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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몸속,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당신의 온몸이 투명해졌다고 상상해 보자. 아마도 졸린 눈으로 들어간 화장실의 거울이 텅 빈 것을 보고 알게 되었으리라. 투명 인간의 삶은 어떨까? 투명 인간이 되면 과연 좋을까?

어쩌면 처음에는 신날지도 모른다. 접근이 금지된 곳에 몰래 들어가 볼 수 있고, 싫어하던 사람의 뒤통수를 신나게 갈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통제 없이도 인간은 윤리적일 수 있을까? 플라톤부터 J.R.R. 톨킨, 허버트 조지 웰스에 이르는 당대의 소설가와 사상가들이 ‘투명인간’을 소재로 윤리적 사고 실험을 해온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비저블맨>.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고전 소설을 각색했다. ‘투명화’가 가져다 준 인간의 탐욕을 잘 드러낸다. (출처 : 유니버셜 픽처스)
▲ 최근 개봉한 영화 <인비저블맨>.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고전 소설을 각색했다. ‘투명화’가 가져다 준 인간의 탐욕을 잘 드러낸다. (출처 : 유니버셜 픽처스)

하지만 글쎄다, 실제 투명 인간의 생활은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이 훨씬 더 클 것 같다. 이가 보이지 않는데 양치를 할 수 있을까?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데 다치지 않고 칼을 쓸 수 있을까? 다리가 보이지 않는데 바지 입기는 쉬우려나? 투명 인간이 음식을 먹으면 뱃속의 내용물이 다 보이진 않을까?

투명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고려한 사람 중 누군가는 투명 인간이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이는 눈의 구조와 관련 있다. 우리가 눈으로 바라본 바깥의 풍경은 스크린 역할을 하는 망막에 상으로 맺힌다. 이 상의 빛 신호가 뇌로 전달되면 시각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스크린인 망막이 투명하다고 생각해 보자. 바깥에서 온 빛이 상으로 맺히지 않으니, 자연히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3차원으로 그린 눈의 구조와 망막(retina)을 확대한 모습. 스크린 역할을 하는 망막이 투명해지면 우리가 본 광경이 망막에 상으로 맺히지 않고 반대편으로 통과해버릴 것이다. 그러면 투명 인간은 앞을 볼 수가 없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 3차원으로 그린 눈의 구조와 망막(retina)을 확대한 모습. 스크린 역할을 하는 망막이 투명해지면 우리가 본 광경이 망막에 상으로 맺히지 않고 반대편으로 통과해버릴 것이다. 그러면 투명 인간은 앞을 볼 수가 없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생물학자들은
당신을 투명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당신이 투명해진다면 좋아할 사람들은 당신 본인이 아니라 당신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일지도 모른다. 역사 이래로 생물학자들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신체 구조를 꿰뚫어 보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신체의 작동 원리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생물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 난관을 돌파했다. 16세기 유럽의 의사였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시체의 배를 직접 열어 내부를 관찰하는 방법으로 해부학은 물론, 근대 의학의 문을 열었다. 물리학자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은 어떤가. 근육에 덮여 보이지 않는 뼈를 드러내는 X선은 현대 의학에서 없어서는 안될 진찰 도구가 되었다. 신체를 관찰하는 방법의 발전이 의학과 생물학에도 혁신을 가져온 것이다.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Fabrica)>에 실린 신체의 모습. 그의 해부학 업적은 근대 의학의 기원이 되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Fabrica)>에 실린 신체의 모습. 그의 해부학 업적은 근대 의학의 기원이 되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이런 노력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이 일본 작가 ‘토미타 이오리’이다. 그는 다양한 동물들의 몸을 투명하게 만든 ‘투명 표본’ 작업으로 유명하다. 근육을 투명하게 만든 후 단단한 뼈인 경골을 붉은색으로, 무른 뼈인 연골을 푸른색으로 염색하면 작은 동물들의 섬세한 골격 구조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토미타 이오리가 만든 투명 표본의 모습. (출처 : Iori Tomita)
▲ 토미타 이오리가 만든 투명 표본의 모습. (출처 : Iori Tomita)

투명 표본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작은 물고기를 표본으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포르말린 용액에 넣어 처리한 물고기의 비늘과 껍질을 벗긴다. 그 후 연골을 착색하는 푸른색 ‘알시안 블루’와 경골을 착색하는 붉은 ‘알리자린 레드 에스’ 염색액에 표본을 넣어 뼈에 색을 입힌다.

염색이 끝난 표본은 마지막으로 단백질을 분해하는 트립신 같은 효소로 처리한다. 그러면 근육 조직이 서서히 분해되면서 드러나지 않던 물고기의 뼈가 보이기 시작한다. 효소가 너무 오래 작용해서 동물의 전체적인 형태가 무너지기 전에 표본을 꺼내면 투명 표본이 완성된다.

투명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라

베살리우스와 뢴트겐의 시대가 지난 지 오래지만, 세포 내부의 미세한 현상들을 연구하는 분자생물학과 세포생물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보이지 않는 생물 내부를 보기 위한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14년 노벨 화학상의 영예가 초고해상도 광학 현미경을 개발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간 것만 보아도 그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진이 개발한 초고속 홀로그램 현미경. (출처 : IBS)
▲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진이 개발한 초고속 홀로그램 현미경. (출처 : IBS)

작년 8월 최원식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부연구단장 연구팀은 ‘초고속 홀로그램 현미경’을 개발했다. 홀로그램 현미경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레이저 광원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두 레이저 빛이 만나면 서로 간섭을 일으키는데, 이를 이용하면 체내 깊숙한 곳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연구팀은 두 레이저광을 동조시키는 방식으로 기존보다 데이터 획득 속도를 수십 배 이상 향상시켰다. 연구진이 개발한 초고속 홀로그램 현미경은 초당 500장 정도의 데이터를 획득한다. 기존 기술보다 약 50배는 빨라졌다.

홀로그램 현미경으로 부화한 지 각각 6일(a), 10일(b) 된 제브라피쉬의 신경망 구조를 관찰했다. 일반 현미경으로 얻은 영상(c, d)에 비해 훨씬 고해상도로 보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IBS)
▲ 홀로그램 현미경으로 부화한 지 각각 6일(a), 10일(b) 된 제브라피쉬의 신경망 구조를 관찰했다. 일반 현미경으로 얻은 영상(c, d)에 비해 훨씬 고해상도로 보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IBS)

아예 다른 두 가지의 기법을 한 번에 사용하는 기술도 개발되었다. 최원식 부연구단장 연구팀은 올해 2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장무석 교수팀과 함께 광학 현미경과 초음파를 동시에 사용하여 생체 내부를 관찰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전혀 다르게 들리는 두 기술을 어떻게 합친 걸까?

공간 게이팅 현미경의 모습. (출처 : IBS)
▲ 공간 게이팅 현미경의 모습. (출처 : IBS)

광학 현미경으로 생체 조직을 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산란광’이다. 빛이 생체 조직을 투과하면 ‘직진광’과 ‘산란광’이라는 두 가지 빛이 생기는데, 산란광은 생체 조직의 영향으로 진행 방향이 굴절된 빛이다. 이 산란광이 이미지를 흐리게 만드는 주범이다. 반면 초음파는 생체 내부의 훨씬 깊은 곳까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만, 해상도가 낮아 미세한 구조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이 둘을 조합했다. 초음파는 생체 조직에 영향을 주어 빛의 진행에 영향을 준다. 연구팀은 관찰하고 싶은 부위에 초음파의 초점을 모은 다음, 그 부위를 지난 빛만 관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면 초음파가 관찰에 방해가 되는 산란광을 막아내고 필요한 빛만 남기는 식이다.

기존의 현미경(왼쪽)에서는 제브라피시 내부를 관찰하기 위해서 불쌍한 제브라피시를 얇게 잘라야 했다. 공간 게이팅 현미경(오른쪽)을 사용하면 살아있는 제브라피시를 바로 관찰할 수도 있다. (출처 : IBS)
▲ 기존의 현미경(왼쪽)에서는 제브라피시 내부를 관찰하기 위해서 불쌍한 제브라피시를 얇게 잘라야 했다. 공간 게이팅 현미경(오른쪽)을 사용하면 살아있는 제브라피시를 바로 관찰할 수도 있다. (출처 : IBS)

연구팀이 ‘공간 게이팅’이라 이름 붙인 이 기술이 보급되면 실험동물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관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전에는 동물 내부를 관찰하려면 동물을 잘라서 얇게 포를 뜬 다음, 염색해서 관찰해야 했다. 즉, 내부를 보고 싶으면 실험동물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산란광으로 바깥에서 관찰하기 힘들었던 탓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공간 게이팅 기술을 이용해 살아있는 제브라피시의 척추 안쪽 근육 조직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연구진은 인체 조직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 게이팅 기술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그렇게 된다면 질병 진단에도 이 기술이 쓰일 수 있으리라는 것이 연구팀의 기대다. 과연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현미경 기술이 이렇게 발달한다면, 적어도 생물학자들에게는 투명 인간이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닐까.

일반 광학 현미경(a)과 공간 게이팅 현미경(b)을 이용해 제브라피시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공간 게이팅 현미경을 사용하면 기존에는 관찰하기 어려웠던 근육중격(노란 점선), 근육-뼈 접합부(붉은 점선) 등의 미세 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출처 : IBS)
▲ 일반 광학 현미경(a)과 공간 게이팅 현미경(b)을 이용해 제브라피시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공간 게이팅 현미경을 사용하면 기존에는 관찰하기 어려웠던 근육중격(노란 점선), 근육-뼈 접합부(붉은 점선) 등의 미세 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출처 : I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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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12-17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