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를 돕는 촉매를 찾아서 인류를 돕는 촉매를 찾아서 인류를 돕는 촉매를 찾아서 이효영 나노구조물리 연구단 부연구단장 불가능해 보일 만큼 위험성과 비용이 큰 혁신 프로젝트를 ‘문 샷(moon shot)’이라고 한다. 1960년대 미국 정부가 주도했던 달 탐사 사업에 빗대어 붙은 이름이다. 이러한 사업은 성공 여부나 개발 기간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에서 뛰어들기 어렵다. 환경을 위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거나 해양에서 바다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일은 큰 비용이 들지만 그 이익은 한 국가나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려운 도전이지만,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에서 만난 이효영 부연구단장은 그래서 더더욱 과학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1월, 이산화탄소를 유용물질로 바꾸는 고효율 촉매를 내놨다. 이어 11월에는 기존 촉매보다 20배 저렴한 수소 생산 촉매를 발표했다. 이 부연구단장은 연구 주제를 정할 때 ‘특별하게 어려운 문제,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뭔지’를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내놓은 결과들은 그간의 고민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수소가 친환경이 아니다? 수소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풍부한 물을 분해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현재 생산되는 수소는 대부분 화석연료를 정제하면서 생기는 ‘부생 수소’다. 물 분해 비용은 부생수소보다 가격이 2.5배 높다. 친환경 연료라고 생각했던 수소가 화석연료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이 부연구단장은 물 전기분해의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봤다. 이 부연구단장이 개발한 물 분해 촉매는 기존과 비교해 생산성은 6배 높고, 지속시간은 4배 이상이다. “세상이 변화하려면 학계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고, 회사가 투자해서 이윤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 분해 가격이 낮아지면 회사들이 물 분해로 수소를 생산하기 시작할 거에요. 또 이산화탄소를 바꿔서 이득이 생기면 이산화탄소 제거가 산업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산화탄소를 연료로 바꾸는 촉매 그가 천착하는 또 한 분야는 이산화탄소 제거 촉매다. 빛을 흡수하고 그 에너지로 이산화탄소를 메탄, 일산화탄소 등으로 변환하는 이산화티타늄(TiO 2 )이 기본이 된다. 이산화티타늄은 연간 500만 톤이 팔릴 만큼 널리 쓰이고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면서도, 바꾼 생성물은 연료로 쓸 수 있다. “전 세계 이산화티타늄 광촉매는 일본과 독일이 많이 주도하고 있어요. 저희가 만든 촉매가 다른 점은 가시광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촉매가 가시광이 아닌 자외선으로만 작동해서, 실내에서 사용하기 어렵고 효율도 떨어졌습니다. 이번 촉매는 이산화티타늄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상(phase) 중에 한 쪽 상만 비결정으로 만든 것인데요. 이 방법으로 만든 촉매는 세상에 유일무이합니다.” 그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활발한 다른 국가 촉매들과 경쟁하기 위해 이 촉매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이효영의 블루 이산화티타늄’이다. 이 촉매는 특히 메탄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일산화탄소를 생산하기 때문에 연료로서 가치가 높다. 이 부연구단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격이 낮아지고 이득이 높아져서 상용화 될 때까지, 안정성과 효율을 향상시킨 촉매가 계속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푸는 과학자 이효영 부연구단장이 처음부터 수소와 이산화탄소 촉매 연구를 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9년도에 성균관대에 부임하면서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그래핀 연구를 시작했다. 2010년도에는 산화된 그래핀을 상온에서 환원할 수 있는 기술을 제안했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1700회 넘게 인용됐으며, 이후 이 기술로 회사가 만들어졌다. 그는 2015년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에 합류하면서 더욱 도전적인 연구 주제를 잡았다. 장기적 안목으로 연구를 지원하는 IBS 특성을 십분 활용해, 가장 어렵고 전례 없는 연구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빛만으로 거울상 이성질체를 만드는 시도다.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거울에 비친 모양인 다른 분자를 ‘거울상 이성질체’ 혹은 ‘카이랄’성이 있다고 부른다. 모든 화학 합성에는 거울상 이성질체가 반반씩 무작위로 생기는데, 이 두 가지 모양이 우리 몸에서 나타내는 기능이 다르다. 이를테면 감기약인 이부노프로펜도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한 쪽만 몸에서 작용한다. “우리 몸도 다 카이랄한 구조를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두 거울상 이성질체 중 유용한 쪽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카이랄성을 증가시키는 보조제를 넣습니다. 저희는 빛만 사용해서 카이랄 화합물을 만들 수 있는가, 시도를 하는 것이죠” 라고 설명했다. 이 부연구단장은 지금까지 얻은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들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데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냥 논문만 써서는 안되고, 정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실증을 해 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요. 그러려고 보니까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인류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다. ▲ [IBS People_이효영 나노구조물리 연구단 부연구단장 편] 영상으로 보기 IBS 커뮤니케이션팀 최지원 2021.03.24
  • 데이터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데이터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데이터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IBS People_박성규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선임연구원 편 “아침에 일어나서 활동하고 잠이 들 때까지. 우리의 하루는 수많은 데이터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데이터 속에 은닉된 정보를 분석하여, 우리 삶의 질을 높일 유익한 조언을 뽑아내는 것이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학문입니다.” 박성규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선임연구원(만 38세)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면 장애나 우울증 개선 등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구축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학부를 졸업한 뒤 전자회사에서 ‘고객의 소리(VOC)’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좋아하는 점, 불만 등 당시 사용자들이 보낸 방대한 의견은 제품을 개선하는 데 사용됐다”며 “근시일 내에 데이터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중요한 도구가 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해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 [IBS People_박성규 선임연구원 편] 영상으로 보기 데이터 사이언스가 ‘떡상’한 계기 ▲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최종 경기에서 첫 수를 놓고 있는 이세돌 9단(오른쪽)의 모습. (한국기원 제공) 많은 사람들이 데이터 사이언스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달은 때는 아마도 2016년일 것이다. 16만 개의 바둑 기보를 학습하고, 3000만 개의 패턴을 파악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 바둑 최고수와의 바둑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다(물론 최근 개발사인 딥마인드는 선행학습은 물론 규칙을 몰라도 바둑을 둘 수 있는 인공지능을 내놨다). 하지만 학계에서 데이터 사이언스가 본격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 건 이보다 앞선 시점이다. 2000년대 초중반, 앨버트 바라바시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를 필두로 한 과학자들은 세포, 사람, 경제, 인터넷 등 자연의 구성요소들은 각각 개별의 개체가 아닌, 관계로 얽혀진 네트워크로 작동한다는 이론을 내놨다. 특히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링크(Linked)’의 저자이기도한 바라바시 교수는 ‘스케일 프리 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이 관계망 속에는 반드시 연결이 몰리는 ‘허브’가 존재해 관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이는 산불과 같은 자연 현상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 이루어지는 사회관계에서도 확인됨을 밝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인플루언서’, 항공노선의 ‘허브공항’, 바이러스 감염의 ‘슈퍼전파자’ 등이 분석된 허브의 대표적인 사례다. 박 선임연구원은 “이때를 기점으로 계산사회학(Computational Social Science) 연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며 “계산사회학 연구는 후속연구를 통해 음악/패션/밈(meme) 등의 유행, SNS를 통한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데이터로 ‘아픔’을 치료할 수 있을까 석사 과정 동안 박 선임연구원은 데이터로 사람의 우울감을 평가하고 예측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 ‘좋아요’ 등으로 관심을 보인 콘텐츠를 바탕으로 우울감을 예측하는 연구였다. 우울감을 예측하면 다양한 정신장애를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다. 박 선임연구원은 “데이터로 질환을 이해 및 예측하는 것을 넘어 직접적으로 사용자들의 삶에 개입해서 우울증을 개선하는 어플리케이션(앱) 등을 개발하고 싶었다”며 “의학적 판단이 필수로 수반돼야 하는 우울증보다 조금 더 빠르게 사용자들에게 사용해볼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수면 데이터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박 선임연구원은 IBS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의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슬립스(Sleeps)’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슬립스는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해 일상생활 행동 관찰 데이터를 수집하는 연구로 분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수면 패턴을 이해 및 예측하는 연구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수면 중재(intervention) 앱 등 콘텐츠를 제작하는 연구다. ▲ IBS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의 슬립스(Sleeps) 실험 참가자 모집 공고. 연구진은 현재까지 140명의 참가자들을 모아 일상생활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실험 참가자들은 핏빗(fitbit), 삼성 갤럭시워치 등의 웨어러블 기기를 24시간 착용하고 1달 동안 생활하게 된다. 연구진은 참가자의 활동 시간, 수면 시간, 활동 패턴, 생체 신호 등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다. 데이터를 이미지 형태로 정제한 후, 딥러닝 알고리즘 통해 활동 패턴 별로 참가자를 군집화하고, 해당 결과를 정신과 전문의와의 협업을 통해 분석하면 5~7개의 그룹이 만들어진다. 가령, ‘잠은 많이 자는데 수면의 질이 나쁜 그룹’, ‘수면 시간이 적은 그룹’ 등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이 데이터는 중재 연구에 쓰인다. 중재는 비침습적 치료로 일상생활에 개입해서 어떤 행동을 유도하거나 막는 인지 행동 치료를 의미한다. 가령, 평소보다 활동량이 적었다면 “오늘은 잠을 잘 못잘 것 같으니 미리 어떤 행동을 해보세요.” 등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참가자에게 ‘꿀수면’을 위한 맞춤형 제안이 가능한 것이다. 수면을 넘어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하는 데이터 ▲ 박성규 IBS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선임연구원의 최종 연구목표는 데이터로 사람들의 정신 및 신체적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데이터 사이언스는 그 분야를 더욱 확장해 나가고 있다. 초기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가 어떤 현상을 이해하는 것에 주력했다면, 최근의 연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까지 넓혀졌다. 또 새로운 데이터가 계속 축적되며 예측 정확도 역시 매우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IBS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은 불면증 연구를 발판 삼아 비슷한 방법론을 이용해 다루기 까다로운 주제인 우울증, 아동 청소년의 주의력결핍장애(ADHD),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의 정신장애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해 나가려 한다. 박 선임연구원은 “데이터에서 의미를 찾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를 발판으로 다양한 예측 분석을 수행하고 여기서 찾은 통찰을 시스템에 주입해 실제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를 하자는 것이 목표”라며 “데이터로 사람들의 행동과 정신건강 등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연구 및 중재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인류의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가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IBS 커뮤니케이션팀 권예슬 2021.03.09
  • IBS x UNIST 시너지로 연구에 날개를 달다_두번째 이야기 IBS x UNIST 시너지로 연구에 날개를 달다_두번째 이야기 IBS x UNIST 시너지로 연구에 날개를 달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대전 본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5개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기타 대학들에 캠퍼스 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연구주제를 선택하고 자유롭게 협력해 연구기간 제한 없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현재 3개의 각기 다른 분야의 연구단을 유치해 세계적인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IBS와 UNIST의 교집합이 된 사람들을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내고 있는지 들어봤다. <두번째 이야기> “유럽, 미국을 거쳐 IBS에 온 이유, 안정적인 연구 환경과 연구자들의 열정“ 올란도 쉐러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부연구단장은 2017년부터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부연구단장 겸 UNIST 생명과학부 특훈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암의 발생 원인을 찾고,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이자 화학자다. 쉐러 부연구단장은 그동안 미국 하버드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등에서 화려한 연구 경력을 쌓아왔다. 그런 그가 한국 온 이유는 뭘까. 쉐러 부연구단장은 “한국의 과학 분야 연구 역량은 10~20년 사이에 크게 성장했고, 중국이나 싱가포르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한국처럼 계속 성장 중인 국가는 연구 분위기와 환경이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미국에서 연구하던 쉐러 부연구단장은 유전체 항상성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동료인 명경재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장이 한국에서 새 연구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는 아시아 지역에 세계 최고의 유전체 항상성 연구소와 연구 허브를 구축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흥미를 느끼고, IBS에 합류했다. IBS에 합류한 이후 그는 지난해 이자일 UNIST 생명과학부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DNA 위를 움직이며 손상 부위를 찾는 단백질의 이동 원리를 밝혀내는 연구 성과를 냈다. 이 연구는 2019년 8월 2일 국제학술지 '뉴클레익 에시드 리서치' 온라인판에 게재되며 '중대한 발견(Breakthrough Article)'으로 주목받았다. 연구팀은 'DNA 커튼'이라고 불리는 단분자 분광학 기술을 이용해 DNA 위에서 움직이는 ‘XPC-RAD23B’ 단백질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그 결과 이 단백질이 DNA를 따라 움직이며 손상 부위를 확인한다는 것과, XPC-RAD23B 단백질이 DNA 위의 다른 단백질을 피해 움직인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 *Orlando D Schärer et al., “Single-molecule visualization reveals the damage search mechanism for the human NER protein XPC-RAD23B”, Nucleic Acids Research, 2019, DOI: 10.1093/nar/gkz629 DNA는 자외선이나 유독물질에 쉽게 손상되고 변형되는데, 그럼에도 돌연변이가 적은 것은 몸속에서 손상된 DNA를 찾아 원래 상태로 복구하기 때문이다. 복구 과정엔 다양한 단백질이 작용하는데, 이번 연구는 XPC-RAD23B 단백질이 손상 부위를 확인하는 것이 복구 과정의 시작임을 밝혀 DNA 손상으로 생기는 다양한 유전 질환의 치료 가능성을 열었다. 최근 쉐러 부연구단장은 DNA를 화학적으로 조작해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특히 그는 DNA의 손상 과정과,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과정을 연구해 암 세포를 치료하는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몸에는 자연적으로 손상된 DNA를 원상 복구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일부 사람들의 경우 유전적인 문제로 이런 복구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돌연변이가 급격히 늘어난다. 이것이 반복되면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암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손상된 DNA를 고쳐 원래대로 복구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쉐러 부연구단장은 돌연변이가 DNA 염기서열 중 어떤 부위에서 발생했는지를 찾아내고, 돌연변이가 발생한 부위를 정상적으로 복구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쉐러 부연구단장은 “이런 연구는 적합한 치료 약물을 찾기 위한 중요한 기초연구”라며 “기초연구를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IBS 같은 기관이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고 말했다. 또한 쉐러 부연구단장은 “한국엔 잠재력 있는 학생과 능력이 뛰어난 연구자들이 많다”며 “특히 IBS와 UNIST에는 넘치는 열정으로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과학과 공학의 가치를 높게 매긴다는 점도 쉐러 부연구단장은 긍정적으로 봤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과학기술 연구 관련 투자를 줄이는 추세인데 한국은 이에 대한 지원이 여전히 활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조사한 ‘2018년 연구개발활동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4.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 중 가장 높다. 총 연구개발비 규모도 85조7287억 원(779억 달러)으로 OECD 국가 중 5위를 차지한다. 그는 “미국, 스위스 등이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은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연구하기 쉬운 환경 덕분”이라며 “IBS는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기 때문에 외국의 유능한 학생들도 IBS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이끄는 연구팀은 총 5개 대륙에서 모인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다. 그는 “여러 문화권의 학생들이 모일수록 더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온다”며 “이는 한국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1.03.03
  • IBS x UNIST 시너지로 연구에 날개를 달다_첫번째 이야기 IBS x UNIST 시너지로 연구에 날개를 달다_첫번째 이야기 IBS x UNIST 시너지로 연구에 날개를 달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대전 본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5개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기타 대학들에 캠퍼스 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연구주제를 선택하고 자유롭게 협력해 연구기간 제한 없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현재 3개의 각기 다른 분야의 연구단을 유치해 세계적인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IBS와 UNIST의 교집합이 된 사람들을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내고 있는지 들어봤다. <첫번째 이야기> “공동의 목표 세우고 함께 달리는 개방된 연구 협력” “미국에서부터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끊임없이 공동연구를 진행해왔지만 IBS에 소속돼 연구한다는 건 그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연구자들 사이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느낌이랄까요.” 10월 14일 UNIST 원자스케일 전자현미경 연구실에서 만난 이종훈 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분석그룹 리더(UN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연구 협력의 개방성을 가장 큰 교집합 시너지로 꼽았다. 그가 이끄는 IBS, UNIST 연구팀은 올해 초 싱가포르 난양공대, 세종대 연구팀과 함께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 물질에 부분적으로 전기가 통할 수 있게 만드는 큰 성과를 이뤘다. 공동 연구팀은 2차원 절연체 물질인 ‘육방정계 질화붕소(h-BN·hexagonal boron nitride)’ 분자를 엇갈려 쌓은 적층 구조를 생성해 여기에 전도 채널을 구현했다. 연구팀은 원자 분해능 투과전자현미경(TEM)을 이용해 h-BN이 서로 맞닿아 있는 적층 경계면에서 원자 하나 두께의 전자통로가 길쭉한 육각형 모양으로 배열돼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3월 6일자에 실렸다 * . * Zonghoon Lee et al., “One-dimensional hexagonal boron nitride conducting channel”, Science Advances, 2020, DOI: 10.1126/sciadv.aay4958 이 그룹리더는 “이번 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미래 기능성 소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IBS와 UNIST 연구팀이 함께 공동의 목표를 갖고 연구한 덕분에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그룹리더가 IBS와 UNIST에 공동으로 소속돼 연구를 한 건 2019년부터다. 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단장 겸 UNIST 특훈교수인 로드니 루오프 교수가 UNIST에 재직 중이던 그에게 합류를 제안했다. 탄소물진 연구 분야의 대가인 루오프 교수는 이 그룹리더와 수년간 함께 연구했던 인연이 있었다. 2011년 UNIST에 오기 전까지 그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와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의 국립전자현미경센터(NCEM)에서 투과전자현미경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물질의 근본적인 구조와 특성을 탐색하는 연구를 했다. 특히 2004년 ‘꿈의 소재’라고 불리던 그래핀을 분리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때마침 그가 일하고 있던 LBNL에서 그래핀 연구에 속도가 붙었다. 당시 새롭게 개발 중이던 수차보정 투과전자현미경으로 탄소 원자 하나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 그룹리더는 투과전자현미경을 이용해 탄소와 저차원 소재의 성장, 결함, 변형, 특성 등을 원자 수준에서 관찰하고 분석해왔다. 나아가 이런 기술을 실시간으로 실험하는 기술도 구현하고 있다. 이런 연구는 한 분야의 전문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이 그룹리더는 “물질을 만들고, 더 나아가 물질의 물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계산하고 구조와 특성을 분석해야 한다“며 ”장비를 다루는 실험과학자, 계산과 분석을 위한 이론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IBS는 그렇게 다양한 연구자가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이 그룹리더는 “IBS에 소속된 교수들이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함께 연구한다”며 “공동 연구자들끼리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바로 연구를 제안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고가의 최첨단 장비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점도 연구 효율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UNIST에서 갖추고 있는 기본 장비 외에 추가로 필요한 특성화된 연구 장비 등을 IBS 지원으로 장착해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 그룹리더는 “UNIST 기본 인프라에 IBS의 특정 연구에 특화된 장비 투자 여력이 합쳐져 연구에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또한 덕분에 UNIST 학생들은 안정적인 연구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IBS 소속 연구자들과 다양한 공동연구를 통해 장기적인 주제를 설정하고, 연구기간에 제약 없이 안정적인 연구를 수행하다보니 연구의 질과 수준도 높아졌다. 이 그룹리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외국과의 국제 공동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할 계획”이라며 “인류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물질을 실시간으로 탐색하고 만들어낸다는 목표를 향해 앞으로도 연구에 정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1.02.03
  • 입자물리학의 보물을 찾아서 입자물리학의 보물을 찾아서 입자물리학의 보물을 찾아서 이수형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연구위원 문학에는 존재하는지도 모를 전설의 보물이나 인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많다. 만화 <원피스> 주인공 루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물 원피스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영화 <모아나>에서 모아나는 전설 속 바다의 신, 마우이를 찾아 바다로 나간다. 입자물리학계에도 모아나와 루피처럼 존재가 불분명한 보물을 찾는 모험가들이 있다. 암흑물질 후보 ‘액시온’을 찾는 연구자들도 그 중 하나다. 액시온 탐색 실험을 수행하는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에서 이수형 연구위원을 만났다. 액시온은 현재 우주에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추측한 입자다. “우리 우주가 처음 생성되었을 때 물질과 반물질이 동등한 양으로 생성 됐으리라고 기대되는데, 현재 우주에는 물질만 남았습니다. 반물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물질과 반물질 사이에 왜 비대칭이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 ‘CP대칭성 깨짐’ 입니다.” 물리 현상은 전하가 바뀌거나(charge) 거울에 비친(parity)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를 각각 C대칭, P 대칭이라고 부른다. CP대칭성 깨짐은 이 둘을 동시에 생각하는 CP대칭이 위반된다는 뜻이다. 이 현상은 약한 상호작용에서는 설명되었지만, 강한 상호작용에서는 실험적으로 매우 작거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강한 CP 문제라고 하며, 이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이 페차이-퀸 이론이다. “페차이-퀸 이론이 맞다면 액시온이라는 입자가 존재해야 합니다. 또 액시온의 특성은 암흑물질과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암흑물질의 후보이기도 합니다. 강한 CP문제와 암흑물질 이 두 가지가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난제인데, 이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입자인 셈이죠.” 이 입자는 풀리지 않은 지저분한 문제들을 싹 없애준다는 뜻에서 미국의 유명 세제 브랜드 이름이 붙었다. 연구자들이 찾는 보물의 정체다. 이 값진 보물은 근 10년 간 전 세계에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의 생성 원리가 액시온과 비슷한데, 힉스 입자가 2012년 발견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액시온의 존재를 더 유력하게 생각하고 있다. 액시온을 찾는 연구자들은 액시온이 존재할 수 있는 신호 영역을 감지함으로써 액시온을 탐색한다. 액시온이 어떤 질량을 갖는지 모르기 때문에,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듯 주파수를 조절하면서 액시온 신호를 탐색한다. 그러나 신호가 작아질수록 실험 감도가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시간이 걸린다. ▲ 액시온 탐색 실험 현황. 밝은 하늘색 QCD 액시온밴드는 액시온이 존재할 수 있는 이론적인 영역을 나타낸다. 가로축은 질량(신호 주파수), 세로축은 결합상수(신호 세기)를 나타낸다. 가장 왼쪽 녹색 영역이 ADMX 실험에 의해 탐색 됐으며, 연구단은 파란색 영역을 탐색했다. 이수형 연구위원은 작년 고병록 연구위원과 함께 주파수 1.60~1.65GHz에 해당하는 질량의 액시온 탐색을 이뤄냈다. 액시온이 이론적으로 존재 가능한 QCD 밴드에 도달했다. “저희가 이번에 QCD 밴드에 근접한 결과를 낸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현재 액시온 실험을 가장 잘하고 있는 그룹이 미국 ADMX라는 실험인데, 지금까지 30년 정도를 했거든요. 저희가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QCD 밴드에 도달했기 때문에, ADMX를 뛰어넘을 수 있는 첫 번째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탐색 속도라면 QCD 밴드를 모두 탐색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이수형 연구위원은 수십, 수백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한다. 범위도 매우 넓을뿐더러 실험 감도를 올리는 데에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이 실험 시간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 방법적인 측면에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트릭이나 방법들이 실험에 적용되면 수십, 수백 년으로 예상하는 이런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기술이 점점 발전을 할 테니까요, 그런 부분을 고려하면 더 빨리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연구단은 최근 12 테슬라에 이르는 초전도 자석을 설치했다. 자기장이 클수록 신호가 강해져, 더 유리한 환경에서 액시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자기장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기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연구진은 새 자석으로 액시온 탐색 실험 판도를 바꾸고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액시온 뿐만 아니라 어떤 새로운 입자를 찾는 실험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장은 액시온을 찾으면 가장 좋겠지만요.” 원피스를 찾는 해적들과 달리, 액시온 연구자들은 액시온을 누가 먼저 발견하는지 보다 액시온의 존재 유무와 액시온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입자물리학의 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액시온은 과연 존재할지, 액시온 시대를 열어가는 연구자들의 다음 소식이 기다려진다. [IBS People_이수형 연구위원 편] 영상으로 보기 IBS 커뮤니케이션팀 최지원 2021.01.12
  • 선후배에서 동료 연구자로 함께 뇌의 비밀을 어루만지다 선후배에서 동료 연구자로 함께 뇌의 비밀을 어루만지다 선후배에서 동료 연구자로 함께 뇌의 비밀을 어루만지다 글 박영경 기자 2018년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공동 단장으로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교세포연구단장을 선임했다. 그간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을 이끌던 신희섭 단장은 사회성 뇌과학 그룹을, 이창준 단장은 인지 교세포과학 그룹을 각각 맡아 연구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로 했다. 사실 두 사람은 신 단장이 2012년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KIST에서 함께 연구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이 단장을 한국으로 불러온 사람도 신 단장이었다. 선후배에서 동료 연구자가 된 두 과학자를 만났다. 2003년 학회에서 운명 같은 첫 만남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섬에서 열린 ’2003 콜드 스프링 하버 미팅‘에서 신 단장은 신경계에서 PLC-β4 유전자가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과정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신 단장님은 뇌과학 분야에서 워낙 유명했습니다. 신 단장님의 발표를 듣고 교세포가 이 과정에 관여하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서 신 단장님에게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요청했죠. 그러자 한국에 와서 2주간 실험을 해보자고 하시더군요.” 이 단장은 17년 전 신 단장과의 첫 만남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에머리대 박사후연구원이었던 이 단장은 실험을 위해 신 단장이 이끌던 KIST 신경과학센터를 찾았고, 신 단장은 이 단장을 스카웃하기 위해 KIST 원장과 면담까지 잡았다. 이를 계기로 이 단장은 이듬해인 2004년 센터에 합류했다. 신 단장은 “이 단장은 신경계의 전기신호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등 당시 신경생리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며 이 단장 스카우트에 공을 들인 이유를 밝혔다. 이 단장이 KIST 신경과학센터에 합류한 뒤 신 단장은 유전학을 바탕으로 한 뇌과학 기초 연구에, 이 단장은 전기생리학을 바탕으로 한 행동 분석에 주력했다. 연구에서 시너지가 나기 시작했다. 가령 저체온증을 신경학적 관점에서 연구했다.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인 아세트콜린에스터레이스(AChE)와 치매의 관계를 연구하던 두 사람은 같은 주제를 다룬 논문이 해외에서 먼저 발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단장은 연구 방향을 바꿔 아세트콜린에스터레이스와 저체온증과의 관계를 조사해보자고 제안했다. 신 단장이 치매 연구를 위해 아세트콜린에스터레이스를 생성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생쥐에서 저체온증이 나타났다는 점을 포착한 것이다. 이 단장은 생쥐의 교감신경에서 니코틴 수용체의 전기신호를 분석했고, 그 결과 정상 생쥐에 비해 신호가 40% 감소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국제학술지 ’생리학 저널‘ 2007년 2월호에 발표했다. 이 단장은 “당시 연구를 접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뇌 밖으로 눈을 돌려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신 단장님이 묵묵히 기다려줬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12년 신 단장이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에 선임되면서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2018년 공동 단장으로 다시 만났다. 당시 이 단장은 IBS에 교세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신규 연구단 설립을 신청하고 심사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 단장은 “연구단을 새로 만드는 일은 초기에 에너지가 매우 많이 드는 만큼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공동 연구단장을 맡아달라는 IBS의 제안은 연구자로서 매우 좋은 기회였다”며 “신 단장님이 공동 연구단장 운영을 흔쾌히 수락한 덕분에 신 단장님과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KIST부터 IBS까지 두 사람이 자석처럼 붙어 다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이 단장은 “신 단장님과의 인연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며 “뇌과학 분야의 대가 옆에서 같이 연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뇌과학에 유전학 도입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기억, 감정, 공감 등 인지 기능이 신경계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일어나는지 연구하고 있다. 신 단장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이 연구에 유전학을 도입했다. 그는 1997년 뇌에서 간질과 운동 마비를 일으키는 PLC-β1과 PLC-β4 유전자를 발견해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지금까지 특정 유전자를 조절한 모델 생물을 이용해 다양한 신경학적 기작을 밝혀냈다. 이후 연구팀은 실험에 사용한 생쥐 18종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한 결과, 다른 생쥐의 공포에 특히 강하게 공감한 그룹의 생쥐에게서만 Nrxn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른 종류의 생쥐의 Nrxn3 유전자에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자 이들의 공포 공감 능력 역시 증가했다. 공감 능력의 차이를 결정하는 신경회로를 규명한 연구도 유전학을 적용한 대표적인 뇌과학 연구 중 하나다. 2018년 신 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생쥐 두 마리를 각각 이웃한 방에 넣고, 한쪽 생쥐에게만 전기 충격을 줬다. 이때 방을 투명한 벽으로 만들어 옆 방의 생쥐가 전기 충격을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웃 생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찰자인 생쥐는 상대방 생쥐의 공포에 공감하여 행동이 얼어붙게 된다. 즉, 공감 공포 반응을 보인다. 연구팀은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18종의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한 종류의 생쥐 그룹이 이웃 생쥐의 공포에 대하여 특히 증가된 공감 공포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몸을 부르르 떠는 ‘프리징(freezing)’ 행동을 다른 쥐보다 더 강하게 보였다. 이후 연구팀은 실험에 사용한 생쥐 18종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한 결과, 다른 생쥐의 공포에 특히 강하게 공감한 그룹의 생쥐에게서만 Nrxn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른 종류의 생쥐의 Nrxn3 유전자에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자 이들의 공포 공감 능력 역시 증가했다. 연구팀은 Nrxn3 유전자의 구체적인 기작을 밝히기 위해 전두엽 전대상 피질 부위의 서로 다른 종류의 뉴런에서 Nrxn3을 제거한 뒤 생쥐의 공감 능력을 비교했다. 전대상 피질은 충동 조절과 감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험 결과 억제성 SST 뉴런(신호 강약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뉴런)에서 Nrxn3 유전자를 제거한 경우 생쥐의 공감 능력이 크게 증가됐다. 현재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사회성 뇌과학 그룹은 공감능력의 뇌 기전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 연구팀은 Nrxn3 유전자 연구 당시 생쥐 머리에 빛을 쪼여 SST 뉴런을 억제하면 공포에 대한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단에서 올해 2월에는 빛으로 RNA의 이동을 조절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RNA는 DNA의 유전정보를 단백질로 전달하는 물질로, 단백질 합성을 빛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신 단장은 “뇌는 늘 학습하기 때문에 유전자에 선천적으로 코딩된 정보보다 후천적으로 뇌에 기록된 특성이 중요하다”며 “최근에는 광유전학 기술이 발전해 특정 단백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아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신경세포에서 별세포까지 연구 분야 확장 인간의 뇌에는 약 1조 개의 세포가 있다. 이중 약 10%에 해당하는 1000억 개는 신경세포(뉴런), 나머지는 신경교세포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신경세포였다. 신 단장의 주요 연구 분야도 신경세포다. 이 단장의 주요 연구 분야는 교세포, 그중에서도 별세포의 역할을 심층적으로 연구한다. 별세포는 돌기들이 별처럼 사방으로 뻗은 세포로, 주로 신경세포의 기능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2010년 이 단장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별세포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를 분비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뉴런만 신경전달물질을 합성하고 분비한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연구였다. 이듬해 이 단장은 별세포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를 내보낸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학계에서 별세포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엇갈린다. 신경전달 과정에서 별세포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신경세포만 신경전달에 관여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신 단장은 “신경세포와 별세포 모두 뇌 기능에 관여하는 만큼 뇌를 움직이는 하드웨어”라며 “이 단장이 연구단에 합류하면서 신경세포부터 별세포까지 뇌의 신경학적 작동 과정을 더욱 세밀하게 밝혀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이 단장이 이끄는 인지 교세포과학 그룹은 별세포를 연구해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뇌 질환의 발병 기작을 파헤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별세포가 도파민 세포를 잠재우면 파킨슨병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파킨슨병은 근육 강직이나 몸동작이 느려지는 등 운동장애가 나타나는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그간 파킨슨병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사멸해 생긴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연구팀은 쥐에 파킨슨병을 유발시킨 뒤 별세포에서 가바의 분비를 억제했다. 그 결과 도파민 생성이 원활해지면서 쥐의 운동 기능이 향상됐다. 또한 광유전학 기술로 파킨슨병에 걸린 쥐의 도파민 신경세포를 자극하자 걸음 수가 증가하면서 증상이 호전됐다. 이 단장은 “파킨슨병 초기에는 도파민 신경세포의 생성 기능이 중단됐을 뿐 아직 사멸하지 않은 상태”라며 “도파민 신경세포를 잠재우는 가바를 조절하면 파킨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은 뇌졸중 회복 과정에 별세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찾아내 논문 투고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별세포가 가바를 과도하게 분비하는 반응성 별세포로 변하면 뇌세포의 기능 회복도 억제된다”고 밝혔다. 연구단의 미래를 맡기다 신 단장은 올해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는 기초과학 연구에서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단장의 협업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 단장은 국내에서 뛰어난 연구자들과 공동 연구를 많이 진행했다”며 “다양한 연구자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배울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최근 곰팡이 분야 대가인 이향범 전남대 농식품생명화학부 교수와 공동으로 치매 등 난치병 치료제의 후보물질을 찾고 있다. 이 단장은 “푸른곰팡이에서 세계 역사를 바꾼 치료제 페니실린을 얻은 것처럼 치매 치료제도 곰팡이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에서 시작했다”며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협업하는 건 늘 즐겁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인터뷰 중 잠깐 쉬는 시간에도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실험 결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천상 연구자였다. 선후배로, 동료 연구자로 두 사람이 이토록 오래 인연을 이어온 비결이 뭘까. 신 단장은 “연구자가 궁금한 게 생기면 머뭇거리지 않고 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율성이 생명처럼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연구 철학”이라며 “이 단장과는 이런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장이 은퇴한다는 이유로 연구단이 해체되는 건 막대한 손해인 만큼 이 단장이 뒤를 이어 연구단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2020.09.15
  • 나노 소재가 만드는 미래의 의학, ‘바이오 일렉트로닉스’ 나노 소재가 만드는 미래의 의학, ‘바이오 일렉트로닉스’ 나노 소재가 만드는 미래의 의학, ‘바이오 일렉트로닉스’ IBS People_박장웅 나노의학 연구단 연구위원 “미래에는 수술이 필요하지 않아질 수도 있습니다. 몸 속 나노로봇이 실시간으로 몸 상태를 감시하고, 질환이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인 치료를 취할 테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우선 모든 전자기기를 신축성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박장웅 나노의학 연구단 연구위원(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은 나노디바이스로 사람의 질병을 감지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반도체의 성능 향상과 함께 소형화되고, 자유롭게 구부러지는 등 형태 또한 자유로워지며 디바이스(전자기기)의 의학적 활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나노의학은 전통적인 생명의학 분야와 어우러져 인간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IBS People_박장웅 연구위원 편] 영상으로 보기 나노기술과 의학의 만남 박 연구위원이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 연구단은 관점에 따라 서로 멀게도, 가깝게도 느껴지는 나노기술과 의학을 융합하는 연구를 한다. 나노의학은 1970년대에 등장한 ‘패치 클램프’ 기술이 시초로 꼽힌다. 1991년에 노벨상이 수여된 패치 클램프 기술은, 미세한 유리관을 통하여 세포막을 통과하는 이온의 흐름을 연구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살아있는 세포에서 나오는 생체신호를 읽어낸 기술로, 생체신호를 토대로 질병을 감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2019년 패치 클램프 기술을 지난 15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논문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박 연구위원은 “패치 클램프를 필두로 생체전자학(바이오일렉트로닉스) 분야가 시작됐지만, 당시에는 소자 제작 기술의 한계로 실제 의학적 적용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며 “크기가 커서 신체 내부에 심기 어렵고, 딱딱한 소재들이 신체의 움직임을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체전자학이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자유롭게 구부러질 수 있는 소자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현재 생체전자학 분야에서는 존 로저스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와 찰스 리버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세계적인 대가로 꼽힌다. 박 연구위원는 로저스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리버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 시절을 보냈다. 이후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한 그가 나노의학 연구단으로 적을 옮긴 것은 ‘정밀의학 실현’이라는 공통의 목표 하에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융합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스트레스 측정하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최근 박장웅 연구위원 연구팀은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바로 스트레스 정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콘택트렌즈다. 스트레스는 주변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량화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병원, 연구실 등 전문 시설을 방문하지 않고도, 눈물 속 스트레스 호르몬(코티졸) 수치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콘택트렌즈 형태의 헬스케어 기기를 개발했다.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뒤 스마트폰을 눈 가까이 가져가면 어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간단히 스트레스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선 2014년, 구글은 혈당 수치를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개발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구글 연구진이 개발한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렌즈에 회로를 구현했기 때문에 사람이 일상적으로 착용하긴 어려웠다. 이 때문에 구글 연구진은 죽거나 마취한 토끼의 눈에 렌즈를 삽입해 실험을 진행했다. 박 연구위원은 “우리 연구진은 실제 착용 가능한 소프트렌즈에 무선 회로를 구현했고, 그 결과 실제 사람이 착용한 상태에서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며 “렌즈를 구성하는 다양한 디바이스를 신축성 있고, 투명하게 구현한 덕분에 임상실험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스트레스 호르몬 측정용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모습. 몸 상태 읽고 곧바로 치료하는 시대 전 세계적으로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반도체 기술의 성장과 함께 스마트워치, VR 헤드셋 등 웨어러블 전자기기들은 편안한 착용감을 위해 신체의 곡선과 유사한 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또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신체 구조에 맞춰 자유롭게 변형되는 기술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전자기기를 구성하는 모든 소자들을 신축성 있게 만드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박장웅 연구위원 팀은 지난 해 6월 3D 프린팅을 통해 전극을 신축성 있게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박 연구위원 팀은 지난 해 6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에 게재한 연구를 통해 이 한계를 돌파할 최소한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모든 소자를 신축성 있게 만들지 못하더라도, 소자와 소자를 잇는 배선들을 신축성 있게 만드는 것이다. 연구진은 높은 신축성을 가진 금속에 구조를 탄탄하게 보존해주는 특성을 가진 탄소나노튜브를 더한 복합체를 제조했다. 이후 상온에서 3D 프린터를 통해 전극을 배선했다. 단단한 표면뿐만 아니라 피부처럼 변형이 쉽고 유연한 표면에서 회로를 그려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일련의 연구들을 토대로 머지않은 미래에는 자유자재로 잡아당겨 피부에 붙일 수 있는 웨어러블 전자기기나 체내에 삽입할 수 있는 유연한 바이오 전자기기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IBS 커뮤니케이션팀 권예슬 2020.08.13
  • 미시세계를 어루만지는 기술을 향해 미시세계를 어루만지는 기술을 향해 미시세계를 어루만지는 기술을 향해 필립 윌케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연구위원 2019년, 원자 1개를 볼 수 있는 MRI 기술이 세상에 공개됐다.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개별 원자의 양자 상태를 보는 기술을 꾸준히 개척해오고 있는데, 이번 성과로 인류는 엄청나게 작은 원자의 스핀까지 볼 수 있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세밀한 MRI’ 연구의 주역인 필립 윌케 연구위원을 만났다. 세상을 이루는 블록을 찾아서 “원자는 1mm를 천만 개로 쪼갠 크기에요. 지구를 오렌지만하게 줄이면 지구에 있던 오렌지가 원자 크기가 될 겁니다. 이런 원자를 보고, 움직이고, 쌓을 수 있는 기술은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이죠. 제가 주사터널링현미경(STM)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필립 윌케 연구위원은 원자 연구를 시작한 이유를 묻자 원자를 볼 수 있는 자체가 매혹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원자를 보려고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연구주제로 선택한 것은 그래핀이었다. 그래핀을 다른 분자와 결합시키면 새로운 기능을 갖는데, 이 때 구조와 표면 전하를 STM으로 읽거나 조절할 수 있다. “STM은 탐침이 물질의 표면을 훑으면서 원자 하나하나를 ‘느끼는’ 기술이에요.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표면을 훑어 나가면서 점자를 읽는 것과 비슷한데요, 원자는 빛의 파장보다도 1천 배 작기 때문에 원자를 보려면 사실 엄청난 트릭이 필요하죠.” STM을 확인 중인 필립 윌케 연구위원. 윌케 연구위원이 그래핀을 연구하던 때,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의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단장은 고체 표면 위 단일 원자를 조종하는 연구의 대가 중 하나였다. 그는 IBM 알마덴 연구소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2013년에는 원자핵의 스핀 자성을 이용해 원자를 움직이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영상, ‘A boy and his atom’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제 지도교수님과 하인리히 단장님이 친분이 있었어요. 덕분에 2010년 단장님이 괴팅엔 대학에 방문했을 때 강연을 듣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죠. 당시 저나 단장님이나 모두 STM을 이용한 연구를 했지만 대상이 달랐습니다. 제가 연구하던 그래핀은 신소재와 연결되는 반면, 원자 하나하나를 보는 연구는 양자적 성질과 더 관련이 있죠.” 단일 원자를 관찰하고 조작하는 연구는 윌케 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윌케 위원은 괴팅엔에서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IBM 알마덴 연구소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갔다. 이 곳에서 시작한 단일 원자 스핀 연구는 IBS에서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원자를 관찰하려면 그래핀과 같은 2차원 구조를 관찰할 때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작동하는 다른 종류의 STM이 필요한데요. 알마덴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전자 스핀 공명을 이용한 STM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MRI를 STM과 접목하는 기술도 막 개발되었습니다. 모든 전자와 일부 원자는 스핀이라는 자성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데요, 새 STM 기술을 이용해 단일 원자의 자기적 성질을 연구했어요.”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큰 변화를 꿈꾼다 한국에 온 뒤 그는 세계 정상급 저널인 사이언스 지를 비롯해 굵직한 논문 세 개를 제 1저자로 발표했다. 특히 작년 네이처 피직스 지에 실린 ‘원자를 보는 MRI’ 연구는 뉴욕타임즈와 인터뷰를 했을 만큼 세간의 반응도 뜨거웠다. 원자를 조작하는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지금 우리는 표면 위에 원자를 올려놓을 수 있고 그 성질을 볼 수도 있어요. 원자 조종은 지금 수 나노미터 수준의 정확도를 갖는데, 앞으로 10~20년 안에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구조를 쌓고 디바이스를 만드는 것은 이미 해 왔지만, 정말 자유자재로 원자를 다룰 수 있게 될 거에요. 여기에 인공지능을 결합해서 STM으로 원자 옮기는 일을 자동화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미 과학자들이 부분적인 성공을 거뒀고요.” 자유자재로 원자를 다룰 수 있다는 말은 양자적 특성을 다룰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이는 기본적으로 양자컴퓨터 기술과 맞닿아 있다. “물론 우리가 원자 한 개로 양자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원자 수준의 탐색이 양자컴퓨터의 이전 단계라는 점에서 실용적인 연구죠. 양자컴퓨터에서 단일 원자를 ‘잘’ 조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기초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자를 봤다고 해서 모든 성질을 다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원자의 자기적인 성질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입니다.” 다양한 블록으로 놓는 과학자의 길 윌케 연구위원은 독일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괴팅엔 대학에서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보냈다. 독일국립연구재단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의 장학생이었고, 대학교 소재지인 니더작센 주 과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공부도 잘했지만, 그를 지금의 IBS로 이끈 것은 다른 경험들이었다고 말한다. “학부 때 학생 대표로 선출돼 물리학과 운영위원회에서 일했습니다. 학과의 의사결정과정에서 1천 명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노력했어요. 성적에 도움이 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의외로 지금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신임 교수 채용 위원회에서는 후보들을 초청하고 발표를 듣는데요, 제가 곧 그런 자리에 설 지원자가 될 테니까요. 그 외에도 운영위원회에서 다루는 다양한 의제들을 통해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 익숙해질 수 있었죠.” 한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것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는데도, 경험 차 선택한 중국 교환학생 생활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학부 시절 중국 북경대에 6개월 간 교환학생으로 간 적이 있었어요. 이 때 아시아가 과학기술분야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증거 중 하나죠. 한국과 중국은 최근 기초과학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더 크게 생각하고 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지원해 주는 환경은,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인이죠.” 그는 원자에 대한 통찰이 양자컴퓨터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굉장히 전도유망하다며, 앞으로도 같은 분야에 매진하며 자신만의 방향으로 원자 연구를 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미시세계 위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는 그의 다음 연구가 기대된다. 2020.05.29
  • 양자 세계로의 다리를 놓는 이론과학자 양자 세계로의 다리를 놓는 이론과학자 양자 세계로의 다리를 놓는 이론과학자 주자르 씽나 IBS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 영사이언티스트펠로 커피와 트랜지스터, 양자 기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학자들이 있다. 커피 잔 속 커피 분자는 주변의 커피 분자들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전자기기 속 트랜지스터도 다른 부품들과 선으로 연결돼 있다. 이렇게 많은 개체들로 이뤄진 시스템을 공통적으로 서술하는 학문이 있다. 바로 통계물리학이다. “이 분야의 아름다운 점은, 복잡한 세부사항을 모르고도 대부분의 시스템이 따르는 행동양식을 알수 있다는 것이죠.”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에서 독립 연구를 꾸려나가는 영사이언티스트펠로(YSF), 주자르 씽나 연구위원을 만났다. 세계는 열린 시스템 “처음에 물리학을 시작했을 때는 천체물리학으로 시작했어요. 화려한 천체 현상들과 우주의 신비로움에 매료됐었죠. 하지만 나중에는 전 우주를 아울러 설명할 수 있는 체계에 빠져들었어요.” 우리는 사회에서 많든 적든 주변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물질도 마찬가지다. 분자는 이웃한 분자들과, 전자부품은 이웃한 부품들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입자나 에너지를 교환하는 시스템을 ‘열린시스템’이라고 한다. 열린시스템은 통계물리학의 하위 분야 중 하나인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처럼 에너지를 주고받는 열역학적 시스템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제 일은 기본적인 물리 법칙에서부터 시스템을 서술하는 모형이나 방정식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시작해요. 그 뒤에는 이를 숫자 코드나 알고리즘으로 변환합니다. 알고리즘을 슈퍼컴퓨터에 입력하고 나서, 방정식의 결과로 어떤 물리 현상이 나타나는지 연구하는 것이죠. 손으로 쓰는 오래된 방식과 고성능 컴퓨터를 쓰는 최첨단 물리학의 좋은 조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는 자신이 하는 연구가 ‘복잡한 시스템을 설명하는 틀’이라고 답한다. 열린 시스템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물리법칙으로 단순하게 설명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나온 이론들은 우리 세계, 특히 오늘날의 기술적 장치들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이를 테면 전자 소자는 지난 수십 년 간 점점 작아져, 더 적은 전력으로 빠르게 작동하는 컴퓨터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소자를 이루는 요소들이 작아지면서 양자효과가 나타났다. 인류는 개체가 무척 많거나 대상의 운동이 무척 복잡한 경우를 다루기 위해 통계물리학을 발전시켜 왔지만, 개체들이 극도로 작은 양자 체제의 통계물리학은 아직 우리의 이해 범위 밖에 있다. 양자세계 자체가 베일에 싸여 있는 셈이다. 양자 세계를 향해 놓는 다리 “저는 인류 진화의 역사적인 순간 중 하나는 산업혁명이었다고 생각해요. 산업혁명의 시작에는 증기기관을 이해하기 위한 물리학이 있었죠. 물리학자들이 에너지와 일, 힘과 온도 개념을 정의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면서 통계물리학을 개척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물리학자들은 카르노, 톰슨, 줄 등이 연구했던 평형 상태의 열역학을 양자 체제로 옮길 수 있을 것으로 직감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양자 체제에서 열역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중요할 겁니다. 우리는 이 분야가 산업혁명과 비슷한 일종의 '양자 혁명'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최종 목표를 묻는 질문에 씽나 연구위원은 이 분야 많은 연구자들이 양자 혁명을 목표로 갖고 있다고 답했다. 복잡하고 정교한 로켓이 뉴턴 법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단순한 이론 하나로 훨씬 향상된 기술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양자점(quantum dot)으로 만들어진 초격자다. 복잡한 양자 네트워크의 일종인데, 여기서 양자 대칭을 다룬다. 최근 씽나 연구위원은 양자 대칭을 이용해서 해당 시스템의 열과 전류를 제어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음을 밝혔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이 양자 원리로 작동하는 기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의 양자 장치도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작은 부품들이 필요할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양자 규모에서 전류를 제어할 수 있다면, ‘양자 스위치’라고 불리는 작은 양자 부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류를 켜거나 차단하는 장치죠. 우리 컴퓨터도 스위치를 기본으로 한 연산 소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일단 양자 스위치가 가능해지면 훨씬 큰 기기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이론의 역할 양자 세계를 완전히 알게 되고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길은 아직 멀다. 실험실에서 양자 세계를 다루는 것도 아직 시작 단계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양자 세계를 가장 처음 탐험하는 사람들은 이론과학자인 셈이다.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론물리학을 하고 있을까. “저희 일은 전혀 적용할 수 없는 추상적인 이론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실험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고 결과를 해석하도록 도움을 주는 데 있습니다. 아직까지 실험가들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 혹은 지식이 부족해 빠뜨린 영역을 탐험하는 것이 이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세계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돕는 것이죠.” IBS 커뮤니케이션팀 최지원 2020.05.07
  • 탄화수소를 유용물질로 바꿀 촉매를 찾아서 탄화수소를 유용물질로 바꿀 촉매를 찾아서 탄화수소를 유용물질로 바꿀 촉매를 찾아서 장석복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단장 ‘2019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과학 분야)’은 장석복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단장이 수상했다. 장 단장은 국제 학술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CR)’에 화학 분야에서 최근 5년 연속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외적으로 좋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장 단장을 만났다. 가장 도전적인 분야, ‘탄소-수소 간 결합 활성화’ “열심히 해온 것에 대해 인정을 받았다는 면에서 감사합니다. 한편으로는 IBS의 지원을 받아 좋은 여건에서 연구해 올 수 있었던 덕분이라 다른 연구자분들한테 송구스러운 마음도 큽니다.” 장 단장은 수상 소감에 대해 겸손하게 밝혔지만, 그동안 ‘탄소-수소 간 결합 활성화’라는 도전적이고 어려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내왔다. 특히 전이금속 같은 촉매로 자연에 풍부한 탄화수소를 활성화해 유용한 자원으로 만드는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다. 최고과학기술인 수상까지, 그를 이토록 몰입하게 한 화학의 매력은 뭐였을까. 장 단장은 이 질문에 화학이 20세기 인류의 역사에 공헌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바로 암모니아와 페니실린의 합성이다. 1990년대 초, 독일의 화학자들은 대기 중의 질소와 수소로부터 비료의 주성분인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두 과학자는 식량난 해결에 공헌한 업적을 토대로 각각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영국의 화학자들은 푸른곰팡이에서 추출된 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의 구조를 규명하고,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처럼 식량부족과 의료문제를 해결해 인구수를 대폭 증가시킨 두 가지 사건의 중심에는 화학이 있었다. 장 단장은 21세기 인류 역사에선 탄화수소가 기폭제가 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는 “메탄, 에탄, 프로탄, 부탄 등 자연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탄화수소를 다른 유용한 화합물로 바꿀 수 있다면 암모니아, 페니실린을 이어 인류에 큰 기여를 한 ‘제3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간단한 촉매반응을 통해 탄화수소를 메탄올, 알코올류, 가솔린 등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석유가 고갈되더라도 에너지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IBS 성과평가에서 최고 등급 받은 비결 장석복 단장이 이끄는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2018년 5년차 연구단 성과평가에서 최고 등급(outstanding)을 획득했다. 탄소-수소 간 결합 활성화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창출하고 있으며 유기화학 분야를 전 세계적으로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IBS의 지원을 받기 전에는 ‘바닥’에 있었거든요. 일명 ‘흙수저’였죠(웃음). 연구능력의 정점이 아니라 연구능력이 올라가는 단계에서 IBS 지원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로 장 단장은 IBS 단장으로 선임된 2012년 이후 발표 논문의 양과 질이 높아졌다. 연평균 발표 논문 수는 단장 선임 이전(1987~2012년) 4.2편에서 이후 11.7편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논문 중 세계 상위 1% 논문 비율도 5.8%에서 19.5%로 3배 이상 늘었다. 논문 당 인용 수 역시 증가했다. 장 단장은 “남들을 따라가는 연구가 아닌 남이 못했던 것을 시도해 성공하거나, 알지 못했던 것을 규명하는 연구를 지향한 결과 이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다. 장 단장과 백무현 부연구단장 등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연구진은 효율이 높은 새로운 이리듐 촉매를 개발, 상온에서 감마-락탐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감마-락탐은 뇌전증 치료제, 혈관형성 억제제처럼 복잡한 유기분자의 핵심 구성성분이다. 의약품, 합성화학, 소재 등으로 폭넓게 활용된다. 어려움 극복하고 국제적으로 주목받기까지 2019년 3월 기준으로 장 단장은 2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다른 과학자가 그의 논문을 인용한 횟수가 2만2145회나 된다. 그동안의 연구성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장 단장은 “힘든 과정에서 논문을 투고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이화여대에서 조교수로 있었을 때를 떠올렸다. 장 단장은 석사과정생과 학부생만으로 이뤄진 연구실 식구들과 어려운 여건에서 고군분투한 결과 촉매반응 개발 연구성과를 2000년 ‘미국화학회지(JACS)’에 발표했다. 에 이어 2019년 에 발표했다. 그림은 이리듐 촉매로 부작용 없는 약물 성분 ‘카이랄성 감마-락탐’만 골라서 합성하는 상상도." width="90%"> ▲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신약 원료물질인 감마-락탐에 대한 논문을 2018년 <사이언스>에 이어 2019년 <네이처 카탈리시스>에 발표했다. 그림은 이리듐 촉매로 부작용 없는 약물 성분 ‘카이랄성 감마-락탐’만 골라서 합성하는 상상도. 그는 2002년 KAIST로 옮긴 직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을 때를 회고하며 “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채로 ‘대한화학회지’에 투고한 적이 있는데, 논문 심사위원으로부터 굉장히 안 좋은 평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때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어 논문을 수정하지 않고 철회했다”며 “절대 이런 논문을 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며 수준 있는 연구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 일이 그가 논문 발표 편수에 얽매이면 안 되겠다고 각성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8년 장 단장은 ‘미국화학회지’에 한 논문을 발표하며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는다. ‘팔라듐 촉매를 이용한 피리딘 유도체의 탄소-수소 활성화 반응’이란 제목의 논문이다. 이 논문은 탄화수소 활성화 분야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는 평과 함께 현재까지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장 단장의 연구는 한 단계 올라섰다. 올해 2월에는 ‘카이랄성 감마-락탐’만 골라서 제조할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해 ‘네이처 카탈리시스’에 게재했다.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99% 정확도로 거울상을 선택할 수 있는 이리듐 촉매를 발견했다. 개발된 촉매는 필요에 따라 의약품에 유용한 거울상 이성질체(카이랄성 감마-락탐)만 골라서 합성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어떤 분야든 선도하는 새 장을 연다 “IBS의 가장 큰 장점은 단기성과를 요구하며 거기에 맞추라는 압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논문 100편을 쓰는 것보다 1편이라도 좋은 논문을 쓰도록 말입니다. 평가시스템도 그렇게 작동하고 있고요. 긴 호흡을 갖고 연구해서 어떤 분야를 선도하는 새 장(chapter)을 열면 되는 거죠.” 장 단장은 연구에 있어서 남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접근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연구의 독창성(originality)을 강조한다. “기존 연구를 확장하는 것은 맨 처음에 연구한 사람만 좋은 일을 시키는 것이죠. 그 사람 논문의 인용만 올려주는 거니까요. 우리는 독창성이 있는 것을 연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10년, 20년 뒤 그것의 유용성까지 증명되고 더 크게 될 수 있으니까요.”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에서도 자신들의 연구가 얼마나 새로운 것인가를 살피는 동시에, 기존 연구를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법이든 해석이든 새로운 것을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논문 투고를 준비 중인 연구성과를 사례로 소개했다. 장 단장은 이 연구에 거의 1년 이상 공을 들였다. “석유의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탄화수소인 벤젠(C6H6)과 메탄(CH4)을 각각 활성화시키고, 이를 결합(coupling)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안정적인 두 물질을 토대로 커플링 산물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연구를 99% 마치고,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앞으로 연구단의 목표 ▲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의 연구목표는 화학계의 풀리지 않은 난제를 풀어나가는데 있다. 사진은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의 실험실. 앞으로의 연구목표를 묻자 장 단장은 “화학계의 풀리지 않은 난제를 풀어나가려 한다”며 “아민화 반응(질소화 반응)의 중간체인 ‘메탈 이미도(metal imido)’의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질소는 의약품의 90%에 포함될 정도로 생리활성에 가장 중요한 분자다. 제약뿐만 아니라 소재, 재료 분야에서도 질소화합물은 중요한 골격이 된다. 질소를 도입하는 아민화 반응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민화 반응 도중에 생성되는 중간체인 메탈 이미도는 반응성이 매우 높아 계산화학적으로 파악할 뿐, 아직까지 직접 관찰된 적은 없다. 장 단장은 “메탈 이미도를 잡아서 결정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안정화시킬 조건을 찾는다면 여러 산업에 유용하게 쓰일 새로운 촉매를 설계하는데 큰 기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배들은 저를 넘어서야죠” ▲ 장 단장은 좋은 연구자가 되려면 자신의 통찰력이나 상상력을 넘어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의 연구자들과 함께. “똑똑한 학생들에게 저를 만나러 오지 말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것을 찾으려면 제 통찰력이나 상상력을 넘어서야 하니까요. 좋은 스승은 좋은 학생을 신뢰하고, 마음껏 연구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죠.” 장 단장에게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연구그룹 자체의 수준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며 “학생들이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두되, 우리 연구주제에 가장 필요한 핵심적 요소를 뽑아 잘 익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연구단의 경우 이론화학과 계산화학적 연구방법을 충실히 익히는 것을 그 요소로 삼았다. 그의 연구철학은 ‘서두르지 않고 기본을 중시하자’이다. 장 단장은 “천천히 가자는 것은 충분히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 바탕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새로운 면의 의미도 정확히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장 단장은 향후 IBS 단장에서 물러나면 KAIST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줄 강의를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내비쳤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작년에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기도 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뒤 또 다른 길을 꿈꾸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2020.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