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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을 연결해 만드는 뇌의 지도
작성자 전체관리자 등록일 2020-03-25 조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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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연결해 만드는 뇌의 지도

김성신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위원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지만, 故 스티브 잡스가 남긴 명언이 많은 이에게 영감을 줬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연결되는 점들(connecting dots)’와 같은 말이 특히 그렇다. 잡스는 자신이 해 온 경험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있었다며, 지금과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소한 경험이라도 ‘나’를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불교의 ‘연기론’을 연상시키는 이 말은 얼핏 영적이고 종교적인 잠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점점이 흩어진 사실을 연결해서 체계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과학이야말로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분야가 아닐까.


김성신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위원
▲ 김성신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위원

분야를 막론하고 오늘날의 과학자라면 원자의 최외각 전자껍질이 물질의 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안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원자의 오비탈 구조에 따라 원자간 결합상태가 달라진다는 점까지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생물학자는 기질-효소 반응을 예측하고 화학자는 분자의 구조를 재구성하며 물리학자는 물체 표면에서 입자의 거동을 분석한다. 다루는 대상은 제각각이지만 일관된 원칙에 따라 서로 연관을 맺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이란 이처럼 수많은 점을 연결해 만들어 낸 커다란 줄기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점이라고 한다면 이를 연결하는 선은 여러 현상을 관통하는 근원적 원리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점을 연결해 새로운 지식을 얻는 데는 경험의 깊이도 필요하지만 경험의 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짧은 시간에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친 인물이 젊은 나이에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 연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성신 뇌과학이미징 연구단 연구위원이 바로 그러한 사례다.


하나로 수렴된 서로 다른 궤적들

“기억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서술적, 또는 명시적 기억과 비서술적, 절차적 기억이죠. 서술적 기억은 언어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묘사할 수 있는 데 비해 비서술적 기억은 공포감이나 자전거 타는 법처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억입니다. 두 가지 기억은 뇌에서 관장하는 부위도 다르고 신경신호의 흐름도 달라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연구주제죠. 그런데 저는 그 두 가지 분야에 모두 관심이 있어요”

김성신 뇌과학이미징 연구단 연구위원은 연구자로서 관심분야를 묻는 질문에 ‘모두’라고 답한다. 김 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서술적 기억과 비서술적 기억은 연구 커뮤니티가 분명하게 분리돼 있다고 한다. 서로 교류하는 일도 별로 없고 독자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다. 외과적 수술로 해마체를 제거한 환자가 장기기억능력을 상실했음에도 운동학습능력은 그대로 보존된 사례가 보고된 이후, 이러한 구분은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 분야에만 안주하기에는 김 위원의 호기심이 너무나도 컸다.

경두개자기자극술로 활성화된 뇌 영역을 확인 중인 김성신 교수. 경두개자기자극술은 비침습적 뇌작극 기술로, 전류가 흐르는 코일로부터 유도된 자기장을 이용해 신경신호를 유도한다.
▲ 경두개자기자극술로 활성화된 뇌 영역을 확인 중인 김성신 교수. 경두개자기자극술은 비침습적 뇌작극 기술로, 전류가 흐르는 코일로부터 유도된 자기장을 이용해 신경신호를 유도한다.

“저는 박사과정 때 사람의 장기기억을 다뤘어요. 그러다 시카고대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할 때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운동기억을 연구했지요. 이후에는 원래 관심사였던 BMI(Brain-Machine Interface)와 감각 피드백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화학공학과 학부 시절에 전자공학에도 관심이 생겨서 복수전공을 했는데, ‘생체전자공학’을 접하고 큰 흥미가 생겼거든요. 유학생활을 듀크대에서 한 이유도 BMI 연구가 유명했기 때문이었어요. 대표 논문 세 편이 무척이나 다른 분야에서 각각 나왔습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제 연구이력을 본다면 ‘이 친구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하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릅니다.”

김 위원은 자신의 연구 경험을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의 연결’에 빗대어 설명했다. 잡스는 생전 연설에서 취미로 배운 캘리그래피가 생각지도 않게 제품 디자인에 큰 도움이 됐다고 종종 이야기했다. 점점이 흩어져 있던 지식과 경험이 선으로 이어지듯 연결되면서 커다란 그림으로 통합되는 경험을 최근 연구에서 했기 때문이다.

“BMI 연구에서는 피드백이 굉장히 중요해요. 기계를 내 몸처럼 의도대로 움직이려면 기계가 느끼는 감각을 내가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기계팔이 물체를 어느 정도의 압력으로 쥐는지 내가 제대로 인식해야 원하는 만큼 힘을 줄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해마가 운동을 조절하는 데 필요한 공간적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에는 운동학습 분야에서 해마의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죠. 제게 해마와 운동학습을 모두 연구 경험이 있어서 가능한 발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해마가 운동학습에 필요한 인지 지도를 만든다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검증하는 실험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이 처음부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연구주제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박사후연구원 때만 해도 운동학습 연구를 계속할 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지 고민했다. 연구 진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실마리가 된 것은 엉뚱하게도 학부 때 익힌 전기전자공학이었다. 김 위원은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나 TMS(경두개자기자극법)를 실험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공학적인 지식을 살려 신호 해석 모델을 이리저리 뜯어고쳤다고 한다. 자연히 장비를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연구에도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학습과 기억에 대한 연구 전반을 아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점을 한 데 이어 통찰을 얻다

김성신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위원

여러 분야를 관통하는 지식의 필요성은 연구자라면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실제로 관심을 두기에는 지금 당장의 연구주제도 버거운 판에 폭넓게 신경쓰기가 쉽지 않다. 김 위원과 같은 연구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국내에서 운동학습을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뇌과학 분야에서는 아마 거의 저만 하고 있을 겁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요. 학습과 관련된 연구는 의식활동과 해마에 재미있는 연구주제가 잔뜩 있거든요. 해마와 운동학습 두 분야를 동시에 다루는 사람은 더욱 보기 힘들죠. 덕분에 몇 번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어요. 걷는 법을 배우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제 이야기가 방송에 나간 덕분에 운동도 기억이고 학습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해 큰 보람이 있었습니다.”

김 위원은 ‘기억을 향상시키는 경두개 자극 방법’이라는 기사로 화제가 되었다. 자기장으로 뇌를 직접 자극해서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였다. 그러나 사실 김 위원에게는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방법보다 운동학습과 인지학습을 관통하는 통합적인 학습이론이 더 중요한 관심사이다.

“저는 지식을 활용하는 것보다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고 모르던 사실을 규명하는 데 더 흥미를 느껴요. 물론 제가 연구하는 내용이 재활치료나 인공지능 연구에 요긴하게 사용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보다는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지금 저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치매 치료나 인공지능, 제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이야기에 큰 의의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김 위원이 연구자로서 젊은 나이에 굵직한 논문을 서로 다른 분야에서 세 개나 발표하고 나름 독보적인 위상을 얻은 원동력이 바로 이러한 호기심이다. 석사와 박사, 박사후연구원을 거치며 계속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 김위원. 그래서일까, 김 위원은 연구 경력이 쌓일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게을러지는 것이 제일 걱정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제가 직접 코딩도 하고 실험 디자인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공부할 수 있었죠. 혼자 다 하려면 알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유능한 동료 연구원들이 많아지면서 제가 현장의 연구 업무를 점점 안 하게 되고 뭔가를 배울 일도 줄어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라도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 목표가 100세까지 현역으로 연구하는 건데, 새로운 연구기법과 지식은 계속해서 쌓이니 끊임없이 배워야죠.”

김성신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위원

다양한 분야를 배우고 익힐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연결점이 보인다. 지식이 쌓일수록 점들이 늘어나고 큰 그림은 점점 정교해진다. 현재 김 위원은 사람의 운동학습과 인공지능의 기계학습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 폭넓은 시야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발견을 해 나갈 것이다.

“사람은 어린 시절에 다양한 도구를 쓰는 방법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로봇이 행동을 학습하는 과정과 참 유사해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강화학습을 하는 메커니즘이죠. 그렇다면 로봇에 사람의 운동학습 과정을 적용하면 로봇의 학습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역으로 로봇의 학습 알고리즘을 설계하면서 사람의 운동학습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든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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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12-17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