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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행동 이해 높이는 AI와 뇌과학의 결합
동물 행동 이해 높이는 AI와 뇌과학의 결합
최근 전세계 학계, 산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이렇게 등장한 AI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며 복잡한 동물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동물의 3차원 움직임 정보를 바탕으로 AI 학습을 통해 동물 행동을 분류, 분석할 수 있는 '섭틀(SUBTLE)'이라는 AI 분석 도구를 만들어냈다. 뇌과학과 데이터과학의 협력으로 복잡한 동물의 움직임을 AI가 정확하게 구분하게 됐다. 인간의 질병 치료법 연구 등에도 활용될 수 있는 '동물 행동 분석'에 AI가 접목되며 더 정교해졌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김선필 박사후연구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뇌과학 분야에 AI 기술이 융합된다면 기존에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내다봤다. 연구를 함께 진행한 권재 박사후연구원 또한 "궁극적으로 다양한 동물에서 확보된 행동 데이터를 빅데이터화한다면 생물 전체의 행동을 관장하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연구자에게 그간의 연구 성과와 향후 목표 등에 대해 물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선필 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선필이라고 합니다. 연세대 생물학과에서 학사를 받고, 이창준 단장님과는 2014년도 학생 인턴을 시작으로 석박 통합과정을 밟았습니다. 학위기간동안 성상교세포의 도파민 관련 신호전달체계 및 사회성 기억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2023년부터는 IBS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권재 연구원/ 뇌기반-AI 연구자 권재라고 합니다.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에서 이창준 단장님의 지도하에 2022년도에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24년 9월까지 기초과학연구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했습니다. 11월부터는 기초과학연구원 재직 시절 공동연구를 통해 알게 된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차미영 단장님(前 IBS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CI)과 함께 박사후연구원으로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Q. IBS에서 주로 맡고 있는 연구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선필 연구원/ 저는 관심사가 다양해서 성상교세포의 기능, 시각정보를 바탕으로 한 사회성 기억, 저독성 도파민 발굴 등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SUBTLE 개발은 이 같은 연구 과정 중 생쥐 행동 실험 등을 좀 더 객관적이고 손쉽게 분석하고자 진행하게 됐습니다.
권재 연구원/ 머신러닝과 신경과학의 융합 연구에 주력했습니다. 머신러닝 기술을 신경과학적 연구에 접목하거나, 신경과학에서 영감을 받아 머신러닝 기술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Q. 최근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가장 대표적인 핵심 연구 성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김선필 연구원/ 우선 저희 SUBTLE 논문도 연구단 핵심 연구 성과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AI 연구가 뇌에 있는 신경세포의 구조를 모티브로 발전된 만큼 뇌과학과 AI 연구는 밀접하게 관련돼 있습니다. 최근 뇌과학 분야에도 AI를 이용한 연구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번에 발표한 SUBTLE 연구는 우리 연구단에서 AI를 활용한 첫 연구 사례입니다.
권재 연구원/ 저도 대표적인 핵심 연구 성과 중 하나로 올해 초 개발한 SUBTLE 알고리즘을 꼽고 싶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신경과학 분야에서 가장 고된 작업인 동물 행동 분석을 보다 편리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동물 행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Q. 'SUBTLE'의 연구개발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김선필 연구원/ SUBTLE 연구는 생쥐의 움직임을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AVATAR'라는 장비를 소개받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이 장비로 생쥐의 3차원 움직임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으나, 이를 분석하는 툴은 마땅치 않았습니다. 이에 생쥐의 3차원 움직임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분석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지도 학습을 도입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차원 데이터를 차원축소 및 클러스터화했고, 각 클러스터가 특정 행동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시간에 따른 움직임을 표현한 다양한 데이터셋을 SUBTLE을 통해 분석 가능함을 확인했습니다.
권재 연구원/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이고 객관적으로 동물 행동을 분석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AVATAR 장비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러한 데이터 속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얻어진 데이터 속에는 걷기, 일어서기, 멈춰있기, 그루밍 등의 다양한 행동들이 섞여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솔루션을 비지도 기계학습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Q. SUBTLE로 생쥐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인간, 원숭이 등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확인하셨는데 이외에는 또 어떤 동물에 활용이 가능할까요?
김선필 연구원/ SUBTLE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보편성'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동물의 움직임을 분석할 수 있고, 동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체의 움직임도 분석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권재 연구원/ SUBTLE 알고리즘은 특정 동물에 국한되지 않고, '키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모든 대상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물고기처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는 동물이나, 생물이 아닌 휴머노이드 로봇까지도 각 부위의 연속적인 키포인트 데이터만 있다면 움직임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또 SUBTLE 알고리즘은 개체 단위뿐만 아니라 집단의 행동 패턴까지도 분석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Q. SUBTLE을 학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요? 동물 행동 분류·분석이 어떤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 동물별로 움직임을 분석하는 게 어떤 식으로 쓰일지도 궁금합니다.
김선필 연구원/ SUBTLE의 가장 큰 의의는 점수화(벤치마크)가 가능한 지표인 TPI(Temporal Proximity Index)를 제안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AI 연구에서 벤치마크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테스트하는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희 연구를 통해 더욱 정교하고 빠른 행동 분석 알고리즘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권재 연구원/ SUBTLE 알고리즘이 성공적으로 활용될 경우 수의학 및 동물 복지, 생태학 및 보존 연구, 로봇 공학 및 AI 등 다양한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다양한 동물에서 확보된 행동 데이터를 빅데이터화한다면, 생물 전체의 행동을 관장하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동물 행동 분석의 틀을 새롭게 정의하고, 생명체의 행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Q. 동물 행동 분석에는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신경쓰셨던 점이 있나요?
김선필 연구원/ 기존 행동분석은 사람이 직접 참여해 분석하는 경우가 많아 측정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노동집약적이라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심지어 AI를 활용한 행동 분석에서도 '하이퍼파라미터'를 임의로 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사람이 개입하는 부분입니다. SUBTLE에서는 이러한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해 분석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큰 공을 들였습니다.
권재 연구원/ 연구에서 가장 큰 과제는 인간의 개입 없이도 알고리즘이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동물의 행동을 비지도 학습으로 인간이 원하는 방식대로 분류한다는 것은 '어떤 제약 조건을 설정해야 인간의 분류 방식과 유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향후 연구 계획 및 연구에 필요한 지원 등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김선필 연구원/ 이번 연구를 통해 뇌과학 분야에 AI 기술이 융합된다면 기존에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특히 사회성 연구에 관해서는 아직 AI를 활용한 사례가 많이 없어 이쪽 분야를 개척해보고 싶습니다.
권재 연구원/ 현재 SUBTLE 알고리즘은 하나의 개체에 대한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향후 연구에서는 다양한 동물이 있는 상황에서도 이 알고리즘을 적용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보다 복잡한 행동, 즉 개체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사회성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202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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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정복의 마스터키 찾는다
팬데믹 정복의 마스터키 찾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공식적으로 종료됐지만 연구현장 최전선에서는 끝나지 않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한 세기 전 스페인독감을 포함해 에볼라, 지카, 사스, 메르스, 코로나19까지 다양한 이종 감염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는 팬데믹을 겪었으며 그 발병 주기도 점차 짧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팬데믹 출현을 가정하고 선제적으로 대비책을 찾을 사람들이 필요한 이유다.
코로나19 이후를 생각하기엔 다소 일렀던 2021년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는 이 같은 임무를 부여받고 출범했다. 이들이 특히 지향하는 목표는 팬데믹 정복의
마스터키(만능열쇠)를 찾는 것이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이른바 리보핵산(RNA) 바이러스로 불리는 신변종 바이러스들의 공통된 ‘급소’를 찾아 집중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구상은 최근 3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의 자매지인 ‘사이언스 시그널링’ 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연구에 참여 중인 김현준 선임연구원은 스스로를 ‘오가노이드 박사’라고 소개했다. 실험실에서 쉽게 감염 실험을 할 수 있는 장기 모형 오가노이드를 연구 플랫폼으로 삼아 마스터키를 더 효율적으로 찾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다양한 신변종 바이러스의 전사체와 후성전사체 데이터베이스를 확립하면 ‘팬(범용적인) 항바이러스 제제’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위해 20여종의 동물과 사람 장기를
모사한 오가노이드 생체 은행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오가노이드의 선행 연구가 된 개구리 배아 발생 연구를 대학생 때부터 20년간 매진한 ‘개구리 박사’였으며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유전자 지도를 완성해 학계 주목을 받은 김빛내리 IBS RNA
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밑에서 RNA 연구의 기본기도 닦았다. 팬데믹 정복을 꿈꾸는 그의 연구 인생과 성과를 들어봤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 선임연구원 김현준입니다. 저는 원래 개구리 배아를 이용해 배아 발생 과정을 연구하는 ‘개구리 박사’입니다. 2003년 학부생 때부터
2022년까지 20년을 줄곧 이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이후 2022년까지는 김빛내리 RNA 연구단 단장님과 배아 발생 과정을 조절하는 RNA 후성전사체 기능을 연구했고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RNA 바이러스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오가노이드 모델을 이용해 다양한 RNA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오가노이드 박사’로 불리고 싶습니다.
Q.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는 무슨 일을 하나요?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 신변종 바이러스를 발굴하고 선제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감시, 세포 증식 메커니즘, 동물 모델에서의 바이러스성 질병에 초점을 맞춰 바이러스 기초 연구의 기틀을 다지고자 합니다.
또 감염병은 인류가 함께 당면할 과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과 전 세계의 감염병 안보를 위해 연구 및 정책 측면에서 전 세계 연구기관 및 정책기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신변종 바이러스 발굴→세포 증식 메커니즘 연구→동물 모델에서의 바이러스성 질병 연구로 이어지는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의 3단계 연구 체제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데 최적화해
있습니다. 정부와 국민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출범한 만큼, 우리 연구소 모든 구성원은 앞으로도 바이러스 기초 연구를 통해 인류의 감염병 안보에 공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선임연구원님은 주로 어떤 연구와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저는 바이러스 연구 3단계 중 두 번째, 즉 신변종 바이러스의 세포 증식 메커니즘에 대한 기초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을 감염시키는 이종 감염 RNA 바이러스 전체의 전사체와 후성전사체
데이터베이스를 확립하고자 오가노이드 모델을 활용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기관의 유전체 교정 연구단과 협력해 기도, 폐, 신장, 소장, 간, 유선 등 20여종의 야생 동물과 사람의 장기를 모사한 오가노이드의 생체 은행을 구축 중이죠. 이렇게 구축된 오가노이드를 다양한
바이러스를 발굴하고 그 특성을 연구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이종 감염 RNA 바이러스의 전사체·후성전사체 데이터베이스를 확립하는 감염 모델로 오가노이드를 활용할 계획입니다.
Q.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미 끝난 지금 바이러스 연구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류는 스페인독감, 홍콩독감, 에볼라, 에이즈, 뎅기, 지카,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종 감염 바이러스로 고통을 받았고 그 발병 주기는 점차 짧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료됐지만 새로운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감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연구가 바탕이 돼 새로운 항바이러스 제제 개발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Q. 관련해서 지난달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시그널링’에 발표한 연구성과를 봤습니다.
코로나19를 포함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속적으로 변이하며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백신과 치료제에 대항해서 계속 새로운 생체 침투 기작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발표한 논문은
‘KLK5’라고 하는 생체 효소가 다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생체 침투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이를 통해 KLK5의 기능을 억제하면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 출현할 미지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안했죠. 이는 ‘항KLK5 제제’가 미래 팬데믹에 대한 선제적인
항코로나바이러스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는 항KLK5 제제를 새롭게 발굴하고 고도화해 부작용이 적은 효과적인 약물을 개발하는 연구를 국내외 연구기관들과 협력해 추진 중입니다.
Q.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체가 병원성은 떨어지면서 전파성은 높아지는 현상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또 오미크론 변이체가 기존 코로나19 항바이러스 제제에 대해 더 큰 저항성을 갖는 원리가 무엇인지도 궁금했고요.
그렇게 시작한 이번 연구에서는 오미크론 변이체의 특이성을 새로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연구 과정에서 KLK5 효소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KLK5가 코로나19 바이러스뿐 아니라 사스,
메르스 같은 다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생체 침투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죠.
Q.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에 합류한 계기도 여쭙습니다.
배아 발생 연구와 RNA 연구를 통해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RNA 바이러스 전반에 관한 의미있는 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팬데믹을 일으킨 바이러스 대부분은 RNA 바이러스였기에 미래의 팬데믹도 RNA
바이러스가 일으킬 가능성이 크죠.
지난 경력도 마침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에서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한진관 전 포항공대 교수님, 드 로버티스(De Robertis)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님께 배운 개구리 배아 발생 연구는 오가노이드 모델 활용으로 이어졌고 김빛내리 단장님께 배운 RNA 연구는 RNA 바이러스 관련 연구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Q. 향후 연구계획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신변종 바이러스를 발굴하고 그 특성을 조사하는 연구 플랫폼으로서 20여 동물 모델의 오가노이드 생체 은행을 구축했습니다. 앞으로 오가노이드로 다양한 이종 감염 RNA 바이러스 특성을 연구하고
궁극적으로는 바이러스 전체의 전사체·후성전사체 데이터베이스를 확립하고자 합니다.
Q. 연구과정에서 특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오가노이드 생체 은행을 구축하려면 다양한 동물의 조직을 최초 1회에 한해 살아있는 상태로 확보해야 합니다. 저희는 국내 유수의 기관들과 협력해 야생 동물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을 확보하고 그 조직을 얻어서
오가노이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한된 채집 횟수로 인해 다양한 동물 조직을 확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Q. 그렇다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부 지원책도 있겠군요.
만약 동물원과 교류·협력해 자연사나 병사 직전·직후의 동물 조직을 얻을 수 있다면 오가노이드 생체 은행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동물 관련 법으로 인해 동물원의 동물을 실험용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감염병 연구에 한해서라도 법령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 국민의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수적이죠.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앞으로 저희 연구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Q. 최근 딥마인드의 ‘알파폴드’ 같은 인공지능(AI)이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갈수록 역할을 키우고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이 변화를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체계적이고 방대한 질병 데이터를 축적해 왔습니다. 축적된 데이터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국내에 특화한 AI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AI
모델을 오가노이드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 내 BI팀과 긴밀히 교류하며 공동 연구를 수행 중인데, 오가노이드 절편을 면역 염색한 이미지를 AI 모델로 학습해 개별 오가노이드의
특성을 분석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IBS 앞마당에는 ‘기초과학 연구로 인류 행복과 사회 발전에 공헌’이라는 기관의 비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늘 가슴이 뜁니다. IBS의 기초과학 연구는 당장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보다는 인류가
당면했거나 당면하게 될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염병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누군가는 감시와 선제적 대응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쌓이고 쌓인 경험과 성과가 새로운 팬데믹을 헤쳐나갈 동력이 될 것입니다. 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는 점증하는 바이러스 및 감염병의 위협에 대응해 대한민국과 인류의 감염병 안보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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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비밀 담은 암흑물질 후보 사냥하는 입자물리학자
우주 비밀 담은 암흑물질 후보 사냥하는 입자물리학자
많은 과학자는 지구를 포함해 우주에서 우리가 보고 확인할 수 있는 물질은 전체 우주의 약 4.4%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27%가 암흑물질이며, 나머지 68.6%는 암흑에너지로 채워져 있다고 설명한다. 암흑물질은 그 이름에서 어떤 존재인지 추측할 수 있다. 빛과 반응하지 않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오직 중력을 매개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암흑물질은 우주를 설명하는 한 가지 학설일 뿐이다. 아직까지 그 존재를 정확히 입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력한 암흑물질 후보 중 하나는 액시온(Axion)이다. 입자물리학의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가상의 입자다. 전 세계에서 지난 수십 년간 액시온을 찾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이 액시온을 찾고 있다. 지난 8월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이 액시온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좁힌 연구 결과 2건을 최근 잇따라 공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유력한 암흑물질 후보 중 하나는 액시온(Axion)이다. 입자물리학의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가상의 입자다. 전 세계에서 지난 수십 년간 액시온을 찾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이 액시온을 찾고 있다. 지난 8월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이 액시온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좁힌 연구 결과 2건을 최근 잇따라 공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윤성우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연구위원은 “액시온 암흑물질 탐색은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 비슷하다”며 “위치를 대략 안다면 바늘을 더 빨리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이번 연구는 이론적 예측을 기반으로 실험을 설계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차세대 액시온 탐색 실험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2015년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에 합류하며 액시온을 탐색하기 시작한 윤 연구위원은 9년 차 '액시온 사냥꾼'이다. 윤 연구위원은 "입자를 탐색하다 보면 우주, 더 나아가 이 세상의 근원에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면서 암흑물질 연구의 매력을 설명했다. 윤 연구위원을 만나 액시온 탐색 연구의 중요성, 이번 성과의 의미, 입자물리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 등을 물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윤성우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연구위원입니다. 학창시절, 한국 출신 미국 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입자물리에 푹 빠졌습니다. 결국 2000년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2002년 동대학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9년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습니다. 2014년부터 1년간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연구를 이어가던 중 2015년 IBS 차세대 연구리더(YSF)로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에 들어왔습니다. YSF는 IBS가 40세 이하 과학자를 뽑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에요. 현재는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의 연구위원으로 미지의 암흑물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암흑물질의 후보인 액시온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을 소개해주세요.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은 액시온이 우주 암흑물질의 일부인지에 대한 최종 해답을 찾기 위해 액시온 탐색을 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전 세계에서 최초로 액시온 관련 실험을 진행한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단장이 이끌고 있습니다. 현대 입자물리학의 근간인 '표준모형'을 뒤흔드는 입자를 발견하고도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론으로 예측된 범위에서 암흑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을 배제하는 식으로 암흑물질을 찾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강력한 자석을 사용합니다. 이론에 따르면 액시온은 강한 자기장과 만나면 질량에 상응하는 주파수를 나타내는 광자(빛의 입자)로 변환됩니다. 이때 공진기를 이용해 주파수를 증폭하고 검출하면 해당 관찰 영역의 액시온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액시온의 질량, 즉 질량이 변환된 주파수를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론에서 예측한 넓은 주파수 영역에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조금씩 탐색해야 합니다.
Q.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의 최근 연구 성과와 학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설명해주세요.
액시온에 대한 이론적 모델로 'DFSZ 액시온'와 'KSVZ 액시온'이 있습니다. DFSZ 액시온은 KSVZ에서 제시한 것보다 다른 입자와의 상호작용이 작아 실험에서 탐지하기 더 어렵습니다. IBS 연구단은 DFSZ 액시온 탐색에 초점을 맞춰 장비를 개발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DFSZ 액시온을 탐색할 수 있는 연구단은 IBS를 포함한 2팀이 전부예요. 우리 연구단은 이번에 특정 범위에서 액시온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액시온 검출 확률은 자기장이 클수록 높아집니다. 연구단은 초전도체로 만든 강력한 자석을 이용해 1.025~1.185기가헤르츠(GHz) 주파수 범위에서 질량이 4.24~4.91µeV(마이크로전자볼트) 영역에서 액시온을 세계 최고 감도로 탐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실험 난이도로 인해 1GHz 이상 주파수에서 고감도로 액시온 탐색에 성공한 건 현재까지 IBS 연구단이 유일합니다.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결과를 낸 겁니다.
또 연구단은 김진의 서울대 명예교수가 제시한 KSVZ 액시온 모델을 고주파수 영역에서 최대 수준으로 탐색했어요. 최근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한 여러 연구에 의하면 액시온의 질량이 20~30µeV, 주파수로는 4.8~7.25GHz 영역에 있을 것으로 예측합니다. 연구단은 기존 실험보다 더 높은 고주파에 주목한 겁니다. 실험 결과 액시온이 질량 21.86~22.00µeV 범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현재까지 가장 민감도가 높은 결과입니다.
Q. 연구원님이 이번 성과에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KSVZ 액시온을 고주파수 영역에서 최소 수준으로 탐색하는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공진기의 부피를 줄이지 않으면서도 액시온을 빠르게 탐색할 수 있는 최적화 된 공진기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주파 신호를 탐색하려면 주파수를 증폭하는 공진기의 부피를 줄여야 하는데 부피가 줄면 액시온이 광자로 변하는 확률도 줄어들어 데이터를 얻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통형 공진기를 피자 조각처럼 나눈 '다중방 공진기'를 고안했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를 만든 일등공신입니다.
Q. 이번 실험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해주세요.
다중방 공진기의 기본 개념을 실제 탐색 실험에 최적화하기 위해 공진기의 디자인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양의 시뮬레이션 작업이 필요했고 많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또한, 액시온을 탐색할 때 민감한 '양자센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방해가 되는 신호의 잡음을 줄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때 공진기를 포함한 실험장비 자체의 온도를 낮춰 열적 잡음을 줄여야 했습니다. 온도를 극저온으로 낮춰야 했는데, 한 번 온도를 낮추는 데 수일이 걸리고 검출장치가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어 모든 부품이 제대로 작동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액시온을 탐색하는 것이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입자를 탐색하다 보면 우주, 더 나아가 이 세상의 근원에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주는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우리는 또 누구일까요? 가끔 연구하다 보면 이같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이 이 답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향후 연구 계획을 알려주세요.
계속해서 액시온을 사냥할 것입니다. 탐색 범위를 계속 넓히겠습니다. 전 세계에 액시온을 찾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IBS가 세계 최고 수준의 결과를 낼 계획입니다.
Q. 향후 연구에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 연구단을 믿고 연구 결과를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3년에 연구단이 생겼는데, 기계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데만 수년이 걸렸고 이제서 연구 결과가 쏟아지는 중입니다. 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훌륭한 연구 결과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기초과학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AI, 양자 쪽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둘의 기초 개념은 100여 년 전에 나왔습니다.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계속 연구한 끝에 오늘날 투자 가치가 높은 분야로 재탄생했습니다. 현재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이어져 향후 훌륭한 기술이 계속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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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이름 딴 화학·촉매 반응도 나올 수 있다”
바르토슈 그쥐보브스키 인공지능 및 로봇 기반 합성연구단장
“AI의 이름 딴 화학·촉매 반응도 나올 수 있다”
‘바르토슈 그쥐보브스키’는 IBS 첨단 연성물질 연구단의 그룹리더로 익히 알려진 과학자다. 나노와 미세영역 화학 시스템 분야 선구자로 컴퓨터 기반 합성의 대가다.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발표한 20여 편을 비롯해 논문 300여 편을 발표했으며 그의 연구는 3만 7000회 이상 인용됐다. 그가 인공지능 및 로봇 기반 합성 연구단장으로 새롭게 선임됐다. 그쥐보브스키 단장을 울산과학기술원 내 위치한 연구단에서 직접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IBS 신규 단장으로 선임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왜 인공지능 및 로봇 기반 합성 연구단인가요?
현대 과학은 데이터를 이용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학습하는 인공지능(AI)이 대표적이죠. 저는 AI가 아직 인간이 찾아내지 못한 자연의 법칙을 연구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혁명인 거죠.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요. 단백질 분자 구조나 반응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AI, 알파폴드처럼 말이죠.
IBS의 새로운 연구단을 제안할 때 이런 학계의 흐름을 반영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화학 반응을 발견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려는 시도는 전세계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이나 네덜란드가 있는 유럽에서도 몇몇 연구팀이 꾸려지고 있죠.
아시아에서는 우리 연구단이 최초일 겁니다.
언제부터 AI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20년 전 쯤부터 화학에서 AI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화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때 우연에 의존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알고리즘을 통해 화학 반응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1995~2003년에 미국 하버드대에 있었는데, 당시에 체스 AI를 만드는 사람들과 알고 지냈습니다. 체스를 두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화학 분자에 대해서도 학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 끝에 2005년에 첫 논문을 발표했죠.
AI와 로봇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AI는 화학 실험을 진행하는 방향을 제안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분자 종류는 우주에 있는 원자 종류보다 많기 때문에 무작위로 시도한다면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AI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전 과학자들은 단순하게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험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무작위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AI가 학습을 한 뒤 로봇에게 어떤 실험을 해야하는지 방향성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로봇이 결과를 내면 AI는 이를 학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죠. 둘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순환하는 것처럼 작동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고 싶은 건가요?
우리 연구단은 새로운 화학 반응이나 촉매를 발견하고, 우리가 선택한 재료의 특징, 실험 조건, 거의 모든 것을 AI와 로봇을 활용해 연구합니다. 새로운 화학 반응이나 촉매를 찾고, 실험에 사용한 시약이나 효소에 따라 어떤 화학적 변화가 발생하는지 연구합니다. 보통 새로운 반응을 발견하면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스즈키 반응(2010년 노벨화학상 수상)’ ‘그럽스 촉매(2005년 노벨 화학상 수상)’처럼요. AI를 활용하면 하나하나에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반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연구단에서는 AI에게 그 공로를 돌리고 있습니다. 최근 논문에서는 새로 발견한 반응에 MACH-1, MACH-2로 이름을 붙였어요. 여기서 MACH는 ‘machine(기계, AI를 의미)’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실험하는 것보다 로봇을 활용하는게 유리한가요?
2024년에 19세기처럼 사람이 하나씩 할 순 없어요. 로봇은 이 과정을 빠르게 할 수있도록 돕습니다. 화학 반응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결과를 알려주죠. 박사후연구원이 하루에 실험을 3개 정도 진행할 수 있는데요. 로봇을 이용한다면 하루에 1000개 정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실험을 많이 할 수 있다면 화학 반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할 수 있죠.
게다가 AI와 로봇을 활용하면 실험에 드는 자원도 줄일 수 있습니다. 실험 1개가 성공하기 위해선 수백 개가 넘는 실험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용매나 독성물질의 양은 어마어마하죠. AI가 실험 방향을 결정하면 로봇은 낭비 없이 최소 용량으로 최대 결과를 만듭니다. 자원을 절약하는 것은 물론 환경적으로도 이점이 많습니다.
AI가 실험을 계획하고 로봇이 수행한다면 정작 과학자들은 무엇을 하나요?
우선 이 일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실제로 AI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한들 과학자의 할일이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증기 기관을 처음 발명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당시 사람들은 증기 기관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 생각해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하지만 일자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화했죠.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학 반응과 촉매를 더 빠르게 만들고 실험할 수 있다면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AI라는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지식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거죠. AI가 방향성을 제시해도 그 결과를 따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촉매를 예로 들어볼까요? 촉매는 에너지와 자원 소비를 줄여주는 중요한 물질입니다. 지난 400년 동안 대부분 우연히 발견됐죠. 새로운 촉매을 발견하기 위해 19세기처럼 계속 우연에 의지해야 할까요?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만큼 새롭게 발전한 도구를 잘 이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연구단에서 사용하는 로봇은 어떻게 개발하나요?
우리 연구단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는 그동안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분야입니다. 당연히 딱 맞는 로봇을 만들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죠. 연구단의 젊은 연구자들과 힘을 모아 제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움직이며 실험해야 할지 직접 코딩하고, 제작도 하죠. 즉 화학 AI와 로봇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우리만의 AI와 실험을 위한 로봇을 직접 설계, 제작하고 있습니다.
다재다능한 인재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앞으로 연구단을 어떻게 꾸려갈 계획인가요?
화학은 당연하고 AI와 로봇 공학에 관심이 있는 화학자가 함께하기를 바랄 수 있어요. 코딩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죠. 인공지능 및 로봇 기반 합성 연구단은 이제 막 출범하는 연구단입니다. 앞으로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어요. 3개 그룹, 60~70명 정도 규모를 계획 중입니다.
AI 및 로봇 기반 화학 연구에 있어 세계에서 첫 번째이자 최고 연구단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국 연구자들이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나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로 갈 기회가 있어도 우리 연구단에 오고 싶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만큼 독특한 연구단으로 만드려고 합니다.
1. 연구단에서 사용하는 로봇은 연구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코딩하고 기계를 조립해 제작한
다. 2. 이렇게 만든 로봇은 한 번에 대용량으로 실험할 수 있어 과학자들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특별히 원하는 인재상이 있을까요?
혁신적인 성격을 가진 열정적인 인재를 원합니다. 과거의 방식과 상관없이 우리만의 새로운 연구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구단에는 현재 9~10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모두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만큼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특히 규칙에서 자유롭길 원합니다. 규칙이 많으면 위계 질서가 만들어지고, 사고가 경직되기 마련이거든요. 우리 연구단의 유일한 규칙은 네이처나 사이언스처럼 과학자들에게 인정받는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고 큰 발견을 하는 것입니다.
과학의 아름다움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거대 연구단을 이끄는 리더로서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소하나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운동을 합니다. 공간을 조금 투자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연구단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풀수 있도록 사비로 탁구대를 장만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반년 동안 쓴 투자 중 최고 효율을 보인다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만나서 게임을 하며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었답니다.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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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논문보다 ‘의미있는’ 연구 해야죠”
신현석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장
“좋은 논문보다 ‘의미있는’ 연구 해야죠”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가 대체 뭔가요?”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는 5월 말, 성균관대학교 N센터에서 신현석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장을 만났다. 신 단장은 차세대 반도체 미세공정을 위한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해 온 인물로 2024년 3월 IBS 신규 연구단인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을 총괄할 단장으로 선임됐다. 인터뷰의 첫 질문은 연구단의 이름을 보자마자 결정할 수 있었다.
양자 현상을 나타내는 이차원 물질을 연구
“그 질문 참 많이 받습니다(웃음). 이차원, 양자(quantum, 量子), 헤테로구조체로 나눠서 설명하면 이해하기 조금 쉬울 것 같아요. 그래핀 같은 이차원 소재를 이용하는데, 서로 다른 이차원 소재가 수직이나 수평으로 쌓여있을 때(이 때 헤테로구조체가 됨) 두 구조체가 결합된 부분에서 다양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특히 우리 연구단은 이 물질들에서 일어나는 양자 현상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입니다.”
한두 번 받아본 질문이 아닌 듯, 신 단장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명함 두 장을 손에 집어 들어 설명했다. 서로 다른 디자인을 가진 명함은 각각 다른 이차원 구조체를 뜻했다. 이차원 구조체는 이미 잘 알려진 물질, 그래핀(graphene)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핀은 2004년 안드레 가임 당시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가 셀로판 테이프를 사용해 흑연에서 분리해 내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을 갖고 배치된 형태로 수직으로 추가 구조를 만들지 않은 채 단일 원자층으로 된 구조다. 당연히 두께도 탄소 원자 하나 정도로 얇다. 신 단장은 각 명함이 하나는 그래핀, 하나는 육방정계 질화붕소(hexagonal Boron Nitride, hBN)라며 예를 들었다.
“그래핀을 시작으로 이차원 구조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이 새로운 물질이 대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연구하기 시작했죠. 그래핀 말고도 또 다른 이차원 구조체가 무엇이 있는지도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 연구단에서 현재 집중하고 있는 물질은 육방정계 질화붕소입니다.”
이차원 구조체는 알려진 역사 자체가 길지 않다. 그래핀과 육방정계 질화붕소 외에도 전이금속 칼코겐 화합물이나 흑린, 맥신(Mxene) 같은 물질이 이차원 구조체로 알려졌다. 이들이 가진 성질이나 이 구조체에 변화를 줬을 때 무슨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지금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2008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부임하면서 처음으로 독립적인 연구실을 꾸리게 됐습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남들이 안하는 분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그래핀을 제외한 다른 이차원 소재는 덜 주목받고 있었어요. 전이금속 칼코겐 화합물이나 육방정계 질화붕소 같은 다른 이차원 소재를 연구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를 연구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성과도 잘 나왔답니다. 본격적으로 2012년 쯤부터 육방정계 질화붕소 연구를 시작해 2013년에 첫 논문이 나왔었죠.”
2016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공대 연구팀이 육방정계 질화붕소의 결함에서 단일 광자가 방출된다는 것을 발견한 뒤, 이차원 구조체의 양자 광원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이와 함께 양자 육방정계 질화붕소의 대면적 합성법이나 물성을 연구해 온 신 단장의 연구도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육방정계 질화붕소를 양자광원에 응용하는 연구를 수행 중인 대표 연구팀들이 몇몇 있어요. 처음 단일 광자 방출을 발견한 시드니공대는 물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도 있죠. 경쟁하기 보다는 조금씩 전공 분야가 달라 서로 협력하는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새 구조체를 합성하면 케임브리지대에서 물성을 연구하고 싶으니 구조체를 좀 보내달라고 하죠.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다 함께 손을 잡고 있어요.”
이차원 소재의 전주기적 연구가 목표
이차원 소재, 그 중에서도 육방정계 질화붕소를 중심으로 연구해온 신 단장은 IBS 신규 연구단장으로 선임되면서 융합 연구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은 융합 연구단입니다. 물리만 하는 것도, 화학만 하는 것도 아니죠. 제 전공은 재료화학으로 크게 분류하면 화학이지만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IBS는 우리나라 기초과학 수준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공헌한 연구기관이다. 해당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과학자를 국적과 상관없이 연구단장으로 선임한다. 연구의 자율성을 갖는 만큼 연구단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신 단장 역시 미래 계획을 차분히 세우며 진행하는 중이다.
“양자 관련 기술은 앞으로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분야로 꼽히지만 지금도 계속 연구되는 분야입니다. 양자 물질도 다양하게 찾고 있고요. 다이아몬드 같은 3차원 물질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죠. 우리 연구단의 시작은 양자 현상이 나오는 이차원 구조체를 찾는 겁니다.”
신 단장은 ‘이차원 소재의 전주기 연구’를 연구단의 목표로 삼았다. 양자 현상을 보이는 이차원 소재를 만들고 양자 정보 기술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까지 완성한다는 의미다.
첫 단계는 양자 현상을 보이는 이차원 소재의 전구체를 구상, 설계한다. 전구체는 화합물을 생성하기 위한 출발 물질이다. 산화그래핀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화흑연을 먼저 만들어야하는데, 산화흑연은 흑연으로부터 만든다. 즉, 흑연이 바로 전구체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전구체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전구체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차원 구조체를 대면적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중에 이 물질을 양자 정보 기술에 활용하려면 반도체에서 리소그래피(Lithography)를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반도체를 만드는 실리콘 기판은 크기가 클수록 장점이 많아진다. 기판의 크기가 클수록 한 번에 더 많은 칩을 만들 수 있어서다. 양자 정보 기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양자 소재를 크게 만들기 위해선 대면적으로 합성하는 기술이 필수다. 두께가 얇고 유연성이 높은 이차원 소재는 더욱 가치가 크다.
“융합 연구단인만큼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연구자분도 초빙할 계획입니다. 우리가 설계한 이차원 소재가 실제로 어떤 양자 현상을 보이는지 연구할 거예요. 함께 연구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겠죠.”
신 단장은 이차원 소재가 양자 정보 기술의 핵심, 단일 광자 방출기(양자 광원, Quantum Emitter)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광자를 양자 정보 기술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광자가 하나씩 방출돼야 한다. 형광등 같은 일반적인 광원에서는 광자가 여러 개가 묶여서 방출되기에 정보를 담기 어렵다. 즉 양자 정보 기술은 광자를 1개씩 내보내는 양자 광원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여기까지 오면 궁극적으로는 이를 이용해 반도체집적회로처럼 양자광집적회로를 만들 겁니다. 이 단계까지 오면 정말 산업계에 이 기술을 내보낼 준비가 되는 거예요. 물론 그 이후에 경제성, 다른 기술과의 호환성 등도 따져야 하지만요.”
20, 30년 뒤 기술적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연구를 해야
기초과학은 현실과는 다소 떨어져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자연을 향한 호기심이 실제로 인류의 삶에 와닿을 때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기 때문이다. ‘연구의 마지막 목표는 산업계로 내보낼 준비를 마치는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에게서 나오기 어려운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예전에 모셨던 총장님 한 분이 제게 ‘네이처, 사이언스 논문 쓴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고 질문하셨어요. 학생 때나 학생을 갓 벗어난 신임 연구자일 때는 좋은 논문을 써서 임팩트 팩터가 높은 저널에 게재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연구자로서 실적이 쌓이면서 계속 그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죠.”
신 단장은 기초과학에서 연구를 시작하더라도 언젠간 사회에 쓰였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현대 사회를 이끌고 있는 첨단 기술은 상용화되기 20~30년 전 기초과학에서 시작됐다. 1930년대 실리콘의 전기적 특성을 연구했던 기초과학이 1960년대 인텔(Intel)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앞으로 10, 20년 뒤에는 IBS에서 했던 연구들이 우리 사회에 공헌하길 바랍니다. 저도 그 한 축을 꼭 담당하고 싶고요.”
이를 위한 첫 단추는 연구단 구성원을 꾸리는 일이 급선무다. 신 단장 역시 현재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게 어떤 연구자를 원하는지 물었다.
“장비보다 중요한 게 사람입니다.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연구자와 함께할 수 있는지 여부가 연구의 성패의 갈림길에 있다고 행각해요.”
신 단장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오픈 마인드’다. 공동 연구가 많이 필요한 융합 연구의 특성상 꼭 필요한 덕목이다.
“연구단에 올 정도라면 이미 충분히 능력있는 연구자일 겁니다. 당장은 조금 손해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연구자이길 원해요. 이렇게 팀을 꾸려 10년 후에는 ‘이차원 구조체나 양자 광원은 어디가 잘하냐’는 질문이 왔을 때 곧장 한국 IBS의 신현석 팀이라는 답변이 나오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20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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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도약을 만드는 복잡계 물리 연구의 세계
과학기술 도약을 만드는 복잡계 물리 연구의 세계
물리학은 흔히 '괴짜들의 학문'으로 묘사된다. 원자, 에너지, 상호작용 등의 단어로 설명되는 물리학은 우리 눈에 보이는 물체, 그 너머의 현상을 규명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실 세계와는 한참 동떨어진 학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경민 선임연구원은 그가 연구하는 복잡계 물리학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심오한 이론부터 방대한 시뮬레이션까지 통합하여 사용하는 융합적 학문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이 세계는 수많은 입자의 복잡한 구조들로 구성돼 있다. 또, 자연 속에 그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식물에도 그 안에는 반드시 숨겨진 질서가 있다.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꽃잎을 이루는 백합과 장미, 가장 균형 잡힌 비율을 뜻하는 황금비가 그 예다.
이처럼 복잡계 물리학은 이상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한 단순계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복잡한 상황을 해석하는 학문이다. 김 연구원은 최근 현상 해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초전력 반도체 등 '현실' 기술에 적용할 만한 물리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혁신적 연구를 통해 과학기술의 도약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하는 물리학자 김 연구원을 만나 그의 연구 이야기를 들어 봤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PCS)의 김경민 선임연구원입니다. IBS에 합류하기 전에는 포스텍(POSTECH)에서 응집물질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제가 전공한 응집물질 양자장론은 응집물질 물리학 중에서도 가장 '이론적인’ 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응집물질계에서 나타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특성보다는 단순하고 근본적인 원리를 규명하는 물리학이지요.
Q. IBS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지금까지 해온 응집물질 양자장론의 관점을 뛰어넘어 새로운 학문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기법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복잡계와 같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물리계의 연구에 도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소를 찾던 중, IBS의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을 알게 됐습니다. 연구단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연구단에 직접 와보니 훌륭한 연구자가 다수 포진해 있는 데다 연구를 위한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연구 방향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게 약 4년 전, 연구단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은 어떤 곳인가요? '복잡계'라는 이름 자체로 아리송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가장 '현실'에 가까운 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전통적인 순수 이론물리학은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현상을 탐구합니다. 예컨대 어떤 공간에 단 1~2개의 입자만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이루는 물질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입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입자들끼리도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합니다. 입자 간에 일종의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 구조가 존재하는 거지요.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은 이처럼 현실 세계에 기반한 복잡한 물리학적 시스템 안에서의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복잡계를 실질적으로 연구하고자 효과적인 모델링 기법, 컴퓨터를 사용한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방법을 융합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Q. 연구단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오롯이 연구를 위한 기관인 만큼 대학과 같은 교육 기관에 비해 더 훌륭한 연구 시설을 갖췄으니까요.
하지만 시설보다 더 좋았던 건 이곳의 연구 문화였습니다. 이곳에선 연구자들이 서로의 연구 내용에 대해 활발히 토론하며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습니다. 여러 연구자가 모여 질문이 오가는 과정에서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날카로운 지적을 받는 등, 연구자로서 성장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곳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으셨나요?
2차원 자성체 등 현실적인 응집물질계에서 나타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특성 연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효과적 모델링 기법, 컴퓨터를 사용한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방법을 접목하여, 이전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응집물질 물리학의 도전적인 과제들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실질적인 물리학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과학기술 발전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Q. 어떤 연구를 진행하셨나요?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2차원 자성체(반데르발스 자성체)에서 불안정한 스핀 구조체를 안정화하는 방법을 구현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습니다. 자성체는 자성을 띠는 물체이며, 스핀 구조체는 자성체 내에서 스핀들이 복잡한 법칙에 따라 배열된 것을 말합니다.
스핀 구조체는 주변과 뚜렷이 구별되는 복잡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러한 독특한 특성 때문에 반도체 소자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정보 저장 및 전달 유닛으로 주목받고 현재까지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자화 방향이 자성체 표면에 수직한 방향을 가진 자성체(수직 이방성 자성체)에서만 안정적인 스핀 구조체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자성체 두 겹을 서로 뒤틀어 접합하는 방식으로 수평 이방성 자성체에서도 스핀 구조체를 안정화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수평 이방성을 띠는 자성체에는 '메론'이라는 스핀 구조체가 발생하는데, 보통의 자성체에서는 쌍소멸로 인해 메론을 안정화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메론을 안정화하는 방법을 찾아낸 건 이번 연구가 처음입니다. 이는 안정성이 부족해 메모리 소자에 쓰이지 못하던 메론과 같은 스핀 구조체들까지도 반도체 기술에 적용할 수 있게 됐다는 데서 의미가 큽니다.
Q. 연구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맞습니다. 이 연구에서 다룬 뒤틀린 자성체는 대표적인 미개척 복잡계 분야입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연구하는 그룹이 10개를 넘지를 않아요. 국내에도 연구자가 드물어서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필요한 지식과 자료를 모으기도 쉽지가 않았어요. 다만, 미개척 분야인 만큼 기회와 보상도 크리라 생각했습니다.
뒤틀린 자성체 자체는 복잡하지만, 제가 고심 끝에 찾아낸 핵심 원리는 간단합니다. 단순하게 설명해 드리면, 자성체 두 겹이 뒤틀린 채로 겹치면 겹친 면 사이에 보통의 자성체에는 없던 새로운 종류의 ‘포텐셜 우물’이 생깁니다. 마치 산과 산 사이에 깊은 계곡이 존재하는 것처럼요. 이렇게 만들어진 포텐셜 우물에 메론 쌍이 가둬지면서 쌍소멸로 인한 불안정성이 극복되고 결과적으로 안정화될 수 있습니다.
이 결과를 도출하는 데만 반년 이상 걸렸습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위한 코드를 짜는 데도 오랜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결과를 분석하고 논문을 쓰는데 또다시 1년 이상 걸렸지요. 길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연구 생각에 빠져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과정이 고비였던 긴 시간이었지만, 원하던 대로 결과가 나왔을 때 느껴지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습니다.
Q. 연구 성과 발표 후 학계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발견이기 때문에 꽤 재미있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실험물리학계에서도 질문이 들어왔 어요. 연구팀에서 실험을 진행해 어떤 결과를 얻었는데, 제 이론으로 그 결과를 해석할 수 있을지 묻는 등 흥미로운 접근이 많이 생겼습니다.
Q. 그러한 관심이 다음 연구로 이어질 수 있겠네요.
네. 이번 이론 연구에서는 특정 물질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향후 연구에선 특정 물질에 이론을 적용했을 때 어떤 특징이 나타나는지 탐구한다면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재료공학자 및 실험물리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번 이론을 실질화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Q. 연구를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일까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진 도전적 연구과제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성과를 목표로 하는 연구과제가 적절히 분배되도록 섬세한 지원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연구자가 연구과제를 충분히 공부하고 제대로 이해해 이른바 '대박'에 가까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는 연구 문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IBS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은 연구자가 주도적으로 자율성을 갖고 연구 주제를 재미있게 연구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한국 전반적으로 이렇게 연구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연구의 길을 걷는 모든 과학자는 자신만의 꿈과 포부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 꿈과 포부를 깊이 있게 추구할 수 있도록 안 정적인 터전이 되어주는 연구 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20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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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진한 탄소의 세계를 탐구하다
무궁무진한 탄소의 세계를 탐구하다
‘보석의 왕’이자 탄소로 구성된 다이아몬드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특성에 흔히 사랑의 징표로 생각하지만, 뛰어난 강도와 높은 열 전도성으로 궁극의 반도체 물질로도 여겨진다. 하지만 천연 다이아몬드를 이용하기엔 값이 너무 비싸고, 실험실에서 탄생한 ‘랩다이아몬드’는 표준대기압의 5~6만 배 이상 고압과 수천도의 고온 속에서 제작해야 하는 등 과정이 무척 까다롭고 만들어낼 수 있는 크기도 한계가 있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긴 어려웠다.
이 한계를 깨는 실마리가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손에서 나왔다. 바로 표준대기압에서 액체 금속 합금을 이용해 다이아몬드를 합성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 빛을 이용·분석해, 다이아몬드 내 '실리콘 공극 컬러센터' 구조도 발견했다. 이는 다시 말해 액체 금속 합금 속 실리콘이 다이아몬드 결정 사이에 끼어든 구조를 말하는데, 양자 현상을 띠고 자기 민감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성과는 지난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으며, 앞으로 한국의 관련 산업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성원경 연구위원은 다이아몬드 같은 탄소 물질을 연구하는 것이 낯선 친구를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탄소는 우리 주변의 많은 물질, 심지어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아주 친숙한 재료이지만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히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성 연구위원은 "연구를 하며 매번 겸손을 배운다. 한 번 성공했다고 안심하거나, 결과에 맞춰 데이터를 해석하려는 태도를 경계한다"는 태도로 우리가 몰랐던 탄소의 세계를 탐구해 나가고 있다. 성 연구위원에게 그의 연구인생과 성과에 대해 물었다.
Q.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연구위원이자, 박막 및 물성 분석팀의 팀 리더인 성원경입니다. 저는 성균관대에서 초전도 박막 성장 매커니즘 규명 및 물성 분석으로 박사과정을 마쳤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미국 샌디에이고에 본사가 있는 퀀텀 디자인 한국지사 재료과학팀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2월에 지금의 연구단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Q.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다양한 구조를 가지는 탄소 동소체 물질을 연구합니다. 탄소 동소체 물질로는 2차원 물질인 그래핀, 3차원 물질인 흑연과 다이아몬드가 대표적입니다.
연구단은 재료 그룹, 나노 광학 그룹, 합성 그룹, 분석 그룹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제가 소속된 재료 그룹은 단결정 그래핀이나 단결정 흑연 같은 단결정 2차원 물질, 다이아몬드와 같은 다양한 탄소 동소체를 성장 및 물성을 화학적 또는 물리적으로 제어하는 연구를 합니다. 나노 광학 그룹은 나노 크기의 빛을 이용해, 탄소 동소체의 미시세계를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또한 합성 그룹은 새로운 고분자 합성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분석 그룹은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탄소 동소체의 미시적인 결정 구조, 원소 분석 및 실시간 성장 메커니즘 연구를 수행합니다.
Q.박사님은 어떤 연구를 주로 하시나요? 연구에 빠져든 계기도 궁금합니다.
저는 팀원들과 단결정 그래핀이나 단결정 흑연과 같은 단결정 탄소 동소체를 성장시키고 그들의 기계적·구조적 특성들을 분석합니다. 또 시도되지 않던 방법을 통해 다이아몬드를 합성하고, 탄소 동위원소 분리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탄소 뿐 아니라, 모든 물질의 물리적인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결함이 없는 물질’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결함이 없는 물질들은 물질 고유의 특성을 제어했을 때 명확한 특성 변화를 보여 줍니다. 결함 없는 물질을 만드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이 중에서도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복잡하기도 합니다.
이런 연구를 하다 보면, 물질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필요로 하기에 낯선 친구를 조금씩 깊이 알아가는 느낌입니다. 특히 탄소 재료는 우리 생활에 흔하게 접할 수 있고, 우리 몸 또한 탄소로 이뤄져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결합 구조 또한 매우 단단하며, 구조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가집니다. 이렇듯 친근하면서 신비로운 탄소물질의 매력에 빠져 연구를 시작했고, 지금도 탄소 물질의 새로운 특성들을 배워 나갈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Q.최근에는 관련해 어떤 연구 성과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연구는 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1기압에서 액체금속을 이용한 다이아몬드 합성과 관련한 논문을 ‘네이처’지에 보고했습니다. 이 연구는 2017년 ‘사이언스’지에 언급된 ‘액체 갈륨을 이용해 메탄가스에서 수소를 분리해낸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액체금속을 이용해 메탄가스에서 분리된 탄소를 이용하면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탄소원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보통 다이아몬드는 고온 고압법으로 99%가량 합성되는데, 1,600도의 고온과 대기압의 5만 배의 고압 조건을 만들기 위해선 복잡한 기구들이 필요합니다. 또 고온 고압 조건을 만들기 위한 반응의 크기적 한계 때문에 합성되는 다이아몬드 크기도 1㎤로 제한이 됩니다. 저희의 연구는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또 초기 탄소 전구체 모양에 따라 흑연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스몰’지에 보고했습니다. 그간 탄소섬유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뤄졌지만, 초기 탄소 전구체 모양에 따른 흑연화 과정에 대한 연구는 없었습니다. 저희의 이번 연구는 고분자 전구체의 기하학적 구조가 합성된 흑연의 결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화학적 조성 및 열 처리 단계별 분자 배열 변화를 고려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본 연구를 통해 초기 전구체 모양을 제어하면 탄소 섬유와 같은 흑연화 과정이 필요한 탄소재료의 강도와 유연함을 동시에 제어가능한 다양한 탄소 복합재료를 합성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Q.실험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실험을 통해 매번 겸손해야 한다는 자세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 한 번 실험에 성공했다고 좋아하기보다는 재연 실험을 염두에 두고 실험과 데이터 분석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며, 좋은 결과를 얻어도 흥분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Q.연구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연구도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팀원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친해지려 하는 편입니다. 실험 등에 대해 팀원의 고민이 있다면 같이 나누고, 결정이 필요한 부분에서도 협의를 통해 진행해 나가려고 합니다. 왜 우리가 문제에 봉착했는지,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고민하면 동료 의식을 갖고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향후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팀원들과 △대면적 단결정 그래핀의 기계적인 특성에 대한 연구 △기존 단결정 그래핀의 문제점과 수율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단결정 그래핀의 합성법 △손쉬운 탄소 동위원소 분리법에 대한 연구를 해나갈 것입니다.
Q.향후 연구에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해외에 훌륭한 연구소가 많지만, 국내에도 훌륭한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소들이 많습니다. 또 한국의 연구 성과는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성실하고 스마트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연구자분들이 한국에서 연구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훌륭한 한국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 같습니다.
Q.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학위 과정, 박사 후 연구원 과정, IBS에서 많은 연구적 경험을 쌓았으며, 많은 분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연구단에 합류할 새로운 연구진들 또한 저와 같은 경험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에서 훌륭한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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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향상의 단서…뇌 과학에서 찾았다
인공지능 향상의 단서…뇌 과학에서 찾았다
인간을 따라 하던 인공지능은 이미 일부 분야에서 인간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데이터 학습을 넘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했던 추론과 논증에도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다 ‘인간 같은 인공지능’의 탄생을 눈앞에 둔 것이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비밀은 바로 ‘인간’에 있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창준 단장과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차미영 CI 공동 연구팀은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을 높일 수 있는 단서를 인간의 뇌에서 찾았다. 인공지능 모델의 기억 및 학습 메커니즘이 인간의 뇌 기억 통합 과정과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인공지능 학술대회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eurIPS)’에 지난 12월 채택됐다.
인간의 단기 기억은 뇌의 한 부분인 해마에서 장기 기억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신경세포에 있는 NMDA 수용체가 신경 연결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기억 형성에 관여한다. 연구팀은 특정 조건에서만 이온의 통로가 되는 NMDA 수용체의 ‘비선형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인간의 뇌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모델에서도 NMDA 수용체와 비슷한 비선형성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인공지능도 해마의 기억 통합 과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장기 기억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공동) 제1저자인 김동겸 박사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의 성능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동겸 박사를 만나 연구 배경과 성과 등에 대해 들어봤다.
Q.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IBS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의 박사후연구원 김동겸입니다. 2022년 박사학위를 딴 뒤 연구단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Q.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은 무엇을 하나요?
데이터 사이언스는 빅데이터 속에서 숨겨진 패턴을 찾고 분석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IBS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은 그중에서도 사회적 난제를 인공지능을 활용해 해결해 보려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출입 세관신고서만 보고도 위장 반입이나 원산지 조작 등 불법 행위를 적발하는 인공지능 세관원을 개발하거나 수면 시간이 지리나 문화적 영향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위성 영상으로 북한의 경제 변화를 포착하거나 기후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팀과 협력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이번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저는 원래 뇌 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던 이창준 단장님 그룹의 권재 박사님을 만나게 돼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 모델 작동 방식이 뇌의 해마에서 이뤄지는 계산 과정과 유사하다는 기존 연구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모델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할 지점이 보이게 됐습니다.
Q.뇌 분야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요?
박사 과정 때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는 연구를 하는 등 뇌 과학으로 인공지능을 분석하려는 시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뇌 과학에는 fMRI와 같은 뇌 신호 데이터를 분석하는 툴이 굉장히 많은데 이러한 툴을 이용해 인공지능 모델을 분석해 보는 연구도 했었습니다. 최근에는 제가 2저자로 참여해 뇌 과학 분석툴로 인공지능을 분석한 논문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Q.이번 연구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인간의 뇌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변환하는 프로세스를 ‘기억 통합’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억 통합이 인간뿐 아니라 인공지능 모델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됐다는 게 이번 연구의 주요 발견점입니다.
인공지능 모델은 데이터를 ‘셀프어텐션층’과 ‘피드포워드층’의 단계를 통해 처리합니다. 이전 연구를 통해 셀프어텐션층의 데이터 처리 과정이 인간 뇌의 해마가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인공지능의 ‘피드포워드층’에 집중했고, 이 부분의 비선형성이 해마의 NMDA 수용체의 비선형성과 매우 비슷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밝혀낸 겁니다.
Q.연구 성과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나요?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는 효율을 증가시키면 적은 양의 에너지로도 장기 기억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한의 학습량으로도 장기 기억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겁니다. 앞으로 나올 ‘저비용 고성능’ 인공지능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Q.연구 중 어떤 것이 가장 어려웠나요?
저는 뇌 과학이나 신경과학 분야를 잘 몰랐고, 뇌 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인공지능 모델에 대해 모르다 보니 용어나 모델링 등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융합 연구를 통해 제가 연구하던 분야를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시냅스 연결 간의 가중치를 ‘알고리즘의 학습 과정을 통해서 변환시킨다’ 고만 이해하고 있는데, 뇌 과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가중치가 왜 주어지는지, 어떤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연구합니다. 이러한 뇌 과학 연구들이 인공지능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Q.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있을까요?
인공지능의 문제점 중 하나가 민감한 정보들도 모두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고 기억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참전용사들이 전쟁의 기억으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겁니다. 이렇게 비슷할 것 같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기억법’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대언어모델(LLM)이 어떤 데이터를 잘 기억하려 하고, 나아가 어떻게 하면 특정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지 등을 연구해보려 합니다.
Q.앞으로 연구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번 연구에서는 IBS의 GPU클러스터를 활용해서 필요한 계산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LLM 모델을 연구하려면 좀 더 규모가 큰 계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장비가 필요합니다. 마침 IBS의 슈퍼컴퓨터 ‘올라프’가 2024년 3월부터 정식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니 관련 장비를 사용할 수 있으면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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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과 상관없이 함께 도전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국적과 상관없이 함께 도전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좌측부터 샹(Xiang Lyu,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리디아(Lidiya Getachew Gebeyehu, 혈관 연구단) 필리페(Luiz Felipe Vecchietti,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연구에 매진하느라 바쁜 과학자 3명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본원과 KAIST 캠퍼스 연구단에 나눠져 있기도 했고, 수시로 있는 학술 세미나에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했다. 새롭게 완공한 IBS KAIST 캠퍼스 2층 라운지에서 리디아(Lidiya Getachew Gebeyehu, 혈관 연구단), 필리페(Luiz Felipe Vecchietti,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샹(Xiang Lyu,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연구원을 만났다.
Q.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리디야(이하 리): 에티오피아에서 온 의사 리디야입니다. 혈관 연구단에서 림프관 발달과 그로부터 생기는 파생 질병에 대해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어요.
루이즈 필리페 베케티(이하 필): 브라질에서 온 루이즈 필리페 베케티입니다.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선임연구원입니다. 인공지능(AI)를 사용해 단백질을 연구하는데요. 단백질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알아보거나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샹 류(이하 류): 중국에서 온 샹 류 선임연구원입니다.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에서 연구하고 있어요. 탄소와 수소를 이용해 락탐을 합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Q. IBS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리: 2년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에티오피아에 있을 때부터 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혈관 연구단에서 하고 있는 실험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필: 학부생 때(2013년)이었는데 브라질 정부에서 지원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처음 왔었어요. 그 때 한국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브라질에 돌아가 석사 학위를 받았고 2017년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 과정으로 왔습니다. 박사 학위는 로보틱스 관련 연구로 받았고요. 그 때 차미영 CI의 AI 관련 연구에 대해 듣고 그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현재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류: 2018년 영국 사우스햄프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박사 학위 디펜스 과정에서 장석복 단장님에 대해 알게 됐죠. 유기 화학 분야에 워낙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박사 학위를 마치고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찾는데 때마침 연구단에서 채용 공고를 올렸어요. 바로 지원했고 IBS에 오게 됐죠.
Q. IBS에서의 연구 생활은 어떤가요?
리: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어려운 연구도 도전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아낌없이 지원한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어요. 장비도 좋고, 자료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줍니다.
필: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앞장 서서 도전하는 부분이 매력적입니다. 멘토링을 해주는 선배 연구자들도, 함께 연구하는 후배들도 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힘든 때가 있어도 연구실에 오는 건 두렵지 않을 정도로 즐겁게 연구하고 있어요. 제 스스로가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류: IBS는 팀웍이 좋은 곳입니다. 도와주고, 밀어주는 동료들이 주변에 많아요. 연구단에는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함께 있는데요. 다른 분야 전문가가 제 연구를 보고 도와주면 더 완벽한 결과가 나오곤 해요. 이 부분이 IBS 연구단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안 좋은 점은 없나요?
류: 없어요(웃음).
필: (데이터 과학자라서)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라서 연구가 힘들어요. 그런데 그건 모든 연구자들이 겪는 문제죠.
Q. IBS에 적응할 때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리: IBS에 적응할 때 보단 먼 타국에 왔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가족과 멀리 떨어진 게 힘들었죠.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도 어렵고요.
필: 문화적 차이가 힘들었어요. 학부생 때 왔을 때는 한국 문화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어차피 짧게 있을 거라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싫었고요. 하지만 박사 과정과 연구를 위해 들어왔을 때는 길게 보고 적극적으로 적응했어요. 새로 온 연구자들도 저와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될텐데요. 인내심을 갖고 적응해보길 추천합니다.
류: 반대로 전 중국과 한국 문화가 비슷한 게 많아서 문화적 어려움 없이 금방 쉽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했을 때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나 교류가 다 막혔던 것이 어려웠네요.
Q. IBS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리: 여러 국가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IBS에 올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필: 다른 연구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연구단 내부가 아니라 아예 다른 연구단과도 교류하고 싶어요. 또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가 많이 진행됐으면 합니다.
류: 기숙사가 너무 좋은데 1년 밖에 못 쓰는게 아쉽네요(웃음). 다른 연구단을 방문할 수 있는 오픈 데이 같은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연스럽게 서로 교류도 하고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이 듣고 싶어요.
리: 현재 박사 학위 과정 중에 있어서 일단은 학위를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이후엔 임상 시험 쪽 연구를 하고 싶어요. IBS에 관련 분야가 있다면 계속 이곳에서 일하고 싶죠. 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필: 당분간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할 거 같아요. 기후 변화 같은 것 말이죠. 장기적으로는 교수가 되고 싶어요.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이 저를 롤모델로 삼을 수 있도록 좋은 사례로 남고 싶습니다.
류: IBS에서 일하면서 생화학 관련 연구를 하고 싶어요. 신약 개발처럼 지속가능한 연구 모델을 찾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어떤 과학자가 되고 싶나요?
리: 절대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연구자가 되고 싶어요. 림프 부종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할 겁니다.
필: 함께 연구하는 동료가 성공한다면 나도 성공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될 겁니다.
류: 효율적이고 좋은, 새로운 화학 반응을 발견하는 생화학자가 될 거예요.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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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원자의 스핀 제어로 새로운 양자컴퓨터 플랫폼을 만들어간다
단일 원자의 스핀 제어로 새로운 양자컴퓨터 플랫폼을 만들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극미소(極微小)’의 세계에는 우리가 사는 거시 세계와 다른 물리 법칙이 작용한다. 양자 중첩, 양자 얽힘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 현상을 이용한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 되면 현재의 컴퓨터가 처리하지 못하는 방대한 양의 계산을 눈깜짝할 사이에 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상용 컴퓨터의 기본 계산 단위인 비트(Bit)는 0 또는 1의 상태만 표현할 수 있지만 양자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Qubit)는 0과 1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은 지난 5월 단일 원자의 전자 스핀을 이용해 큐비트 개발에 성공했다.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새로운 방식의 큐비트로 양자 컴퓨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번 연구를 이끈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 박수현 연구위원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06년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서울대학교 산화물전자공학연구단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산화물 표면과 초기 성장에 대해 연구했고요. 2010년부터 5년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자기나노구조 연구를 했습니다. 이때의 연구 주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에 돌아온 후 2017년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 초기 설립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기 전인 2019년부터 2020년까지는 미국 산호세에 위치한 IBM 연구소에서 원자 사슬 구조의 자기적 성질, 고주파 신호를 이용한 단원자 스핀의 양자상태 제어 등을 연구했고요. 당시에 얻었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현재 양자나노과학연구단에서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전자스핀공명(ESR)을 이용해 고체 물질 표면과 나노 구조의 양자역학적 성질을 원자분해능(atomic resolution)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소속 연구단인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은 2017년 1월에 설립돼 현재 약 35명의 연구 인력과 10여명의 행정 및 기술 지원 인력이 서로 도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단에서는 고체 표면 위에 놓인 단일 원자 및 분자의 양자역학적 성질을 연구합니다. 그리고 알아낸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원자 및 분자들로 만든 나노구조에 적용해 양자 정보•계산•센서 분야 등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연구 방법은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하는 STM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STM을 이용해 개별 원자나 분자, 또는 이들을 이용해서 만든 인위적인 구조에 대한 전자기적 상태를 제어하고 측정합니다. 저는 현재 양자나노과학연구단에서 ‘원자 스케일 전자스핀큐비트’ 프로젝트를 맡아 연구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연구자 생활을 하다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귀국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대학원 생활까지 한국에서 했기 때문에 기회가 있다면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고요.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약 5년간 나노 자석의 원자분해능 연구를 했는데,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당시만해도 한국에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험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의 핵심 연구 성과를 소개해주세요.
지금까지의 핵심 연구성과로는 먼저 STM과 ESR 기술을 결합해 2018년에 고체 표면 위 단일 원자의 핵스핀을 상태를 측정하는데 성공한 건이 있습니다. 2019년에는 마이크로파 펄스를 표면 위 단일 원자(티타늄)에 순간적으로 가해 전자 스핀 상태를 제어하고 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올해 5월에는 표면 위 단일 원자 스핀의 큐비트 제어에도 성공했습니다. 이어서 여러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멀티 큐비트 시스템도 구현했습니다. 이 세 연구 결과가 모두 사이언스지에 게재됐습니다.
올해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전자스핀 큐비트 논문 내용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이번 연구에서는 산화마그네슘으로 만든 얇은 절연체 표면 위에 놓인 여러 개의 티타늄 원자들로 구조를 만들고 이를 복수 큐비트 플랫폼으로 구현했습니다. 양자 컴퓨터를 이루는 큐비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향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나요.
연구팀은 먼저 STM의 탐침을 이용해 각 원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조작해 여러 원자 스핀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복수 티타늄 원자 구조를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이후에는 센서 역할을 할 티타늄 원자에 탐침을 두고 원격제어 방식을 적용해 센서 및 원거리에 놓인 여러 티타늄 원자들을 하나의 탐침으로 동시에 제어‧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각 티타늄 원자가 개별 큐비트의 역할을 하고 양자역학 법칙에 의해 서로 상호 작용하게 되는데, 이를 이용해 양자정보처리에 핵심적인 기본 연산인 'CNOT'와 'Toffoli' 게이트를 구현했습니다.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는 상용화된 큐비트들과 다른 형태인데, 완전히 새로운 큐비트 개발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상용화 측면에서 현재 ‘초전도접합큐비트’와 ‘이온트랩큐비트’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양자 컴퓨터 분야의 발전 정도가 실용화 단계까지 갔을 때 누가 승자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 연구실 연구 단계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연구 그룹들이 각자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연구 방법을 기반으로 큐비트 플랫폼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연구단은 STM을 이용한 개별 원자, 분자의 조작과 측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개별 원자, 분자의 스핀을 이용한 큐비트 플랫폼을 구현하게 된 것입니다.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가 다른 큐비트와 비교했을 때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는 원자 하나 하나의 스핀을 이용하고, 개별 원자의 위치를 조작해서 여러 원자 스핀을 원하는 모양으로 배치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큐비트 간 정보 교환을 원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있지요.
또 큐비트 한 개가 차지하는 공간이 1나노제곱미터에 불과해 다른 종류의 큐비트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큐비트의 집적도를 높이는데 있어 독보적입니다.
연구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STM을 이용한 실험 방법의 구조적 한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가장 컸습니다. STM은 끝이 원자 하나로 된 탐침을 이용해 표면 위 원자의 위치를 조작하고, 원자분해능으로 신호를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지금까지는 탐침과 매우 가까운 원자스핀만 직접 제어 및 측정이 가능했지요. 하지만 큐비트를 만들려면 여러 원자들을 개별적으로 제어하고 측정해야 합니다. 이번 연구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중요한 진보는 탐침으로부터 거리가 먼 큐비트를 제어하고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이를 여러 큐비트 구조에 적용한 것입니다. 일명 ‘원격 큐비트’ 개발에 성공한 것이죠.
논문이 게재된 후 학계에서는 어떤 반향이 있었나요.
이번 연구는 양자 컴퓨터 분야와 STM 으로 원자, 분자를 연구하는 분야 양쪽의 연구자들이 모두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었습니다. STM을 이용한 연구를 하는 분들은 원자 스케일에서 새로운 양자 정보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STM 기술을 보다 고도화한 예이고, 적용 분야를 넓히는 셈이거든요.
양자 컴퓨터 분야를 먼저 연구하고 있던 분들에게는 아직은 ‘새로운 시도’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큐비트 플랫폼들이 이미 앞서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죠.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의 상용화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이시는지요?
상용화까지 이어지려면 소자의 신뢰도와 집적도에 대한 축적된 연구가 필요한데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인 우리 양자플랫폼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당연히 큐비트가 엄청나게 많아야 하는데 현재 우리 연구단이 구현에 성공한 큐비트의 개수는 3개에 그칩니다. 또 큐비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정보처리와 저장에 있어서의 신뢰도 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정보를 저장한 후 나중에 확인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이 정보가 처음 저장한 상태와 동일한 것인지, 여전히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겠지요.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처리하고, 오래 저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도 필요합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오래 연구된 기존 양자플랫폼들에서 확립된 집적도와 신뢰도를 주로 결정하는 물리적,화학적 특성들을 고려해 우리 플랫폼의 연구 방향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후속 연구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앞서 언급했듯 큐비트의 수를 늘리는 것, 그리고 여러 양자연산 게이트를 연속 수행하는데 필요한 충분히 긴 연산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소개한 복수 큐비트 구조와 제어 방식으로는 최대 5~6 큐비트를 연결하고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재 가장 앞서나가는 초전도물질 큐비트나 이온트랩 큐비트가 100 큐비트 이상 집적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연구 시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물질계에서 양자플랫폼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초전도물질과 이온트랩을 제외하면 동시에 제어•측정이 가능한 큐비트의 수가 수 개를 넘지 못하고 있어서 전체 양자플랫폼 연구와 대비해 생각해보면 우리 연구가 그리 뒤쳐져있는 것도 아닙니다.
향후 연구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앞으로는 5~6 큐비트 시스템을 만들어 먼저 이론적으로 제안된 여러 기초적인 양자연산 알고리즘을 적용해 볼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의 실용성과 미래를 예측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향후에는 큐비트들 간의 연결 방식과 측정 방식을 더욱 개량하고 보완해서 10 큐비트 이상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연구가 필요하겠지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도 이어져야 하고요.
향후 연구에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요?
어떤 새로운 개념이나 발상이 연구의 대상이 된 후 상용화 되기까지는 대략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칩니다. 1)실험실 연구 2)기초과학•기술응용 분야 전문가들 협동을 통한 실용성 연구 3) 기업체에서의 상용화 연구 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연구단과 같은 연구 기관이 맡고 있는 실험실 연구 단계는 아직 잘 모르는 대상의 성질을 알아내고 이전에 없던 방법을 정립하는 과정입니다. 당연히 수많은 새로운 시도가 실패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이 계속 더해져서 점점 더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시험을 하다가 매우 쓸모 있는 대상과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거든요. 때문에 장기간의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현재 양자정보과학 선진국들에서 초전도물질 및 이온트랩 기반 양자플랫폼에 대해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지원했던 것처럼, 성과가 있을 때 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는 때에도 지속적인 관심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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