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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주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지구상에 없던 희귀핵 찾는 '개척자’
작성자 전체관리자 등록일 2024-01-03 조회 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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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지구상에 없던 희귀핵 찾는 '개척자’

우주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지구상에 없던 희귀핵 찾는 '개척자’


우주의 근원을 찾고자 시공간을 넘나드는 과학자가 있다. 지구에 없던 원소를 젭토초(10해분의 1초)라는 찰나의 순간 동안 관찰하고, 140억년에 달하는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핵물리 연구자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보잘것없는 인간이 우주와 자연의 경이로움에 도전하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황종원 기초과학연구원(IBS) 희귀핵연구단 연구원은 "핵물리 연구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원자핵을 보면서도 거대한 우주의 근원을 찾는다"며 "시간적으로도 핵물리 실험에선 젭토초처럼 가장 짧은 순간부터 수백억년 전 태동한 우주라는 가장 오래된 시간을 탐구한다"고 밝혔다.

황 연구원은 지난 8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도쿄공업대 연구진과 공동연구한 '산소-28' 논문을 발표했다. 산소-28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불안정한 희귀핵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산소는 대부분 산소-16으로 안정한 상태다.

원소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성분으로 원자라고 부른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고, 이중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개수에 따라 원자핵의 종류가 결정되는데, 황 연구원은 이러한 핵의 성질과 그 기반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 간 상호작용 원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산소-16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8개씩 존재하지만, 산소-28은 양성자 8개, 중성자 20개를 지닌다.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다른 '쌍둥이 원소'인데 이를 동위원소라고 부른다. 원자핵에서 양성자나 중성자가 2, 8, 20, 28, 50, 82, 126과 같이 특별히 안정되는 개수를 '마법의 수'라고 부른다. 안정적 상태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니 '마법'이라고 부른 것이다.

산소-28은 그동안 존재할 수 있는 한계치, 끝에 있는 동위원소로 여겨졌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동위원소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실험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황 연구원과 공동 연구팀은 RIKEN의 중이온가속기, ‘방사성동위원소 빔 생성시설’(RIBF)을 이용해 산소-28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고 그것이 마법의 수를 지닌 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황 연구원은 지르코늄-80에 대한 연구 등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원자핵을 찾는 개척 연구 중이다. 아래는 황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해외 연구소 탐방을 하면서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를 봤습니다. 그때 거대한 시설에서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밌겠다' '나도 해보고 싶다' '우주의 기원을 탐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IBS 중이온가속기(RAON) 건설 계획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핵물리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서울대 대학원에서 월드클래스유니버시티(WCU) 프로젝트를 통해 사토 요시테루 교수님을 모셔 왔고 이분 밑에서 희귀핵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SAMURAI(다중입자 측정 실험 장치)를 이용해 산소-28을 비롯한 다양한 희귀핵을 실험했고 그 데이터를 활용해 논문을 쓰고 졸업했습니다. 2017년 5월부터 도쿄대 산하 핵과학연구센터(CNS)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3년을 보내고 2020년 4월 IBS에 들어와 후속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소속 연구단인 IBS 희귀핵연구단은 어떤 곳인가요.

우선 기초과학은 자연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우주가 왜 이런 구조이고 물질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일종의 존재론적 탐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희귀핵 연구는 주로 원소의 기원을 찾아갑니다. 인류는 모든 원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특히 철부터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핵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지 못합니다. 원소들의 생성 과정에 희귀핵이 큰 연관이 있고, 희귀핵 연구를 통해 우주에서 원소들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조금 더 잘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양성자·중성자 포획과정과 같은 천체물리학적으로 중요한 핵반응에 대한 실험을 수행하고, 원자핵이 존재할 수 있는 한계선인 양성자·중성자 드립라인(Dripline), 새로운 마법수 등의 핵구조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황 연구원님 중점 연구 분야가 궁금합니다.

산소-28과 같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불안정한 희귀핵연구가 대표적입니다. 산소-28은 양성자 8개와 중성자 20개로 이뤄져 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산소-16에 비해 중성자를 12개 더 가지고 있어 불안정합니다. 최근에는 지르코늄-80 연구도 수행 중입니다. 지르코늄-80은 중성자가 아니라 양성자가 더 많습니다. 산소-28과 반대 구조의 동위원소 성질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산소-28이나 지르코늄-80과 같은 동위원소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물질의 성질을 나타내는 기본 단위는 원자입니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저희가 초점을 맞추는 원자핵은 물리학적으로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돼 있고, 세상의 모든 종류의 원자핵은 두 입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서로 다른 성질을 나타냅니다. 두 입자들의 조합이 세상의 다양성을 창조하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핵물리 연구는 이들 입자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합니다.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다양한 현상들을 파악해서 안정하거나 불안정한 원자핵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산소-28 연구 성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존재 한계 너머에 있는 원자핵의 특성을 밝혔다는 게 의미가 큽니다. 원자핵은 양성자나 중성자가 특정한 개수를 만족하면 안정적인 특성을 나타내곤 합니다. 원자핵에서 양성자나 중성자가 2, 8, 20, 28, 50, 82, 126과 같이 특별히 안정되는 개수를 '마법의 수'라고 부릅니다. 안정적 상태인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니 마법이라고 불렀던 겁니다. 산소-28은 양성자 8개와 중성자 20개로 이뤄졌고, 이 때문에 마법의 수를 두 개나 가진 유력한 핵 후보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RIKEN의 RIBF를 이용해 산소-28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고 중성자 측 마법의 수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원자핵 존재 한계 너머에 있는 매우 희귀한 동위원소 성질을 실험적으로 밝혀냈다는 의미입니다. 일종의 극한환경에 대한 원자핵의 성질을 규명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산소-28을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재 한계선 밖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산소-28은, 양자적 공명 상태로서 10의 21승분의 1초인 젭토초 정도 존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가속기를 통해 생성된 빔을 표적에 충돌시켜 원자핵으로부터 핵 일부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산소-28을 생성했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칼슘-48 → 플루오린-29 → 산소-28로 가는 과정을 통해 산소-28의 성질을 관측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예측한 마법은 없었습니다. 대다수 안정적 원자핵과 달리 극한 영역에 있는 원자핵의 성질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산소-28과 같이 극도로 불안정한 원자핵 실험 데이터는 양성자와 중성자 간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이번 기초연구가 응용될 수 있을까요.

기초과학의 가장 큰 의의는 인류가 가진 지평을 넓히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과학기술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저는 과학과 기술은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의 하나이고, 특히 기초과학은 인문학이나 예술과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나 예술의 발전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인류의 정신적인 풍요와 문화적인 번영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기초과학도 지식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응용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100년, 1000년 후 실질적으로 인류에 도움이 되는 공학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100년 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공학기술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많아지리라 여겨집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연구를 하다 보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핵물리 실험을 하면서 제가 생각보다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핵물리 실험에서는 검출기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을 하기도 합니다. 직접 도면을 그리거나 회로를 설계하고, 검출기에서 나오는 전기적 신호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도 해야 합니다. 다양한 지식들이 많이 필요한데 제가 학부 때 프로그래밍을 부전공했고 어렸을 때부터 전자제품을 분해해보는 등의 다양한 경험을 좋아했습니다. 핵물리 분야에서는 연구 책임자가 실험 전체를 설계하고 실험에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숙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보니 핵물리 연구가 더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연구하는 과정이나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근 RAON 빔을 통해 실험적으로 희귀핵종을 만들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걸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세계적으로 역량을 쌓는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뿌듯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연구는 가속기를 이용해 핵폐기물을 재처리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이 있는데 가속기를 활용해서 다른 원소로 바꿔주면 처리가 용이해집니다. 그런 컨셉을 가지고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일종의 연금술과도 같은데 연내 논문 작성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황 연구원님 어린시절은 어땠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과학책을 많이 접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본인 아들이 다 컸다고 집에 있던 과학잡지 뉴턴 2~3년치를 저희 집에 주셨습니다. 워낙 신기한 내용들이 많았고 잡지 자체가 컬러풀해서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과학책 읽기를 좋아했고,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하면서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근원을 좇으면서 결국 자연이나 우주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물리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연구 커리어 중에 일본에서 3년간 박사후연구원을 지내셨는데 국제협력 필요성을 체감하셨나요.

국제협력을 하면서 연구시설의 중요성을 많이 체감했습니다. 핵물리 실험은 중이온가속기 같은 거대 연구시설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나라도 RAON이 완공돼서 이용자에게 개방을 앞두고 있지만, 이전에는 실험시설이 전무했고 주로 해외에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연구를 수행할 때도 일부 제약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국내에도 가속기가 들어서는 만큼 그동안 쌓아왔던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싶습니다.

‘황 연구원님에게 핵물리학이란’ 이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핵물리, 혹은 기초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그에 비해 작고 보잘것없으나 그것을 탐구하려는 인간이 가지는 가능성입니다. 핵물리는 다양한 스케일을 다룹니다. 핵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우주와 연관돼 있습니다. 초신성 폭발이나 별의 진화는 결국 핵의 반응, 혹은 원소의 생성과 연관이 돼 있습니다. 시간적으로도 우주의 나이는 백억 년이 넘지만, 실험에선 나노초, 마이크로초처럼 가장 작은 스케일을 다룹니다. 이런 연구를 하다보면 우주와 자연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공의 유한함을 지닌 인간이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 외적인 생활은 어떠신가요.

악기 중에 비올라를 다룹니다. 연구를 하다보면 방향성을 잡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나의 연구 논문을 쓰고 나면 다른 주제를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찾을지 고민이고,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합니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그런 상념을 조금 덜어내는 것 같습니다. 악기 말고는 주로 독서를 합니다. 기초과학 분야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창백한 푸른 점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리처드 파인먼의 물리학 강의도 물리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도움이 됩니다.

기초과학 이야기지만 굉장히 철학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성실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기초과학 분야 업적은 사실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 업적이 세간의 인정을 받는 것은 연구자의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분야에서 성실하게 꾸준하게 연구를 해왔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습니다. 동료들에게도 같이 연구하는 것이 즐거웠던 기억되고 싶습니다.

향후 개척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차세대연구리더(YSF)를 통해 지르코늄-80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최대 3년간 9억원을 지원받는데, 원자핵 형태 공존에 대한 연구를 실험적으로 검증해 보고 싶습니다. 더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고 싶습니다. 일본 연구진이 2016년 새로 발견한 원소에 니호늄(Nh·주기율표 113번째)이란 이름을 붙인 것처럼 원소를 찾아내는 연구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주도하지 않더라고 언젠가 원소를 찾아내는 연구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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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