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타 기초과학 #8 AI를 통해 저개발국가의 숨겨진 경제지형을 드러내다 일타 기초과학 #8 AI를 통해 저개발국가의 숨겨진 경제지형을 드러내다 인공지능(AI)은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학계와 기업의 영역을 넘나드는 AI 기반 기술은 경쟁의 물결 속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ChatGPT, Bard, DALLE-2와 같은 기술은 우리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AI를 활용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같은 국제사회 문제해결에 도전하는 기초과학연구원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빈곤과 같은 국제사회의 문제 현황 유엔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에 7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 상태에 처해 있으며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빈곤을 측정하고,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전 세계 나라 중 53개국은 지난 15년 동안 농산물 생산 실태조사를 하지 못했으며 17개국에서는 인구조사마저 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 공백은 국가가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을 꾸리는데 어려움을 야기하고, 지역 간 데이터 격차를 만들어 불공정성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과학의 혁신 인공위성 영상의 활용은 이러한 데이터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떠올랐습니다. 위성 영상은 지구 어디에서나 촬영할 수 있어, 농업 조사나 인구 조사가 어려운 지역의 경제 상황을 추정하는 데 유용합니다. 광학장비의 발전 덕분으로 고해상도 영상은 30cm 크기의 물체도 식별하며 수백 제곱 킬로미터의 넓은 지역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건축물, 도로, 차량 등의 물체를 식별하고, 광범위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건축물의 밀도, 교통망의 발달 정도, 농경지의 규모 등은 지역의 경제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AI를 사용한 위성영상 분석의 시작 이러한 시각 데이터의 분석에 인공지능이 활용됩니다. AI에 이미지와 함께 해당 지역에 해당하는 경제 지표, 즉 ‘정답지’를 같이 주고 학습시킴으로써, AI가 위성 영상의 시각적 패턴으로부터 유의미한 특징을 뽑아내도록 하였습니다. 2016년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을 필두로 많은 연구팀들이 AI와 위성영상을 결합하기 시작하였고, 예측한 경제 지표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AI 모델의 학습에는 사진에 해당하는 ‘정답지’, 즉 경제 지표 자료 또한 필요함으로써, 실제로 실측 데이터가 거의 없는 몇몇 저개발국가에 여전히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점이 있었습니다. 인간과 AI 상호작용을 통한 저비용 지표 예측 IBS 연구팀은 데이터 수집 비용을 효율적으로 줄이면서도 AI 모델을 효과적으로 학습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표했습니다. 이 모델은 인간과 기계가 협업하는 구조를 가짐으로써 기존 통계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북한과 같은 최빈국까지 포함하는 범용성이 뛰어납니다. 먼저, 위성영상을 비슷한 시각적 패턴(가령 숲, 논 지역 등)을 가진 그룹으로 묶으면, 사람이 각 그룹의 대표 이미지를 보면서 경제 활동의 정도를 비교해 그룹들을 순서대로 나열합니다. AI는 이 정보를 이용하여 경제 점수에 대해 학습한 뒤, 각 이미지에 점수를 부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법은 이미지마다 실측 정보를 수집하는 것보다 적은 데이터를 요구하므로 매우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그림1] 야간 조도 영상을 통한 경제 규모 예측 (좌상단: NASA 지구 관측소 제공 배경 사진). 남한은 밝은 불빛으로, 북한은 평양을 제외하고 전기 공급이 제한적이어서 어둡게 나타남.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개발한 새로운 모델은 북한(우상단)과 아시아의 다른 5개국 (하단: 구글 어스 배경 사진)에 대해 더욱 정교한 경제 예측을 제공함. 연구팀은 개발한 모델을 북한과 아시아의 다른 5개 최빈국(네팔, 라오스, 미얀마, 방글라데시, 캄보디아)에 적용하고, 위성영상으로 얻은 경제 지표 점수를 통해 해당 지역의 경제 상황을 조사했습니다(그림 1). 모델로부터 나온 점수는 기존의 사회 경제 지표인 인구밀도, 고용 수, 사업체 수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 북한 등 최빈국에도 적용할 수 있는 범용적 기술임을 입증되었으며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유용한 정책 데이터로 활용되리라 기대됩니다. [그림2] 2016년과 2019년 위성 영상을 통한 북한 내 경제 점수 비교. 관광 개발지역인 원산 갈마지구(상단)에서는 뚜렷한 개발 진전이 관찰되었지만, 공업 개발지역인 위원개발구(하단)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음. (배경 사진: 유럽우주국 (ESA) 제공) 연구팀의 모델을 다양한 연도의 위성 영상에 적용하면 시간에 따른 경제 지표 변화도 측정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건축물의 탐지와 관광지구 개발과 같은 실제 경제 활동과의 비교를 통해 유의미한 경향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그림 2 참고). 예시에 나온 그림에서는 북한의 관광 개발 지역인 원산 갈마지구와 공업 개발 지역인 위원개발구의 2016년에서 2019년 사이의 경제규모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결과는 국제공동 연구로 이뤄졌으며 KAIST, 서강대, 홍콩과기대(HKUST), 싱가포르국립대(NUS) 연구진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지표를 통한 국제사회 문제 분석 전산학, 경제학, 지리학 지식이 접목된 이번 연구는 범지구적 차원의 빈곤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AI에 기반한 지표를 활용해 국제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해 전후 사진의 지표 점수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피해를 탐지하고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빠르게 파악하고 지원해 줄 수 있습니다. 이렇듯 개발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앞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후 변화로 인한 영향 등 다양한 국제사회 문제로 확장하는 방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류를 위한 데이터 과학 분야에 더욱 많은 연구자가 관심을 가지길 기대합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4.02.06
  • 일타 기초과학 #7 미토콘드리아 유전병과 유전자 교정 기술 일타 기초과학 #7 미토콘드리아 유전병과 유전자 교정 기술 미토콘드리아 유전병 치료를 위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의 새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 교정연구단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아데닌 염기를 교정할 수 있는 유전자 교정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인데요. 이번 연구를 쏙쏙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개념과 연구의 의미를 참여 연구진이 직접 알려드립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병 미토콘드리아는 인간과 같은 모든 진핵 세포에 존재합니다. 또한 화학 에너지를 생성하는 세포 내 발전소로, 그 중요성 때문에 미토콘드리아의 문제는 세포, 더 나아가 조직(Tissue)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일반적으로 미토콘드리아 DNA에 변이가 있을 때 발생하며, 모계유전으로 후세에 전달되게 됩니다. 인간 미토콘드리아 DNA의 다양한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병은 5,000명 중 1명의 비율로 발생하며, 이는 모계 유전성 질환뿐만 아니라 암, 당뇨병, 그리고 노화 관련 질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너지를 담당하다 보니, 미토콘드리아의 유전병은 굉장히 심한 병원성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가장 널리 알려진 질환으로 레버 근육 이상(Leber's Hereditary Optic Neuropathy, LHON)은 주로 시각 손상을 일으키는 질병으로, 실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뇌 변성을 일으킬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 미세뇌병 (Mitochondrial Encephalopathy), 근육 기능에 영향을 주는 미토콘드리아 근육질환 (Mitochondrial Myopathy)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미토콘드리아 유전병은 대부분 심한 병원성을 가지며, 일반적으로 진단이 어려우며,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고 증상 완화나 진행을 늦추는 대처법만이 존재합니다. [그림 1] 진핵세포의 미토콘드리아 DNA (출처: wikipedia; mtichondrial DNA) [그림 2] 미토콘드리아 LHON 질병을 가지고 있는 유명 유투버 (출처: Youtube; 원샷한솔) 기존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교정 기술 미토콘드리아는 자체 DNA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세포핵의 유전체 DNA와 별개입니다. 현재까지 임상적으로 확인된 병원성 미토콘드리아 DNA 돌연변이의 수는 총 95개입니다. 이 중 90개(95%)는 점 돌연변이로, 이는 단 하나의 DNA 염기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일 염기를 교정하는 염기 교정 기술을 사용한다면, 대다수의 병원성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유전자 교정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미토콘드리아의 DNA 단일 염기를 수정하는 것은 최근까지 불가능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20년에는 네이처(Nature) 지에 미토콘드리아에서 사이토신(C) 염기를 교정하는 기술(DdCBE)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론적으로 이 기술을 이용해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42개로 전체의 약 47%입니다. 그러나 해당 기술은 사이토신 앞에 티아민이(TC) 있어야 작동을 하기 때문에 고칠 수 있는 돌연변이는 95개 중 9개로 제한되게 되었습니다(10%).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위해서는 사이토신을 티아민(T)으로 교체하는 기존 기술을 개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아데닌(A)을 구아닌(G)으로 교체하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림 3] 임상적으로 확인된 미토콘드리아 유전병의 단일 염기 다양성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SNP). 구아닌이 아데닌으로, 티아민이 사이토신으로 바뀌는 것이 거의 절반씩 차지합니다. 각각 이론적으로 C를 T로 염기교정하는 시토신 염기교정 기술, A를 G로 염기교정하는 아데닌 염기교정 기술로 고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개발된 유전자 교정 기술 2020년, 미국 브로드 연구소에서 최초로 개발한 사이토신 염기 교정 기술이 개발되고, 이후 국내에서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에서 독자적인 사이토신 염기 교정기를 개발하였습니다. 해당 염기 교정기는 DNA에 붙는 단백질을 다른 단백질(징크 핑거 프로틴을 이용)을 사용하여 더욱 좁은 범위를 교정하는 기술(ZFD)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염기를 교정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유전체 교정연구단은 최근 미토콘드리아에서 DNA 아데닌 염기를 교정하는 유전자 교정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습니다. 이 기술은 90가지 점 돌연변이 중 39개, 즉 약 43%를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기존의 미토콘드리아 질병을 10%만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 기술로 50% 이상을 표적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 다양한 미토콘드리아 관련 동물 질환 모델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를 교정하여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림 4] 아데닌 염기 교정 기술 모식도. 아데닌 염기 교정 기술인 TALED는 미토콘드리아 DNA에 붙어서 A를 G로 염기 교정하게 됩니다. MTS는 미토콘드리아로 선도하는 서열, TALE repeats는 DNA에 붙는 결합 단백질, Split DddA와 AD는 모두 탈아민 효소입니다. (출처 Cell) 한계와 극복 완벽한 기술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재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교정 기술의 한계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이토신 염기 교정 기술이 한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사이토신 염기 교정 기술은 TC 서열의 사이토신을 교정하기 때문에 그 외 AC, GC, CC를 가지는 유전자 서열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초의 사이토신 염기 교정 기술이 나오고 전 세계에서 TC 서열이 아닌 다른 서열에서도 잘 되는 기술 개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확실한 기술이 나오진 않았지만 여러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부작용입니다. 유전자 교정 기술이 작동하려면 일단, 유전자에 붙어야 합니다. 원하는 위치에 붙어 특정 서열만(On-target, 표적 서열)을 교정하면 가장 좋지만, 때로는 불특정 위치에 붙어 원치 않는 교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비표적 서열(Off-target)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표적 서열은 원하지 않는 변이들이기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연구진은 아데닌 염기 교정 기술이 DNA뿐만 아니라, RNA에도 붙어서 작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기술이 RNA에 붙을 때는 비 특이적으로 붙기 때문에 매우 많은 비표적 서열들을 일으키게 되는데, 쥐 모델에서 이런 비표적 서열들로 인해 쥐 배아 발달에 영향을 줘 배아가 죽게 되는 것을 관찰하였습니다. 이런 비표적 서열들을 줄이기 위해서 연구진들은 탈아민효소의 DNA/RNA 바로 근처 아미노산 부위를 새롭게 디자인해서, 표적 서열은 유지하고, RNA 비표적 서열은 줄이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 5] 아데닌 탈 아민효소의 3D 구조. 빨간색 그림은 표적 DNA이며 주변의 파란색 그림은 표적 DNA 바로 근처에 존재하는 탈 아민효소의 아미노산 잔기입니다. 이렇게 과학자들은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하고, 기술의 한계를 파악해 극복하는 방식으로 개선해 나갑니다. 불모지였던 미토콘드리아 유전병에 대해 한 발 더 가까이 앞서 말한 거처럼 미토콘드리아는 생체 내 에너지를 생성하는 세포 소기관으로 인간 세포를 비롯한 모든 동물, 식물세포의 발전소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DNA의 돌연변이로 초래되는 유전질환은 보통 중병(重病)을 야기하게 됩니다. 국내의 이런 연구들은 기존에 불가능했던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가 아닌 다른 식물의 세포소기관인 엽록체에서도 작동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새로운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바이오제약, 생명공학, 농림수산업과 환경 산업에도 폭넓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고문헌 ● Cho, S.I., Lee, S., Mok, Y.G., Lim, K., Lee, J., Lee, J.M., Chung, E., and Kim, J.S. (2022). Targeted A-to-G base editing in human mitochondrial DNA with programmable deaminases. Cell 185, 1764-1776 e1712. 10.1016/j.cell.2022.03.039. ● Lim, K., Cho, S.I., and Kim, J.S. (2022). Nuclear and mitochondrial DNA editing in human cells with zinc finger deaminases. Nat Commun 13, 366. 10.1038/s41467-022-27962-0.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4.01.11
  • 일타 기초과학 #6 세포 속 작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고해상도 간섭산란 현미경 일타 기초과학 #6 세포 속 작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고해상도 간섭산란 현미경 지금까지 소포의 수송 원리, 소포와 세포 소기관의 상호작용 분석 등의 연구는 형광 현미경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형광 현미경을 이용하면 형광 표지된 특정 소포들의 수송 과정만 관찰할 수 있고, 신호가 유지될 수 있는 제한된 시간 내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는데요. 기초과학연구원의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이 살아있는 세포 속에서 활발하게 이동하고 있는 소포의 움직임만을 선택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고해상도 비표지 간섭산란 현미경을 개발해 생명현상을 미시적 관점에서 생생하게 밝혀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참여 연구진이 연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개념에 대해 직접 알려드립니다. 아주 작으면서도 복잡한 세포 속 환경과 그 속에서의 물질 수송 하나의 세포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매우 작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세포 속 세상은 수많은 물질들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물질들 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매우 복잡한 세상입니다. 세포 속 물질 수송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복잡한 환경 속에서 세포의 생성과 생장에 필수적인 물질들을 수송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세포 속 적시적소의 장소에 필요한 물질을 정확히 배송하기 위해서, 세포는 먼저 단백질, 호르몬, 신경 물질 등을 얇은 지질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주머니 모양의 소포(vesicle)에 담습니다. 그리고, 세포 속 도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튜불(microtubule)과 액틴(actin) 필라멘트 단백질 네트웍망을 따라서 움직이는 모터 단백질을 이용해 소포를 배송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포가 엉뚱한 곳으로 배송 되거나 운송이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최근 다 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물질 수송 과정에서의 문제가 신경퇴행성 질환의 발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세포 속에서 이동하는 작은 소포 수송을 관찰하는 방법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포 속 세상은 너무나도 작고 복잡한 환경이기 때문에, 이 속에서 수송되고 있는 소포만을 추적해서 관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재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소포의 수송 원리와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형광 현미경을 이용한 영상 방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관심 있는 특정 소포를 구성하고 있는 생체 물질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형광 물질을 이용해 소포 대신에, 소포에 부착된 형광 물질에서 나오는 형광 신호를 추적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포 속 물질 수송 현상의 연구에 있어서 형광 현미경을 이용한 연구가 성취해 온 업적들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형광 영상 방법의 특성상 형광 표지가 된 특정 소포들만 볼 수 있고, 형광 신호가 유지되는 제한된 시간 내에서만 관찰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두운 밤에 어느 한 도시가 정전이 되었습니다. 이 때 도시 속 어느 장소에 헤드라이트를 키고 있는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선 상태로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전이라는 상황은 오히려 헤드라이트를 키고 있는 자동차의 현재 위치를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반면, 왜 이 차량이 그 곳에 멈춰 있는지 그 이유를 알려면, 자동차의 주변 상황을 파악해야 할 텐데, 정전으로 인해 주변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이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멈춰 선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되고 나면, 자동차의 위치마저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겠죠. 바로 이러한 상황이 형광 현미경을 이용한 연구 방법에 있어서의 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섭산란 현미경을 이용해 살아 있는 세포 속 소포 수송 과정을 관찰하기 간섭산란 현미경은 나노 크기의 입자 또는 생물 분자가 빛에 노출되었을 때, 이들로부터 산란되어 나오는 아주 작은 양의 빛의 신호를 고감도로 측정할 수 있는 영상 장비입니다. 우리 연구단에서는 지난 5~6년 간 세포 영상 연구에 적합한 간섭산란 현미경 개발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 왔습니다. 간섭산란 현미경은 형광 분자의 표지 없이도 세포 속에서 단백질 도로망을 따라 수송되고 있는 소포들의 위치를 빠른 속도로 장시간 추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포들이 위치한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 또한 동시에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획득한 수 많은 소포들의 위치 정보를 이용하면 세포 속 단백질 도로망의 공간적 분포를 고해상도로 재구성하는 것 또한 가능합니다. [그림 1] 간섭산란 현미경을 이용해 관찰된 세포 속 소포들의 트래픽 현상. 각각의 영상은 초당 50장의 속도로 180초 동안 촬영한 영상으로 얻은 소포들의 이동 위치로부터 재구성한 것입니다. 영상 내 색상은 각각의 고정된 픽셀 위치에서 해당 시간 동안 관찰된 소포들의 개수를 나타내는 것인데, 세포 단백질 도로망 상에서의 소포 트래픽 밀도(traffic density)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포 속 ‘우편배달부’도 교통 체증 겪는다 논문명 Long-term cargo tracking reveals intricate trafficking through active cytoskeletal networks in the crowded cellular environment 간섭산란 현미경을 이용한 소포 수송 현상 연구를 통해 과거에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었던 다수의 흥미로운 현상들이 관찰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소포들의 밀도가 밀집되어 있는 세포 속 특정 영역에서는 도시의 출퇴근 길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유사한 수송 정체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세포는 여러 개의 소포들을 함께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집단적 수송 방식, 이미 수송 중인 소포 뒤에 달라붙어 함께 이동하는 히치하이킹 수송 방식 등의 흥미로운 방식들을 활용해 이러한 세포 속 정체 현상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수송 전략을 갖추고 있음도 확인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세포 또한 대도시 사람들이 도로 위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교통 체증 현상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교통 체증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채택하고 있는 효율적 수송 전략 또한 인간 사회와 매우 유사하게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림 2] 서울 내부 및 외곽 도로망으로 표현된 세포 속 소포들의 트래픽 현상. 세포 속에서 관찰된 소포 수송 과정에서의 트래픽 현상은 대도시의 인간 사회에서 흔히 경험하는 도로 트래픽 현상과 매우 닮아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세포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 도로망의 구조를 서울시 내부 및 외곽의 도로망 구조를 따라 구현하여 보았습니다. 도로망 위의 빨간 색 구간은 트래픽이 심한 구간을, 그리고 초록색 구간은 교통 흐름이 원활한 구간을 의미합니다. 복잡한 세포 속 환경에서의 효율적 소포 수송 전략을 이해하기 우리 연구단이 개발한 간섭산란 현미경에는 형광 표지된 세포 속 특정 분자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형광 현미경 장비도 함께 결합되어 있습니다. 즉, 고속 그리고 고해상도 간섭산란 영상 취득 방법에 더하여 화학 선택적 형광 영상 기법을 결합함으로써 관찰의 정확도를 더욱 높인 것입니다. 앞으로 세포가 트래픽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채택하고 있는 효율적 수송 전략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해서, 이러한 현상이 실제 세포의 생명 현상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데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램입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4.01.09
  • 일타 기초과학 #5 인과관계 추정 정확도를 높인 새로운 방법론 일타 기초과학 #5 인과관계 추정 정확도를 높인 새로운 방법론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기록된 ‘시계열 데이터’는 일기 예보, 경제,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입니다. 특히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일상에서 건강 데이터를 쉽게 수집할 수 있게 되면서, 의학 분야에서 시계열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는데요. 기초과학연구원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이 시계열 데이터의 인과관계 추정 정확도를 높인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 인과관계 추정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연구진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개념과 기존 방법론에 대해 직접 알려드립니다. 인과관계란 무엇일까? 세상은 수많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어떤 두 요인 사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관계, 다시 말해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을 때,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기온이 높아질수록 아이스크림 소비량이 늘어나는데, 여기에는 명백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인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기온이 높을수록 범죄율도 같이 늘곤 합니다. 따라서, 아이스크림 소비량과 범죄율은 실제로 비슷한 경향을 보이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기온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요인(아이스크림 소비량과 범죄율)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결과가 되는 두 요인 사이에 비슷한 경향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 모든 일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한눈에 알기는 어렵습니다. 이때, 정확한 인과관계를 찾는 것은 특정 현상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분야에서 현상을 자세히 기록하여 데이터화하고, 이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인과관계를 추정하려 합니다. 특히,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기록된 ‘시계열 데이터’는 일기 예보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의학 분야에서도 인과관계 추정에 가치 있게 쓰입니다. 입원 환자의 심전도 측정을 통해 심장 발작의 직접적인 요인을 찾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최근에는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일상에서 건강 데이터를 쉽게 수집할 수 있게 되면서, 의학 분야에서 시계열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림 1] 시계열 데이터의 인과관계 추론 / 서로 다른 대상의 시계열 데이터가 주어졌을 때, 이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추정하는 것은 사회/자연과학 전 분야에 걸쳐 오랫동안 연구가 진행된 중요한 문제다. 노벨경제학상의 주인공, 그레인저 인과관계 검정 시계열 데이터에서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200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이브 그레인저 UC샌디에이고 교수가 제시한 ‘그레인저 인과관계 검정(Granger causality test)’이 있습니다. 그레인저 인과관계 검정의 주요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지구의 평균 기온과 온실가스 농도를 매일 기록한 시계열 데이터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거부터 오늘까지의 기온 데이터만을 이용해서, 내일의 기온을 예측한다면, 얼마나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요? 혹은 오늘까지의 기온 데이터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농도 데이터도 같이 이용하여 내일의 기온을 예측한다고 해 봅시다. 일전의 예측보다 더 정확해질까요? 만약, 온실가스가 정말 지구 기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즉 인과관계가 있다면, 두 데이터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것입니다. 반면에, 온실가스와 기온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면, 온실가스 데이터를 추가로 사용한다고 해도 예측의 정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정보의 유무에 따라 통계 모형의 정확도가 유의미하게 달라지는지를 이용하여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있으며, 이것이 그레인저 인과관계 검정의 핵심 아이디어입니다. 이러한 그레인저 인과관계 검정은 미래 경제지표 예측, 질병 요인분석, 지구온난화의 원인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 응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레인저 인과관계 검정 이후에도 정보 이론 기반의 다양한 인과관계 추정 방법이 개발되어 왔습니다. 인과관계 추정 방법론들의 고질적인 문제 하지만 기존에 사용된 인과관계 추정 방법론들에는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시계열 데이터가 비슷한 주기로 변화하는 동시성을 가지기만 하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잘못 예측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기온의 변화와 바다 조수는 모두 약 하루의 주기를 가지고 진동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레인저 인과관계 검정은 기온과 바다 조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잘못 예측합니다. 또한, 직접적인 인과관계와 간접적인 인과관계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한계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풀은 사슴의 먹이이고, 사슴은 호랑이의 먹이가 됩니다. 따라서 풀이 많아지면 풀을 먹는 사슴의 수가 늘고, 이에 사슴을 먹이로 하는 호랑이의 수도 같이 늘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풀의 양은 간접적으로 호랑이의 개체 수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둘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인과관계 추정 방법론들은 풀의 양이 호랑이 개체 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잘못 추정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수리모델의 필요성과 한계점 앞서 나온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즉 동시성과 간접적인 영향으로부터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추정하기 위해, 수리모델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앞서 나온 호랑이와 사슴의 예시를 살펴봅시다. 사슴은 호랑이의 먹이이기 때문에, 잡아 먹히는 사슴의 수는 호랑이의 개체수([호랑이]) 와 사슴의 개체수([사슴])에 비례합니다. 또한 사슴은 번식을 통해 개체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사슴의 개체수 변화율([사슴]’)은 다음과 같은 식을 따릅니다. [사슴]’ = a x [사슴] – b x [사슴] x [호랑이] 비슷한 방식으로, 호랑이의 개체 수는 사슴과 호랑이가 많을수록 빨리 증가하며, 호랑이의 죽음에 따른 개체수 감소까지 고려한다면, 호랑이 개체수의 변화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호랑이]’ = c x [사슴] x [호랑이] – d x [호랑이] 이러한 방정식을 포식자와 피식자 간의 관계를 표현한 로트카-볼테라 방정식이라 부릅니다. 이제, 호랑이와 사슴의 시계열 데이터가 주어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매개변수 a, b, c, d를 조정하며 로트카-볼테라 방정식이 해당 시계열 데이터를 잘 설명하는지 확인함으로써 호랑이와 사슴 사이의 포식 관계 유무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즉, 호랑이와 사슴 개체수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론들은 수리모델이 정확하기만 하면 동시성과 간접적인 영향을 인과관계와 혼동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정확한 수리모델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수리모델을 알더라도 인과관계를 추정할 때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는 또 다른 제약이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인과관계 추정 방법론, GOBI(General Ode Based Inference) 수리모델을 기반으로 한 방법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확한 수리모델을 알지 못할 때에도 적용 가능한 패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사슴과 호랑이 예시로 돌아가 봅시다. 호랑이는 사슴을 잡아먹기 때문에 호랑이의 개체 수는 사슴의 개체 수에 음의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사슴의 개체 수는 호랑이의 개체 수에 양의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양의 영향 혹은 음의 영향의 유무만을 판단하면 됩니다. 시계열 데이터에서 사슴의 개체수가 증가하는 시점을 생각해 봅시다. 그 시점에 호랑이의 개체수 변화율이 증가한다면, 사슴이 호랑이에게 양의 영향을 주고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즉, D[사슴] x D[호랑이]’ 이 값이 항상 양수 값을 가지면 사슴은 호랑이에게 양의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저 값이 항상 양수가 아니라면 사슴은 호랑이에게 양의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은 것이 됩니다. 비슷한 방법으로 호랑이가 사슴에게 음의 영향을 미치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패턴을 이용하여, 시계열 데이터가 일반적인 형태의 수리모델로 표현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이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여러 통계 검정을 더해 특정 모델에 대한 가정이나 복잡한 계산 없이도 시계열 데이터로부터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방법론(GOBI: General Ode Based Inference)이 개발되었습니다. GOBI를 통해 더 정확한 인과관계 추정이 가능해져 해당 방법론을 이용해 여러 시스템의 인과관계를 분석한 결과, 세포 내 분자들의 상호작용, 생태계 네트워크, 그리고 기상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에서 기존의 인과관계 추정 방법론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보여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여러 대기오염 물질 중 이산화질소와 호흡 가능한 부유 미립자가 심혈관질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존 인과관계 추정 방법론들과 달리 동시성 및 간접적인 영향을 가지는 시계열 데이터에서도 인과관계를 성공적으로 추론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인과관계 추정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림 2] 기존 개발된 방법론과 새로 제시된 방법론의 인과관계 추정 결과 비교 / (a) 서로 무관한 먹이 포식자 시스템(P와 D)과 세포 내 단백질 상호작용 시스템(28 과 TetR)을 합친 시스템의 시계열 데이터이다. GC (그레인저 인과관계 검정) 등 기존 방법론들은 시계열 데이터에 동시성이 있으면 거의 모든 대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잘못 추정한다. 그러나 GOBI는 실제로 있는 인과관계만 정확히 추정한다. (b) 홍콩에서의 심혈관질환 환자수와 대기 중 오염물질의 농도를 나타낸 시계열 데이터이다. 다른 방법론들과는 다르게, GOBI는 사용하는 시계열 데이터의 길이(2년 또는 3년)와 무관하게 오직 이산화질소(NO2)와 호흡 가능한 부유 미립자(Rspar)만이 심혈관질환에 영향을 준다고 바르게 추정한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3.11.15
  • 일타 기초과학 #3 친환경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새로운 '광촉매 플랫폼' 일타 기초과학 #3 친환경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새로운 '광촉매 플랫폼' 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 연구단의 김대형 부연구단장(화학생물공학부 교수)과 현택환 단장(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공동연구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 생산 성능을 갖춘 물에 뜨는 광촉매 플랫폼을 새롭게 개발하였습니다. 이 플랫폼은 바다, 호수, 강은 물론 페트병 폐기물을 녹인 용액에서도 효율적으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린수소 대량생산의 가능성을 연 이번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개념들을 참여 연구진이 직접 풀어드립니다. 기존 수소 생산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수소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미래에 수소를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사회가 오리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소에너지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친환경적이면서 높은 효율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공정과 시설 개발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기존 수소 생산 방식인 천연가스 수증기 개질1)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CO2)가 다량 배출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린수소란?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브라운‧그레이‧블루‧그린수소로 나뉘는데, 그린수소는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하여 생산한 수소로, 생성 과정에서 온실기체가 크게 발생하지 않는 특징을 갖습니다. 궁극적인 수소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그린수소의 상용화가 필요합니다. 광촉매 기반 그린수소 생산 광촉매란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화학 반응을 일으켜 원하는 물질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물질을 말합니다. 이를 이용한 광촉매 기반 수소 생산은 무한한 에너지원인 태양에너지를 직접 사용하고, 온실기체 배출이 없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광촉매는 태양광 에너지를 흡수해 물(H2O)에서 수소(H2)를 만들 수 있는 특징을 가집니다. 그러나 광촉매의 성능 향상을 위한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용화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실제 환경에 활용하려면 가루 형태의 광촉매를 패널 형태로 제작해야 할 뿐 아니라, 물속에서 작동하면서 수소를 물 밖으로 보내는 별도 장치 개발 등 추가적인 과정과 비용이 필요하여 수소 생산의 효율성과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림 1] 구리/이산화티타늄 촉매 사진과 그 미세 구조입니다. [그림 2] 백금/이산화티타늄 촉매 제작 과정입니다. 물에 뜰 수 있는 광촉매 플랫폼 이에, 물 위에 뜨는 젤 형태의 새로운 광촉매 플랫폼을 고안했습니다. 이중층 구조의 플랫폼으로 상층에는 공기 중에 노출된 광촉매층을, 하층에는 물을 흡수・전달하는 지지층을 배치하여 별도 추가 장치 없이도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광촉매층은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어 효과적으로 빛을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그림 3]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다공성의 고무-하이드로젤 복합체를 사용해 높은 표면장력을 달성하여 물에 떠 있을 수 있고, 촉매를 복합체 내에 안정적으로 고정할 수 있으며, 하이드로젤의 물질 전달 특성 덕분에 지속적으로 물을 광촉매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광촉매를 패널 형태가 아닌 기체로 채워진 고체(에어로겔 나노복합체) 형태로 제작하여 촉매 자체의 밀도를 낮추고, 성능이 우수한 백금(Pt)계 촉매, 값싼 구리(Cu) 기반 촉매 등 모든 광촉매를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아울러 구멍이 송송 뚫린 다공성 구조의 고무-하이드로젤 복합체를 사용하여 높은 표면 장력으로 물에 잘 뜸과 동시에, 함수율이 높은 하이드로젤 특성을 활용하여 물이 광촉매에 쉽게 전달되도록 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랫폼은 물 표면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수소가 다시 물로 바뀌는 역반응을 최소화하여 생성물의 손실이 적습니다. 광촉매가 물속에 잠기지 않기 때문에 수심에 따른 빛의 감소나 산란 없이 태양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합니다. 또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촉매의 기계적 혼합(교반) 공정이 필요 없으며, 간단하게 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실용성 검증을 위한 대(大)면적 실험 한편, 태양광을 통한 수소 생산 성능도 검증했습니다. 1㎡ 면적에서 시간당 약 4L의 수소를 생산(환산치)할 수 있었으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입니다. 또한, 다양한 미생물과 부유물이 섞여 있는 열악한 바닷물 환경에서 2주 이상 장시간 구동했을 때도 성능 저하가 거의 없이, 높은 생산 성능을 유지했습니다. [그림 4] 대면적 수소 생산 실험 사진과 그 결과입니다. 이번 연구는 광촉매 기술 상용화에 큰 걸림돌이었던 수소생산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대폭 개선하고 다양한 화합물 생성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활용성과 확장성을 강화한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바다, 호수, 강은 물론 페트병 폐기물을 녹인 용액에서도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 생산 성능을 갖춘 물에 뜨는 광(光)촉매 플랫폼을 새롭게 개발한 것입니다. (위 연구결과는 4월 28일 0시(한국시간) 세계 최고 학술지인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 IF 40.523)’ 온라인판에 실렸습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3.09.26
  • 일타 기초과학 #2 암흑물질, 액시온 그리고 대통일 이론 일타 기초과학 #2 암흑물질, 액시온 그리고 대통일 이론 지금까지 일련의 정밀한 천문학적 관측 결과들과 빅뱅우주론은 암흑물질이 존재하며 대략 우주의 27%를 구성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흑물질의 실체는 아직도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암흑물질의 규명을 위해 액시온 탐색 실험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수행하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에서 미지의 세계의 탐험을 시작하기 위한 개념을 하나씩 짚어드립니다. 표준모형, 암흑물질, 그리고 우리 현재 관측가능한 물질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에 (이하 표준모형) 따라 매우 잘 기술되며 우주의 5%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은하수의 운동을 자세히 관측해 보면 은하수의 회전은 관측 가능한 은하수 중력을 탈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우 빠른데 이는 은하수가 지금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태양계가 은하수에 위치하고 있으니 태양계도 은하수 중력권 밖으로 탈출했을 것이며 태양계에 속한 지구는 물론이며, 그리고 그 위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존재도 없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구 위에 존재하고 태양계가 은하수의 일원이 될 수 있으려면 은하수의 탈출을 제지하고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더 큰 중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데, 이는 우주의 27%를 구성하는 암흑물질의 기여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암흑물질은 인류의 근원적인 질문의 대상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와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실제로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암흑물질의 탐색 연구 결과입니다. 액시온 (axion)이란 표준모형 중 핵자 간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양자색역학은 (Quantum Chromo Dynamics : QCD) 정밀 측정된 실험 결과를 미세한 조정 없이는 기술하지 못하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문제가 있는데 이를 “Strong CP problem”이라 합니다. 여기서 CP는 Charge-conjugation과 (전하) Parity가 (거울대칭) 결합된 대칭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미세 조정 없이 자연스럽게 Strong CP problem을 해결하기 위해 출현한 입자를 QCD axion 또는 그냥 axion (액시온) 이라고 합니다. 액시온은 미지의 질량을 가지며 만약 질량이 대략 10-6 eV 근방 또는 ~1.8x10-42 kg이면 강력한 암흑물질의 후보가 됩니다. 따라서 액시온의 발견은 표준모형이 설명하지 못하는 Strong CP problem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으며, 또한 질량이 ~10-6 eV 영역이라면 우주의 27%를 설명할 수 있는 암흑물질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과학사에 있어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통일 이론 (Grand Unification Theory : GUT) 뉴턴의 만유인력은 갈릴레오의 운동법칙과 케플러의 행성운동을 통일한 이론이고,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전기와 자기, 그리고 빛을 통일한 이론이며, 표준모형은 전자기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 작용을 (예: 베타붕괴) 통일한 이론입니다. GUT은 표준모형과 QCD로 기술되는 강한 상호 작용을 통일하는 이론입니다. Dine-Fischler-Srednicki-Zhitnitskii (DFSZ) 액시온 모델은 GUT을 지지하는 모델로 DFSZ 액시온 암흑물질의 발견은 GUT의 주춧돌이 될 것이며, GUT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의 이론의 (Theory of Everything)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DFSZ 액시온 암흑물질 탐색 연구의 성공적인 데뷔 기초과학연구원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은 이처럼 우리의 존재와 밀접하며, 우주의 27%를 담당하며, GUT을 지지할 수 있는 DFSZ 액시온 암흑물질 탐색 연구의 첫 도약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그림1]과같이 우리 주변의 헤일로 (halo) 액시온과 지자기의 300,000배인 12 tesla의 자기장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액시온 신호의 공진을 위해 마이크로파 공명 공진기를 (microwave resonant cavity) 이용하여 4.55x10-6 eV 영역에서 탐색이 수행되었습니다. [그림1] 헤일로 액시온과 (a) 자기장의 (B0) 상호작용, 그리고 γ로의 변환. 실린더는 마이크로파 공명 공진기를 의미합니다. 예측되는 매우 미약한 DFSZ 액시온 신호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극저온 냉동기를 사용하여 거의 영하 273도의 실험환경을 유지했으며 신호 수신기의 배경잡신호의 최소화를 위해 최첨단 양자소자기반의 신호증폭기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100%의 데이터 취득 효율 등, 실험의 성능지수를 극대화하여 DFSZ 액시온 암흑물질 탐색 연구를 미국의 Axion Dark Matter eXperiment (ADMX)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수행하였고, 4.55x10-6 eV 영역에서 DFSZ 액시온 암흑물질이 존재하지 않음을 90%의 신뢰도로 확인된 결과가 [그림2]에 보입니다. [그림2] DFSZ 액시온 암흑물질 탐색 결과. 파랑선은 DFSZ 모델에서 예측하는 값과 CAPP-12TB 실험결과의 비로 그 값이 1 이하이면 DFSZ 액시온 모델이 배제됨을 의미합니다. 액시온 질량이 4.527x10-6 eV 근처에는 두 개의 공명모드들이 겹쳐서 실험 민감도가 없는 지역입니다. 삽입된 그림에서 빨강 부분은 ADMX가 2017년부터 지금까지 탐색하여 제외된 구간이며 오른쪽 파랑 부분이 연구단에 의해 탐색, 제외된 구간입니다. 간간이 보이는 스파이크들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데이터량이 적은 곳을 나타냅니다. 지금까지 축적된 세계 최고의 실험 인프라, 측정 노하우 등을 기반으로 보다 넓은 영역의 DFSZ 암흑물질 탐색연구가 기대되며, 인류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발견 또한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3.08.16
  • 기초과학 #1 마이크로 RNA, 다이서, 그리고 유전자치료 기초과학 #1 마이크로 RNA, 다이서, 그리고 유전자치료 암과 같은 질병 치료를 위한 RNA 유전자 치료제 개발의 새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 RNA 연구단 김빛내리 단장 연구팀과 노성훈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마이크로RNA를 만드는 핵심 단백질 ‘다이서’의 작동 원리와 3차원 구조를 세계 최초로 규명한 것인데요. 이번 연구를 쏙쏙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개념과 연구의 의미를 참여 연구진이 직접 알려드립니다. 세포 내 안전과 균형을 유지하는 작은 경찰관, 마이크로RNA 마이크로RNA는 작은 크기지만, 세포 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분자입니다. 이 작은 RNA 분자들은 다양한 생물학적 과정에서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함으로써 세포의 기능과 발달에 영향을 줍니다. 마이크로RNA는 유전자의 활동을 감시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세포 내의 작은 경찰관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포는 우리 몸의 기본 단위이며, 수많은 작업을 수행합니다. 때로는 세포 내에서 잘못된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때 마이크로RNA는 경찰관처럼 작동하여 문제를 감지하고 처리합니다. 경찰관이 범죄자를 붙잡고 구속하여 사회 안전을 유지하듯이, 마이크로RNA는 특정 유전자를 조절하여 비정상적인 세포 활동을 억제하고 세포의 안전과 균형을 유지합니다. 마이크로RNA는 특정 유전자의 mRNA를 표적으로 삼아 결합하여, 파괴하거나 번역 과정을 억제함으로써 유전자의 단백질 생산을 조절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마이크로RNA는 세포 내에서 다양한 신호 전달 경로를 조절하고, 세포의 성장, 분열, 성숙, 프로그래밍이 된 세포사멸 등 다양한 생리적 과정에 관여합니다. 또한, 마이크로RNA는 세포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함으로써 세포의 건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세포 내에서 발생하는 이상 징후를 탐지하고 조절하여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이크로RNA의 결합 패턴과 활동은 세포의 상태와 조건에 따라 변화할 수 있으며, 이는 세포의 적응, 발달, 복구 등에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마이크로RNA는 작지만, 세포의 건강과 기능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RNA에 대한 연구는 생명 과학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암, 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질병의 이해와 치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RNA가 유전자를 표적 하는 방법 마이크로RNA는 다양한 서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이크로RNA의 서열은 마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문장과 비슷합니다. 각 문자는 특정한 의미를 가지며, 이러한 문자들이 모여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마이크로RNA의 서열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순서와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통해 마이크로RNA가 어떤 유전자를 조절하는지 결정됩니다. 이 다양성은 다양한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아 조절하는 데 활용됩니다. 각 마이크로RNA는 특정한 서열 패턴을 가지고 있어, 특정 유전자와 결합하여 조절 작용을 수행합니다. 마이크로RNA는 특정 유전자의 mRNA 분자와 상호작용하여 결합하게 됩니다. 이 서열 상호작용은 마이크로RNA의 "시드 시퀀스"라고도 알려진 특정 영역에 의해 결정됩니다. 마이크로RNA의 시드 시퀀스가 특정 유전자의 mRNA와 상호 결합하면, 이는 해당 유전자의 표현을 억제하거나 조절하는 데 영향을 줍니다. 이처럼 다양한 마이크로RNA의 서열과 타겟 결합은 세포 내에서 다양한 생리적 과정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이크로RNA는 수백 개 이상의 유전자를 조절할 수 있으며, 이들은 세포의 발달, 분열, 성숙, 프로그래밍된 세포사멸 등 다양한 생리적 프로세스에 관여합니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RNA는 세포의 건강과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세포의 이상과 질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RNA 서열 결정 마이크로RNA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대부분의 RNA보다 크기가 훨씬 작습니다. 마이크로RNA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DNA에서 훨씬 기다란 RNA가 먼저 만들어진 다음, 두 가지 서로 다른 단백질들에 의해 두 번 연속해서 잘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절단 과정은 드로샤(DROSHA) 단백질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는데, 그 결과 만들어지는 마이크로RNA 전구체는 ‘머리핀’을 닮은 모양을 가지게 됩니다. 그다음으로, 이러한 특이적인 모양을 다이서(DICER)라고 하는 단백질이 인식해서 자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크기의 마이크로RNA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다이서 단백질,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다이서 단백질은 기다란 마이크로RNA 전구체를 잘라 마이크로RNA를 만들어 주는, 마치 가위처럼 기능하는 매우 중요한 단백질입니다. 다이서가 마이크로RNA 전구체의 어디를 자르느냐에 따라, 마이크로RNA의 형태가 달라지고, 마이크로RNA의 형태가 바뀌면 그에 따라 조절되는 유전자가 달라지기 때문에, 다이서는 유전자 발현 조절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중요한 단백질 중 하나입니다. 특히 모든 생명 현상과 질병에는 마이크로RNA가 작동하고 있어, 다이서가 어떻게 마이크로RNA를 자르는지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이서(DICER) 단백질의 작동원리를 규명 논문명 Sequence determinant of small RNA production by DICER 기존 연구에서는 드로샤가 만든 마이크로RNA 전구체의 끝을, 다이서가 붙잡고 그로부터 특정 거리를 자로 재듯이 잘라서, 마이크로RNA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다이서는 드로샤가 지정해 준 곳을 자르는 수동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요. 이번 연구를 통해 다이서가 이런 수동적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다이서가 마이크로RNA의 어떤 특징을 인지하고 자르는지 알아보기 위해, 100만여 개의 마이크로RNA들을 합성한 다음, 100만여 개의 마이크로RNA들을 다이서로 한 번에 자르고 조사할 방법을 개발 및 적용하였습니다. 비유하자면, 100만 개의 모래알을 뿌려놓고, 그중 다이서가 먼저 짚는 1,000개의 모래알을 찾고, 그 1,000개의 모래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분석한 것인데요. 그 공통적인 특징이 실제로 다이서가 마이크로RNA를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자르는 데 필요하다는 사실을 검증하고, 이러한 특징을 ‘GYM 서열’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RNA 생성 과정을 역이용해서,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는 ‘RNA 간섭’ 기술은, RNA 치료제로도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요. GYM 서열을 RNA 간섭 기술에 적용하면, 그 효과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연구 결과는 RNA 치료제 개발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림 1] GYM 서열의 기능 (왼쪽) 만약 마이크로RNA 전구체가 GYM 서열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다이서의 절단 효율과 정확도가 낮아집니다. 이 경우에는 여러 가지 다른 마이크로RNA들이 생성될 수 있으므로, 동일한 마이크로RNA 전구체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하지만, GYM 서열을 지니고 있는 경우, 다이서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마이크로RNA 전구체를 자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마이크로RNA 생성이 촉진되고 유전자 발현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인간 다이서의 ‘활성화' 상태 3차원 구조 미스터리를 풀다 논문명 Structure of the human DICER-pre-miRNA complex in a dicing state 단백질의 구조를 찍는 일은 마치 사진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단백질의 기능에 대한 간접적인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작동하는 그 순간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진이 모이면 동영상이 되듯, 다양한 구조를 풀게 되면 단백질의 역동적인 과정 또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 동안 다이서의 3차원 구조를 풀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시도해 왔습니다. 특히 다이서는 마이크로RNA 전구체를 자르는 효소이기 때문에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정작 그 구조는 미스테리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이서가 마이크로RNA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RNA 치료제에 응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찾은 GYM 서열을 접목해서 수십 년간 풀지 못했던 인간 다이서의 ‘활성화' 상태 3차원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혀냈는데요, 이번 서울대학교 분자 이미징 연구실 노성훈 교수님, 이한솔 박사님과 공동연구로 수행된 연구에서, IBS의 초저온 전자 현미경을 비롯한 기기들을 이용해서 다이서가 마이크로RNA를 자르는 그 순간을 드디어 포착했고, 다이서-마이크로RNA 전구체의 3차원 구조를 높은 해상도에서 관찰하였습니다. 특히 새롭게 찾은 GYM 서열뿐만 아니라 마이크로RNA 전구체의 가장 앞쪽 서열 또한 다이서 기능에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효과적인 RNA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림 2] 다이서의 도메인 구성 모식도(위) 및 다이서-마이크로RNA 전구체의 활성화 상태 구조(아래) 다이서는 여러 도메인을 통해 마이크로RNA 전구체와 상호작용합니다. 비활성화(apo) 상태의 구조(옅은 회색)와는 달리, 마이크로RNA 전구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나선효소와 DUF283, dsRBD 도메인들이 큰 움직임을 필요로 합니다. RNA치료제 개발에 한 발 더 가까이 저희는 다이서가 마이크로RNA의 GYM 서열과 앞쪽 말단의 서열 또한 인지해서 능동적으로 절단 위치를 결정한다는 점을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다이서가 어떻게 기질을 선택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이 연구 성과를 활용하면 더 효과적인 RNA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일부 암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다이서의 돌연변이들이 어떻게 마이크로RNA 생성에 결함을 일으키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어서 질병 치료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3.06.08
  • ‘재벌집 막내아들’, 정말 양자역학스럽네! ‘재벌집 막내아들’, 정말 양자역학스럽네! “꿈이었을까. 빙의, 아니면 나만 홀로 다녀온 시간여행? 이토록 생생한 기억은 나만의 몫인 건가” -‘재벌집 막내아들’ 中 지난해 12월 25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최종회가 방영된 직후 온라인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주인공 진도준(송중기)이 할아버지가 소유한 기업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17년(14화 분량) 동안의 이야기가 전부 ‘꿈'인 것처럼 연출됐는데 이 장면에 대한 시청자의 해석이 엇갈린 겁니다. 표면적으로는 의식불명에 빠진 윤현우(송중기)가 일주일동안 꿈속에서 과거 인물인 진도준의 삶을 체험한 것으로 그려졌습니다만, 일부 시청자는 꿈이 아닌 환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도준이 행했던 일들이 윤현우가 사는 세계에서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윤현우는 의문의 사고를 당한 후 의식불명 상태에서 진도준의 삶을 체험한다. 논쟁이 오가는 가운데 한 누리꾼의 말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결말을 양자역학에 빗댔는데 ‘재벌집 막내아들’ 제작진처럼 이 누리꾼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죠. 양자역학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이미지 때문이었을까요? 양자역학에 대해 알아보며 그 이유를 추측해보도록 하죠. Part1. 물리학에도 ‘닫힌 결말’과 ‘열린 결말’이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결말이 명확하면 닫힌 결말, 반대로 독자나 시청자가 직접 상상해야 하면 열린 결말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전자는 결말이 딱 한 가지뿐이고, 후자는 여러 결말이 공존하고 있는 겁니다. 물리학의 한 분과인 ‘역학(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도 비슷한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공, 컵, 휴대전화처럼 위치를 알 수 있는 대상을 연구하는 고전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작은 입자인 전자처럼 현재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대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입니다. 고전역학, 미시세계에서는 안 통해 양자역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두 분야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역학은 물체의 운동을 수식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예컨대 학교에서 배우는 뉴턴의 가속도법칙은 물체에 힘이 작용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가속되는지를 ‘힘=질량×가속도’로 표현하죠. 이는 물체의 질량과 힘의 크기를 알면 향후 어떻게 운동할 지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수식에 의해 결정돼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전역학은 만능이 아닙니다. 크기가 100억분의 1미터(m) 수준의 작은 물체인 ‘원자’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자는 원자핵(양전하)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음전하)로 이뤄져 있습니다. 고전역학에 따르면 모든 원자는 언젠가 붕괴하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가속 운동하는 전자는 전자기파를 방출하는데 이렇게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면 원자핵과 가까워져 결국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고전역학은 우리 주변에 있는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어도 전자처럼 아주 작은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뉴턴의 요람(Newton's cradle)은 질량이 같은 쇠공이 각각 두 개의 줄에 연결돼 있는 진자다. 바깥쪽 쇠공 하나를 당겼다가 놓으면 진자 운동을 하다 인접한 공과 충돌해 에너지를 전달하고, 멈춘다. 에너지는 쇠공들에게 전달돼 반대편 쇠공이 튀어 나간다. 전자를 보는 새로운 눈, 양자역학 전자의 기묘한 성질은 ‘이중 슬릿 실험’에서 잘 드러납니다. 두 개의 틈새(슬릿)를 지나 벽에 닿은 전자들이 그리는 무늬를 살펴보는 실험인데 만약 전자가 공 같은 입자라면 2개의 무늬를, 물결 같은 파동이라면 슬릿을 지난 후 서로 간섭을 일으켜 여러 무늬를 형성할 겁니다. 실험 결과는 전자를 입자로만 여겼던 당시의 상식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파동을 통과시켰을 때와 같은 무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궁금했던 과학자들이 전자 검출기를 달아 전자가 슬릿을 통과하는 순간을 관찰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자가 태세를 바꿔 2개 무늬를 그리기 시작한 겁니다. 이중 슬릿 실험을 나타낸 그림(왼쪽)과 전자들이 파동처럼 간섭을 일으켜 틈새(슬릿) 뒤에 여러 무늬를 형성하는 모습(오른쪽). 이는 전자가 입자일 수도, 파동일 수도 있다는 뜻인데 사실 전자뿐 아니라 광자(빛의 입자), 원자, 분자 등도 비슷한 성질을 가졌습니다. 곧 과학자들은 이런 입자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학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양자역학입니다. 양자는 1, 2, 3, 4…처럼 불연속적인 값을 갖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이 경우 1)를 말합니다. 현재 양자역학은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와 그의 제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등이 주축이 돼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자 개념은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처음 도입했습니다. 왼쪽부터 보어의 수소 모형,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보어가 이를 활용해 “전자가 불연속적인 에너지 값을 가지며 이에 대응하는 궤도에 있을 때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원자 모형을 고안했습니다. 이 모형은 몇 가지 약점이 있어 훗날 폐기됐지만, 이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 슈뢰딩거의 파동함수 등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이론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를 토대로 전자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주장이 등장하게 됐죠. Part2. 열린 결말의 묘미는 ‘해석’이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했습니다. 고전역학으로 충분히 분석할 수 있는 대상도 양자역학으로 들여다보면 더 정확한 값을 내놓았죠. 그런데 양자역학은 미완성이었습니다. 전자가 특정 위치에 있을 확률을 제시할 수 있지만, 왜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갖는지 설명해 주진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과학자들은 나름의 해석을 곁들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코펜하겐 해석’이 대표적인데요, 이 해석에 따르면 전자의 이중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확률적으로 존재 가능한 모든 위치에 동시에 존재하며 관측되는 순간 하나로 결정된다. 즉 전자를 관측하기 전에는 여러 위치에 동시에 존재해 마치 서로 간섭하는 파동처럼 행동하고, 관측하는 순간 한 곳을 뺀 나머지 위치에 존재할 확률이 사라져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겁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는 말 그대로 ‘해석’이므로 어느 정도 상상력이 가미됐으며 참‧거짓을 가릴 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과학자의 반발을 샀는데 상대성이론으로 잘 알려진 독일 출신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며 죽을 때까지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양자역학 또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미국 물리학자 휴 에버렛이 제시한 ‘다세계 해석’도 흥미롭습니다. 코펜하겐 해석과 다르게 관측 시 특정 위치들에 존재할 확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각각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인데 이는 스파이더맨, 닥터스트레인지 같은 SF영화에서 ‘멀티버스(Multiverse)’라는 설정의 과학적 근거로 쓰이기도 합니다. 영화 닥터스트레인지에서는 마블 히어로 중 한 명인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를 통해 차원을 오고가며 적과 싸운다. 사진은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기 중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이해는 못 해도 활용도는 ‘따봉’ 현재 물리학계에서는 다수의 과학자가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완벽하게 옳은 것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며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전자기기 역시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대표적으로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컴퓨터의 정보단위인 큐비트는 0과 1 두 값을 동시에 갖는데 이는 양자역학에서 물질이 여러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됐습니다. 전자기기 외에도 다양한 연구 단체가 양자역학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기초과학연구단(IBS)의 양자나노과학연구단,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연구단이 있습니다. 한 예로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연구단 소속 김준성 학연연구위원 연구팀은 새로 합성한 위상물질이 고유한 양자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를 작년 말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습니다. 양자역학을 활용해 차세대 정보 소자로 쓸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 낸 겁니다. 이쯤 되면 누리꾼이 ‘재벌집 막내아들’이 양자역학 같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나요? 양자역학처럼 결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전자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인 것을 윤현우와 진도준을 오가는 상황에 빗댄 걸 수도 있습니다. 최종 해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분명한 건 해석과 상관없이 ‘재벌집 막내아들’이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는 점입니다. 마치 양자역학처럼요.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3.02.08
  • 공감 능력 형성 원리의 미스터리를 한 꺼풀 벗겨내다 공감 능력 형성 원리의 미스터리를 한 꺼풀 벗겨내다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MBTI. 그중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F’ 또는‘T’는 공감 방식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공감은 타인의 기쁨, 슬픔, 공포와 같은 정서적인 상태를 공유하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T는 정보를 바탕으로, F는 감정을 바탕으로 공감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죠.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마다 제각기 방식은 다르지만, 어찌됐든 사람은 ‘공감’을 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사진1. 공감 능력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특징이다. 출처 : pix4free 그래서 자폐, 조현병, 사이코패스와 같이 공감 능력이 결핍된 질병을 겪는 사람들은 사회 생활에서 숱한 문제를 겪습니다. 반대로 공감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을 경우에도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죠. 하지만 자폐, 조현병 등 공감 능력과 관련된 질병은 현재로서는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 뿐이고, 대부분의 경우 뚜렷한 완치 방법이 없습니다. 공감 능력이 결여된 질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뇌에서 어떻게 공감 능력을 형성해내는지 알아야 하는데, 공감 능력은 뇌에서 매우 복잡한 인지 영역이라 아직 공감 능력을 형성하는 뇌 신경 회로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행히도 뇌인지과학자들은 공감 능력 형성 원리의 미스터리를 점점 벗겨내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이 그 중심에 있죠. 공감 능력을 결정하는 유전자 발견 인간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고, 기쁨에 공감하며 함께 웃죠. 이처럼 ‘공감’은 상황에 따라, 느낀 감정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다릅니다. 생쥐는 어떨까요. 생쥐는 다른 생쥐의 고통을 관찰하고, 이 공포에 공감한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고 몸이 얼어붙는 ‘프리징(freezing)’이라는 행동을 보입니다. 공포에 얼마나 공감했는지에 따라 프리징 반응의 정도가 달라지죠. 다른 생쥐의 공포에 공감한 생쥐는 다음 날에도 같은 장소에 두면 공포에 대한 기억을 회상해 프리징 행동을 보입니다. 사진2. 생쥐의 공포 공감 행동 실험 방법. 관찰 생쥐는 고통을 받는 생쥐가 전기충격 받는 모습을 보고 동작을 멈추는 프리징 행동을 보이며, 다음날에도 같은 장소에 두면 고통받는 생쥐를 보지 않아도 프리징 행동을 보인다. 2018년 기초과학연구원 신희섭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명예연구위원은 생쥐의 프리징 반응 실험을 통해 공감 능력의 차이를 결정하는 신경회로를 밝혀냈습니다. 연구팀은 생쥐 두 마리를 각각 이웃한 챔버에 넣고, 한쪽 생쥐에게만 전기 충격을 줬습니다. 이때 챔버를 투명한 벽으로 만들어 옆 챔버의 생쥐가 전기 충격을 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이웃 생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죠. 연구팀은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생쥐 18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오직 한 종류의 생쥐 그룹만이 이웃 생쥐의 공포에 과하게 공감했습니다. 즉, 프리징 행동을 다른 쥐보다 더욱 강하게 보였죠. 생쥐 18종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이웃 생쥐의 공포에 과하게 공감한 한 종의 생쥐에게서만 Nrxn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습니다. 공포 공감 능력이 낮았던 다른 종의 생쥐의 Nrxn3 유전자에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자, 이들의 공포 공감 능력이 증가했죠. 이로써 Nrxn3가 공감 능력 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추가로 Nrxn3 유전자가 작동하는 구체적인 매커니즘도 알아냈습니다. 연구팀은 관찰 공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알려진 전두엽 전대상 피질 부위의 모든 뉴런에서 Nrxn3 유전자를 제거한 뒤, 생쥐의 공감 능력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신호 강약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뉴런인 SST 뉴런에서 Nrxn3 유전자를 제거한 경우 생쥐의 공감 능력이 크게 증가했죠. 사진3. Nrxn3 유전자가 SST 뉴런의 시냅스 전달 기능을 조절해 공감능력에 관여하는 과정. 검증을 위해 빛으로 뉴런의 활성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방법으로 SST 뉴런의 활성을 억제한 경우에도 역시 생쥐의 공포 공감 능력이 크게 향상됐습니다. 반대로 SST 뉴런을 활성화하자, 공포에 대한 공감 반응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모든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Nrxn3 유전자는 SST 뉴런의 시냅스 전달 기능을 조절해 공감 능력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사진4. 전대상 피질의 SST 뉴런에서 Nrxn3 유전자가 제거된 생쥐는 정상 대조군 생쥐에 비해 공포 공감 행동이 현저히 증가했다(가). SST 뉴런 활성이 억제된 생쥐 역시 높은 공감 능력을 보였고(나), 반대로 SST 뉴런이 활성화된 생쥐는 공감 능력이 낮아졌 우뇌의 뇌파 동기화가 공감 기능을 유도 지난해 12월, 연구팀은 같은 실험 모델을 사용해 공감 형성 원리에 좀 더 가까이 도달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앞선 연구에서 사용한 생쥐를 이용한 ‘관찰 공포 행동 모델’을 똑같이 활용했습니다. 사진5. 관찰 공포 행동 중 우뇌의 대뇌피질과 편도체 영역의 5~7Hz의 뇌파 증가. 이번에는 생쥐가 공감할 때 뇌에서 발생하는 뇌파에 주목했습니다. 광유전학적 기법과 뇌파 측정 실험을 함께 진행한 결과, 다른 생쥐의 고통에 공감한 생쥐에게서 공통적으로 5~7Hz 진동수의 뇌파가 발생했고 이 뇌파에 의해 우뇌의 세부적인 영역들이 기능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관찰됐습니다. 즉, 생쥐가 공감 행동을 보일 때 우뇌에서는 5~7hz의 뇌파로 동기화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죠. 사진6. 광유전학 기법을 활용해 우뇌의 대뇌피질-편도체 사이에 연결된 신경회로가 공감 능력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뇌에서 공감 능력에 관여하는 영역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대뇌피질-편도체 간에 연결된 신경회로를 억제해 관찰 공포 실험을 똑같이 진행했죠. 그 결과 생쥐의 공감 행동이 감소했습니다. 반대로 신경회로를 강화했을 때는 공감 행동이 증가했죠. 대뇌피질-편도체 사이에 연결된 뇌 신경회로와 이 영역에서 발생한 5~7Hz의 뇌파가 생쥐의 공감 능력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뇌 대뇌피질-편도체에서 발생한 5~7Hz의 정확한 근원은 어디일까요. 연구팀은 광유전학기법으로 이 뇌파의 근원이 해마 영역에서 나오는 ‘세타파’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세타파는 인지, 정서, 선척적 공포, 불안장애 등 다양한 뇌 기능과 관련된 매우 느린 파동입니다. 연구팀이 광유전학 기법으로 해마 세타파를 억제하자, 우뇌 대뇌피질-편도체 부위의 뇌파 동기화가 감소했습니다. 예상대로 생쥐의 공감 행동 역시 억제됐죠. 이번 연구는 공감 능력 조절 메커니즘을 뇌파 수준에서 처음으로 규명해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사진7. 광유전학 기법을 이용해 해마 세타파를 억제한 결과 우뇌의 대뇌피질-편도체 부위의 뇌파 동기화가 감소했고 관찰 공포 행동도 억제됐다. 뇌과학으로 당연한 것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사진8. 뇌과학 분야에는 아직 미스터리가 많지만,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미스터리가 점점 밝혀지고 있다. 출처: unsplash 일상 생활에서 ‘공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뇌과학 분야에서는 아직 미스터리가 많은 영역입니다. 하지만 위의 연구처럼 공감에 관여하는 유전자, 영역, 뇌파 등을 차근차근 밝혀내다 보면 결국 언젠가 정수에 가닿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진9. 빛을 비춰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술은 뇌과학 분야의 미스터리를 푸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특히 위 두 연구에서 활용된 광유전학 기술은 그 가능성을 더 높였습니다. 뇌는 매순간 학습하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생긴 특성이 중요한데, 광유전학 기술은 특정 단백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죠. 광유전학 기술을 포함해 다양한 뇌과학 분석 도구와 연구자들의 활약으로 뇌과학 분야의 여러 미스터리가 풀리고, 난치병으로 여겨지는 자폐, 조현병 등의 정신 질환의 효과적인 치료법이 개발되길 바랍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3.02.08
  • 몸속 시계는 약효가 좋은 때를 알고 있다 몸속 시계는 약효가 좋은 때를 알고 있다 약발’이 잘 듣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실제로 같은 약을 먹어도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다. 과학자들은 이런 개인차를 유전적 차이로 설명한다. 약물 대사가 일어날 때 간, 신장 등에서 특정 효소가 나오는데, 타고나길 이런 효소가 많은 사람일수록 약발이 좋다는 뜻이다. 근래에는 조금 더 평등한(?)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다. 모두가 가진 몸속 생체시계를 이용해 생체 리듬에 맞춰 최적의 약물 치료 시간을 찾는 연구다. 비록 타고난 유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생체시계로 특정 유전자가 작동하는 시간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에는 국내 연구진의 성과도 있었다. 여성 혈액암 환자를 치료할 때 오전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는 내용을 수학적으로 밝혀냈다. 생체 리듬으로 치료 효과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 우리 몸에서는 주기에 따라 여러 가지 생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출처: nobelprize.org) 잠잘 때와 끼니때를 몸이 알아서 기억하는 이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두운 밤이 되면 자고, 밝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 활동한다. 마치 몸속에 시계가 있어 밤낮을 구분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낮에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며 몸속에서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배꼽시계가 울리기도 한다. 놀랍게도 매번 시간을 보면 12시쯤이다. 우리 몸은 점심시간을 알고 있는 것일까.실제로 사람의 몸속에는 생체시계가 작동하고 있다. (배꼽시계는 존재했다) 몸속 세포 안에서는 갖가지 생리현상이 일어나는데, 모두 일정한 시간 주기에 따라 조절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평소와 다른 상태가 돼도, 몸은 생체시계에 맞춰 변한다. 장시간 비행 뒤 시차 적응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생체시계의 존재를 느껴봤을 확률이 높다. 시차적응 실패는 평소에 유지되고 있던 생체시계와 현지 시각의 불일치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생체시계는 동물과 식물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콩과의 한해살이풀인 미모사가 낮에는 잎을 펼치고 밤에는 접는 이유도 식물 내 생체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식물마다 각자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생체시계는 다르게 돌아간다. 갑각류 등 일부 해양 생물은 조류에 맞춰진 12시간 생체 리듬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doi: 10.1016/j.cmet.2017.05.004 ▲ 미모사는 낮엔 잎을 펴고 밤엔 오므리는 식물이다. 암막에 두거나 태양 빛이 없어도 24시간 주기를 따르는데 이를 통해 식물도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24시간 주기로 돌아가는 일주기 리듬 한편 사람의 생체시계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낮과 밤에 따른 24주기, 하루보다 짧은 주기, 하루보다 긴 주기 등이다. 하루에 수시로 변하는 체온 변화는 하루보다 짧은 주기에 속하고, 한 달에 한 번 하는 여성의 생리는 하루보다 긴 주기에 속한다. 이 중에 낮과 밤에 따른 하루 24시간 동안의 주기적 변화를 특별히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이라고 부른다. 일주기 리듬은 몸속에서 일어나지만, 빛, 기온과 같은 외부 요인에 동기화되며 하루 24시간 주기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반복해 사인곡선을 그린다. 이 리듬에 맞게 호르몬 분비와 억제가 반복되고, 이에 따라 체온이나 혈압, 식욕, 수면욕 등이 조절되는 것이다. 우리가 밤이 되면 졸리고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는 이유도 일주기 리듬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는 수면에 관여하는 호르몬 두 가지가 분비된다.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 멜라토닌과 잠을 깨우는 호르몬 코르티솔이다. 멜라토닌은 빛에 민감한 호르몬으로 완전히 어두워진 밤 8~9시쯤부터 혈중 농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한밤중인 새벽 3~4시에 최고조에 이르고, 햇빛이 들어 밝아진 아침 6~8시에는 혈중 녹도가 뚝 떨어져 한낮에는 거의 분비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된다. 한편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면 코르티솔 분비가 늘어나기 시작해 낮에 정점을 이루고, 오후 3시 이후에는 수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리고 24시간 주기를 갖는 멜라토닌과 코르티솔의 리듬은 매일매일 반복된다. 이때 하루 중 짧은 낮잠은 일주기 리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밤늦게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하면 인공 빛에 노출돼 멜라토닌 분비에 이상이 생기고, 호르몬 주기가 깨진다. 결국 생체시계는 고장이 나고, 불면증과 같은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건강하다는 어른들의 말이 꽤 과학적이었던 셈이다. ▲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빛에 민감하다. 늦은 밤까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하면 인공 빛에 노출돼 멜라토닌 분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출처: Pixabay) 독감 백신, 오전에 접종효과 4배 좋아 의학자들은 일주기 리듬을 질병 치료에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를 크로노테라피(시간요법)라 한다. 생체 리듬에 맞춰서 약물 치료를 하는 것이다. 시간요법을 이용하면 치료 효과를 높이거나, 약물 부작용을 낮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테로이드는 효과가 매우 좋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많다. 이때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는 투약 시간을 조절하기도 한다. 본래 스테로이드는 신장 위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오전 7~8시에 제일 활발히 분비되고, 이후에는 호르몬 생산을 억제하는 작용이 이뤄진다. 그래서 아침 시간에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면 부신 위축 부작용 등의 발생 위험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주기 리듬에 따라 백신에 대한 항체 생성 효율이 다르다는 연구도 있다. 지난 2016년 영국 연구진은 독감 백신을 맞는 시간대에 따라 백신 효과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안나 필립스 영국 버밍엄대 교수는 65세 이상 성인 276명을 3년 동안(2011~2013년) 조사하며 독감 백신 접종 시간과 효과를 분석했다. 필립스 교수는 참가자를 오전 9~11시 접종군과 오후 3~5시 접종군으로 나눈 뒤, 각각 접종 1개월 뒤에 혈액 속 항체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오전 접종군의 항체가 오후 접종군보다 4배 더 많이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doi: 10.1016/j.vaccine.2016.04.032 항체는 몸속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물질로, 일반적으로 항체 수치가 높으면 그만큼 백신 효과가 좋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필립스 교수는 인체 생체 리듬이 오전에 더 활발해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 ▲ 영국 연구팀이 노인의 독감 백신 접종은 오후보다 오전에 더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인체 생체 리듬이 오전에 더 활발하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출처: Pixabay) 여성 혈액암 항암치료, 오후에 받으면 사망확률 12.5배 낮아 최근 국내 연구진은 혈액암 환자 자료에서 항암치료 효과가 높은 시간을 발견했다. 항암치료 부작용이 적고 치료 효과가 좋은 시간을 발견했는데, 이 원인을 백혈구를 만들어내는 골수의 일주기 리듬에서 찾아낸 것이다. 김재경 IBS 의생명 수학 그룹 CI(KAIST 수리과학과 교수) 연구팀과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팀은 공동 연구를 통해 여성 혈액암 환자의 경우 오전보다 오후에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결과는 12월 13일 미국 임상학회 학술지인 ‘JCI Insight’에 실렸다. 항암제 치료는 말 그대로 항암제를 투여해 암세포를 파괴하는 치료법이다. 암세포 종류에 따라 완치도 가능하지만, 약물인 만큼 장기간 치료 시 내성이 생길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항암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 짧은 기간 안에 효과를 최대한으로 내야 한다. 연구팀은 서울대병원에서 광범위 B형 대세포 림프종 치료를 진행 중인 환자 21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오전과 오후 치료 환자로 구분해 환자의 사망, 암 재발, 암 악화 여부 등을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연구결과 오후에 치료받은 여성 환자의 경우 사망확률이 12.5배 감소했다. 암이 더 진행되지 않고 살아가는 무진행 생존 기간이 2.8배 늘어난다는 것도 확인했다. 60개월 이후 사망률에서도 오후 여성 환자가 2%, 오전 여성 환자가 25%로 큰 차이를 보였다. 여성 혈액암 환자의 경우 오후에 치료를 진행하면 사망확률과 무진행 생존 기간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한편 남성 환자의 경우 치료 시간에 따른 효율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 여성 혈액암 환자의 경우, 오전에 치료받은 경우보다 오후에 치료받았을 때 사망확률은 12.5배 감소하고, 무진행 생존 기간은 2.8배 늘어났다. 연구팀은 골수의 일주기 리듬에서 원인을 찾았다. (출처: IBS) 여성의 골수, 일주기 리듬을 가져 연구팀은 서울대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수집된 1만 4,000여 명의 혈액 표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여성의 경우, 항암치료 부작용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백혈구 수가 오전에 감소하고, 오후에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성은 하루 중 백혈구 수 차이가 없었다. 골수에서 백혈구가 만들어지기까지는 12시간이 걸린다. 다시 말해 백혈구 수가 오후에 늘어났다는 것은 여성의 골수 기능이 오전에 활발하다는 뜻이다. 즉, 여성의 골수 기능은 오전에 증가하고, 오후에는 감소하는 일주기 리듬을 가진 셈이다. 이런 이유로 여성 혈액암 환자가 골수 기능이 활발한 오전에 림프종 치료를 받으면 항암 부작용이 커진다. 김 CI는 “골수는 생명에 중요한 혈액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며 “공장이 가장 활발하게 가동될 때 항암제라는 독성물질이 들어오면 우리 몸에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약물 투여량을 조절한 결과에서 오전에 주로 치료받은 여성 환자들이 부작용을 더 많이 겪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의료진은 약물 치료에서 부작용이 발생하면 약물 투여량을 줄인다. 오후 환자는 계획한 치료를 90% 이상 진행했지만, 오전 환자들은 계획한 치료의 20~30%만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약물 투여량을 줄였고, 항암치료 효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암 재발과 사망확률을 높인다. 김재경 CI는 “개인의 수면 패턴에 따라 생체시계의 시간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수면 패턴으로부터 개인의 생체시계 시간을 추정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개인 맞춤형 ‘치료 일과표’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심장 수술 최적의 타이밍, 항염증제 복용 타이밍 등 일주기 리듬을 이용한 의학 연구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출처: Pixabay) 이외에도 일주기 리듬을 이용한 의학 연구는 국내외로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심장 수술을 하기 좋은 최적의 타이밍, 항염증제를 복용하기 가장 좋은 시간 등이 연구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주기 리듬을 이용한 질병 치료 연구는 아직 해야 할 일은 많다. 2017년 일주기 리듬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마이클 영 교수는 “아직 1%밖에 밝혀낸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니. 그러나 일주기 리듬 연구는 타고난 유전자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끌어냈다는 의의가 있다. 나아가 건강하게 잘 사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적어도 수면, 식사, 운동 등은 일주기 리듬에 따라 최적의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 약발 잘 듣는 유전자는 없더라도, 약발 잘 드는 시간은 모두가 활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멜라토닌 혈중 농도가 높아진 늦은 밤에는 스마트폰만큼은 접어 두고 ‘꿀잠’ 자는 방식으로!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 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3.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