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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없는 소재 전쟁, 국내 소재 분야 기초연구 진단해보니···

소재 산업 살릴 기초과학연구원(IBS)의 튼실한 소재 연구들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의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절차를 강화하며 일본과의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출처: Wikimedia)
▲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의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절차를 강화하며 일본과의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출처: Wikimedia)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일본과의 총성 없는 전쟁의 시작은 지난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의 핵심 소재 3개 품목(포토레지스트, 고순도 플루오린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해 한국 수출 절차를 강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허가를 간소화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기로 결정했고, 한국 정부 역시 이에 맞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죠.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국내 소재 산업의 부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출처: 삼성전자)
▲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국내 소재 산업의 부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출처: 삼성전자)

이번 사태로 국내 소재 산업은 민낯을 드러냈고, 반도체 산업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동안 반도체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를 대부분 일본에서 공급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도 몇몇 소재 기업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소재를 공급했지만 그 비중은 매우 적습니다. 국제 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산 소재를 사용한 비율은 50%, 국산 장비를 사용한 비율은 18%에 그칩니다.

이에 국내 전문가들은 수차례의 토론회를 열어 국내 소재 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대응책을 고심했습니다. 정부도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장인정신으로 쌓아온 일본의 소재 산업을 단시간에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고 있습니다.

8월 7일 열린 ‘일본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공동 토론회’에서는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서 국내 기초 소재 연구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출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 8월 7일 열린 ‘일본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공동 토론회’에서는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서 국내 기초 소재 연구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출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국내 소재 연구는 전 세계 4위 수준

일본의 수출규제는 기초과학 육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소식은 부실한 산업과 달리 우리나라의 소재분야 기초연구 수준은 상당히 높다는 점입니다.

올해 6월 한국연구재단에서 내놓은 '2007~2017 주요국의 피인용상위 1% 논문실적 비교분석 보고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인용 상위 1%는 피인용 회수, 즉 해당 논문이 다른 논문에 인용된 횟수가 상위 1%에 포함되는 논문이라는 뜻입니다. 인용이 많이 될수록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여겨집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1년간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학술지에 발표된 우리나라의 피인용 상위 1% 논문은 총 4396건입니다. 미국(7만4400건), 중국(2만3869건)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고, 우리나라는 일본, 스웨덴, 벨기에에 이어 15위에 올랐습니다.

재료과학 분야 피인용 상위 1% 논문수 국가 순위(2007~2017) (출처: 한국연구재단)
▲ 재료과학 분야 피인용 상위 1% 논문수 국가 순위(2007~2017) (출처: 한국연구재단)

세부 분야별로 살펴보면 눈에 확 들어오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재료과학입니다. 국내 재료과학 연구 수준은 중국,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2단계 낮은 6위에 올랐습니다.

재료과학은 22개 세부 분야를 통틀어 우리나라가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분야입니다. 그만큼 연구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죠. 일본에 비해 과학기술 연구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가 현재의 산업 현장에서 기술력이 뒤처질 수 있지만, 10~20년 뒤 중장기적인 미래에는 더 우세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소재·부품 분야 기초연구 대표사례

그렇다면 국내 연구현장에서는 차세대 소재‧부품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까요? 국내 유일 기초과학 전담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사례들을 찾아봤습니다. IBS는 현재 30개의 연구단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이중 53%인 16개의 연구단이 반도체 부품‧소재 산업의 핵심 원천기술과 관련된 기반 연구를 직‧간접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소재부품 산업이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기초과학 연구현장에서는 현존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소재 및 부품의 물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성능을 한 단계 높인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출처: Pixabay)
▲ 기초과학 연구현장에서는 현존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소재 및 부품의 물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성능을 한 단계 높인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출처: Pixabay)

소재부품 분야 기초연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진행됩니다. 첫째는 각종 물질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해서 개선점을 도출, 지금보다 성능이 뛰어난 소재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연구입니다. IBS의 경우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이 이런 관점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로드니 루오프 단장이 이끄는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은 탄소나노튜브(CNT)나 그래핀 같은 탄소 소재들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밝히고, 새롭게 합성해 이를 산업에 응용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루오프 단장은 미국의 글로벌 학술정보회사인 클래리베이트로부터 2018년 우리나라 기관 소속 연구자중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꼽히기도 한 인물입니다.

최근 연구진은 그래핀과 관련된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내놓으며 국제 과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로 소재 전체가 완벽하게 한 층으로 이뤄진 대면적 그래핀을 합성했기 때문이죠. 그래핀은 얇고 투명하지만 강철보다 강하고, 우수한 열‧전기전도성을 지니는 등 탁월한 물성을 가진 물질입니다. 10여 년 전 '꿈의 신소재'란 별명과 함께 등장했지만, 아직까지 그래핀을 반도체에 직접 적용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고성능의 그래핀을 전자기기에 사용할 만큼 크게 제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최근 얇은 금속 포일(박막) 위에서 그래핀을 성장시키는 화학기상증착법(CVD)이 등장했지만, 이 역시도 그래핀이 부분적으로 여러 겹을 이루는 ‘적층 구역’이 만들어진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런 적층 구역은 그래핀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결함이 되기도 합니다.

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이 개발한 원자 한 층 단결정 그래핀의 주사전자현미경(SEM) 이미지. (출처: IBS)
▲ 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이 개발한 원자 한 층 단결정 그래핀의 주사전자현미경(SEM) 이미지. (출처: IBS)

연구진은 국제공동연구팀을 이끌며 적층 구역의 발생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그 결과 시중에 판매되는 포일이 다량의 탄소 불순물을 함유하고 있고, 이로 인해 부분적인 적층이 생성됨을 규명했죠. 이후 연구팀은 고온의 수소 열처리를 통해 구리에 있던 탄소 불순물을 모두 제거해 완전한 원자 한 층의 대면적 그래핀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결과는 지난 7월 2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실렸습니다.

반도체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
위한 연구

또 다른 관점에서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소재부품 연구도 수행되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발목을 잡던 기존 소재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소재들로 반도체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게 되는 것이죠. 새로운 반도체 시장에서는 일분 수출 규제에 문제시된 품목들 자체가 공정에서 필요하지 않게 될 지도 모릅니다. 차세대 반도체 구현을 위한 원천기술 연구를 선도하는 국가가 시장 전체를 선도하게 될 것입니다.

일례로,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은 카멜레온처럼 온도에 따라 반도체에서 도체로 변하는 2차원 신소재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카멜레온 소재'를 사용하면 전력손실이 적으면서도 속도가 매우 빠른 차세대 반도체 소자를 구현할 수 있죠.

연구진은 다이텔레륨 몰리브데늄(MoTe2)이란 2차원 신소재를 반도체 소자로 만들었습니다. MoTe2는 상온에서는 반도체 상태지만 고온에 노출됐다가 상온으로 돌아올 경우 도체로 변하는, 즉 반도체와 도체의 물성을 함께 가져서 전자소자나 센서, 광소자 등에 사용될 수 있는 신소재로 꼽힙니다.

다이텔레늄 몰리브데늄 소재에 레이저를 조사해 그 부위(노란색)가 뜨거워지면 반도체 상태(초록색)에서 도체 상태(빨간색)로 변한다. (출처: IBS)
▲ 다이텔레늄 몰리브데늄 소재에 레이저를 조사해 그 부위(노란색)가 뜨거워지면 반도체 상태(초록색)에서 도체 상태(빨간색)로 변한다. (출처: IBS)

MoTe2를 반도체 소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일부 영역만 반도체 또는 도체로 바꾸는 기술이 필요한데요. 양 교수팀은 레이저를 사용해 이를 해결했습니다. 상온에서는 반도체 상태지만 레이저를 쫴 고온에 노출된 부분만 도체 상태로 변하는 소재의 성질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 결과, 반도체와 도체 간 경계면의 저항이 낮아져 전력손실도 낮아지고, 동작 속도를 좌우하는 전자이동도도 다른 2차원 평면 물질들에 비해 50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정도 간단해 앞으로 MoTe2의 대면적화, 표면가공 기술 등이 개발되면 새로운 반도체 소재로 급부상할 것입니다.

한편 IBS는 신소재 개발에 기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단일원자 특성 관찰 기술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미국 IBM 알마덴 연구소와 함께 고체표면의 단일원자 특성을 관찰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원자들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원자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관찰해야 하는데요. 그 에너지가 매우 약해서 지금까지는 수백만 개 원자핵들의 신호를 한꺼번에 읽어서 특성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화마그네슘 표면 위 철 원자를 관찰하는 모습 (출처: IBS)
▲ 산화마그네슘 표면 위 철 원자를 관찰하는 모습 (출처: IBS)

이에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전자스핀공명(ESR) 기술을 결합해 에너지분해능, 즉 정밀도가 1만 배 높아진 측정 기술을 완성했습니다. 마치 병원에서 사람들의 몸을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들여다보듯 이 기술을 활용하면 고체 표면 위 원자 한 개의 특성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는 것이죠. 이 연구 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실리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보다 더 많은 소재 관련 연구들이 IBS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들이 계속 진행돼 산업으로까지 이어져, 앞으로 소재 연구뿐만 아니라 소재 산업도 강국으로 거듭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https://blog.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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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