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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원자의 습관'을 찾아서

아주 작은 '원자의 습관'을 찾아서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출처: 비즈니스 북스)
▲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출처: 비즈니스 북스)

 

이 책은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당연한 지침들을 현실적으로 체득하기 위한 일종의 안내서다. 좋은 의미로는 습관, 부정적으로는 버릇이라고도 부르는 이 자동화된 행동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던지 혹은 '요람 속에서 기억한 것은 무덤까지도 잊지 않는다' 등 동서양을 막론한 다양한 속담에도 등장한다. 이 중요성을 크게 와 닿게 한 책 속 '습관 공식'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무심코 거닐던 서점 한 켠. 늘어선 베스트셀러 도서들 중 눈길이 머무는 한 권이 있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친숙한 제목은 한눈에 보더라도 일종의 자기계발서적임에 틀림 없었기에 무심히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표지 밑바탕에 큼지막하게 깔려 있는 'Atomic Habit'이라는 원제를 본 순간 필자는 원자 수준에서부터 본능적으로 이 책에 끌리게 됐다.





1년간 매일 1%씩 퇴보할 경우
0.99365 = 0.03

1년간 매일 1%씩 성장할 경우
1.01365 = 37.78

작은 습관들의 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출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작은 습관들의 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출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과연 습관이 매일 1%씩 성장하거나 퇴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그래프는 습관을 변화시키려는 작은 노력이 쌓이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드릴을 한 바퀴 돌리면 아주 조금이지만 앞으로 나아간다'는 내가 좋아하는 구절과도 일맥상통한다.

무엇보다 과학자로서 흥미를 가진 부분은 책의 제목에 '원자'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은 변화의 저변에 존재하는 기본 원리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다. 어느 결과에 도달하기 앞서 가장 먼저 파악해야만 하는 것은 '정체성(identity)' 그 자체라고. 이 대목에서1959년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남긴 명언이 떠올랐다.

'밑바닥에 풍부한 가능성이 있다 (There'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

아는 만큼 보인다

단일 원자의 핵 스핀 측정 연구 모식도. 산화 마그네슘 표면 철 원자의 핵 스핀을 단일 원자 수준에서 측정했다. (출처: IBS)▲ 단일 원자의 핵 스핀 측정 연구 모식도. 산화 마그네슘 표면 철 원자의 핵 스핀을 단일 원자 수준에서 측정했다. (출처: IBS)

실제로 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물질의 기본 단위, 즉 원자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보거나 만질 수 없는 이 아주 아주 작은 물질을 다루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이 필요했다.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된 것은 최근에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지난해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연구진은 미국 IBM 알마덴연구소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고체 표면 위에 놓인 원자의 특성을 정밀하게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고체 표면 위에서 단일 원자 내부를 정밀하게 들여다본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연구결과는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집단인 원자핵과 주위를 감싼 전자로 구성된다. 그리고 원자핵과 전자는 각각 고유한 '스핀(spin)'을 갖는다. 스핀은 말 그대로 원자핵이나 전자가 자전한다고 가정할 때, 막대자석과 같이 어떤 방향을 얼마나 강하게 가리키고 있는지를 표현한 물리학의 값이다. 연구진이 최첨단 장비들을 결합해 측정한 것을 정확히 말하면 ‘표면 위 원자 속 원자핵이 가진 스핀’이다. 그 정교한 측정 기술이 놀랍지 아니한가!

지금까지 우리는 핵 스핀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신호가 너무나도 약했기 때문에 수백 만 개의 원자핵들이 내는 신호를 한꺼번에 읽어서 유추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IBS 연구진이 측정 정밀도를 무려 1만 배 향상시킨 기술 개발로 원자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산에 오르니 비로소 경치가 보이더라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은 중력파의 실제를 검출하기 위해 노력한 세 명의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출처: 스웨덴왕립학회 노벨상위원회)
▲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은 중력파의 실제를 검출하기 위해 노력한 세 명의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출처: 스웨덴왕립학회 노벨상위원회)

2016년 단순히 100년이 넘은 이론으로만 여겨졌던 중력파가 실제로 검출됐다. 중력파 검출에 공헌을 세운 이들에겐 이듬해인 2017년 바로 노벨물리학상 수상의 영예가 안겨졌다. 이 세기의 이벤트는 이론이 실재함을 검증하는 것 이상의 의의를 갖는다. 기술의 진보를 통해 인류가 이제 우주 현상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혹은 귀)를 얻게 됐다는 점에서다.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의 성과 역시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핵스핀의 측정 기술을 통해 인류가 측정 가능한 대상의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원자가 표면 위 어느 지점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특성이 달라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주변 환경이 원자의 '위치적 습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산화마그네슘(MgO) 표면 위 티타늄(Ti) 원자의 위치 변화에 따른 초미세 상호작용 변화가 관찰됐다. (출처: IBS)▲ 산화마그네슘(MgO) 표면 위 티타늄(Ti) 원자의 위치 변화에 따른 초미세 상호작용 변화가 관찰됐다. (출처: IBS)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개다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최근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통해 신체 내부를 살피듯, 단일 원자의 스핀 자기장을 이미징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개발했다. 자기디스크를 비롯해 차세대 전자기의 제조나 분석 과정에서 자기장이 주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자기장은 차세대 소자 개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존 기술은 그 해상도가 나노미터(nm) 수준에 그쳐 원자 자체의 자기적 특성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의 분석용 탐침 끝 부분에 자성을 띄는 스핀 클러스터(스핀을 띤 원자들의 집합. 본 연구에서는 1~5개의 원자가 사용됐다)를 부착했다. 결과적으로 스핀 클러스터와 원자의 자기적인 공명으로 인해 기존 기술보다 100배 높은 해상도의 원자 이미지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 7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실렸다.

고체 표면 위 티타늄 원자들의 자기공명영상 이미지 (출처: IBS)
▲ 고체 표면 위 티타늄 원자들의 자기공명영상 이미지 (출처: IBS)

보이지 않는 원자가 만드는 보이는 미래

그렇다면 이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쩌면 막연함 마저 느껴지는 원자를 연구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로 전자제품이 점점 소형화되고, 더 높은 성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초소형 전자기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내부의 소자들도 모두 소형화가 돼야 한다. 다만 눈에 보이는 물질들을 수 나노미터 수준의 세계에서 관찰하면, 그 특성이 달라진다. 뿌리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듯, 나노미터 수준에서 원자의 특성을 파악해야 전자기기 개발이라는 그 다음 단계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홀뮴(Ho)원자에 위 혹은 아래 스핀 방향을 통해 1비트의 정보를 안정적으로 읽고 쓰는데 성공_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또 다른 의미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물성을 가진 새로운 소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실제로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의 최근 연구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2017년 미국 IBM 알마덴연구소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홀뮴(Ho)원자에 위 혹은 아래 스핀 방향을 통해 1비트의 정보를 안정적으로 읽고 쓰는데 성공했다.

원자 한 개에 1비트를 구현할 수 있게 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를 손톱만한 USB 하나에 담을 수 있는 수준의 획기적인 저장장치를 개발할 수 있다. 원자의 습관을 토대로 만들어낼 미래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의미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https://blog.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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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