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 해양의 식물 플랑크톤 분포/출처: NASA
전 지구 해양의 식물 플랑크톤 분포/출처: NASA

바다를 떠올리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해양 동물들이 전부인 것 같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초록색 방패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식물 플랑크톤이다. 육지의 식물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광합성을 통해 영양염과 탄소를 흡수하고 에너지(유기탄소)와 산소를 합성한다. 해양 생태계를 먹여 살리는 자가 영양생물로 먹이사슬의 탄탄한 기반을 이룬다. 이 때문에 바다에서 가장 중요한 유기체로 꼽힌다.

식물 플랑크톤(phytoplankton)이라는 단어는 ‘식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이튼’과 부유물질을 뜻하는 ‘플랑크토스’에서 유래했다. 바다에 떠 있는 식물이라는 의미로 햇빛이 들어오는 바다와 호수의 표층에서 살아간다. 육상 식물과 비교해 훨씬 더 넓은 면적에 분포하며 계절적인 변화도 적은 편이다. 따라서 지구의 탄소 순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기후위기, 식물 플랑크톤의 위기?

그런데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며 식물 플랑크톤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뜨거워지는 바다, 특히 식물 플랑크톤이 분포하는 해양 표층부는 심층부보다 급격하게 데워지고 있다. 표층수가 따뜻해지면 밀도가 전보다 낮아져 가벼워진다.

그 결과 하층에 분포하는 차갑고 무거운 물과 밀도 차가 커지게 되고 바닷물은 더욱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바다 깊은 곳에 존재하는 풍부한 영양분이 표층에 도달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식물 플랑크톤의 먹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식물 플랑크톤식은 해양 생태계 뿐 아니라 지구 생물권 전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식물 플랑크톤식은 해양 생태계 뿐 아니라 지구 생물권 전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온도 상승이 결국 식물 플랑크톤의 생산성을 감소시켜 해양 생태계를 뒤흔들어놓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기의 탄소를 흡수하던 식물 플랑크톤의 부재로 기후위기 역시 악화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기초과학연구원(IBS)과 미국 하와이대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해양 생태계의 생산자이자 탄소 흡수원인 초록색 방패막이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내용으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2022년 12월 22일자)’에 게재됐다.

온난화에도 플랑크톤 생산성 5% 증가

공동연구팀은 북태평양 해양과학기지의 관측자료와 기후 시뮬레이션 결과를 종합한 결과 바다 표층부의 수온 상승에도 불구하고 식물 플랑크톤의 생산량이 더 증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지난 30년간 하와이 부근 해양에서 관측한 자료를 시간 순서로 보면 식물 플랑크톤은 표층의 영양염이 매우 적은 시기에도 생산성을 일정하게 유지했다. 생존이 힘들 정도로 열악한 조건이 되자 ‘인(P)’ 대신 ‘황(S)’을 광합성에 사용한 것이다. 기존에 사용한 영양염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인산염과 질산염으로 여기에서 인과 질소를 얻었다. 그러나 표층 수온이 높아지며 환경이 변하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적응한 건데 이러한 현상을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이라고 한다. 선행 연구에서 고려되지 않은 새로운 변수다. 황은 따뜻한 바다에도 풍부하게 존재한다.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데이비드 칼 미국 하와이대 교수는 “식물 플랑크톤이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신진대사 전략을 바꾼 것”이라며 “적은 양의 인을 사용할수록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플랑크톤 종 변화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식물 플랑크톤의 강인한 생존력은 앞으로 기후변화에 어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까. IBS 연구팀은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에 기반한 기후모델 시뮬레이션을 통해 식물 플랑크톤의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이 전 지구 해양 생산성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영양 흡수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을 경우 210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식물 플랑크톤의 생산성이 8%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앞선 연구 결과들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식물 플랑크톤이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을 발휘하자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됐다. 전 지구의 표면 온도가 4℃ 오르는 2100년까지 식물 플랑크톤의 생산성이 오히려 약 5%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 그래프는 시간에 따른 전 지구 해양의 순생산량 변화를 보여준다. 식물 플랑크톤의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을 가정한 경우(붉은색) 세기 말로 갈수록 이전 연구(푸른색)와 달리 순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간에 따른 전 지구 해양 순생산량 변화
시간에 따른 전 지구 해양 순생산량 변화

식물 플랑크톤, 기후변화 ‘방패’ 역할

권은영 IBS 기후물리연구단 연구위원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영양염이 가장 크게 고갈되는 아열대 해역에서는 생산성이 기존 예측값과 최대 200%까지 차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메마른 조건에서 식물 플랑크톤이 어마어마한 탄력성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아래 그림을 통해서도 식물 플랑크톤의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이 미래(2080~2100년)의 순생산량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아열대 해역일수록 기존 전망과 영양 흡수 능력을 고려한 경우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우리나라와 일본 열도 아래의 아열대 해역도 순생산량이 크게 증가하는 모습이 관측됐다.


식물 플랑크톤의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이 미래의 해양 순생산량에 미치는 영향
식물 플랑크톤의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이 미래의 해양 순생산량에 미치는 영향

권 연구위원은 “식물 플랑크톤의 생산성이 강화되면 바다는 대기로부터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 생명체를 유지하는 식물 플랑크톤이 기후변화에 따른 바다 생태계 교란을 완충해주는 방패 역할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식물 플랑크톤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아예 피해 간다는 뜻은 아니다. 전반적인 생산성은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플랑크톤 세포를 이루는 원소의 함량이나 앞서 말한 플랑크톤의 종 변화로 먹이사슬이 바뀔 수 있다.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해양 생물의 미래를 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식물 플랑크톤이 수온 상승과 해양 산성화를 포함한 복합적인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20% 감소? 20% 증가! ‘불확실성’ 어떻게 줄일까

식물 플랑크톤은 전 세계 바이오매스의 1%에 불과하지만 전체 광합성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식물 플랑크톤이 만든 산소는 우리가 들이쉬는 총 산소량의 약 50%를 차지한다. 그만큼 식물 플랑크톤의 생산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급격하게 진행 중인 기후위기에 식물 플랑크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는 일은 매우 불확실했다.

제6차 IPCC(UN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 보고서조차도 바다의 순생산량이 21세기 말까지 20% 감소할 수도 또는 20% 증가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편차가 굉장히 큰 예측을 내놓은 것을 보면 불확실성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다양한 식물 플랑크톤 /출처: University of Rhode Island/Stephanie Anderson)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지구의 오랜 역사 동안 진화해온 식물 플랑크톤이 앞으로 환경변화에도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밝혀졌다. 환경에 따라 광합성에 필요한 영양염과 탄소 흡수량을 조절하는 탄력적인 신진대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적도와 고위도 등 위도에 따라 식물 플랑크톤이 함유하고 있는 인의 양은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식물 플랑크톤이 지니고 있는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은 해양 생태계의 건강과 미래 기후를 좌우할 강력한 변수로 떠올랐다. 바다의 생산성이 강화될수록 더 많은 양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후위기를 늦춰줄 반가운 구원투수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플랑크톤이 기후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하고 불확실성을 더 줄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관측자료가 필수다. 이번 연구는 북태평양 하와이 해양과학기지의 장기 관측자료를 기반으로 했다. 다만 플랑크톤과 유기물에 함유된 인 측정 방법이 2011년 11월부터 변경되는 바람에 과거 30년간 일어난 장기 경향을 산출할 수 없었다.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연구단은 식물 플랑크톤을 포함한 해양 생태계가 수온 상승을 비롯해 영양염 고갈이나 해양 산성화, 용존 산소 고갈 등 다양한 복합적인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추가 분석할 예정이다. 또한 이러한 반응이 기후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연구할 계획이다. 지구 생명체의 젖줄이자 기후를 서늘하게 만들어줄 식물 플랑크톤에 대한 조사가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길 기대해본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