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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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과학의 미래를 꿈꾸다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그룹리더 홍승우 KAIST 교수

촉매 하에 레고처럼 결합시켜 신약 개발한다

6월 16일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의 그룹리더를 맡게 된 홍승우 KAIST 교수가 액체크로마토그래피 질량 분석기 앞에서 연구그룹의 목표와 조직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6월 16일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의 그룹리더를 맡게 된 홍승우 KAIST 교수가 액체크로마토그래피 질량 분석기 앞에서 연구그룹의 목표와 조직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레고는 다양한 블록을 갖고 여러 가지 모양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장난감입니다.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방법은 유기화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완벽한 화학반응의 모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KAIST 화학과 건물에서 만난 홍승우 교수는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단장 장석복 KAIST 교수) 내에서 어떤 연구를 하느냐는 질문에 '레고 화학(Lego chemistry)' 얘기부터 꺼냈다. 홍 교수는 지난 6월 16일 이 연구단의 그룹리더를 맡게 됐다.

그는 "전통적으로 유기화학 반응에서는 결합을 유도하기 위해 작용기를 도입해야 하는데, 이에 따라 시간, 노력,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산업 폐기물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반면에 레고 결합은 작용기를 사용하지 않고 전혀 폐기물이 나오지 않아, 화학 반응에서 분자결합을 생각할 때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 연구그룹은 여기에 착안해, 출발 물질에서 전혀 작용기를 붙이지 않은 채, 촉매 시스템에서 탄소-수소 활성화를 거쳐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는 아주 효율적이고 환경에 친화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기존의 '합리적 약물 설계'를 넘어서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2012년 12월 KAIST 화학과 장석복 교수가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연구단은 새로운 촉매반응을 개발하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을 연구 주제로 설정했다. 특히, 반응성이 낮은 탄화수소의 탄소-수소 결합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효과적이고 선택적인 촉매시스템을 개발하며, 궁극적으로는 천연물, 의약화합물, 기능성 분자의 합성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화학반응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 교수가 실험실에서 합성한 화합물에 대해 연구원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홍 교수 연구그룹은 기존의 '합리적 약물 설계'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방법을 연구할 계획이다.

▲ 홍 교수가 실험실에서 합성한 화합물에 대해 연구원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홍 교수 연구그룹은 기존의 '합리적 약물 설계'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방법을 연구할 계획이다.

연구단 내 그룹리더인 홍 교수는 "연구그룹을 촉매-반응 시스템 개발팀, 유기합성법 개발팀, 의약화학팀으로 나눠 운영할 것"이라며 각 팀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탄소-수소 결합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효율적이고 선택적이며 자연친화적인 촉매-반응 시스템을 개발하고, 개발된 촉매 시스템을 바탕으로 새로운 유기화학반응에 응용한다. 예를 들어 도미노 반응처럼 하나의 촉매 시스템에서 일련의 반응을 잘 배열해 이런 반응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다면, 간단한 출발 물질로부터 원하는 복잡한 화합물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는 환경,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아주 유리하다.

그는 또 여기서 개발된 촉매시스템을 바탕으로 해서 유용한 유기합성반응을 개발하고 '프래그먼트 기반 접근법(fragment-based approach)'과 접목시켜 나간다면, 신약 개발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의약화학팀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은 레고처럼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아 일종의 레고 화학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거대 제약회사에서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질병 단백질의 타깃에 '우연히' 들어맞는 화합물을 찾아내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이미 완성된 화합물을 엄청나게 많은 양으로 모아둔 '화합물 라이브러리(chemical library)'를 만들어 놓고 '고속 대량 스크리닝(HTS: High Throughput Screening)'으로 필요한 화합물을 찾는 것이다.

반면에 이런 물량공세 대신 '정밀타격'을 하는 '합리적인 약물 설계(rational drug design)'가 주목받고 있다. 복잡하고 큰 분자의 화학반응을 컴퓨터에서 계산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2013년 노벨화학상) 덕분에, 질병 단백질의 활성 부위를 정확히 계산하고 여기에 적합한 물질을 설계해 약물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이때 '프래그먼트 기반 전략(fragment-based strategy)'을 써서 퍼즐을 만들듯이 약물을 설계할 수 있는데, 문제는 유기화학적 방법으로 이런 구조체(fragment)들을 마음대로 붙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효율적인 유기화학 반응을 개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3명의 화학자가 팔라듐 촉매를 써서 두 탄소 원자가 서로 결합하게 만드는 합성법을 개발해 201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이래, '짝 지음 반응(cross-coupling reaction)'과 관련된 화학이 발전했다. 홍 교수는 "이렇게 선택적으로 탄소-탄소 결합을 만드는 것은 획기적인 방법이자 신약 개발에서 무척 유용한 반응이지만, 금속과 할로젠(염소, 브롬, 요오드 등)을 활성화한 다음에야 탄소-탄소 결합이 가능하다는 게 한계"라며 "우리는 금속화나 할로젠화를 거치지 않고 탄소-수소 결합을 활성화시켜 탄소와 탄소(또는 헤테로 원자)를 바로 결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근본적으로 연구하려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타깃에 결합할 수 있는 유용한 화합물 골격(privileged scaffold)을 대상으로, 선택적으로 탄소-수소 활성화를 일으켜 이 화합물 골격에 다른 구조체를 원하는 대로 결합시킬 수 있다면, 이를 '프래그먼트 기반 전략'에 적용해 신약 개발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동기인 이 분야에서 우리가 국제적으로 가장 경쟁력을 갖춘 그룹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배우다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서 약물 내성이 생긴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홍 교수. 앞으로 약물 내성의 변화를 신속하게 따라잡기 위해 혁신적인 유기합성법을 개발할 계획이다.

▲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서 약물 내성이 생긴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홍 교수. 앞으로 약물 내성의 변화를 신속하게 따라잡기 위해 혁신적인 유기합성법을 개발할 계획이다.

서울대에서 천연물 합성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천연물 전합성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하버드대 일라이어스 코리 교수(1990년 노벨상 수상자)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포스닥)으로 소중한 경험을 했다. 당시에 조류독감 문제 때문에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를 어떻게 대량 합성할 수 있을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제는 타미플루를 합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출발 물질인 시킴산(shikimc acid)이 중국의 특용 작물에서만 추출되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는 시킴산이 아니라 광학선택적인 촉매를 사용해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간단한 물질을 출발 물질로 삼아, 광학선택적 반응을 핵심 반응 단계로 해서 간단하게 타미플루를 합성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이 방법은 특허를 내지 않고 긴급 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공 도메인(public domain)에 올렸다고 한다.

"이 성과는 우연이나 운이 아닙니다. 그전부터 코리 교수가 광학선택적인 촉매를 개발하기 위해 기초를 포함해 기본적인 과정을 엄청나게 연구했고, 저도 이런 촉매를 활용해 다양한 시스템의 화합물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조류독감 문제가 생겼고, 타미플루의 중요성이 높아지니까 저희가 타미플루를 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랍니다."

그는 또 "이런 획기적 성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에 대해 축적된 성과물이 필요하다"며 "기본적인 부분에 대해 넓게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축적된 성과물은 과학적 진보로 이어지고,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이 될 수 있다"고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는 2년 반 동안 거대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유기화학자로 '합리적 약물 설계'를 배우는 것은 드물죠. 하지만 GSK에 들어가서 이와 관련된 최신 연구를 기초적인 부분부터 배우고 싶었어요. GSK에서 항생제 개발 쪽에 참여했고,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는 미생물의 돌연변이와 약물 내성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항암제 내성 극복하는 비법

홍 교수의 연구그룹은 신약 개발 분야에서 빠르게 변형되는 내성 메커니즘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유기반응 수단을 제시하고, 기존의 신약 개발 방법에서 탈피할 수 있는 혁신적인 진보를 이루고자 한다. 이와 관련된 연구결과 중에서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사용되는 글리벡에 대해 내성을 극복하는 치료제로서 개발 연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만성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하는 원인 중 90% 이상이 BCR 단백질의 이형융합에 의한 ABL 키나아제의 비정상적인 활성으로 알려져 있다. 표적 항암제로 각광받았던 글리벡은 ABL 키나아제 저해제로 개발됐다. 하지만 2003년 키나아제의 활성자리 중에서 트레오닌 315번 잔기가 이소류신으로 바뀌는 돌연변이가 일어나 약물 내성이 발생됐다. 이에 홍 교수 연구진은 변형된 활성부위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해 돌연변이 키나아제의 작용을 억제할 수 있는 활성 구조를 가진 화합물을 설계하고 도출했다. 이 연구성과는 2013년 미국화학회지(JACS)에 발표됐다. 홍 교수는 "간단한 출발 물질로부터 효과적이고 선택적인 촉매시스템을 이용해 탄소-수소 결합을 활성화시키고, 일련의 여러 화학반응들을 단일 촉매조건 하에 연속적으로 일어나도록 해, 설계된 복잡한 생리활성 물질을 효율적으로 합성할 수 있었다"며 "이렇게 발굴된 활성물질들은 ABL 키나아제 야생형과 돌연변이의 활성부위에 둘 다 단단히 결합해 약물내성을 보이는 백혈병 암세포에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미생물 또는 암을 일으키는 타깃 단백질은 스스로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항생제 또는 항암제에서 약물 내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수단은 바로 유기합성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약물 내성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신속하게 따라잡으려면, '레고 화학'과 같은 혁신적인 유기화학 반응으로, 원하는 화합물의 골격을 원하는 곳에 선택적으로 붙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자연의 돌연변이에 인류가 대처하는 싸움!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이 획기적인 연구성과로 힘을 보탤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