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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어떻게 시간을 인지하는가, 생체시계의 비밀

식물은 어떻게 시간을 인지할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300년 전인 1729년 프랑스 천문학자 장-자크 도르투 드 메랑은 낮에는 잎을 펼치고 밤에는 접는 미모사를 대상으로 쓸데없어 보이는 실험을 했다. 즉 미모사를 하루 종일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 둘 경우 잎의 움직임이 어떻게 될지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

빛이 있을 때 광합성 효율을 높이려고 잎을 활짝 펼친 것일 테니 컴컴한 곳에 두면 보나 마나 잎을 접은 채 빛이 다시 비추기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모사는 어둠 속에서도 이전 낮에 해당하는 시간대에는 잎을 펼치고 밤 시간이 되면 접는 패턴을 한동안 지속했다.

외부 환경변화, 즉 지구 자전으로 인한 낮과 밤의 교차가 없어도 식물은 하루 24시간 주기로 생리활성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드 메랑은 식물의 내부에 하루 주기의 리듬, 즉 일주리듬(circadian rhythm)을 관장하는 생체시계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 1729년 장-자크 도르투 드 메랑은 낮에는 잎을 펼치고 밤에는 접는 미모사를 하루 종일 어둠 속에 두어도 이전 낮에 해당하는 시간대에는 잎을 펼치고 밤 시간이 되면 접는 패턴을 한동안 지속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드 메랑은 식물의 내부에 일주리듬을 관장하는 생체시계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제공 노벨재단)

초파리 생체시계 돌연변이 만들어

이로부터 242년이 지난 1971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는 생체시계가 고장 난 초파리 돌연변이체를 보고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칼텍의 시모어 벤저 교수와 대학원생 로널드 코놉카는 DNA를 손상시키는 약물을 처리해 얻은 돌연변이 초파리 수천 마리에서 내부 생체시계가 고장 난 세 종류의 초파리를 발견했다. 하나는 생체시계가 완전히 망가졌고 하나는 하루의 주기가 19시간으로 짧아졌고 나머지 하나는 28시간으로 길어졌다.


▲ 1971년 미국 칼텍의 시모어 벤저 교수(왼쪽)과 대학원생 로널드 코놉카(오른쪽)는 우화(羽化. 고치에서 성충이 나오는 과정) 주기를 상실한 초파리 돌연변이체 세 종을 보고해 현대 생체시계 연구의 문을 열었다. 벤저는 2007년 86세에, 코놉카는 2015년 68세에 세상을 떠났다.
(제공 Harris WA & '셀')

이들은 염색체 지도 분석을 통해 셋 모두 동일한 유전자가 고장 난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이 유전자를 '피리어드(period. 이하 per)'라고 불렀다. 덧붙여 생체시계가 망가진 건 유전자 중간이 종결코돈으로 바뀌어 해당 단백질이 토막 나 기능을 잃은 결과이고, 주기가 짧아지거나 길어진 건 중간에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뀌면서 단백질 활성이 바뀐 결과라고 추측했다.

13년이 지난 1984년 미국 브랜다이스대의 제프리 홀 교수와 마이클 로스바쉬 교수 공동연구팀과 록펠러대 마이클 영 교수팀이 각각 독립적으로 per 유전자 사냥에 성공했다. 영 교수팀은 1987년 세 종의 돌연변이체 각각에서 per 유전자의 어디가 고장이 났는가를 밝혀냈는데, 벤저와 코놉카가 1971년 논문에서 예상한 그대로였다.

1997년 생쥐와 사람에서도 초파리의 per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7억 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무척추동물과 척추동물이 생체시계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편, 1994년 하루 28시간 주기를 보이는 돌연변이 생쥐가 나왔다. 하루 주기의 변화는 클럭(Clock) 이라는 유전자가 고장나 생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엔 거꾸로 초파리에서 해당 유전자를 찾았다.

21세기 게놈시대를 맞아 생체시계 유전자 연구도 급진전했고 이제 생체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완성됐다. 포유류의 경우 CLOCK 단백질과 BMAL1이라는 단백질이 짝을 이루어 Per과 Cry라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고 만들어진 Per1과 Cry 단백질이 다시 CLOCK과 BMAL1의 단백질을 조절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24시간을 인지하는 생체 리듬을 만들어낸다. 즉 전자가 후자를 촉친하고(positive effect) 후자가 전자를 억제하는(negative effect) 촉진-억제 회로(positive-negative feedback)다. 그리고 포유류에서는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시신경교차상핵(SCN)에서 일주리듬을 관장하여 다른 기관들의 생체 리듬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체시계 연구가들의 반세기 가까운 노력은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었다. 즉 1984년 per 유전자를 규명한 세 사람이 상을 받았다. 현대 생체시계 연구의 문을 연 벤저와 코놉카는 안타깝게도 각각 2007년과 2015년 세상을 떠났다.

식물 생체시계가 더 복잡

생체시계의 존재를 가장 먼저 드러낸 식물 역시 비슷한 시기에 관련 유전자들이 여럿 발견됐고 동물과 비슷한 생체시계 회로 모델이 제시됐다. 대표적으로 생체 시계에 관여하는 유전자 3인방인 TOC1, CCA1, LHY의 모델이다. 아침에 유전자의 발현이 왕성한 CCA1과 LHY가 한 쌍이고 저녁에 발현이 왕성한 TOC1이 핵심으로, 전자가 후자를 억제하고 후자가 전자를 촉진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2년 TOC1 역시 CCA1과 LHY를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개의 유전자 사이의 네트워크는 억제-억제 회로인 셈인데, 연구 결과 실제 위의 3인방 외에도 많은 유전자들이 생체시계에 관여해 24시간의 리듬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식물은 이동성이 없기 때문에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고 따라서 생체시계도 더 정교하게 조절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동물(생쥐)과 식물(애기장대)의 생체시계 회로 모형이다. 생쥐 생체시계는 PER 단백질과 CRY 단백질이 CLOCK 단백질과 BMAL1 단백질을 억제하고 후자는 전자를 촉진하는 '음성 양성 피드백'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왼쪽). 반면 애기장대 생체시계는 꽤 복잡한데, CCA1과 LHY 쌍과 TOC1이 서로를 억제한다. 그림 오른쪽 아래를 보면 자이겐티아(GI)가 ZTL을 도와 TOC1을 분해하는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제공 '유럽생리학저널' & '식물과학경향')

쌍떡잎식물의 모델인 애기장대의 경우 전체 유전자의 3분의 1 정도가 생체시계의 영향을 받아 발현이 일주리듬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식물은 생체시계 조절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환경의 변화에 맞춰 효율적으로 살아간다. 예를 들어 광합성 관련 유전자는 낮에 발현하는 주기를 보이게 설정돼 있어야 효율적일 것이다. 실제로도 정오 무렵에 전사물이 정점을 친다. 반면 세포벽 생합성 관련 유전자들은 밤에 발현한다.


▲ 유전자가 고장 나 생체시계 주기가 바뀌더라도 외부환경을 맞추면 잘 자랄 수 있다. 주기가 짧아진 애기장대 변이체(toc1-2)와 길어진 변이체(ztl-27)를 하루가 20시간(낮과 밤이 각각 10시간)인 조건에 두면 toc1-2가 더 잘 자라지만 28시간(낮과 밤이 각각 14시간)에서는 ztl-27이 더 잘 자란다.
(제공 '사이언스')

지난 2005년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식물의 내재적 생체시계가 지구 자전으로 인한 밤낮의 주기에 대한 적응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애기장대를 하루가 20시간으로 4시간 짧아진 환경과 28시간으로 4시간 길어진 환경에 두자 24시간일 때에 비해 단위 면적 당 엽록소의 양이 적었다. 한편 CCA1 유전자가 지나치게 발현해 생체시계가 작동하지 않는 돌연변이 애기장대도 정상에 비해 엽록소가 적었다.

그 결과 32일이 지난 시점에서 하루 20시간에서 키운 애기장대의 땅 위 생체량은 24시간에서 키운 개체에 비해 47%나 줄었고 28시간에서 키운 경우도 42%가 줄었다. 리듬이 없는 CCA1 과발현 개체는 하루 24시간 환경에서 키워도 53%나 줄었다.

해바라기 꽃은 해바라기를 하지 않지만...

한편 돌연변이로 생체시계 주기가 바뀌더라도 외부환경이 해당 주기에 맞춰 바뀌면 잘 자랄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이틀루프(ZTL) 유전자가 고장 난 변이체는 생체시계 주기가 길어지는데, 식물에게 28시간으로 더 길어진 하루 환경을 만들어주면, 하루가 20시간일 때보다 엽록소를 더 많이 만든다. 반면 TOC1 유전자가 고장 난 변이체는 주기가 짧아지는데, 반대로 하루가 28시간일 때보다 20시간일 때에 더 잘 자란다.

지난 2016년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연구자들은 해바라기의 줄기 끝이 태양 빛을 향해 자라나는 향일성에도 생체시계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줄기의 축이 해를 향해야 보통 줄기와 수직 방향인 잎에서 단면적 당 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식물은 성장호르몬인 옥신을 이용한다. 즉 낮에는 줄기 동쪽에 옥신이 몰려 세포분열이 많이 일어나 서쪽보다 성장이 빨라 줄기가 점차 서쪽을 향하게 된다. 밤에는 줄기 서쪽의 옥신 농도가 높아 줄기가 다시 동쪽으로 향하게 된다. 양쪽 다리를 번갈아 내디디며 사다리를 오르듯 해바라기 줄기는 동서로 방향으로 바꿔가며 키가 커지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밤에도 옥신 농도가 재배치된다는 사실에 착안해 식물의 향일성이 햇빛이 아니라 생체시계에 의해 조절된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하루가 30시간인 조건에서 해바라기를 키웠다. 관찰 결과, 예상대로 줄기의 향일성이 무너져 옥신이 재배치되지 못하고 해바라기 꽃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 해바라기는 꽃이 피기 전까지 성장할 때 줄기 끝이 동서로 해바라기를 한다. 즉 해 질 무렵에는 서쪽을 향하고(왼쪽) 자정에는 바로 서 있고(가운데) 해 뜰 무렵에는 동쪽을 향한다(오른쪽). 여기에는 식물체의 생체시계가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공 '사이언스')

생체시계와 개화시기 조절하는 자이겐티아

식물의 생체시계는 단순히 하루 주기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계절에 따른 낮의 길이 변화도 감지해 적절하게 대응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개화시기 조절이다. 식물마다 정해진 시기에 꽃이 피는 걸 보면 이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꽤 정교함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애기장대는 해가 길어지는 시기에 꽃을 피우는 장일식물이고, 벼는 해가 짧아지는 걸 감지해 꽃이 피는 단일식물이다.

동물 생체시계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과학자의 이름이 눈에 띄지 않지만 식물 생체시계 분야에서는 많은 국내 과학자들이 활약하고 있고 특히 개화와 관련해서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 남홍길 단장(DGIST 뉴바이올로지과 석좌교수)은 이 분야의 '거인'이다.

대가(大家)라는 적절한 단어를 놔두고 다소 어색한 거인(巨人)이라는 표현을 쓴 건 남 단장이 일주리듬과 광(光)주기성에 따른 개화시기를 조절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 '자이겐티아(Gigantea)'를 규명했기 때문이다. 남 단장은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9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 결과를 담은 논문을 실었는데 지금까지 540여 회 인용됐다.

앞서 초파리의 피리어드 유전자처럼 자이겐티아 유전자 역시 이미 존재한 변이체 식물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다. 즉 1960년대 한 돌연변이 애기장대에 '거대하다'는 뜻의 라틴어 이름을 붙였다. 1970년대 x-선을 쪼여 얻은 애기장대 돌연변이체들 중, 꽃이 늦게 피는 바람에 덩치가 커진 두 개체가 같은 염색체 자리에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밝혀져 각각 gi-1과 gi-2로 명명했다.

남 교수팀은 두 변이체의 염색체를 분석해 유전자의 실체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자이겐티아(이하 GI) 유전자는 아미노산 1173개인 커다란 단백질을 지정하고 있는데, 동물이나 미생물에는 이와 비슷한 유전자가 없다. 즉 식물에 특화된 유전자라는 말이다. 변이체 분석 결과 gi-1은 아미노산 171개가 소실된 GI 단백질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고, gi-2에서는 불과 158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단백질 조각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gi-1에서는 단백질 기능이 불완전할 것이고 gi-2에서는 아예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다.

연구자들은 GI 유전자의 기능을 추측하기 위해 GI 유전자가 고장 난 변이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결과 GI는 생체시계 핵심 유전자인 CCA1과 LHY의 발현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핵심 유전자의 변화는 생체시계 표현형 중 하나인 잎 움직임의 주기를 확인했을 때 야생형이 25.2 시간을 가지는 반면에 gi-1과 gi-2에서는 각각 22.4시간과 21.1시간의 주기를 가지는 것을 확인했다.

GI 유전자의 실체가 밝혀지자 많은 연구자들이 기능을 규명하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GI가 식물 유전자 네트워크에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개화조절의 경우 GI 단백질은 FKF1 단백질과 팀을 이뤄 개화유전자 콘스탄스(CO)의 발현을 막고 있는 CDF1 단백질을 파괴한다. 그 결과 CO 유전자가 발현해 꽃이 핀다. FKF1은 파란빛을 인지하는 단백질로 GI 단백질과 FKF1 단백질이 팀을 이루기 위해서는 파란빛이 필요하다. gi-1이나 gi-2에서 꽃이 늦게 피는 이유도 GI 단백질이 부실하거나 기능을 못해 CO 유전자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 자이겐티아(GI) 유전자에서 각 돌연변이체들의 DNA 손상이 일어난 부위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1999년 남홍길 교수팀은 gi-1에서는 4327~4331번째 염기가 소실됐고 gi-2에서는 670~677번째 염기가 소실돼 생체시계와 개화시기가 제대로 조절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얇은 선은 프로모터와 인트론이고 굵은 선은 엑손이다.
(제공 '식물과학경계')

대가(大家)라는 적절한 단어를 놔두고 다소 어색한 거인(巨人)이라는 표현을 쓴 건 남 단장이 일주리듬과 광(光)주기성에 따른 개화시기를 조절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 '자이겐티아(Gigantea)'를 규명했기 때문이다. 남 단장은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9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 결과를 담은 논문을 실었는데 지금까지 540여 회 인용됐다.

앞서 초파리의 피리어드 유전자처럼 자이겐티아 유전자 역시 이미 존재한 변이체 식물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다. 즉 1960년대 한 돌연변이 애기장대에 '거대하다'는 뜻의 라틴어 이름을 붙였다. 1970년대 x-선을 쪼여 얻은 애기장대 돌연변이체들 중, 꽃이 늦게 피는 바람에 덩치가 커진 두 개체가 같은 염색체 자리에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밝혀져 각각 gi-1과 gi-2로 명명했다.

남 교수팀은 두 변이체의 염색체를 분석해 유전자의 실체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자이겐티아(이하 GI) 유전자는 아미노산 1173개인 커다란 단백질을 지정하고 있는데, 동물이나 미생물에는 이와 비슷한 유전자가 없다. 즉 식물에 특화된 유전자라는 말이다. 변이체 분석 결과 gi-1은 아미노산 171개가 소실된 GI 단백질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고, gi-2에서는 불과 158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단백질 조각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gi-1에서는 단백질 기능이 불완전할 것이고 gi-2에서는 아예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다.

연구자들은 GI 유전자의 기능을 추측하기 위해 GI 유전자가 고장 난 변이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결과 GI는 생체시계 핵심 유전자인 CCA1과 LHY의 발현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핵심 유전자의 변화는 생체시계 표현형 중 하나인 잎 움직임의 주기를 확인했을 때 야생형이 25.2 시간을 가지는 반면에 gi-1과 gi-2에서는 각각 22.4시간과 21.1시간의 주기를 가지는 것을 확인했다.

GI 유전자의 실체가 밝혀지자 많은 연구자들이 기능을 규명하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GI가 식물 유전자 네트워크에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개화조절의 경우 GI 단백질은 FKF1 단백질과 팀을 이뤄 개화유전자 콘스탄스(CO)의 발현을 막고 있는 CDF1 단백질을 파괴한다. 그 결과 CO 유전자가 발현해 꽃이 핀다. FKF1은 파란빛을 인지하는 단백질로 GI 단백질과 FKF1 단백질이 팀을 이루기 위해서는 파란빛이 필요하다. gi-1이나 gi-2에서 꽃이 늦게 피는 이유도 GI 단백질이 부실하거나 기능을 못해 CO 유전자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포핵에 있을 때와 세포질에 있을 때 역할 달라

지난 2013년 3월 남 교수팀은 GI 단백질이 특이한 행태를 보이는 이유를 알아내 학술지 '셀 리포츠'에 발표했다. GI 단백질은 낮에는 세포핵에 골고루 퍼져 있지만 밤에는 뭉쳐 핵체(nuclear body)를 이루고 있다. 연구자들은 밤에 많이 발현되는 엘프4(ELF4) 단백질이 관여해 GI 단백질을 핵체로 모아 CO 유전자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한다고 설명했다. 즉 GI 단백질이 모이고 흩어지는 현상을 통해 CO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해 결국 개화를 조절하는 것이다.

넉 달이 지난 2013년 7월 남 교수팀은 식물의 세포가 불안정한 외부환경(빛)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하는 생체 회로를 밝혀 학술지 '디벨로프멘털 셀'에 발표했다. 세포내 신호 조절 회로를 규명한 것인데, 자이겐티아(GI)가 세포핵과 세포질 2곳에 각각 존재하며 서로 반대되는 조절신호를 보내 생체 회로의 안정성을 유도하는 특별한 정보처리 기전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핵에 있는 GI는 LHY를 활성화시키고, 세포질에 있는 GI는 LHY의 활성을 억제하는 것을 관찰한 것이다. 또한 핵과 세포질 자이겐티아가 구성하는 조절 회로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오는 신호가 불안정하더라도 식물 세포가 외부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강건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핵에 있는 단백질 자이겐티아는 개화 시기 조절과 식물 초기 생장에, 세포질에 있는 단백질 자이겐티아는 식물 초기 생장과 생체시계 조절에 관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동안 식물의 세포 분자네트워크는 단백질의 세포 내 분포 정보는 고려되지 않은 채 연구되어 왔다. 이에 연구진은 세포 내 분자네트워크가 단백질들의 세포 내 분포를 이용해 구성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생체로 들어오는 신호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식물 생체시계 사례로 증명하였다.

GI는 생체시계나 개화시기를 조절할 뿐 아니라 녹말 저장, 스트레스(가뭄, 염분, 저온) 대응 등 다양한 생리활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GI는 식물의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을 것이다. 앞으로 GI의 어떤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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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