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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 인류의 뿌리를 찾아서



1992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당시로서는 꽤나 충격적인 표지를 실었다.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를 형상화한 그림이었다. 선악과와 뱀을 배경으로 선악과를 든 아담, 이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피부색이 어두웠다. 커버스토리 제목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상반된 이론을 좇는 과학자들’이었다.

뉴스위크, 하와이대
▲ 뉴스위크, 하와이대

커버스토리 기사에는 30대의 여성 유전학자의 사진이 등장한다. 레베카 칸 미국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의 37세 때 사진으로, 그는 1987년 1월 ‘네이처’에 다양한 지역의 현생인류 147명의 태반세포 속 미토콘드리아 DNA를 해독한 뒤 분석한 결과를 발표해 인류학계를 뒤집은 주인공이었다.

칸 교수는 스승과 함께 유전학으로 현생인류의 기원을 추적했다. 시간이 흐르면 먼지가 쌓이듯 DNA에도 변이가 일정한 속도로 축적되는데, 그 축적량을 측정하면 그 개체가 등장한 시점을 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흔히 ‘분자시계’라고도 부르는 기술이다.

미토콘드리아DNA는 어머니에게서 딸에게 모계유전되므로, 계속해서 어머니의 어머니는 추적해 나가면 '최초의 어머니’를 찾을 수 있다. 이 방식으로 칸 교수는 현재 인류의 기원이 약 14만~29만 년 전 사이에 동아프리카에서 살던 한 명의 여성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당시 인류진화를 밝힐 새로운 기술로 각광받던 유전학의 놀라운 성과에 과학계는 열광했고, 금세 이 가설은 유명해졌따. 칸 박사팀이 찾은 최초의 인류는 최초의 어머니라는 의미에서 ‘미토콘드리아 이브’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 가설에는 ‘아프리카 기원론’ 또는 현생인류가 기존 인류를 대신해 전세계에 퍼졌다는 의미에서 ‘완전대체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프리카 기원설은 널리 유명해졌지만, 논쟁은 이후 몇 년 동안 이어졌다. 가장 큰 쟁점은 아프리카의 어느 한 지점에서 현생인류가 발원했다는 이론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단일기원’이라는 철학이었다. 유전학 연구는 현생인류 ‘가계도’를 끝까지 추적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고, 당연히 추적할 수 있는 기원의 시작은 단 한 점, 한 명으로 나오게 돼 있다.

반면 화석으로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던 고인류학자들은 그렇게 딱 떨어지는 결론을 내기 애매한 화석의 존재를 많이 봐왔다. 아시아의 현생인류와 유럽의 현생인류는 형질이 조금 다르다. 6만 년이나 다른 인류와 떨어져 지낸 호주 원주민(애보리진)도 다른 현생인류와 다른 형질이 많다. 이런 차이는 오랜 시간 지역적으로 분리돼 각각 진화해 오면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다. 현생인류가 살고 있는 각 지역에는 현생인류 이전에 다양한 인류 친척들이 살아왔다. 아시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약 200만 년 전부터 살아왔고, 유럽에서는 호모 하이델벨겐시스, 네안데르탈인 등이 수십만 년 전부터 살았다. 이 가운데 일부는 현생인류와 살았던 시기가 겹쳤다. 그렇다면 이들끼리 섞여서, 큰 틀에서는 같은 종이지만 세부는 조금씩 다른 형질을 갖는 다양한 현생인류가 탄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반대파를 ‘다지역 연계론’이라고 부른다.

<2011년 한국 전곡선사박물관을 찾아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레베카 칸 하와이대 교수/윤신영>
▲ <2011년 한국 전곡선사박물관을 찾아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레베카 칸 하와이대 교수/윤신영>

1992년 당시, 이 두 가설은 서로 대립했다. ‘뉴스위크’ 커버스토리도 이 논쟁을 깊이 다뤘다. 하지만 날로 발전하는 유전학은 수많은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인류 진화를 설명하는 ‘대세’ 이론이 됐고, 오늘날까지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론이 정설로 인정 받고 있다. 과학지나 인류학지가 아닌 시사지 ‘뉴스위크’가 표지로서 아프리카인으로 아담과 이브를 그린 것은, 이 이론이 대중의 뇌리에까지 깊이 각인됐음을 알리는 이콘과 같았다.

그 조상이 아프리카라는 점은 대중에게 놀라웠지만, 인류학자들은 이미 많은 고인류 화석을 아프리카에서 찾고 있었기에 예측하지 못한 결과는 아니었다. 에티오피아 카프제나 스쿨 등에서 발굴한 16만~19만 년 전 화석은 초기 현생인류로 분류됐다. 약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처음 발상했다는 유전학 연구 결과와 잘 맞는 결과였다. 인류의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 기원설은 그렇게 30년 넘게 공고하게 유지됐다.

칸 박사의 유전학 연구는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확대 발전해 갔다. 버전은 다양했다. 미토콘드리아 DNA나 염색체 일부를 이용하는 방법 대신, 유전자 전체(유전체, 게놈)를 이용하는 해독 및 분석 방법이 발전했다. 이 방법으로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연구도 많이 이뤄졌다. 다른 곳의 DNA를 이용한 ‘자매버전’ 연구도 많았다. 이들 대부분도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연구마다 그 자세한 지역이 다 달랐다는 사실이었다.

대표적인 게 남성만 지니는 Y염색체의 DNA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조상을 추적하는 방법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만 전해지는 이 DNA를 이용해 마찬가지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간 남성 인류의 조상 역시 아프리카가 고향인 것으로 나왔다. 비유하자면, ‘Y염색체 아담’이다. 이 남성 역시 미토콘드리아 이브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인이었지만, 세부가 달랐다. 지역이 카메룬 등 서아프리카였다.

또다른 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 DNA를 세분화해 추적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미토토콘드리아는 같은 단일염기다형성(SNP) 변이를 공유하는지에 따라 L0~L6까지 7가지 ‘혈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에는 아시아나 유럽 등에서만 발견되는, 비교적 최근 생겨난 신생 혈통이 존재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문에서 가장 최근 독립한 신생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인과 아시아인 등 상당수는 이런 가문 가운데 하나다. 반면 발상지인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는, 비교적 오랜 혈통이 존재한다. 연구자들은 이런 오랜 혈통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혈통을 찾아 오늘날 그들이 살고 있는 분포 범위를 찾았다. 뜻밖에 주로 남아프리카였다. 남아프리카가 인류의 요람일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아프리카 북부 모로코에서 발굴된 ‘제벨 이르후드-1’ 두개골 화석의 연대는 2017년 약 29만 년 전으로 밝혀졌다. 다른 유적 및 유골 화석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약 30만~31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성을 갖춘 초기 현생인류로 분류되면서 현생인류 기원 시점과 장소에 의문을 던졌다./스미소니언박물관>
▲ <아프리카 북부 모로코에서 발굴된 ‘제벨 이르후드-1’ 두개골 화석의 연대는 2017년 약 29만 년 전으로 밝혀졌다. 다른 유적 및 유골 화석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약 30만~31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성을 갖춘 초기 현생인류로 분류되면서 현생인류 기원 시점과 장소에 의문을 던졌다./스미소니언박물관>

화석 증거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2017년 아프리카 북부 모로코 제벨 이르후드 동굴에서는 약 30만 년 전으로 연대가 밝혀진 초기 호모 사피엔스 화석이 발견됐다. 현생인류의 기원 후보지에 이번에는 북부 아프리카가 추가된 것이다. 여기에 2010년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서로 피를 섞었다는 사실이 네안데르탈인 화석의 게놈 속 DNA를 해독한 결과 밝혀졌다. 현생인류와 지금은 사라진 친척인류와의 혼혈은 현생인류의 기원이 단일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건이었다. 현생인류는 아마 유전학의 추측대로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아프리카 밖으로 나가 세계로 확산하는 단계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이라는 또다른 아시아 고인류 등 다른 인류와 섞였다. 새로운 현생인류가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유라시아로 확산하며 기존 인류를 밀어냈다는 기존의 아프리카 기원론 또는 완전대체론의 ‘단일기원’ 신화는 부분적으로 깨졌다. 2010년 ‘사이언스’는 이 새로운 결과에 ‘부분대체론’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오랫동안 침체돼 있던 다지역 연계론의 부분적 부활을 알리는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제 인류가 동아프리카라는 단일 장소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사실상 연구 방법과 시료의 출처에 따라 동서남북 아프리카 모든 곳이 ‘최초의 인류 발상지’ 후보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점도 20만~30만 년으로 다소 흔들린다. 그리고 더 이상 현생인류는 ‘단일기원’도, ‘단일혈통’도 아니다. 어쩌면 이런 단일신화 자체가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논의가 복잡하게 이뤄지면서, 최근 인류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인류가 약 20만~30만 년 전 아프리카 곳곳에서 기원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뒤섞인(모자이크) 상태로 출발했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굳이 어느 한 장소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보다, 드넓은 아프리카 곳곳에서 현생인류가 진화했고,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처럼 유전적 다양성이 풍부한 하나의 종으로 거듭났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독특한 연구가 갑자기 등장했다.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장(부산대 석좌교수)과 이순선 IBS 연구위원팀은 호주 및 남아프리카공화국 연구팀과 함께 현생인류의 발상지와 확산 원인을 현생 남아프리카인의 DNA 해독과 고(古) 기후 연구를 바탕으로 밝혀 국제학술지 '네이처’ 10월 28일자에 발표했다.

연구 내용은 둘로 나뉜다. 호주 가반의학연구소팀은 현생인류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전형으로 분류되는 미토콘드리아를 지닌 현생인류를 찾아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 이 인류의 등장시기를 예측했다. IBS 팀은 약 20만 년 전 이후의 남아프리카 부근 기후를 퇴적층 연구와 컴퓨터 모델링 등으로 역추적해 당시의 생존 환경을 복원해 냈다. 상상력 넘치는 융합 연구였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미토콘드리아 유전형을 지니는 인류는 지금의 보츠와나 부근에서 약 20만 년 전에 탄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IBS팀은 고(古)기후 분석 결과 약 13만 년 전 및 11만 년 전에 습윤해진 기후가 찾아오며 북동쪽과 남서쪽으로 살기 좋은 녹지가 펼쳐지면서 최초 현생인류의 첫 번째 이주가 시작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 결과는 논문 출간 전부터 기자 및 다른 연구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비판은 주로 호주 팀의 유전학 분석 과정과 그 결과에 집중됐다. 요약하자면, 미토콘드리아 DNA, 그것도 그 중 가장 오래된 유전형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분석만으로는 인류의 기원을 제대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포문을 연 것은 영국의 고인류학자 크리스 스트링거 런던 자연사박물관 교수였다. 그는 논문이 발표된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 논평을 발표해 “미토콘드리아 DNA는 인류의 기원을 특정하기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스트링거 교수는 “우리(현생인류)는 아프리카 다양한 곳의 선조로부터 영향을 받은 뒤섞인 존재(amalgam)”라며 “유전자의 일부만으로 이렇게 조각조각난 인류 기원의 복잡함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사이언스’ 역시 29일 뉴스 기사에서 “현대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아프리카 옛 인구집단의 역사를 추적하기에는 부실한 도구”라는 사라 티시코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논평을 소개했다.

대표적 인류진화 전문가인 크리스 스트링거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 교수가 논문 발표 당시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논평. 인류가 아프리카 단일지에서 발원했다는 생각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크리스 스트링거 트위터 캡쳐
▲ <대표적 인류진화 전문가인 크리스 스트링거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 교수가 논문 발표 당시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논평. 인류가 아프리카 단일지에서 발원했다는 생각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크리스 스트링거 트위터 캡쳐>

인류의 발생 지점을 특정 시점과 지역으로 한정한 데에 무리가 많다는 비판은 또 있다.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는 논문 발표 직후인 10월 30일 ‘이상희의 인류진화’ 유튜브 채널에서 “미토콘드리아 DNA 다양성은 중요한 정보가 있지만, 다양성 돌연변이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분자시계 접근법이 맞는지에는 논란이 있다. 또 연구가 20만 년 전 등장해 13만 년 뒤 처음 이동하기까지 7만 년 동안 그 지역에 있었다고 가정하고 있는데, 아무리 이 지역이 넓다 해도 믿기 힘들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제기된 비판은 대부분 한국에서 진행된 연구팀의 사전 브리핑과 '네이처'가 주최한 전화 브리핑에서 기자에 의해 제기됐던 질문이다. 연구팀은 당시 "이번 연구에 포착되지 않은 다른 현생인류가 다른 지역, 시기에 존재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다만 현재 살아남아 있는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적했을 때 찾을 수 있는 가장 앞선 인류의 탄생 시점과 장소를 알아낸 연구"라고 밝혔다.

유전학 연구를 이끈 버네사 헤이아스 호주가반연구소 교수는 수만 년 사이의 남아프리카 인구 이주 가능성과, 남성의 Y 염색체를 통한 추적 결과와 상반된다는 비판에 대해 "남성은 이동도 많고 뒤섞이기도 해 흩어져 추적이 안 되지만, 모계 혈통은 '타임캡슐'과 같이 추적이 가능하다"고 답해, 여전히 연구 결과가 유효하다고 답했다.

과학에서 연구 결과를 둘러싼 과학적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이번 연구도 연구 결과나 과정 일부에 다른 학자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포함돼 있지만, 새로운 융합 연구 방법론(기후물리를 통한 인류 이동 경로 추정)을 제기하고, 또 새로운 인류 발상지 후보를 제안했다는 의미가 있다.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학자들이 또다른 연구로 답을 내려 줄 것이다. 우리의 기원을 분명히 밝히려는 노력은 이런 논의 과정을 통해 좀더 분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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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12-17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