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요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IBS Conferences

속 긁어낸 호박 분자 쿠커비투릴, 사실은 신통방통 알찬 초분자!

신통방통한 호박 분자 쿠커비투릴,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놀라다



무엇처럼 보이는가? 과학자들의 눈에는 이것이 핼러윈 전날 밤 잭-오-랜턴(Jack-O’-Lantern)을 만들기 위해 속을 파 놓은 늙은 호박처럼 보였나보다. 그래서 이름이 호박 분자. 호박의 학명인 쿠커비타세(cucurbitaceae)와 이 분자를 구성하는 단위 분자인 글리콜우릴(glycoluril)의 이름을 합쳐 쿠커비투릴(cucurbituril)이라고 붙여졌다. 호박은 과육을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뿐 아니라 씨앗은 볶아서 먹고 잎도 요리에 사용하는 등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채소다. 쿠커비투릴 또한 그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신통방통한 호박 분자, 쿠커비투릴에 대해 알아보자.


▲ (좌)쿠커비투릴과 (우)쿠커비투릴의 단위 분자 글리콜우릴
(출처: ScienceDirect)​

글리콜우릴은 위의 그림처럼 산소, 질소, 탄소, 수소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된 분자다. 이러한 분자를 여러 개 블록 맞추듯 연결한 것이 쿠커비투릴이다. 쿠커비투릴은 원자끼리 전자를 공유하는 강력한 결합(공유결합)이 아닌 약한 결합(수소결합, 정전기적 결합, 반데르발스결합 등)으로 여러 분자가 짜맞춰져 만들어진 초분자다.

쿠커비투릴이 논문에 처음 보고된 때는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과학자들에 의해 처음 합성되었지만 그때는 이 물질이 어떻게 생겼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분자 단위의 작은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쿠커비투릴의 존재는 점점 잊혀져갔다. 그러던 중, 1981년 미국의 유기화학자 윌리엄 목(William Mock) 박사가 우연히 쿠커비투릴에 관한 논문을 발견하고 합성을 시도한 결과, 당시 개발되어있던 X선회절법1)으로 가운데가 뻥 뚫린 호박 모양의 고리 분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쿠커비투릴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도 윌리엄 목 박사다. 하지만 그 후 쿠커비투릴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또 다시 잊혀졌다.

세계 최고의 쿠커비투릴 연구단은 우리나라에!


▲ (좌)세계 최정상급 쿠커비투릴 연구자로 이름난 김기문 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단장.
(우)결합하는 글리콜우릴 단위체의 개수에 따라 달라지는 쿠커비투릴 동족체
(출처: semantic scholar.com)

어둠 속에서 호박 분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시 활짝 피어나게 한 이는 다름 아닌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김기문 단장이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1988년 포항공대 화학과로 부임했다. 새로운 연구 분야를 찾던 중, 김기문 단장은 도서관에서 외국 저널을 보다 일생의 연구 주제인 ‘쿠커비투릴’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쿠커비투릴은 용액에 녹여 놓으면 자기조립(self-assembly)의 특성에 따라 스스로 모양을 갖춘다. 그러나 강산성 용액 외에는 쉽게 녹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됐다. 쿠커비투릴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쿠커비투릴을 용액에 녹여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기문 단장 연구팀은 거듭 실험을 계속하며 연구 초기 어려움을 많이 겪었으나 결국 쿠커비투릴이 소금물에 용해된다는 점을 발견했고 이후 연구는 급속도로 진전할 수 있었다.

먼저 연구팀은 쿠커비투릴의 안쪽 구멍에 짧은 막대형 분자를 끼워 넣어 로탁세인(rotaxan)2)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엔 로탁세인 여러 개를 연결하여 목걸이 형태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로탁세인은 분자 기계의 부품으로 쓰일 수 있어 크게 주목받은 초분자체다. 이 연구결과는 1996년 미국화학학회지에 발표되었다.

2000년엔 글리콜우릴 6개가 결합하여 만들어진다고 알려진 쿠커비투릴을 글리콜우릴 5개 혹은 7개, 심지어 8개로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글리콜우릴 단위체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고리가 커지고 안쪽의 빈공간도 넓어지며 분자가 유연해진다는 것도 알아냈다. 쿠커비투릴은 단위분자의 개수에 따라 쿠커비투[5]릴, 쿠커비투[6]릴, 쿠커비투[7]릴, 쿠커비투[8]릴과 같이 표기했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2003년, 쿠커비투릴의 겉에 다양한 화학물질(치환기3))를 붙인 것이다. 붙이는 치환기의 종류에 따라 쿠커비투릴의 화학적 성격이 달라졌는데, 이로써 강산성에서만 녹던 쿠커비투릴을 유기용매나 물에서도 녹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연구진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쿠커비투릴을 다양하게 응용하는 연구에 돌입하여 세계적인 성과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마약 검출은 물론 세포관찰에도 응용


▲ 암페타민 계열 마약 센서의 작동 원리. 유기반도체 소자 표면에 암페타민 계열 마약을 선택적으로 감지하는 쿠커비투릴 분자가 코팅되어 있고, 이 분자와 마약이 결합해 생긴 전류변화가 안테나를 통하여 외부 장치로 전달된다.


▲ (좌)암페타민 계열 마약 검출용 무선 센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하여 마약 검출 센서의 신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스마트밴드 타입으로 제작된 휴대용 센서는 현장에서도 샘플 한 방울로 실시간 검출이 가능하다.

쿠커비투릴을 쓸모 있게 만드는 대표적인 성질 중 하나는 자신과 친한 다른 분자를 인식하고(분자인지) 손님으로 불러와(주인-손님 상호작용) 뻥 뚫린 공간에 집어넣고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과 포스텍 화학공학과 연구진은 지난해 쿠커비투릴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암페타민 계열의 마약을 검출하는 고감도 휴대용 마약 검출 센서(이하 마약 센서)를 개발했다.

유기반도체4) 소자에 쿠커비투[7]릴(cucurbit[7]uril) 분자층을 3~4겹 코팅한 후 여기에 암페타민 분자를 묻히면, 쿠커비투릴이 암페타민 분자를 알아보고 자신 안에 집어넣어 결합하게 된다. 이때 쿠커비투릴의 전하 배치가 미세하게 바뀌는데, 반도체 소자가 이를 민감하게 감지하여 전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전기 신호의 세기는 암페타민 분자의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마약 센서의 감도는 기존 센서의 1만 배에 달하며 작고 얇게 만들어 손목에 밴드처럼 차고 다닐 수 있다. 이 센서로는 필로폰이나 엑스터시와 같은 암페타민 계열 마약은 모두 검출할 수 있다.


▲ 리소좀을 인지하는 형광 분자로 쿠커비투릴을, 미토콘트리아를 인지하는 형광 분자로 아다만탄아민를 사용한 형광 바이오 이미징 기술의 모식도. 리소좀이 불필요한 미토콘드리아를 분해하기 위해 다가가면 리소좀과 미토콘드리아에 붙어 있던 쿠커비투릴과 아다만탄아민의 형광분자가 가까워지면서 에너지 전이(FRET)로 형광이 나타난다.

최근에는 쿠커비투릴로 자가포식(Autophagy)5)이 일어나는 세포 소기관의 움직임을 보다 안정적으로 관찰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쿠커비투릴은 페로센(ferrocene)이나 아다만탄아민(Adamatylamine)이라는 분자와 만나면 주인-손님 상호작용으로 매우 강력하게 결합한다.6) 자가포식은 리소좀과 같이 분해 효소를 지닌 소기관과 분해될 다른 소기관이 만나 이루어진다. 기존 연구에서는 자가포식에 관여하는 두 세포 소기관을 관찰하기 위해 형광 단백질을 주로 이용해왔다. 그러나 자가포식 과정 중 분해 효소로 인해 형광 단백질이 함께 분해되는 탓에 자가포식 현상을 안정적으로 관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수중 벨크로와 항암제 전달체 등 응용 분야 무궁무진

IBS 연구진은 과거 쿠커비투릴과 페로센의 강한 결합력을 이용하여 수중에서도 쓸 수 있는 벨크로(찍찍이)를 만들기도 했다. 물속에서 쿠커비투릴로 이루어진 표면과 페로센으로 이루어진 표면을 손으로 누르면 벨크로처럼 붙는 원리다. 이는 선박이나 수중 작업 로봇, 수술부위 봉합용 접착제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쿠커비투릴로는 작은 분자를 담는 ‘그릇’도 만들 수 있다. 이른바 ‘나노캡슐’이다. 쿠커비투릴을 메탄올 용액에 넣은 뒤 자외선을 쬐면 저절로 지름이 50~500nm(나노미터, 1nm=10-9m) 정도 되는 공 모양이 된다. 이 공은 선택적으로 물질을 방출하거나 가둘 수 있기 때문에 물질의 분리, 촉매, 센서, 약물 전달과 조절 등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연구진은 얼마 전 쿠커비투릴이 수용액에서 작은 주머니모양으로 스스로 조립된다는 것을 알고 이 안에 항암제를 넣어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항암제를 전달하는 쿠커비투릴 나노소포체에 레이저를 쪼이면 항암제를 나오게 할 수 있어 차세대 항암제 전달체로서의 개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양친성 호박분자로 이루어진 나노 소포체 형성 과정 및 이광자 레이저 민감성 항암제 방출 과정

겨우 나노미터급 크기이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무궁무진한 응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초분자 쿠커비투릴. 전세계 연구 최전선에 우리나라 연구진이 있는 만큼 더욱 더 기대되는 분야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콘텐츠담당자
홍보팀 : 임지엽   042-878-8173
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