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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학, 이성으로 쓰는 시
작성자 대외협력실 등록일 2017-07-31 조회 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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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이성으로 쓰는 시

- 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 박지훈 부연구단장 -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푹푹 찌는 여름날, 포스텍에 위치한 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을 찾았다. 무더위를 뒤로 하고 들어선 박지훈 부연구단장의 연구실은 서늘하고 단출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비행기 티켓, 엽서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나, 둘 학회나 여행을 다녀오며 붙이다보니 문이 기록장이 되었다. 한 쪽 벽은 숫자와 수식이 가득한 칠판이었고 나머지 한 쪽 벽에는 수학책과 논문이 가득했다. 그 사이에 놓인 소파와 작은 협탁.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그의 공간에서 박지훈 부연구단장과 마주 앉아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10년 간 미해결이던 3차원 파노 다양체 초곡면 문제를 해결하다


▲ 박지훈 부연구단장(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이 미국수학회록에 게재한 논문 표지.
파노다양체와 관련된 10년 간 미제였던 문제를 해결해 큰 주목을 받았다.

박지훈 부연구단장은 최근 대한수학회에서 논문상을 수상했다. 대한수학회는 학회원이 3년간 발표한 논문 중 수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논문을 선정해 상을 수여하고 있다. 박 부연구단장은 2017년 미국수학회록(Memoirs of the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에 '3차원 파노(Fano) 초곡면에 관한 90년대 가설에 대한 증명'을 논문으로 발표해 다양한 파노 다양체 연구에 널리 이용될 수 있도록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0년 초반 영국의 세 수학자, Corti-Pukhlikov-Reid가 제안한 95가지 파노 초곡면에 관한 추측을 해결했습니다. 이들은 '95가지 3차원 파노 초곡면들은 일반적일 때 비유리공간이다'라는 정리를 발표하고, '모든 매끄러운 초곡면들이 비유리 공간일 것이다'라고 추측했습니다. 저는 기존의 정리에서 딱 한 단어를 바꿨습니다. '모든'으로요. 일반적으로와 모든, 두 개념 사이엔 의미차이가 크죠. 이 차이를 메우기 위해 많은 방법들을 개발하였고, 95가지 파노 초곡면들을 세세히 관찰해 새로운 정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박 부연구단장은 10여 년 동안 미해결로 남아있던 문제를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연구진과 4년에 걸친 장기간 공동연구 끝에 해결했다. '95가지의 모든 매끄러운 파노 3차원 초곡면은 비유리공간이다'라는 추측을 증명한 것이다. 박 부연구단장이 다루는 파노다양체는 대수기하학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연구 대상이다. 대수기하학은 다항식들의 해를 모아놓은 공간을 연구한다. 현재 많은 수학 분야들 중 가장 복잡하고 발달된 분야 중 하나다. 그 중심에 파노다양체가 있다. 박 부연구단장은 다양한 관점에서 파노다양체의 성질을 파악해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한다.

"대수기학학 분야 중에서도 파노 분야는 비교적 구체적인 접근이 가능합니다. 만져볼 수도 있고(은유적 표현) 계산도 할 수 있고, 서술도 가능하죠. 상대적으로 다른 대상들에 비해 구체적이에요. 각개전투 하듯 파노다양체의 성질을 탐구하고 연구하면서 격파할 수 있는 영역이죠. 이런 파노다양체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수학이란 결승점이 있는 달리기가 아니야

수학과 동고동락해온 박 부연구단장도 어렸을 때는 천문학자를 꿈꿨다. 밤하늘의 별 보는 게 너무 좋아서였다. 그러던 중 깔끔하고 간결한 수학으로 마음이 기울어 결심 끝에 수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렵게만 느껴져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4월 즘 되니 '내가 왜 이 곳에 앉아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미적분수업을 듣다 강의실 밖으로 나왔어요. 지나기던 학과 선배랑 대화를 나누게 되었죠.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비전이 안 보인다'는 말에 선배는 '열정이 있어야 비전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비전이 있어야 열정이 생긴다고 생각하니'라고 답했어요. 그 길로 '열심히 하다보면 뭔가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죠"라고 회상했다.

대수기하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미니멀 모델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쇼쿠로프 교수의 지도로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 뒤, 조지아 대학에서 대수기하학의 대가인 알렉셰프 교수를 멘토 삼아 연구를 이어갔다. 언제 졸업할지 몰라 불안하고 막막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7년 간 미국에서 파노 다양체를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보냈다.

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의 부연구단장을 맡은 그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유로운 사고'이기 때문이다.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 탐구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모든 영감이 책상에서만 나오지 않는다고 믿는다. 늘 문제 해결법을 생각하다보니 뇌 한구석에 물음표가 남아있다 해결의 실마리는 불쑥 다가온다.

"수학이란 결승점이 있는 달리기가 아니에요. 수학자들은 상당히 자유로운 사고체계를 갖고 있어요. 유연한 사고에서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나오곤 합니다. 고통스러울 때도 많아요. 항상 물음표가 따라다니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 퀀텀점프가 생기면 한 순간에 논문을 쓰기도 하는 게 수학 분야에요."

박 부연구단장은 포스텍 수학과 교수로 후학양성에도 힘을 쓰고 있다.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학생들에게 그가 전하는 말이 있다. '넓게 파야 깊게 팔 수 있다. 좁게 파면 깊게 팔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어느 연사가 했던 말인데 아주 인상 깊게 들었어요. 다양한 분야를 접해야 자신의 영역에만 빠지지 않고 외연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다른 학문과의 접점을 찾을 지도 모르죠. 다른 학문에도 관심을 두면 자신의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 박 부연구단장은 수학자들에게는 자유로운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젊은 연구자들이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오래오래, 자유롭게 수학 연구하고파

최근 옥스퍼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힘든 직업 1위로 수학자를 꼽았다. 수학 학술지에 실릴 만큼 중요한 수학 문제를 푸는데 걸리는 시간을 43.4년으로 예측한 것이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의 향상과 인공지능의 등장을 수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인공지능이 수학을 한다는 건, 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할 거 같아요. 인간 고유의 사고체계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수학자들을 대체하기란 힘들 거라 생각이 듭니다. 컴퓨터가 수학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학계 내 정보 공유가 빨라졌다는 거예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하면 이미 등재된 논문인 경우가 왕왕 있었어요. 직접 만나거나 서신 혹은 논문을 받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정보 공유가 잘 이뤄지죠. 계산 영역에서는 자신의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으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의 도래 등 시대적 흐름과 별개로 박 부연구단장은 수학의 대중적 역할로 '사고하는 법'을 얘기했다. 어떤 문제를 두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수학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예를 들어 질문했다. "1부터 10까지 적혀진 숫자, 100장이 있어요. 계산기, 컴퓨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모든 합을 도출하겠어요?" 같은 숫자별로 분류하여 합하는 방법을 답했다. 이어 "만약, 10자리의 숫자들이 적힌 100장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추가 질문을 던졌다. 10장씩 묶어서 각각 계산한 다음 모두 합하는 방법으로 계산하겠다고 답했다.


▲ 박 부연구단장의 꿈은 애증의 동반자, 수학을 오랫동안 연구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할 경우, 수학적인 사고체계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위의 질문도 수학적인 훈련이 없었다면, 차례차례 아무 체계 없이 더하는 방법을 말했을 수도 있죠. 모든 대중들이 수학을 사랑하고,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학자들이 수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면 되죠. 다만 합리적인 사고 능력이 어려서부터 수학을 통해 길러졌다는 점을 인지했으면 합니다."

박연구단장은 다음과 같이 수학을 소개했다. "시는 감성으로 써 내려가는 수학이고, 수학은 이성으로 써 내려가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에 목적어를 써넣지 못한 것은 써 내려가는 대상들이 경계가 없는 일종의 열린 집합에 속해 있어 무엇이라 완벽하게 특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써 내려가는' 행위조차도 묘사, 기술 등 여러 동사를 고민하다 가장 넓은 느낌을 주는 동사를 고른 것입니다."

수학을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는지 애정이 묻어나는 소개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연구자로서의 꿈을 물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수학이란 저에게 애증의 관계이자 동반자에요. 연애랑 비슷한 거 같아요. 좋을 때도 있지만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요. 즐거울 때도 있고, 답이 잘 맞아 떨어져 희열을 느낄 때도 있고요. 하지만 막다른 길에 들어서면 왜 안 되는지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고, 쟤는 왜 날 미워할까 생각도 하죠(하하). 저의 동반자 오래오래 곁에 두고 보고 싶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

IBS 대외협력실 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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