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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 세계로의 초대, 나노 사이언스

- 작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나노, 그 특별한 이야기 -

나노(nano)는 단위 규모를 나타내는 접두어로 그리스어의 '난쟁이(nanos)'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1나노 미터는 1nm라 쓰고 10억 분의 1m를 나타낸다. 1천 분의 1m가 1mm인데, 그것을 다시 백만 번 쪼갠 것 중의 하나인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의 크기를 나타날 때 자주 비유하는 머리카락 굵기에 비교하자면, 머리카락 굵기의 약 5~10만 분의 1에 해당한다. 원자 하나가 보통 0.2 nm정도라고 하니 원자 5개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이러나저러나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세밀한 미시 세계의 단위라고 할 수 있다.


▲ 나노 크기의 것들. 1㎛(마이크로미터)는 1백만분의 1 미터다. 즉 1,000 nm이다.(출처.www.cnbp.org.au)

나노 과학은 나노미터 급(대략 1nm~100nm)크기의 물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마디로 나노 크기를 다루는 모든 분야를 광범위하게 포함한다. 나노 기술은 다른 기술과 융합하면 더욱 큰 시너지를 일으킨다.


▲ 나노의 세계에 대해 처음 이야기했던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출처. 위키미디어)

'나노'라는 숨 막히도록 작은 세계에 대해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그 유명한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다. 그는 1959년 미국물리학회 주최로 열린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강연회에서 "There'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제목은 '저 밑바닥에 아주 풍부한 공간이 있다'로 직역되기도 하고, '극소공학 분야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라고 의역되기도 한다. 이 강연에서 그는 당시 세상 거의 모든 지식을 담고 있다고 여겨졌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4권 한 질을 폭 1.6mm에 불과한 핀 머리에 새겨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아주 작은 의료용 기계를 만들어 혈관 속에 넣으면 그 기계가 혈관 속을 이리 저리 다니며 병을 치료하는 세상이 올 것이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원자를 마음대로 배열하여 물질을 합성하는 기술이 도래할 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중의 반응은? "농담도 잘 하시네요~"였다.

그러나 그의 농담은 곧 예언이 되었다. 그 예언은 이미 이루어진 것도 있고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나노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크기만 작아져도 완전히 달라지는 성질

그렇다면 나노라는 것은 왜 그렇게 특별할까? 물질이 나노 크기로 작아지면 물질의 광학적 성질(색깔), 자기적 성질, 전기적 성질, 녹는점, 촉매 활성도 등, 그야말로 거의 모든 성질이 변하고, 산업적으로 매우 유용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을 예로 들어보자. 금덩어리는 그야말로 황금색으로 번쩍이지만 나노 단위로 작게 잘라놓으면 색깔이 다채롭게 바뀐다. 7nm의 금 입자는 빨간색을, 5nm의 금 입자는 초록색을, 3nm의 금 입자는 파란색을 띈다. 모 전자업체의 TV 광고에 등장하는 퀀텀닷(양자점)이라는 것은 이처럼 나노 단위의 크기가 되었을 때 그 크기에 따라 다양한 색을 띄는 물질의 성질의 이용한 것이다. 퀀텀닷은 입자 크기에 따라 다른 색깔의 빛을 띄는 나노 반도체 형광물질을 가리킨다.


▲ 금 나노 입자는 크기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띤다 (출처. 위키미디어)

녹는점도 변한다. 금덩어리는 1,063℃에서 녹지만 7nm의 금 입자는 1,000℃에서, 2nm 금 입자는 겨우 27℃면 녹는다. 자기적 성질이 변하기도 한다. 산화철을 나노 미터 단위로 작게 만들면 평소엔 자성이 없다가 외부 자기장을 가하면 자성을 띠는 초상자성 물질이 된다. 나노 물질의 자기적 성질은 MRI나 CT 촬영의 조영제 개발에도 활용된다.

기초과학연구원(Institute for Basic Science, IBS) 나노입자 연구단은 얼마 전 서울대, 국민대 연구진과 함께 나노물질을 활용해 조영제 뿐만 아니라 상처부위를 완벽하게 봉합할 수 있는 접착제 역할까지 동시에 하는 물질을 개발하기도 했다.

어떤 나노 물질은 특수한 파장 대의 빛을 흡수하는데,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기도 한다. 근적외선만 흡수하는 금나노 물질에 암세포에만 붙는 항체를 처리하여 암환자 몸에 넣은 후 근적외선 레이저 광선을 쏘이는 방법이다. 암환자의 몸 속에서 암세포와 결합된 금 나노 물질은 근적외선을 흡수하여 열이 나고, 그 열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킨다.

나노물질은 비교적 고온에서 초전도성을 띄기도 한다. 초전도성은 전기 저항이 0인 성질로, 이런 물질로 전선을 만들면 에너지 손실 없이 전기를 흘려보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6천억 원이 넘는 송전 손실 비용이 발생 하는데, 최근 나노 기술을 이용하여 그 손실을 1/10까지 줄일 수 있는 초전도 송전선이 개발됐다.

나노 물질은 촉매1)로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 낸다.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나노 촉매 물질은 이산화티타늄(TiO2)이다. 이산화티타늄을 나노 크기로 만들면, 빛을 받아 다양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광촉매'가 된다. 나노 이산화티타늄은 빛과 물을 만나면 공기 중의 먼지, 유해물질이나 때에 들어 있는 유기 분자를 분해한 후 그것을 다시 공기 중에 날려 보낸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여 비만 맞아도 깨끗해지는 건물 코팅제, 절대 더러워지지 않는 창문, 자동차 유리, 타일, 도로포장, 커튼, 벽지, 공기청정기 등이 개발되고 있다.

제올라이트도 쓰임새가 다양한 나노 물질이다. 제올라이트는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고체 물질인데 이 구멍을 체처럼 이용해 독성물질이나 오염 물질을 거르는 데 쓰인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원유에서 원하는 성분만을 추출하고 납과 같은 중금속을 제거하여 휘발유를 정제하기도 한다. 촉매로도 활용된다. 제올라이트의 나노 구멍보다 크기가 작은 분자만 반응을 일어나게 하거나 배출되게 하는 원리다.

나노가 특별한 근본적인 이유

그렇다면 '나노', 즉 크기가 극도로 작아진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이러한 다양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나노 입자는 표면 원자가 내부 원자보다 훨씬 많은 특이한 구조라는 데서 온다.
먼저 아래 그림을 한 번 보자.

정육면체 상자를 한 개 달랑 놓아두었을 때 이 상자는 전체가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가로×세로×높이에 각각 두 개씩의 상자를 쌓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로×세로×높이에 각각 세 개의 상자를 쌓으면 맨 내부에 있는 상자 하나는 외부에서 전혀 볼 수 없다. 네 개 씩을 쌓으면? 8개의 상자가 안 보이고, 56개의 상자가 보인다. 한 변을 이루는 상자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보이지 않는 상자의 개수가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변에 총 10개 씩의 상자를 쌓으면? 1000개의 상자를 쌓을 수 있고 이 중 488개가 표면 상자, 512개가 내부 상자다.2) 표면 상자의 비율이 반 이하인 것이다.

이번엔 상자를 원자로 생각해 보자. 원자는 물론 정육면체는 아니지만 상자를 쌓는 것처럼 3차원 구조를 이루며 다른 원자들과 빽빽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원자는 표면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 내부에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의 에너지가 서로 다르다.

수많은 원자가 층층이 쌓여 연결되어 있는 일반적인 물질은 내부 원자의 비율이 훨씬 크고 표면 원자의 비율은 매우 작다. 결국 표면 원자의 에너지는 무시되고 내부 원자 에너지에 의해 물질의 성질이 결정된다. 하지만 물질이 나노 크기로 작아지면? 표면 원자의 비율이 매우 커져서 그 에너지는 결코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큰 덩어리 상태였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갖가지 성질, 즉 앞에서 말한 새로운 색깔, 녹는점, 흡수하는 빛의 파장, 자기적 성질, 전기적 성질 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노 세계는 적용되는 물리법칙도 다르다. 뉴턴의 중력의 법칙이 대표하는 고전적인 물리학 대신 양자 물리학으로만 설명되는 세계이다.3)

차세대 컴퓨터 개발의 열쇠는 나노 기술

나노 과학이 특별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컴퓨터 등 첨단 기기의 부품이 되는 반도체는 그간 무어의 법칙4)을 충실히 지키며 빠르게 성장했지만 최근 그 한계에 부딪쳤다. 반도체는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들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더 빠른 계산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들어 고도로 집적하는 데도 한계에 부딪쳤다. 실리콘 기반의 기판에 회로를 너무 가늘고 촘촘히 그리다보니 자유 전자에 의해 간섭을 받기도 하고, 기판의 온도가 높아져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5) 앞으로 인공지능이나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차세대 IT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빠르고 큰 용량의 반도체 개발이 반드시 필요한데, 큰 위기를 맞은 셈이다.

과학자들은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들을 나노 과학에서 찾고 있다. 먼저 기판 위에 세밀하게 회로를 새기는 나노 단위의 기술이 점점 진보하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몇몇 전자업체들이 나노 기술을 이용해 손톱만한 크기의 칩에 300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IBS 강상관계물질 연구단과 부경대 공동연구진은 강유전체 물질인 티탄산바륨(BaTiO3)으로 1.4nm 두께의 초박막을 만들어냈다. 강유전체란 외부의 자기장에 의해 한 번 분극이 일어나면 그대로 유지되는 물질을 말한다. 이런 물질로 메모리를 만들면 전류를 흘렸다가 끊어도 저장된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고성능의 메모리를 만들 수 있다. 실리콘 기반의 기존 소자보다 훨씬 더 작으면서도 고성능의 소자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 두 개의 홀뮴 원자가 만드는 네 가지 자기적 상태. 철 원자가 센서 역할을 해 홀뮴의 상태를 읽을 수 있다.

원자 하나로 디지털 신호의 최소 단위인 1비트를 나타내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원자는 내부에 있는 전자의 움직임에 따라 위(up)나 아래(down) 방향 중 하나의 스핀6)을 갖는다. 얼마 전 세계적인 컴퓨터 제조업체 IBM은 홀뮴(H0) 원자의 스핀을 이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작은 메모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홀뮴원자 스핀의 방향을 원하는 대로 정하는 데는 주사터널링 현미경을, 스핀의 방향을 읽는 데는 철 원자 한 개를 사용하였다. 이 연구의 공동 교신저자인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단장이 이끄는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이 후속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 그 성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둘 이상의 물질 사이의 화학 반응이 활발해지도록 돕는 물질을 촉매라고 한다.

2) 표면 상자의 개수=총 상자 개수-내부 상자. 내부 상자의 개수는 (각 변의 상자 개수-2)3다. 즉 가로, 세로, 높이에 10개씩 상자를 쌓을 때 표면 상자 개수는 1000-8×8×8=1000-512=488이다.

3) 그 대척점, 즉 행성처럼 너무 큰 물질들의 세계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적용된다.

4) 인텔의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가 1965년,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18개월 마다 2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한 말이다.

5) 인텔,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현재 기술로는 선폭 5나노미터(1㎚=10억분의1m)를 최소 소자의 한계로 보고 있다.

6)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가 원자 내부에서 만드는 자성으로 인해 원자 외부에 생긴 자기장으로 위(up) 혹은 아래(down)의 방향성을 갖는다. 이는 디지털신호 '0'과 '1'로 대체가능해 이로써 1비트를 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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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11-15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