주는 마인드스톰(Mindstorm), 스파이크 프라임(SPIKE Prime)을 통해 STEM 및 컴퓨터 과학수업을 지원하고 있다.

레고로봇

레고는 블록을 조립하여 완성체를 만드는 완구로 최근에는 건축을 비롯한 많은 공정에 이 원리를 사용하고 있는데,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장영재 교수는 ‘제조 프로세스 혁신’이라는 전공필수과목에서 레고 블록을 이용하여 공장 자동화 설비를 만들어 작동해 보는 활동을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장난감의 원리를 밝히는 활동을 통해 과학학습이 이루어지는 사례도 많다. 고등학생들이 물리문제를 탐구하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국제청소년물리토너먼트(International Young Physicists’ Tournament, IYPT)에 출제되는 문제 중에는 장난감의 물리적 원리를 탐구하는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

그중 몇 개만 소개해보자. 2012년에 나온 문제는 딱따구리를 모형화한 장난감이다. 긴 막대기에 스프링으로 연결된 딱따구리는 스프링에 의해 출렁거리면서 내려오는 재미있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 장난감의 주기운동을 물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인데, 전 세계 많은 학생이 해답을 얻기 위해 식을 세워 풀이하기도 하고 모형을 만들어 실험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장난감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학습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다.

IYPT 2012년 문제와 이를 풀이하는 과정(예)
▲ IYPT 2012년 문제와 이를 풀이하는 과정(예)

장난감을 이용한 과학의 발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학 과학자로 손꼽히는 뉴턴은 1665년 영국에 불어 닥친 흑사병을 피해 고향인 울즈소프로 돌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뉴턴은 중력법칙, 미적분학과 함께 빛의 본성을 밝히는 연구를 수행했다. 그 당시 프리즘은 빛을 무지갯빛으로 퍼트리는 성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었다. 뉴턴도 프리즘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서 빛의 여러 성질을 탐구하게 되고 그 결과 빛의 실체를 알아내게 되었다.

캠브리지의 휘플뮤지엄에 전시된 뉴턴의 프리즘.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과학책인 프린키피아와 같이 전시되어 있다. (출처: 필자 촬영 사진)
▲ 캠브리지의 휘플뮤지엄에 전시된 뉴턴의 프리즘.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과학책인 프린키피아와 같이 전시되어 있다. (출처: 필자 촬영 사진)

장난감의 원리가 과학 연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의료 연구를 하는 실험실에서는 환자로부터 채취한 혈액을 튜브에 넣고 원심분리기를 이용하여 빠르게 회전시켜 원심력에 의해 혈액 속 성분들을 분리하는데, 이 원심분리기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저소득 국가나 오지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원심분리기가 필수로 필요하지만 충분한 양의 기계를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Saad Bhamla 등은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서 그 해답을 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단추에 실을 꿰어 놀았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을 정도로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사용되는 장난감이다. 이 장난감의 기원은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의 whirligig에서 찾을 수 있다. Bhamla 등은 이 실팽이의 원리를 이용하여 종이 원심분리기를 만들었다. 작은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는 종이판과 실, 그리고 실을 잡기 위한 나무 손잡이가 전부이다. 그리고 혈액이 담기는 작은 튜브를 종이 원반에 붙여 놓기만 하면 된다.

실을 잡고 늦췄다 당겼다 하면 종이 원반이 윙윙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돌아가게 된다.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원심분리기는 분당 4만~8만 회 정도 회전하는데, 이 종이원심분리기(Paperfuge)는 무려 분당 12만5,000회나 회전이 가능하다고 하니 엄청난 성능을 보였다. 상업용 원심분리기보다 더 성능이 좋은 셈이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현장실험을 실시하여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15분 만에 혈액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을 분리해 낼 수 있었으니, 과연 200원으로 만든 기적이라고 불릴만하다. 최근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을 뜻하는 ‘적정기술’을 통해 인간의 삶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종이와 실만으로 만든 이 종이원심분리기는 적정기술의 대표적인 사례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종이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3D프린터를 이용한 3D-fuge를 개발하여 그 결과를 무료로 공유하고 있다.

Bhamla 등이 작성한 논문에 제시된 Paperfuge의 개발과 성능을 나타낸 그림
▲ Bhamla 등이 작성한 논문에 제시된 Paperfuge의 개발과 성능을 나타낸 그림

IBS, 으른이 장난감 ‘피젯 스피너’로 세균 감염 진단

장난감으로부터 의료진단기구를 발명한 국내 사례도 있다. 복통, 유산, 뇌졸중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세균성 감염질환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보통 하루 이상의 배양검사가 필요하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는 큰 병원이나 연구소에 세균샘플을 보내서 검사를 해야 하고 정확한 결과를 받기 위해서는 길게는 1주일이 걸리기도 한다. 그때까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으로 처방할 수 밖에 없어 항생제 오남용의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의 조윤경 교수 연구팀은 간단한 수동 진단기구를 발명하여 감염성 질환의 100% 정확한 진단을 1시간 이내로 가능하게 했다. 연구팀의 발명은 많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피젯 스피너’라는 장난감으로부터 착안을 하였다. 피젯 스피너는 베어링을 중심으로 본체를 돌리는 손바닥 크기의 장난감으로 마찰력이 작아 한번 회전을 시작하면 수분까지 회전이 가능하여 2-3년 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장난감이다.

연구팀은 마이크로미터 규모의 구조물에 시료를 흘려 여러 실험을 한 번에 처리하는 ‘칩 위의 실험실(lab on a chip)’로 불리는 미세유체칩 원리를 이용하려 하였는데, 칩 내의 시료를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펌프나 회전 장치가 필요했다. 연구팀은 적은 힘으로도 오랫동안 회전하는 장난감인 ‘피젯 스피너’라는 장난감에 그들이 개발한 ‘FAST(fluid-assisted separation technology)’ 기술을 응용하여 손힘만으로도 구동이 가능한 장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피젯 스피너와 진단용 스피너> (출처 : 기초과학연구원)
▲ [피젯 스피너와 진단용 스피너] (출처 :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은 회전으로 병원균을 농축한 다음, 세균 분석과 항생제 내성 테스트를 순차적으로 수행하도록 기구를 설계했다. 진단용 스피너에 소변 1ml를 넣고 1~2회 돌리면 필터 위에 병원균이 100배 이상 농축된다. 이 필터 위에 시약을 넣고 기다리면 살아있는 세균의 농도를 색깔에 따라 육안으로도 판별할 수 있고, 추가로 세균의 종류도 알아낼 수 있다.

항생제 오남용에는 슈퍼 박테리아 출현의 위험도 있지만, 단계를 높여가면서 항생제를 투여했을 때에는 100만원이 넘은 비용이 지출되는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 그런데 연구팀이 개발한 진단용 스피너는 불과 600원밖에 되지 않으며 동작이 간단하여 비전문가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활용도가 매우 높다.

유년시절의 친구 자석이 ‘인공태양’으로

필자가 어렸을 때, 자석은 매우 신기한 장난감이었다. 망가진 TV나 스피커를 분해해서 얻은 자석 하나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오늘날 자석은 매우 친숙한 생활용품에 불과하지만 과학기술에서 폭넓은 역할을 하고 있다.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기부상열차로 자기력에 의해 열차를 선로에서 뜬 상태로 달리게 한다. 마찰에 의한 저항을 줄일 수 있어 미래의 운송수단으로 많이 연구되고 있다.

자석이 첨단 과학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예는 초전도자석이다. 미래 에너지원으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핵융합연구에도 초전도자석이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핵융합연구를 위해 만든 초전도 토카막인 ‘케이스타(KSTAR)’는 고온의 플라스마를 가두기 위해서 높은 자기장을 장시간 유지해야 하는데 이때 초전도 자석이 그 핵심 역할을 한다. KSTAR는 지난 2월에 중심 이온온도 1억도 이상의 초고온 고성능 플라스마를 1.5초간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KSTAR (출처: 국가핵융합연구소)
▲ KSTAR (출처: 국가핵융합연구소)

미래의 장난감

사전에서 장난감을 찾아보면 ‘놀이에 사용되는 물건’으로 나오면서 “장난감은 주로 어린 아이들과 가정동물에 관련된 물건으로 여겨지지만 어른들과 야생 동물들도 장난감과 놀기도 한다”고 제시되어 있다. 장난감은 아이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이라는 ‘키덜트 토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드론은 성인들의 장난감으로 수년전부터 관심을 받아왔다. RC자동차, 비행기, 헬리콥터 등에 비해 드론은 보다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하여 특히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현재는 전기자동차 브랜드로 알려진 테슬라의 모태가 된 과학자 니콜라스 테슬라가 처음 무인비행기의 기초원리를 만들었다. 이후 백여년동안 군사용 목적으로만 연구되어오다가 2010년 프랑스의 ‘패럿(Parrot)’이라는 드론업체가 스마트폰으로 조정이 가능한 드론을 출시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값비싼 장난감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짧은 비행시간으로 인해 실제 산업에의 적용 가능성이 낮았지만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초경량화, 고용량배터리의 개발 등으로 4차산업혁명 시대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장난감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정보통신과 음성인식 기술을 탑재한 다양한 장난감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컴퓨터 칩과 송수신기를 이용하여 스마트폰으로 원격 제어가 가능한 소형 자동차는 초소형 카메라까지 내장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에 미국과 유럽의 첨단 장난감 시장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뉴욕주립대학 산하 디자인학교인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는 장난감설계과정(Toy design)을 설립하고 장난감과 관련된 컴퓨터 및 각종 공학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단순한 놀이감으로만 여겨졌던 장난감은 과학학습의 도구는 물론 첨단과학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첨단과학과 장난감과의 융합은 또 어떤 놀라운 제품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인지 기대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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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14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