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MBTI. 그중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F’ 또는‘T’는 공감 방식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공감은 타인의 기쁨, 슬픔, 공포와 같은 정서적인 상태를 공유하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T는 정보를 바탕으로, F는 감정을 바탕으로 공감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죠.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마다 제각기 방식은 다르지만, 어찌됐든 사람은 ‘공감’을 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사진1. 공감 능력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특징이다. 출처 : pix4free
사진1. 공감 능력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특징이다. 출처 : pix4free

그래서 자폐, 조현병, 사이코패스와 같이 공감 능력이 결핍된 질병을 겪는 사람들은 사회 생활에서 숱한 문제를 겪습니다. 반대로 공감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을 경우에도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죠. 하지만 자폐, 조현병 등 공감 능력과 관련된 질병은 현재로서는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 뿐이고, 대부분의 경우 뚜렷한 완치 방법이 없습니다.

공감 능력이 결여된 질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뇌에서 어떻게 공감 능력을 형성해내는지 알아야 하는데, 공감 능력은 뇌에서 매우 복잡한 인지 영역이라 아직 공감 능력을 형성하는 뇌 신경 회로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행히도 뇌인지과학자들은 공감 능력 형성 원리의 미스터리를 점점 벗겨내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이 그 중심에 있죠.

공감 능력을 결정하는 유전자 발견

인간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고, 기쁨에 공감하며 함께 웃죠. 이처럼 ‘공감’은 상황에 따라, 느낀 감정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다릅니다. 생쥐는 어떨까요. 생쥐는 다른 생쥐의 고통을 관찰하고, 이 공포에 공감한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고 몸이 얼어붙는 ‘프리징(freezing)’이라는 행동을 보입니다. 공포에 얼마나 공감했는지에 따라 프리징 반응의 정도가 달라지죠. 다른 생쥐의 공포에 공감한 생쥐는 다음 날에도 같은 장소에 두면 공포에 대한 기억을 회상해 프리징 행동을 보입니다.


사진2. 생쥐의 공포 공감 행동 실험 방법. 관찰 생쥐는 고통을 받는 생쥐가 전기충격 받는 모습을 보고 동작을 멈추는 프리징 행동을 보이며, 다음날에도 같은 장소에 두면 고통받는 생쥐를 보지 않아도 프리징 행동을 보인다.
사진2. 생쥐의 공포 공감 행동 실험 방법. 관찰 생쥐는 고통을 받는 생쥐가 전기충격 받는 모습을 보고 동작을 멈추는 프리징 행동을 보이며, 다음날에도 같은 장소에 두면 고통받는 생쥐를 보지 않아도 프리징 행동을 보인다.

2018년 기초과학연구원 신희섭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명예연구위원은 생쥐의 프리징 반응 실험을 통해 공감 능력의 차이를 결정하는 신경회로를 밝혀냈습니다. 연구팀은 생쥐 두 마리를 각각 이웃한 챔버에 넣고, 한쪽 생쥐에게만 전기 충격을 줬습니다. 이때 챔버를 투명한 벽으로 만들어 옆 챔버의 생쥐가 전기 충격을 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이웃 생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죠.

연구팀은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생쥐 18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오직 한 종류의 생쥐 그룹만이 이웃 생쥐의 공포에 과하게 공감했습니다. 즉, 프리징 행동을 다른 쥐보다 더욱 강하게 보였죠. 생쥐 18종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이웃 생쥐의 공포에 과하게 공감한 한 종의 생쥐에게서만 Nrxn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습니다. 공포 공감 능력이 낮았던 다른 종의 생쥐의 Nrxn3 유전자에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자, 이들의 공포 공감 능력이 증가했죠. 이로써 Nrxn3가 공감 능력 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추가로 Nrxn3 유전자가 작동하는 구체적인 매커니즘도 알아냈습니다. 연구팀은 관찰 공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알려진 전두엽 전대상 피질 부위의 모든 뉴런에서 Nrxn3 유전자를 제거한 뒤, 생쥐의 공감 능력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신호 강약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뉴런인 SST 뉴런에서 Nrxn3 유전자를 제거한 경우 생쥐의 공감 능력이 크게 증가했죠.


사진3. Nrxn3 유전자가 SST 뉴런의 시냅스 전달 기능을 조절해 공감능력에 관여하는 과정.
사진3. Nrxn3 유전자가 SST 뉴런의 시냅스 전달 기능을 조절해 공감능력에 관여하는 과정.

검증을 위해 빛으로 뉴런의 활성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방법으로 SST 뉴런의 활성을 억제한 경우에도 역시 생쥐의 공포 공감 능력이 크게 향상됐습니다. 반대로 SST 뉴런을 활성화하자, 공포에 대한 공감 반응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모든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Nrxn3 유전자는 SST 뉴런의 시냅스 전달 기능을 조절해 공감 능력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사진4. 전대상 피질의 SST 뉴런에서 Nrxn3 유전자가 제거된 생쥐는 정상 대조군 생쥐에 비해 공포 공감 행동이 현저히 증가했다(가). SST 뉴런 활성이 억제된 생쥐 역시 높은 공감 능력을 보였고(나), 반대로 SST 뉴런이 활성화된 생쥐는 공감 능력이 낮아졌
사진4. 전대상 피질의 SST 뉴런에서 Nrxn3 유전자가 제거된 생쥐는 정상 대조군 생쥐에 비해 공포 공감 행동이 현저히 증가했다(가). SST 뉴런 활성이 억제된 생쥐 역시 높은 공감 능력을 보였고(나), 반대로 SST 뉴런이 활성화된 생쥐는 공감 능력이 낮아졌

우뇌의 뇌파 동기화가 공감 기능을 유도

지난해 12월, 연구팀은 같은 실험 모델을 사용해 공감 형성 원리에 좀 더 가까이 도달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앞선 연구에서 사용한 생쥐를 이용한 ‘관찰 공포 행동 모델’을 똑같이 활용했습니다.


사진5. 관찰 공포 행동 중 우뇌의 대뇌피질과 편도체 영역의 5~7Hz의 뇌파 증가.
사진5. 관찰 공포 행동 중 우뇌의 대뇌피질과 편도체 영역의 5~7Hz의 뇌파 증가.

이번에는 생쥐가 공감할 때 뇌에서 발생하는 뇌파에 주목했습니다. 광유전학적 기법과 뇌파 측정 실험을 함께 진행한 결과, 다른 생쥐의 고통에 공감한 생쥐에게서 공통적으로 5~7Hz 진동수의 뇌파가 발생했고 이 뇌파에 의해 우뇌의 세부적인 영역들이 기능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관찰됐습니다. 즉, 생쥐가 공감 행동을 보일 때 우뇌에서는 5~7hz의 뇌파로 동기화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죠.


사진6. 광유전학 기법을 활용해 우뇌의 대뇌피질-편도체 사이에 연결된 신경회로가 공감 능력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진6. 광유전학 기법을 활용해 우뇌의 대뇌피질-편도체 사이에 연결된 신경회로가 공감 능력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뇌에서 공감 능력에 관여하는 영역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대뇌피질-편도체 간에 연결된 신경회로를 억제해 관찰 공포 실험을 똑같이 진행했죠. 그 결과 생쥐의 공감 행동이 감소했습니다. 반대로 신경회로를 강화했을 때는 공감 행동이 증가했죠. 대뇌피질-편도체 사이에 연결된 뇌 신경회로와 이 영역에서 발생한 5~7Hz의 뇌파가 생쥐의 공감 능력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뇌 대뇌피질-편도체에서 발생한 5~7Hz의 정확한 근원은 어디일까요. 연구팀은 광유전학기법으로 이 뇌파의 근원이 해마 영역에서 나오는 ‘세타파’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세타파는 인지, 정서, 선척적 공포, 불안장애 등 다양한 뇌 기능과 관련된 매우 느린 파동입니다. 연구팀이 광유전학 기법으로 해마 세타파를 억제하자, 우뇌 대뇌피질-편도체 부위의 뇌파 동기화가 감소했습니다. 예상대로 생쥐의 공감 행동 역시 억제됐죠. 이번 연구는 공감 능력 조절 메커니즘을 뇌파 수준에서 처음으로 규명해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사진7. 광유전학 기법을 이용해 해마 세타파를 억제한 결과 우뇌의 대뇌피질-편도체 부위의 뇌파 동기화가 감소했고 관찰 공포 행동도 억제됐다.
사진7. 광유전학 기법을 이용해 해마 세타파를 억제한 결과 우뇌의 대뇌피질-편도체 부위의 뇌파 동기화가 감소했고 관찰 공포 행동도 억제됐다.

뇌과학으로 당연한 것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사진8. 뇌과학 분야에는 아직 미스터리가 많지만,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미스터리가 점점 밝혀지고 있다. 출처: unsplash
사진8. 뇌과학 분야에는 아직 미스터리가 많지만,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미스터리가 점점 밝혀지고 있다. 출처: unsplash

일상 생활에서 ‘공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뇌과학 분야에서는 아직 미스터리가 많은 영역입니다. 하지만 위의 연구처럼 공감에 관여하는 유전자, 영역, 뇌파 등을 차근차근 밝혀내다 보면 결국 언젠가 정수에 가닿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진9. 빛을 비춰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술은 뇌과학 분야의 미스터리를 푸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사진9. 빛을 비춰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술은 뇌과학 분야의 미스터리를 푸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특히 위 두 연구에서 활용된 광유전학 기술은 그 가능성을 더 높였습니다. 뇌는 매순간 학습하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생긴 특성이 중요한데, 광유전학 기술은 특정 단백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죠. 광유전학 기술을 포함해 다양한 뇌과학 분석 도구와 연구자들의 활약으로 뇌과학 분야의 여러 미스터리가 풀리고, 난치병으로 여겨지는 자폐, 조현병 등의 정신 질환의 효과적인 치료법이 개발되길 바랍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