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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은 왜 우주를 노래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비밀,
그것이 알고 싶다

필자는 왠지 우주를 떠올리면 이 음악이 떠오른다. 바로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Gustav Holst)의 ‘행성 모음곡(The Planets)’이다. 이 곡은 7개의 악장으로 구성된다. 화성(전쟁), 금성(평화), 수성(전령), 목성(쾌락), 토성(노년), 천왕성(마법사), 해왕성(신비주의자)의 순이다. 홀스트가 우주의 물체를 관찰하며 느낀 감정을 화려한 관현악을 빌어 우리의 삶과 사회상을 노래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주는 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상이었다.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 모음곡은 태양계 행성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딴 곡들로 구성된다. (출처: Pixabay)
▲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 모음곡은 태양계 행성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딴 곡들로 구성된다. (출처: Pixabay)

우주의 역사는 138억 년이 넘지만, 인간이 우주의 비밀스러움을 풀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0여 년 전 부터다. 아이작 뉴턴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별개가 아닌, 하나의 통일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밝혀낸 뒤부터일까. 우주의 베일은 하나 둘씩 벗겨지게 됐다. 인간이 이 법칙을 뛰어넘는 훨씬 더 큰 힘을 각종 물리·화학적 현상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이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난 100여 년 사이의 일이다.

인간을 품은 우주,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

사실 우주에서는 홀스트의 행성 모음곡과 같은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거의 진공 상태인 우주 공간에서 소리를 전파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빛을 발하는 별들만이 자신의 존재를 가시광선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온다. 적군을 감시하기 위해 발명된 망원경으로 하늘을 쳐다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창의성은 맨눈으로 보기 어렵던 더 많은 천체를 발견하게 했다. 이제는 직경 25m의 거대 마젤란 망원경으로, 달에 켜놓은 촛불도 볼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울 지경이다. (물론 달에 촛불을 켜놓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광활한 우주 속 하나의 행성인 지구에 사는 미물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과학기술을 통해 우주의 비밀을 하나 둘 파헤쳐 나가고 있다. (출처: Pixabay)
▲ 인간은 광활한 우주 속 하나의 행성인 지구에 사는 미물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과학기술을 통해 우주의 비밀을 하나 둘 파헤쳐 나가고 있다. (출처: Pixabay)

인간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눈으로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우주의 실체를 더 면밀히 파악하겠다는 목표를 삼게 된다. 그 시작은 은하계의 질량을 재겠다는 시도였다. 은하계는 수천 만~수조 개의 수많은 별들이 중력으로 인해 뭉친 구조다. '질량중심을 회전하는 물체의 속도는 회전 반경 내에 있는 질량의 총합과 상관이 있다'는 뉴턴의 중력법칙에 따르면, 더 빠르게 회전하는 은하계일수록 중심엔 더 큰 질량이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1980년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Vera Rubin)이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별들의 수를 토대로 은하계의 질량과 관측 회전 속도에 관해 연구하던 루빈은, 은하계에는 보이는 별보다 6배 정도 더 많은 물질이 있어야만 관측된 회전속도를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렇다면 관찰하지 못한 6배의 물질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지구나 달과 같이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천체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블랙홀이나 우주 먼지 같은 것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보통의 원소들로 만들어진 물질, 즉 '보통물질'은 그 밀도가 충분히 높아지면 모여서 핵반응을 일으켜 별을 이루기 때문에 충분히 추산할 수 있다.

베라 루빈이 발견한 빛이 나지 않는 물질은 보통물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이었을 것이다. 빛을 발하지도 않고, 다른 빛과 반응하지도 않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물리학자들의 추론이다. 미지의 존재에 물리학자들은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지구상의 어떤 실험실에서도 이 암흑물질을 직접 관측한 적은 없다.

'빙산의 일각'처럼 우주 역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출처: Pxhere)
▲ '빙산의 일각'처럼 우주 역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출처: Pxhere)

이로부터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국제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암흑물질의 존재에 대한 증거는 은하계의 회전속도 말고도 다양한 천문학적 증거들이 있다. 가령, 우주배경복사의 스펙트럼을 자세히 분석해서 나오는 증거가 있다. 유리잔을 두드릴 때와 나무 컵을 두드릴 때 다른 소리가 나는 것처럼, 어떤 물건을 두드릴 때 들리는 소리로 그 물건의 구성 물질을 유추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광대한 우주를 어떻게 두드릴 것인가? 우주초기의 빅뱅이 우주전체를 두드렸고, 그 결과 발생한 빛은 우주를 구성하는 성분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우주배경복사의 스펙트럼에는 우주 전체를 두드린 소리의 흔적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홀스트의 행성모음곡 보다 더 장엄한 소리가 우주배경복사 스펙트럼에 있다.

암흑물질, 어떻게 찾을 것인가?

오리무중이라는 단어가 적합할 정도로 이 미지의 물질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시도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입자가속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입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가속시킨 뒤 충돌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물질의 증거를 찾는 과정이다. 당연히 이런 실험은 거대입자가속기가 있는 곳에서 가능하다. 또 다른 실험방법은 검출기를 만들고, 우주 어디에선가 우연히 만들어졌을 암흑물질이 날아다니다가 그 검출기에 걸릴 것을 기다리는 실험이다. 우리나라에선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이런 방식으로 암흑물질의 존재를 검거하려 나섰다.

IBS 지하실험 연구단은 2012년부터 이 실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암흑물질을 오롯이 관찰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우주가 우리에게 보내는 보통물질의 신호인 '우주선', 우리 주변 곳곳에 위치한 방사능 신호 등을 걸러내는 일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IBS 지하실험 연구단은 최대한 땅속 깊이 들어가서 우주선과 방사능을 걸러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700m 깊이의 양양 지하실험실(Y2L)에 이어 IBS 지하실험 연구단은 이보다 더 깊은 지하 1,100m 깊이에 새로운 지하실험실 '예미랩(YemiLab)'을 구축 중이다. 이곳에서 지하실험 연구단은 암흑물질의 후보 중 윔프(WIMP)라 불리는 입자의 흔적을 찾는다. 윔프는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Weakly Interaction Massive Particle)를 뜻하는 말로, 양성자 질량의 100배 이상의 질량을 가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IBS 지하실험 연구단이 강원도 정선 한덕철광 일대에 구축 중인 지하실험시설 '예미랩'의 조감도. (출처: IBS)
▲ IBS 지하실험 연구단이 강원도 정선 한덕철광 일대에 구축 중인 지하실험시설 '예미랩'의 조감도. (출처: IBS)

지하실험 연구단은 수 백kg의 요오드화나트륨(NaI) 결정 검출기를 극저온에 넣고 윔프의 충돌을 관찰하려는 '코사인-100(COSINE-100)' 실험을 2016년부터 시작했다. 이탈리아 그랑사소연구소에 본거지를 둔 다마(DAMA) 실험 팀은 같은 실험 설비로 20여 년 전 윔프의 흔적을 포착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지하실험 연구단은 이를 검증하려고 한다. 서로 다른 연구팀에 의해 실험의 결과가 똑같이 재현돼야 '과학'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지하실험 연구단은 초기 59.5일 간의 코사인-100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의 내용은 초기 실험에서 다마 팀이 주장했던 윔프의 흔적은 포착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다마와 매우 흡사한 실험설비로, 더 정밀하게 실험을 수행했지만 윔프의 신호(연례적으로 변하는 암흑물질의 신호)가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코사인-100 검출기는 현재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되며, 우주에서 지구로 보내오는 신호들을 계속 관찰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윔프 입자는 1년에 1~2개 정도 검출기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말로 어려운 실험이지만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최첨병과도 같은 실험이기에 이 실험을 수행하는 모든 연구원들의 노력에 끝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다른 암흑물질 후보, 액시온

한편, 기초과학연구원에는 암흑물질의 또 다른 후보인 '액시온(Axion)'을 검출하기 위한 연구팀도 있다. 바로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이다. 지하 깊은 곳에서 수행되는 윔프 탐사와 달리 액시온 탐사는 지상에서 진행된다.

현재 경희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김진의 교수가 최초로 1970년 액시온을 암흑물질의 후보로 제안했다. 이론적으로 액시온이라는 입자는 매우 센 자기장 안에서 광자, 즉 빛을 내는 입자로 변한다. 이때 광자는 액시온의 질량과 동일한 에너지를 갖는다. 현재는 액시온이 어떤 질량을 가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주파수를 바꿔가며 라디오 방송을 찾듯, 자기장을 조금씩 바꿔가며 액시온이 광자로 바뀌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액시온 검출 실험의 모식도 (출처: APS)
▲ 액시온 검출 실험의 모식도 (출처: APS)

이 실험의 어려움은 비단 '액시온의 질량을 아직 모른다'는 것에만 있지 않다. 이 실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초전도 자석을 이용해 18T(테슬라)라는 매우 큰 자기장을 만들어 줘야 하고, 10mK(밀리켈빈) (이는 섭씨 –273.14도이다. 이론적으로 가장 낮은 온도는 섭씨 –273.15도 이다.), 이라는 극저온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18T는 지구 자기장의 20만 배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자기장이다. 이쯤 되면 왜 이 연구단의 이름에 '극한상호작용'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암흑물질의 최종승자는 누구일까

암흑물질이 액시온일지, 아니면 윔프일지 아니면 전혀 다른 어떤 물질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류가 아는 것은 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보다 5배 이상 많은 암흑물질이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 암흑물질이 액시온일지, 아니면 윔프일지 아니면 전혀 다른 어떤 물질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류가 아는 것은 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보다 5배 이상 많은 암흑물질이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윔프와 액시온 이외에서 비활성 중성미자 등이 암흑물질의 후보로 꼽힌다. 이중 과연 최종적으로 암흑물질로 밝혀질 승자는 누구일까? 매우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지만 현재로서는 그 해답을 아무도 알 수 없다.

지난 수 천년동안 인류는 빛을 통해 우주를 알게 되고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의 위치를 찾아갔다. 그리고 지금은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림자, 암흑물질을 찾고 있다. 아마도 21세기 최고의 물리학 성과가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 묻는다면 다수의 물리학자들은 암흑물질의 발견이라 이야기할 것이다. 우주의 빛과 그림자는 우리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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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