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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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의 미래를 꿈꾸다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의 그룹리더 이효철 KAIST 화학과 교수

화학결합의 처음과 끝을 봤다

‘네이처’ 표지에 나왔다면? 이효철 그룹리더가 ‘네이처’에 발표한 이번 연구성과를 표지로 구성해본 그림을 배경에 두고 “하나의 성과가 ‘네이처’ 표지에 등장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 ‘네이처’ 표지에 나왔다면? 이효철 그룹리더가 ‘네이처’에 발표한 이번 연구성과를 표지로 구성해본 그림을 배경에 두고 “하나의 성과가 ‘네이처’ 표지에 등장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1조분의 1초, 분자 탄생 순간 눈으로 봤다”, “국내 연구진이 슬로우비디오처럼 찍어 화학결합 과정 밝혀내”, “분자 탄생 ‘1천조분의 1초 화학결합’ 순간 실시간 관측”, “1000조분의 1초 관측 성공, 국내 연구진이 최초 관측 쾌거”….

최근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의 이효철 그룹리더(KAIST 화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원자들이 만나 분자를 이루는 화학결합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해 화제가 됐다. 이 연구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저널 ‘네이처’ 2월 18일자에 게재됐다.

KAIST 화학과에 있는 IBS 연구단에서 이효철 그룹리더를 만나, 연구팀이 분자 탄생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었던 비결,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연구성과를 거두어 ‘네이처’에 발표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 연구성과의 의미 등에 대해 들어봤다.

분자 결합 깨지는 과정 담은 ‘사이언스’ 발표 10년 후

화학결합의 처음과 끝을 밝혀내는 데 성공한 이효철 그룹리더는 “화학결합이 깨지는 과정보다 화학결합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기가 더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 화학결합의 처음과 끝을 밝혀내는 데 성공한 이효철 그룹리더는 “화학결합이 깨지는 과정보다 화학결합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기가 더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화학반응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는 이효철 그룹리더 연구팀은 물리화학적 관점에서 물질이 변환될 때 실제로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를 매우 자세히 알아내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화학결합이 생성되고 끊어지는 과정이 원자 수준에서 벌어지는데, 원자는 매우 작고 그 과정이 매우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보기 힘듭니다. 이 두 가지를 극복해야 하죠.”

먼저 빠른 것을 보기 위해 과학자들은 소위 ‘들뜸 탐색 방법’을 사용해 왔다. 이효철 그룹리더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비유를 들었다. 물에서 일어나는 어떤 파동을 보고 싶다면, 돌을 던져서 생긴 파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펴본다. 이때 돌을 던져 첨벙하는 순간이 뭔가 들뜨게 만드는 것이고, 예를 들어 시간에 따라 사진을 찍는 것이 탐색에 해당한다.

또 원자 크기가 0.1nm(나노미터, 1nm=10억 분의 1m) 정도로 작기 때문에, 원자들이 이루는 화학결합의 구조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볼 수가 없다. 보통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은 가시광선인데, 그 파장이 400~700nm이라 한계가 있다. 이는 마치 눈금 간격이 1cm인 자로 0.001mm 크기의 진드기의 생김새를 알려고 하면 불가능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효철 그룹리더는 “그래서 작은 원자 단위의 생김새를 알아내기 위해, 파장이 0.1nm 정도로 짧은 X선을 이용한 것”이라며 “구체적으로는 단백질 결정의 3차원 구조를 파악할 때처럼 X선 회절 방법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X선은 물질에 입사시킬 때 각각의 원자로부터 산란되고 이 산란파가 서로 간섭을 일으켜 특정한 패턴이 나오는데, 이를 X선 회절이라고 한다. X선 회절 패턴을 분석하면 분자의 3차원 구조를 알 수 있다.

2005년 이효철 그룹리더 연구팀은 X선 회절법을 이용해 용액에서 분자 결합이 끊어지는 과정을 관찰하는 데 성공한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 분자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X선 회절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새로운 것이었으며, 더구나 결정처럼 규칙적 구조가 아닌 용액에서 화학반응의 분자 구조를 추적했다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들뜸 탐색 방법의 시간 분해능이 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에서 나노초(10억분의 1초), 피코초(1조분의 1초), 펨토초(1000조분의 1초)로 점점 발전해 왔다”며 “2005년 ‘사이언스’ 성과를 관찰할 때는 시간 분해능이 0.1나노초였다”고 밝혔다. 당시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X선을 이용했는데, 그 X선 펄스의 폭이 0.1나노초였기 때문이다. 이를 카메라의 셔터 스피드에 비유한다면, 0.1나노초 이내에서 변해 버리는 현상은 파악하지 못하는 셈이다.

‘네이처’ 게재는 일사천리로!

이효철 그룹리더 연구팀은 2005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지 10년 만에 ‘네이처’에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그는 “이번 ‘네이처’ 성과를 낼 때는 예전보다 1000배 정도 더 빠른 셔터 스피드인 0.1피코초(펨토초 영역)의 시간 분해능을 가진 X선, 즉 펨토초 X선 펄스를 이용했다”며 “펨토초 X선 펄스로 용액에서 화학반응의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보다 더 큰 의미는 10년 전에 분자 결합이 쪼개지는 것만 봤는데, 이번에는 분자 결합이 형성되는 것을 봤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연구팀이 화학반응의 처음과 끝을 밝혀내는 쾌거를 이룩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팸토초 엑스선 회절법 실험 과정.

▲ 팸토초 엑스선 회절법 실험 과정.

사실 분자 결합이 끊어지는 것보다 분자 결합이 형성되는 것을 높은 시간 분해능으로 관찰하기 더 어렵다. “예를 들어 플라스크 안에서 어떤 물질을 관찰할 때, 그 안에는 분자 수억 개가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신호를 동시에 다 받아야 검출할 수 있는 정도의 세기가 됩니다. 분자 수억 개가 동시에 깨지는 것은 쉽지만, 동시에 결합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렇게나 섞여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연구팀은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 화학결합이 형성되는 과정을 관찰했다. 이효철 그룹리더는 “수용액에 금을 녹이면 금 원자가 여러 개 만나게 되는데, 그중 금 원자 3개가 가까이 있는 것들이 레이저로 때리면 들뜬 상태를 거쳐 화학결합이 형성된다”며 “이렇게 형성된 금 삼합체(gold trimer)의 구조가 펴져 있는지 굽어 있는지, 시간에 따라 원자 사이의 거리나 각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금 삼합체의 화학결합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연구팀은 X선 자유전자 레이저에서 생성되는 펨토초 X선 펄스를 이용했다. X선 자유전자 레이저는 차세대 X선 광원으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얻을 수 있다. 현재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미국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SLAC)의 LCLS(Linac Coherent Light Source),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SACLA 가속기가 가동 중에 있다.

이효철 그룹리더는 “연구성과를 ‘네이처’에 투고해서 게재 승인을 받기보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빔타임(가속기 사용시간)을 받는 것이 더 어려웠다”며 “미국에서 빔타임을 받으려고 굉장히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대신 일본에서 우리를 믿고 빔타임을 많이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 SACLA에서 처음 1년간은 우리가 원하는 X선 파장대에서 검출기가 최적화되어 있지 않아 고생만 했는데, 지난해 2월, 5월 두 차례 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결과를 담아 작성한 논문은 ‘네이처’에 보낸 지 4일 만에 심사위원(reviewer)에게 보냈다는 e메일 답장을 받을 정도로 굉장히 빨리 게재과정을 밟았다”고 밝혔다.

일반적 화학결합, 복잡한 생체분자 본다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 이효철 그룹리더는 연구단 내에서 화학반응 제어 및 메커니즘 연구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 이효철 그룹리더는 연구단 내에서 화학반응 제어 및 메커니즘 연구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일반적인 화학결합을, 좀 더 복잡한 반응을 다양한 방법으로 관측할 계획이다. 이효철 그룹리더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아메드 즈웨일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즈웨일 교수는 화학결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펨토화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켜 1999년 노벨화학상를 받은 이 분야의 대가이다.

“그동안 분자 하나와 관련된 단분자반응을 많이 연구했지만, 분자 2개가 관련된 이분자반응을 높은 시간 분해능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X선뿐 아니라 전자도 회절을 일으키는데, 전자 회절 시설을 만들고 있으며, 투과전자현미경(TEM)으로 활동성 있는 생체분자(biomolecule)를 관찰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갖고 있습니다.”

이효철 그룹리더는 연구단에서 개발한 펨토초 X선 회절법을 이용하면 분자의 진동, 회전 운동을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백질 구조의 단계별 변화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는 또 생체분자의 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꾼 뒤 작용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관심을 두고 있다.

여러 화학반응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펨토초 X선 펄스가 필요한데, 이를 제공할 수 있는 X선 자유전자 레이저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생성시킬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도 4세대 방사광가속기(PAL-XFEL)를 포항에 건설하고 있다. 여기서 내년 후반 첫 X선이 나오고 과학자들은 늦어도 2017년 초부터 이 시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때가 되면 이효철 그룹리더 연구팀은 ‘안방’의 시설을 활용해 좋은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학부 시절 유기화학을 배우며 실제 일어나는 반응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싶었다”는 이효철 그룹리더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초과학은 인류의 지적 경계선을 넓히는 도구입니다. 더구나 인간의 제한된 상상력으로, 지금 하는 기초 연구가 어디에 활용될지를 예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많이 쓰이는 핵자기공명(NMR), 자기공명영상(MRI)은 그 원리를 탐구했던 과학자들이 처음부터 이런 활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이렇게 밝힌 그는 “앞으로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화학반응의 이해를 넓히는 데 매진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