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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근원을 탐색하는 과학자들 - 모든 것의 시작을 찾는 여정


▲ '빅 히스토리'란 사물과 우주의 역사를 들춰보고 그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다름아닌 셈이다. ⓒshutterstock.com

모든 사람에게는 살아온 역사가 있다. 모든 동물에게는 저마다 계보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다름아닌 사물의 역사를 통해서다. 사물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 지구와 생물과 인간의 역사기도 하고, 여기에는 물질과 우주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요컨대, 요즘 학계에서 주목받는 '빅 히스토리'란 사물과 우주의 역사를 들춰보고 그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 책 한 권에 담긴 이야기는 활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의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책을 이루는 물질의 근원, 즉 우주의 탄생과 맞닿기 마련이다. 이처럼 사물과 물질의 역사를 망라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빅 히스토리'다. ©shutterstock

간단한 예로 책을 생각해 보자. 책은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가 바로 책이니까. 그런데 책에 담긴 이야기뿐 아니라, 책이라는 물체 자체에도 이야기가 있다. 인쇄된 종이덩어리에 대체 무슨 이야기가 있겠나 싶겠지만 바로 그 종이와 잉크의 역사가 책이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다.

종이는 나무로 만든다. 표백제나 이런저런 약품이나 먼지들도 있겠지만 일단은 무시하자. 그 나무는 종이가 되기 전에는 산 속에 다른 나무들과 군락을 이루어 뿌리박고 있었을 터다. 그리고 씨앗에서 싹텄든 부러진 가지에서 뿌리를 내렸든 제 어미가 있었을 터다. 그 어미의 어미는 긴 족보를 이루어 결국에는 최초의 육상 생물에까지 이를 것이고 다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바닷속에서 최초로 광합성을 시작한 시아노박테리아를 만날 것이다.

여기서 더 옛날로 가보면 온갖 유기물로 곤죽이 된 원시 바다와 그 바다가 탄생하기 전의 불덩이 지구, 지구가 모양을 이루기도 전부터 빛을 내며 태양이 될 준비를 하던 가스덩어리가 있으리라. 가스덩어리 속의 갖가지 원자들은 어딘가에서 폭발한 초신성의 잔해일 가능성이 높고, 이 원자들은 다양한 형태를 거치면서 지금은 종이인 바로 그 식물이 일생동안 호흡하고 광합성하고 질소고정을 하면서 지구의 대기나 땅 속과 주고받은, 바로 그 원자일 터다. 따지고 보면 책 한 권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는 38억년도 넘는 서사시인 셈이다. 빅 히스토리는 이처럼 개별 사물의 역사가 지구와 우주의 역사와 맞닿는 장대한 서사다.

조금 억지스럽게 보인다면 많은 신화들의 시작이 '태초'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인류가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수식과 형식논리를 사용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유용한 지식들은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야기를 통해 전해졌다. 신화에서는 태초의 사건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신과 사물과 이야기가 뻗어나온 것으로 묘사하곤 한다. 구도의 길은 흔히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해석된다. 요컨대, 지식의 원형이 바로 이야기였으며 모든 이야기는 세상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셈이다.

이야기의 근원, 암흑물질


▲ 빅 히스토리는 자연물보다 문화적 상징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힌두교와 불교의 상징물 중 하나인 만달라는 중앙의 근원으로부터 주변부의 여러 도상과 지식들이 파생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사진은 티벳의 19세기 작품. ©아미타유스만다라

책의 이야기에서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어딘가에서 폭발한 초신성은 또 다른 가스덩어리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그 가스를 이루는 분자들은 원자로 구성되고, 원자는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와 같은 소립자로 이루어질 것이다. 소립자들이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니, 결국 이 소립자들이 탄생한 사건이야말로 이야기의 근원인 '태초'에 해당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우주의 시작를 '빅뱅'이라고 생각한다. 빅뱅 이론의 시작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우주가 시작됐다는 이론은 마치 설명이 곤란하니 억지로 끼워넣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아 보인다. 자연히 초창기에는 학계에서의 비판과 반발이 컸지만 여러 가지 증거가 나온 지금은 가장 타당한 설명으로 격상됐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우주는 갑작스런 사건을 계기로 탄생했다. 방아쇠를 당겨서 총알이 발사되듯 갑작스럽게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것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주 탄생 이전'이라는 질문은 과학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최근에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 더욱 정교한 모델들이 등장하면서 우주 탄생 이전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나 가설일 뿐, 시간과 공간과 등장인물 모두 우주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당연히 우주가 탄생하고 진화해 온 과정을 알아내면 현재의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바로 암흑물질이다. 암흑물질이란 우주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상의 물질이다. 이름 그대로 암흑,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관측이 불가능하다. 위대한 과학자들이 수없이 하늘을 들여다 봤음에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을만하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밀도와 물질분포에 큰 영향을 주므로 우주가 탄생할 때 물질이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자연계의 주요 힘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분화해나갔는지, 지금의 천체와 은하들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준다.

이처럼 중요한 암흑물질이지만, 직접 보이지 않다 보니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 오래도록 논란거리였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는 간접적인 증거일 뿐, 명확한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암흑물질에 대한 첫 단서는 불가리아 태생의 미국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가 1933년 처음으로 알아냈다. 그는 초신성과 중성자별의 존재 가능성을 처음으로 예측한, 유능한 과학자였다. 츠비키는 윌슨산 천문대에서 '코마'라는 거대 은하단을 관측하던 중 은하단 중심을 공전하는 은하들의 속도가 계산보다 지나치게 빠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의 천문학과 물리학 지식에 따르면 관측된 은하들의 질량만으로는 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은하들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 우주의 탄생. ©shutterstock

계산과는 달랐지만 명백히 관측된 현상인 이상,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츠비키는 관측되지 않는 물질들이 있어 이들이 추가로 중력을 만들어내고, 이 힘이 은하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츠비키의 발견은 천문학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만한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우주의 질량과 천체들에 작용하는 중력은 알려진 것보다 커야 했는데, 중력은 우주와 천체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츠비키가 제시한 암흑물질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설명은 그럴듯했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츠비키가 재능은 출중했지만 성격이 좋지 않아 동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도 다른 이유 중 하나다.

수영장에서 렌즈 찾기


▲ 우리 은하를 위에서 본 모습. 밤 하늘의 별의 분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미지다. 우리 은하는 비슷한 유형의 은하인 안드로메다 은하에 비해 작지만 암흑물질이 많아 질량은 비슷할 것으로 추측된다. 천체들은 서로 다른 각운동량을 지니고 은하의 중심 주변을 공전하므로 나선팔의 모양은 계속 변화한다.

수많은 가설 중 하나로 잊혀지나 싶던 암흑물질은 1977년, 화려하게 부활한다.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쿠퍼 루빈은 애리조나의 키트피크 천문대에서 은하 내 별들의 회전 속도를 측정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은하를 구성하는 별들은 은하 중심을 공전한다. 일반적인 예측에 따르면 하나의 천체 주위를 공전하는 천체는 궤도 반지름이 커질수록 공전속도가 느려져야 한다.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태양계 천체의 움직임을 훌륭하게 설명해주는 케플러 제3법칙이다. 그러나 루빈은 은하 바깥쪽의 별들도 은하 중심 근처의 별과 비슷한 속도록 공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기존의 중력 이론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중력 이론에 오류가 있는지 따져보았지만 오류 따위는 없었다. 결국 이를 설명하려면 아직 관측하지 못한 무언가가 은하 바깥쪽에 질량을 더해주어야만 했다.

문제는 여전히 있었다. 츠비키 때와 마찬가지로 암흑물질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간접적인 단서가 하나 더 나왔을 뿐, 실제 암흑물질 유무가 규명되지는 않았다. 가시광선을 내지 않는다. 전파로도 포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암흑물질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암흑물질을 찾는 작업은 물 속에 빠진 콘택트렌즈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콘택트렌즈가 맑은 물에 빠지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냄새든 맛으로든 어떤 감각으로도 정확히 찾아낼 수 없다. 그저 주의깊게 바닥을 더듬으면서 피부의 감각만으로 찾는 방법밖에 없다. 암흑물질을 더듬어 찾는 유일한 방법은 암흑물질이 있으리라고 의심하게 해 주는 힘, 바로 중력이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묶어 설명하기 시작한 이래, 중력에 대한 이해는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뉴턴 이후 중력은 질량을 지닌 물체가 서로 당기는 힘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질량은 시공간을 왜곡시키며, 왜곡된 시공간으로 나타나는 효과가 중력이라고 해석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는 중요한 변화였는데, 질량이 없는 입자나 파동과 같은 현상에 중력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 거대한 질량이 공간에 왜곡을 일으키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미지.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공간의 왜곡으로 인한 효과이므로 빛의 진행방향 역시 무거운 천체 주변에서 휘어진다. ©shutterstock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입증했던 중요한 실험 중 하나가 바로 1919년의 일식 관측이었다. 천문학자인 스탠리 에딩턴은 태양처럼 질량이 큰 천체는 중력에 왜곡을 일으켜 빛의 진행방향을 휘어 놓을 것이고, 이 때문에 '렌즈'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일식 때 태양의 주변을 관측한 결과, 태양을 기준으로 지구와 반대편에 있는 천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정확히 대칭이 되는 지점에 두 개로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데도 중력렌즈 현상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중력렌즈는 순수하게 중력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어떠한 전파도 관측되지 않는 암흑물질이라도 질량이 있다면 중력렌즈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관측되는 천체의 양으로 예측한 것보다 강한 중력렌즈 현상이 나타난다면 이는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20세기 후반부터 허블 우주망원경을 위시하여 관측수단이 크게 발전하면서 암흑물질의 증거가 속속 보고되어 암흑물질은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금은 존재 여부를 증명하는 차원을 넘어 암흑물질의 분포까지도 알아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태초'의 가장 중요한 단서가 드러난 것이다.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혀라

그러나 여전히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암흑물질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고, 적지 않은 질량일 지녔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대체 암흑물질의 구성성분이 무엇인지는 아직 미지수인 것이다. 연구 초기에는 암흑물질이 소형 블랙홀이나 빛을 낼 수 없는 천체, 또는 성간물질처럼 스스로 전자기파를 만들어낼 수 없는 천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천체들을 '마초(MACHO, MAssive Compact Halo Objects)라고 하는데, 새로운 가설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깔끔한 설명이지만 마초만으로는 암흑물질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입증됐다.

따라서 최근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암흑물질의 정체로 다양한 후보들을 탐색하고 있다. 유력한 후보들이 '윔프(WIMPs, 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와 '액시온(axion)'이다. 윔프는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를 줄인 말로, 초대칭 이론에서 그 존재가 예측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윔프가 존재하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액시온 역시 실제 존재 여부는 불투명하나 이미 1970년대 말, 강한 핵력을 설명하는 이론인 양자색소역학(Quantum Chromodynamics)이 왜 CP 대칭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해명하기 위해 도입됐다. C 대칭성은 입자를 반입자로 바꿀 때, P 대칭성은 입자를 거울에 비춘 모양으로 바꿀 때 적용되는 물리법칙이 각각 동일하다는 뜻으로, 이 두 가지 대칭성을 합쳐 CP 대칭성이라 부른다. 양자색소역학 이론으로는 CP 대칭성이 깨질 것으로 예측되나 실제로는 보존된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증명된 바 있으며, 이를 설명하는 가상의 입자가 바로 액시온이다.

최초로 제안된 액시온은 실험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증명되어 잊혀지나 싶었지만, 경희대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김진의 교수가 1979년 기존의 실험결과와 모순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액시온을 예측하여 부활했다. 이후 계속된 연구에 의해 액시온이 암흑물질 후보로서도 매우 유력하다는 사실이 드러나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어졌다.


▲ IBS 극한상호작용연구단의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단장. 그는 김진의 교수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액시온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실험실이 완공되고 난 후 5~6년 정도면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액시온은 한국인이 그 가설을 세우고 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한국 과학계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기도 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도 2년 전부터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을 설립하여 관련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액시온 연구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연구단의 단장으로 부임한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박사도 김진의 교수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로체스터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김 교수의 액시온 이론을 접하고 관련 연구에 뛰어든 것. KAIST 캠퍼스에 실험동이 건립되면 약 5~6년 후부터는 연구단이 세계 액시온 연구 흐름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윔프보다는 생소하긴 하지만, 액시온 연구는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유럽에서는 CERN을 중심으로 태양망원경을 이용하여 태양에서 나온 액시온을 측정하기 위해 노력중이고, 미국에서는 워싱턴대를 중심으로 마이크로파 공동(microwave cavity)을 이용하여 우리 은하의 헤일로로부터 오는 액시온을 찾으려 하고 있다. 최근 액시온의 존재가능성이 줄어들었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아직 기나긴 규명과정이 필요한 만큼 암흑물질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액시온 연구 역시 다른 유력한 후보군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학문적으로 중요성이 클 뿐 아니라, 기초과학 분야에서 한국이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례 중 하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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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12-17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