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요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IBS Conferences

화학이 컴퓨터를 만날 때, 계산화학의 모든 것

2013년 노벨화학상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 3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노벨 화학상과 컴퓨터 프로그램의 조합은 얼핏 동떨어져 보인다. 전세계 화학분야에 공적이 가장 큰 연구자를 선정하는 노벨화학상 시상식. 그 곳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 과학자가 호명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시상 연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여러분의 아이디어와 화학 시스템의 특성을 연구하도록 개발한 방법이 화학의 여러 분야에 큰 변혁을 가져왔으며, 화학 시스템에 대한 특성을 가장 정교한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업적입니다(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 화학상위원회 군나르 칼스트룀)."1)


▲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프레드리크 왕에 의하여 1739년 설립된 스웨덴의 왕립 학술원의 하나이다.
학술원은 과학, 특히 자연 과학과 수학을 진흥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독립기관이다.

당시 노벨 화학상 위원회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화학 연구에 ‘변혁’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화학자들은 화학반응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실험실에 보급된 뒤 실험과정을 컴퓨터 화면 속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복잡한 화학반응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보다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복잡한 화학 시스템을 예측해 학계에 변혁을 주도한 이 분야는 계산화학(Computational Chemistry)이다. 계산화학에 활용되는 프로그램이 고도화되면서 전세계 과학자들이 효소나 촉매의 성능을 향상시키거나 새로운 후보물질을 발견하는 등 연구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론과 실험 사이 다리를 놓다

원자와 분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크기가 아주 작다. 화학 반응 속도도 빠르다. 나노(10억분의1m) 단위보다 더 작은 이 입자들은 서로 관여해 영향을 주는 것이다. 화학반응은 찰나보다 더 짧은 순간에 발생하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직접 관찰하며 제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계산화학자들은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화학연구에 끌어들였다. 수많은 원자, 분자, 미립자 등을 고려해 수학 방정식을 만든 뒤, 컴퓨터로 계산하는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마침내 실험실에 들어선 계산화학은 복잡한 화학반응을 분석하고, 새로운 화학반응을 발견하고 예측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계산화학의 등장은 전세계 화학분야 연구실에 획기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계산화학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화학반응 과정과 원리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 뿐 아니라 화학반응 도중 생기는 중간물질도 알 수 있다. 중간물질은 보통 상태가 불안정해 잠시 생겼다가 쉽게 그 구조가 깨져버린다. 실험만으로는 중간물질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반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서는 중간물질이 생성되는 시기와 구조가 깨지는 시기 등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다.

계산화학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비용이 많이 들거나 위험성이 높은 실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진공, 고온, 고압 등 극한의 환경에서 벌어지는 화학반응도 힘을 들이지 않고도 훨씬 정교하게 화학반응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화학반응에 영향을 주는 변수까지 조절할 수 있으니 실제 실험할 때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시간도 단축된다. 실험은 실패하면 원인을 찾아 계획을 수정한 뒤 실험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하지만 프로그램은 ‘되돌리기’만 하면 재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벨상 2관왕에 빛나는 계산화학

계산화학 분야의 첫 번째 큰 업적은 미국 노스웨스턴대 화학과의 존 포폴 교수와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월터 콘 교수가 만든 프로그램인 ‘가우시안’ 개발이다. 가우시안 개발로 두 연구자는 199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가우시안은 양자화학 수준에서 화학반응을 예측해내는 화학계의 ‘효자’였다. 화합물의 분자구조만 알면 가우시안을 이용해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 전자들의 상태와 에너지를 쉽게 계산해낼 수 있다. 그러나 가우시안은 원자수가 적은 분자들의 에너지만 계산할 수 있을 뿐 원자 수가 수만 개 이상인 고분자는 계산하지 못했다. 화학물질이나 대부분의 생체분자들은 고분자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우시안만으로 계산화학의 적용 분야를 넓히는 데 한계가 생겼다.


▲ 201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마르틴 카르플루스(Martin Karplus), 마이클 레빗(Michael Levitt),
아리엘 와르셸(Arieh Warshel).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이를 해결한 3명의 교수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 마틴 카플러스 교수, 남캘리포니아대 아리에 워셜 교수, 스탠퍼드대 마이클 레비트 교수가 바로 그들이다. 이 중 카플러스 교수는 ‘계산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대학 재학 시절부터 컴퓨터와 인연이 깊었다. 그는 미국 일리노이대 재학 시절 일리악 컴퓨터를 이용해 화학반응식을 계산했으며 1960년대에는 미국 IT업체 IBM이 후원하는 왓슨 과학연구소에서 IBM 컴퓨터를 연구에 이용하기도 했다.

카플러스 교수의 이같은 경험들은 그가 하버드대로 돌아와 레티놀의 탄소(C)-탄소(C) 결합이 비틀어지는 구조를 성공적으로 예측하는 거름이 됐다. 레티놀은 비타민A의 한 종류로 눈에서 빛을 감지한다. 당시 레티놀의 탄소(C)-탄소(C) 결합 중 하나가 빛에 노출되면 비틀어지며 시각을 구성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카플러스 교수는 탄소(C)-탄소(C) 결합이 비틀어지는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계산화학 프로그램을 이용했고, 성공적으로 예측해냈다. 같은 해 카플러스 교수의 연구가 실험적으로도 옳다는 것이 다른 연구로 증명되었다. 많은 연구자들은 점차 계산화학의 활용 가능성에 인지하게 됐다.

카플러스 교수는 계산화학을 생물학 분야에 적용하는 연구를 이어갔다. 그는 1970년대 산소 분자와 헤모글로빈의 결합을 연구했다. 9,500여개의 원자를 가진 고분자인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해야 했지만 당시 널리 사용되던 가우시안만으로는 작업에 한계가 있었다.

카플러스 교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를 방문해 워셜 교수와 만나 협업을 시작했다. 자유전자인 파이(π)전자에는 양자역학을 적용해 분석하고, 원자 간 결합에 이용되는 시그마(σ) 전자와 원자핵에는 고전물리학인 뉴턴역학을 적용하는 분석법을 고안해냈다. 1972년 카플러스 교수와 워셜 교수는 양자역학과 뉴턴역학, 두 가지 방식을 결합한 분석방식을 발표했다. 이 발표가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계산화학 프로그램인 참(CHARMM•Chemistry at HARvard Macromolecular Mechanics)의 시초가 됐다.

이후 라이소자임 반응을 연구한 레비트교수와 워셜 교수의 연구가 시뮬레이션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분자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모델을 발표한 것이다. 1983년 카플러스 교수가 정식으로 참(CHARMM)을 논문으로 발표한 뒤, 참(CHARMM)은 연구분야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참(CHARMM)은 분자구조를 연구하는 전세계 대부분의 연구소에서 사용하고 있다. 신약개발은 물론 촉매 반응 개발, 생체분자 연구, 실리콘 웨이퍼 연구 등에 널리 사용된다. 2013년 참(CHARMM)을 개발한 연구진은 노벨화학상을 수상하면서 2관왕을 거머쥔 계산화학분야에 노벨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난제 해결하는 계산화학, 새로운 촉매반응 개발 핵심 주역


▲ 비행기 동체, 자전거, 골프채, 보석 등 다양하게 활용되는 타이타늄(Titanium). 연구진은 타이타늄 촉매를 활용해 올레핀 합성에 성공했다.

계산화학은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촉매반응 개발에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계산화학을 이용해 새로운 촉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연구진은 탄화수소(탄소와 수소만으로 이뤄진 결합물)에서 수소를 없애는 탈수소반응을 주변에 흔한 타이타늄(Titanium, Ti) 촉매로 활용해 올레핀으로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올레핀은 플라스틱, 고분자 화합물, 의약품 등에 활용되는 석유화학산업 분야 주요 소재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에 게재되었다.

올레핀은 탄화수소가 수소를 잃으면서 탄소(C) 두 개가 이중결합(C=C)해 생성된다. 보통 올레핀은 800℃ 고온으로 석유를 증기 분해(stem cracking)하여 제조한다. 매우 높은 열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고 반응 중 탄소-탄소 결합이 끊어져 올레핀 화합물이나 다른 탄화수소들이 합성되는 단점이 있다. 또, 석유 대신 천연가스에서 올레핀을 합성하려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발생해 오염과 공해 문제가 뒤따랐다. 탄소-수소 결합을 끊는 반응성을 높이고자 전이금속 이리듐(Iridium), 로듐(rhodium), 루테늄(ruthenium) 등을 촉매로 적용했으나 비용이 너무 비싸 실제 산업에는 활용하기 어려웠다.

타이타늄 촉매는 싸고 독성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활용가치가 크다. 지각에 9번째로 많이 함유된 원소이고 금속 중 네 번째로 많다. 가격도 비싼 전이금속에 비해 수십 배 저렴하다. (이리듐은 1g에 약 40만원, 타이타늄은 1g에 약 1만 7천원에 달한다, 출처: 시그마 알드리치)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에 포함된 광물인 이리듐은 신의 물질이라 불린다. 반응성은 매우 크지만 구하기 어렵고 값이 비싸 붙여진 별명이다.


▲ 연구진은 타이타늄 촉매를 활용한 탈수소반응 메커니즘을 구현했다. 탄소와 수소의 단일결합으로 이뤄진 화합물을 알케인으로 분류한다. 위 그림은 알케인(보라색 상자)이 탄소-탄소 이중결합(C=C)을 갖는 올레핀(초록색박스)을 만드는 과정을 물레에 비유했다. 촉매인 타이타늄(Ti)이 물레 중앙에 위치해있다. 물레가 잘 돌아가게 도와주는 손잡이에는 반응을 도와주는 일라이드(Ylide)물질이 그려져 있다.

연구단 내 계산화학 연구그룹을 이끌고 있는 백무현 부연구단장은 계산화학계 전문가다. 백 부단장은 밀도범함수를 활용한 계산학을 통해 최적의 촉매 후보물질로 타이타늄을 제안했다. 밀도범함수는 199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월터 콘이 고안해낸 이론으로 분자 내부에 전자가 들어있는 모양과 에너지를 양자역학적으로 계산하는 이론이다. 분자 또는 원자에 대한 양자화학 및 분자 동력학 등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해 정확한 촉매를 예측한다.

백 부단장은 마노즈 마네(Manoj V. Mane) 연구위원과 계산화학을 통해 타이타늄을 최적의 촉매로 선택해 제안했으며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대니얼 민디올라 교수팀이 실험으로 검증했다. 백 부단장은 민디올라 교수팀과 이미 2016년 계산화학을 이용한 연구성과를 <사이언스>에 실은 바 있다. 두 연구진이 공동으로 메탄가스의 탄소-수소 결합을 끊고 화학반응을 활성화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전이금속인 이리듐을 사용해 메탄가스의 붕소화 촉매반응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메탄가스는 매년 5억톤 이상이 발생하고 그 양이 점차 늘고 있음에도 활용도는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탄소-수소 결합이 너무 강해 화학공업에 응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메탄가스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은 화학자들의 오랜 숙제와도 같았다.

백 부단장은 계산 화학으로 화학반응에 필요한 정확한 촉매 물질을 예측하고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완성도 높은 실험을 제안했다. 그의 결과를 갖고 민디올라 교수팀이 실험으로 메탄가스의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붕소화 촉매반응 메커니즘을 규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새롭게 고안된 촉매를 실험에 적용하자 과거 2~3%에 불과하던 탄소-수소 결합 활성화 반응 생산율이 52%까지 상승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인류의 골칫거리 메탄가스를 화학적으로 분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연구결과는 우리 주변에 흔한 메탄가스를 새로운 에너지원과 석유화학의 산업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 IBS 연구진들은 2016년 지구온난화의 주범이자 인류의 골칫거리인 메탄가스를 화학적으로 분해할 수 있는 방법을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실험화학의 결과를 검증하거나 관찰하는 역할을 주를 이뤘던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계산화학이 보다 주도적으로 화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론화학의 문제를 컴퓨터를 활용해 다루는 화학의 한 분야 계산화학. 계산화학은 전통적으로 실험화학의 결과를 검증하거나 관찰하는 역할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기존 역할을 수행하면서 보다 계산화학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화학 연구실에 ‘변혁’을 가져온 계산화학은 앞으로도 분자의 모델링 등을 통해 화학반응 경로 이해하는 기초연구는 물론 신약개발이나 질병탐색을 위한 생물정보학, 신소재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노벨재단,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노벨 화학상>, 2014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콘텐츠담당자
커뮤니케이션팀 : 최지원   042-878-8088
최종수정일 2019-12-17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