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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필수품, 촉매

인류와 함께해 온 촉매가 부리는 마법

MBC의 예능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개그우먼 장도연은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강조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출처: 나혼자산다 333회 화면캡처)
▲ MBC의 예능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개그우먼 장도연은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강조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출처: 나혼자산다 333회 화면캡처)

집에서 콩나물 키우기, 고구마 구워 먹기, 신문과 책 읽기, 일기 쓰기…

MBC의 예능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개그우먼 장도연이 아침에 일어나자 한 일들이다. 콩나물에 물을 주기 위해 가장 짧은 동선을 찾아 거실 소파 위를 넘어 다니던 그녀는 한 마디를 남긴다. ‘시간 아껴야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데.’

생각해보면 우리 대부분은 ‘바쁘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횡단보도 보행 신호가 깜빡이면 돌진해서 뛰어 건너고,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계속 누르는가 하면, 자판기에서 커피 컵을 손으로 잡은 채로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초고속 인터넷과 로켓배송이 없는 일상은 이젠 상상하기도 어렵다.

‘빨리빨리 문화’는 과학자들의 실험에도 들어섰다. 만약 화학반응에서 빨리빨리 문화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풍족하고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촉매다.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등 대부분의 생활용품은 물론 휘발유와 경유 같은 자동차 연료까지 화학반응이 빨리빨리 일어난 덕분에 우리가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촉매가 어떻게 화학반응이 빨리 일어나게 할까? 수소(H2)는 산소(O2)와 폭발적으로 반응하여 물(H2O)을 생성하지만, 상온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 만약 불꽃이 튀기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종이도 공기 중의 산소와 닿아 있어도 불을 붙여주지 않으면 별다른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자연 상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화학반응이 일정한 에너지가 공급되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반응이 일어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활성화 에너지라고 한다. 수소의 반응이나 종이의 연소와 같은 반응의 활성화 에너지는 높지 않아 비교적 쉽게 일어나지만, 대부분의 화학반응은 수백도, 수천도로 온도를 높여도 속도가 매우 느리거나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활성화 에너지는 높다. 이때 해결사로 촉매가 나타나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어주어 화학반응이 빨리빨리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산 건너편으로 갈 때 힘들게 높은 산을 넘어서 가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터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산을 힘들게 넘어가지 않고 터널로 빠르게 가게 하는 것이 화학반응에서 촉매가 하는 역할이다. (출처: 필자 그림)
▲ 산을 힘들게 넘어가지 않고 터널로 빠르게 가게 하는 것이 화학반응에서 촉매가 하는 역할이다. (출처: 필자 그림)

‘한 잔의 술’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촉매 덕분

우리는 화학시간에 촉매는 자신은 소모되거나 변하지 않으면서 화학반응을 빠르게 해주는 물질이라고 배웠다. 실제 반응이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촉매는 반응물에게 자리를 제공하고(흡착), 그 자리를 차지한 반응물끼리 반응이 일어나 생성물이 생기면(표면 반응), 그 자리에서 생성물이 떨어져 나가게 한다(탈착). 반응이 일어나는 도중에는 촉매의 변화가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소모되거나 변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을 반응물에 비유하면 이들이 만나는 자리를 미련해 주고, 결혼에 골인하게 한 다음, 부부가 되면 자신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촉매를 사용했던 건 수렵채취활동을 하던 선사시대일 것이다. 당시 조상들은 잘 익은 과실에 공기 중의 야생 효모를 넣어 과실주를 만들었다. 효모가 과실의 당을 알코올로 발효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이다. 오늘날 와인도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이후 농경시대에는 곡물을 당화시키는 효소 촉매를 찾아내어 곡물주를 담글 수 있게 됐다. 서양의 맥아, 동양의 누룩이 당화를 위한 촉매에 해당한다. 비누의 제조도 촉매 사용에 관한 오래된 기록의 하나이다. 이에 관한 최초 기록은 기원전 2800년경 고대 바빌론 시대에 동식물성 지방과 나무의 재를 물에 넣고 끓여 만든 것인데 이때 지방의 가수분해 반응 촉매로 재가 사용됐다.

실질적으로 화학산업의 기초가 된 촉매 반응의 발전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가 되어서야 이루어졌고, 20세기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현재 화학공정의 90% 이상에 촉매가 도입됐다.

또한 우리 몸을 비롯한 생물체는 효소라는 특별한 형태의 단백질이 촉매 역할을 하여 생체 대사가 일어나게 한다. 특히 각 효소는 한 종류의 반응에만 작용한다는 기질 특이성이 있고 생물체의 온도에서 최대의 활성을 보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촉매라고 할 수 있다. 탄수화물을 당으로 소화시키는 아밀라아제, 지방을 소화시키는 리파아제, 단백질을 소화시키는 트립신 등 효소는 우리 몸을 유지하게 해주는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촉매이다.

인류와 함께해 온 술과 비누는 촉매의 산물이다. (출처: 클립아트 코리아)
▲ 인류와 함께해 온 술과 비누는 촉매의 산물이다. (출처: 클립아트 코리아)

역사적인 암모니아 합성 촉매 개발의 명과 암

인류의 역사를 가장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은 사건은 1900년대 초 암모니아 합성용 촉매의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식량난이 빈번하여 곡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비료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성분인 질소는 인공적으로 고정할 수 없어 칠레초석과 같은 천연자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공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를 인공적으로 고정하는 화학반응을 연구해오다가 1910년경 마침내 프리츠 하버가 찾아내고 이를 카를 보슈가 더욱 발전시켜 철 계통의 촉매로 수소와 질소를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버-보슈 공정이라고 명명된 이 암모니아의 합성은 질소비료의 생산으로 이어졌고 기아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는 계기가 되어 1900년 불과 16억 명이었던 인구가 100년 뒤에는 60억 명 이상으로 급증하게 됐다. 이 공로로 하버는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암모니아 합성 촉매의 개발이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질소는 화약의 주요 성분이기도 한데 당시 영국, 프랑스 등이 거의 독점한 칠레초석에만 의존하여 화약을 만들어야 했다면 독일은 전쟁을 일으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전쟁 기간 독일에서는 암모니아 생산 용량을 연간 50만t까지 높였다고 한다.

하버-보슈법을 개발한 프리츠 하버(Fritz Haber)와 카를 보슈(Carl Bosch) (출처: Wikipedia)
▲ 하버-보슈법을 개발한 프리츠 하버(Fritz Haber)와 카를 보슈(Carl Bosch) (출처: Wikipedia)

하버·보슈법(Haber-Bosch process) 암모니아의 합성은 비료 생산을 통해 기아 극복에 기여했지만,화약 생산에도 사용돼 1차 세계대전을 촉발했다고 평가받는다. (출처: 사이언스올)
▲ 하버·보슈법(Haber-Bosch process) 암모니아의 합성은 비료 생산을 통해 기아 극복에 기여했지만,화약 생산에도 사용돼 1차 세계대전을 촉발했다고 평가받는다. (출처: 사이언스올)

환경오염의 주범에서 환경을 지키는 구원투수

20세기 중반부터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석유가 인류에게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데 촉매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반면, 생산과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해물질의 배출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환경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촉매의 개발로 촉매가 환경을 지키는 구원투수 역할을 하게 됐다.

1950년대, 원유로부터 촉매를 이용하여 자동차 연료를 경제적으로 생산하면서 자동차의 대중화 바람이 불며 도시의 대기오염이 심각해졌고, 1970년대에 들어 자동차 배기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고정되어 있는 발전소나 화학공장에서 발생하는 공해 물질을 처리하는 촉매 기술을 움직이는 자동차에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1975년 처음 자동차에 촉매를 장착한 이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현재 자동차의 배기 파이프 속에는 벌집형 지지체에 백금, 팔라듐, 로듐을 코팅한 삼원촉매가 장착되어 배기가스에 존재하는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을 98% 이상 제거할 수 있다.

자동차 배기 파이프에 장착된 벌집형의 삼원촉매 (출처: Stao Blog, Skup złomu)
▲ 자동차 배기 파이프에 장착된 벌집형의 삼원촉매 (출처: Stao Blog, Skup złomu)

‘계산적인’ 촉매, 친환경 공정의 열쇠

최근에는 생산 단계부터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촉매기술과, 재생에너지 개발 과정에서의 촉매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슈퍼컴퓨터를 비롯한 컴퓨터 성능의 급속한 발달로 복잡한 촉매의 구조와 반응 과정을 계산할 수 있게 되며, 계산화학으로 촉매를 이론적으로 설계하고, 최적화된 구조의 촉매를 합성하기 유리해졌다.

과학자들은 이론과 실험을 병행하며 최적화된 촉매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기존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난제들을 촉매를 해결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일례로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은 ‘화학산업의 꽃’으로도 불리는 과산화수소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다. 과산화수소는 표백, 소독, 세정 등 생활용품이나 산업 현장에 널리 사용된다. 과산화수소는 산소와 수소로만 구성된 간단한 물질임에도 기존 생산 공정이 여러 단계를 거치고, 값비싼 귀금속 촉매를 사용하며,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부산물이 발생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IBS 나노구조 물리 연구단이 개발한 블루 이산화티타늄은 이산화탄소를 화학적으로 유용한 일산화탄소로 전환하는 촉매다(출처: IBS)
▲ IBS 나노구조 물리 연구단이 개발한 블루 이산화티타늄은 이산화탄소를 화학적으로 유용한 일산화탄소로 전환하는 촉매다(출처: IBS)

IBS 나노입자 연구단은 물과 산소만 반응시켜 과산화수소를 생산하는데 성공, 촉매 연구자들의 오랜 도전과제를 풀어냈다. 연구진은 계산화학을 이용해 원자 단계에서 촉매의 구조를 변화시켜가며 기존 귀금속 촉매 대비 2000배 저렴하면서도 생산 효율은 8배 높인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다. 화학 산업의 핵심 재료를 저렴하고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산업에 유용한 물질인 일산화탄소로 변화시킬 수 있는 촉매를 개발했다. 이산화탄소는 매우 안정적인 물질로 다른 물질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아주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산화탄소를 유용한 다른 화학물질로 바꾸려면 또 다시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이 개발한 촉매는 태양에너지, 그 중에서도 태양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가시광까지 모두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일산화탄소로 전환했다. 연구진은 선행 연구에서 자외선 광촉매로 알려진 이산화티타늄의 결정 구조에 화학적 변화를 주어 가시광에 작동할 수 있도록 한 블루 이산화티타늄을 만든 적이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여기에 광(光)효율을 높일 수 있는 다른 물질을 도핑하여 가시광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산소와 일산화탄소로 전환시켰다. 개발된 촉매는 기존 촉매보다 200배 많은 일산화탄소를 생산할 수 있는 높은 효율을 나타냈다. 여러 유용한 화합물로 전환이 쉬운 일산화탄소를 다른 부산물 없이 생산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촉매가 만들어갈 미래

화학반응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촉매 덕분에 현대사회가 지금처럼 풍족하고 편리해졌다고 할 수 있다.(출처: 나혼자산다 333회 화면캡처)
▲ 화학반응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촉매 덕분에 현대사회가 지금처럼 풍족하고 편리해졌다고 할 수 있다.(출처: 나혼자산다 333회 화면캡처)

흔히 ‘빨리빨리 문화’는 나쁜 뉘앙스로 여겨진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 생활에 꽤나 유용하게 적용됐다. 과실주부터 암모니아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 생산까지 촉매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아픔도 있었지만) 세상을 꽤나 좋은 모습으로 바꿔왔다. 그리고 촉매가 앞으로 바꿔 나갈 세상은 더욱 넓다. 태양광만 이용해 원하는 물질을 생산하고, 환경오염도 전혀 유발하지 않는 꿈같은 사회. 촉매가 그 꿈같은 사회의 실현조차 앞당겨올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https://blog.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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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