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모세혈관의 비밀

피가 거꾸로 솟는 날엔
모세혈관에 좋은 평냉 한 그릇 어떠세요?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냉면 한 그릇은 여름철의 별미다. 새콤매콤한 함흥냉면과 슴슴한 평양냉면 중 어느 것을 먹을지 선택이 어렵다면 조심스럽게 평양냉면을 추천해본다. 평양냉면의 메밀 성분은 모세혈관을 건강하게 만든다. (출처: Pixabay)
▲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냉면 한 그릇은 여름철의 별미다. 새콤매콤한 함흥냉면과 슴슴한 평양냉면 중 어느 것을 먹을지 선택이 어렵다면 조심스럽게 평양냉면을 추천해본다. 평양냉면의 메밀 성분은 모세혈관을 건강하게 만든다. (출처: Pixabay)

여름철 대표음식하면 떠오르는 요리가 바로 냉면이다. 새콤 매콤 쫄깃함이 함흥냉면의 매력이라면 평양냉면은 슴슴한 맛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각기 다른 맛만큼이나 두 냉면은 차이점이 많다. 무엇보다 면발부터 매우 다르다.

함흥냉면 면발이 쫄깃쫄깃한 건 녹말가루(전분)를 많이 썼기 때문이다. 함흥냉면은 보통 감자 전분이나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뽑는다. 북한에선 함흥냉면을 '농마국수'라고 부를 정도다. 농마는 감자 전분이란 뜻이다.

반면 평양냉면은 끈기가 전혀 없는 메밀가루에 녹말을 소량 섞어 면발을 만든다. 그래서 평양냉면 면발은 메밀 특유의 꺼끌꺼끌함이 많이 묻어난다. 툭툭 잘 끊어지는 것도 이 까닭이다. 지난해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평뽕'이란 신조어까지 나올 만큼 인기를 얻은 평양냉면은 건강식품이기도 하다. 평뽕은 평양냉면의 중독성을 마약에 빗댄 말이다.

중독성은 물론 건강에도 좋다. 평양냉면에 주로 쓰이는 메밀은 루틴(비타민P)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필자가 냉면에 대한 TMI성 정보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루틴은 혈관의 95%나 차지하는 모세혈관의 벽을 튼튼하게 해 뇌출혈과 고혈압, 동맥경화 등 혈관 질환의 위험성을 줄인다. 오늘은 생명활동의 핵심역할을 하는 모세혈관을 주제로 이야기 해보려 한다.

모세혈관이라고 다 같은 모세혈관이 아니다

털처럼 가는 혈관이란 모세혈관(毛細血管)은 뜻처럼 매우 가늘다. 직경이 7~8㎛(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정도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 혈관에선 혈액이 느리게 흐리고, 조직과 혈액 사이의 물질(산소ㆍ영양분) 교환이 쉴 새 없이 이뤄진다. 혈액 속 적혈구는 모세혈관을 지나면서 운반해온 산소를 세포에 전해주고, 세포에서 생긴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를 받아간다.

다양한 모세혈관이미지

체내 곳곳에 퍼져 있는 만큼 모세혈관은 생김새와 기능도 다양하다.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장이 2017년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리뷰 논문 형식으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모세혈관은 특징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모세혈관 가운데 가장 흔한 건 연속모세혈관(continuous capillary)이다. 근육과 신경조직 등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모세혈관을 구성하는 내피세포가 매우 밀착해 붙어 있다. 그래서 모세혈관과 세포가 물질을 주고받는 구멍이 없다. 대신 내피세포를 통해 아미노산, 포도당 등 수용성 물질을 세포로 전달한다.

유창모세혈관(Fenestrated capillary)은 작은 구멍을 내피세포에 갖고 있다. 지름이 50~1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인 이 구멍은 수분의 이동통로 역할을 한다. 세포외액(혈장·간질액)에 있는 호로몬 등도 여기를 거쳐 세포로 전달된다. 유창 모세혈관은 주로 뇌하수체와 시상하부, 갑상선 등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간질액은 세포 사이를 체우는 전해질과 호르몬, 영양분 등을 포함한 액체로, 체내 수분량의 약 15%를 차지한다.

동굴모세혈관(Sinusoidal capillary)은 유창모세혈관보다 틈이 더 있다. 동굴모세혈관이 연속모세혈관이나 유창모세혈관과 다른 점은 모세혈관의 내피세포를 감싸고 있는 기저막이 드문드문 끊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연속모세혈관과 유창모세혈관은 기저막이 끊김 없이 죽 이어져 있다. 기저막이 끊겨져 있다 보니 물질의 이동통로도 더 클 수밖에 없다.

IBS 혈관 연구단은 우리 몸 안의 모세혈관을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A가 연속모세혈관, B는 유창모세혈관, C는 동굴모세혈관, D는 쉴렘관, E는 고내피세정맥이다. (출처: Science)
▲ IBS 혈관 연구단은 우리 몸 안의 모세혈관을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A가 연속모세혈관, B는 유창모세혈관, C는 동굴모세혈관, D는 쉴렘관, E는 고내피세정맥이다. (출처: Science)

고내피세정맥(HEV·High-endothelial venule)은 백혈구의 한 종류인 림프구의 이동을 돕는 모세혈관이다. 세정맥(venule)은 동맥에서 뻗어 나온 모세혈관에 연결된 정맥을 일컫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가는 혈관이다. 세정맥의 혈관 벽은 얇은 내피세포로 돼 있어 체액이나 백혈구의 이동이 쉽다. 보통 세정맥의 내피세포는 평평한 모양인데, 일부 세정맥에선 내피세포가 둥글둥글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고내피세정맥이라고 부른다. 고내피세정맥은 비장을 제외한 체내의 모든 2차 림프기관에 존재한다. 2차 림프기관은 림프구의 증식과 분화가 이뤄지는 곳이다.

모세혈관 손상되면 우울증 앓을 확률 높아져

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모세혈관이 망가지면 여러 질환을 앓게 된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모세혈관 질환은 녹내장이다. 녹내장은 안구 속 안압이 올라 시신경이 망가지는 질병이다. 최악의 경우 실명할 수 있다. 전 세계 40세 이상 인구의 3.5%가 녹내장을 앓고 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전체 녹내장의 80% 안팎을 차지하는 원발개방각녹내장의 경우 쉴렘관 이상으로 방수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아 발생한다고만 알려졌을 뿐, 그 원인을 찾기 어려워 지금까지 근본적인 치료법을 찾는데 한계가 있었다.

눈 속 혈관(보라색)과 쉴렘관(초록색)을 촬영한 모습. 혈관과 림프관의 중간 형태인 쉴렘관은 눈 속에서 생성된 방수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출처: IBS 혈관 연구단)
▲ 눈 속 혈관(보라색)과 쉴렘관(초록색)을 촬영한 모습. 혈관과 림프관의 중간 형태인 쉴렘관은 눈 속에서 생성된 방수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출처: IBS 혈관 연구단)

그러나 IBS 혈관 연구단이 실마리를 제시하면서 치료에 한 발 더 나아갔다. 이들이 2017년 9월 '임상연구학회지(The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안구 속 방수가 정맥으로 흘러가는 통로인 쉴렘관의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ANG 단백질과 TIE2 수용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쉴렘관이 망가져 녹내장을 앓는 실험쥐에 TIE2 수용체를 활성화하는 항체를 투여한 결과, 쉴렘관이 회복되면서 안압이 내려가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안압은 방수가 만들어지는 만큼 배출돼야 일정히 유지되는데, 쉴렘관에 이상이 생기면 방수를 빼지 못해 안압이 오르고 결국 녹내장을 앓게 된다.

한편, 모세혈관 이상은 사람의 기분에도 악영향을 준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연구진은 우울증 환자 9,203명을 포함한 40세 이상 성인 4만3,600명 건강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혈액 샘플에서 모세혈관 손상 징후가 나타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울증 유병률이 최대 58%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뇌의 모세혈관이 손상되면 기분 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서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연구결과는 2017년 5월 미국의사협회 학술지 '정신의학(Psychiatry)'에 실렸다.

고규영 단장은 모세혈관의 종류와 특징을 기술한 2017년 사이언스 리뷰 논문에서 "향후 연구는 혈관의 기능을 해독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다루기 어려웠던 여러 질병에 관한 혈관 치료방법 개발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몸 안에 퍼져 있는 모세혈관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100년 만에 실마리 찾은 모세혈관의 비밀

최근엔 모세혈관의 비밀을 밝히는데 한 발 더 나아갔다. 덴마크 의사 아우구스트 크로그는 모세혈관에서 나타나는 주기운동을 발견, 192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탔다. 요즘 유행하는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는다)'이란 신조어처럼 아예 반대로 흐르는 건 아니지만 혈액 속 물질이 일정한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원리로 주기운동이 나타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주기운동은 같은 시간 간격으로반복적인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진자운동이 대표적인 주기운동이다.

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연구진은 100년 동안 물음표로 남겨졌던 이 비밀을 풀 실마리를 제시했다. 혈액 속 적혈구가 모세혈관을 이동할 때 일정한 움직임이 있다는 가설을 내놓은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는 지난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게재됐다.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첨단연성물질연구단 그룹리더와 올게르 시불스키 연구위원 연구팀은 이를 위해 미세유체 시스템을 이용했다. 이 시스템은 ㎛ 크기 지름의 미세한 관 안에서 액체방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볼 수 있다. 단순한 경로로 이뤄진 미세유체 시스템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뤄졌지만 길고 복잡한 네트워크를 흐르는 미세유체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네트워크는 도로처럼 여러 개의 길이 연결된 집합을 일컫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연구진이 모세혈관의 주기운동 비밀을 밝히기 위한 실험에서 사용한 미세유체 시스템. 이 시스템은 마이크로미터(㎛ㆍ㎛는 100만 분의 1m) 크기 지름의 미세한 관 안에 액체방울 흐름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각종 시료를 처리할 수 있다. (출처: IBS)
▲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연구진이 모세혈관의 주기운동 비밀을 밝히기 위한 실험에서 사용한 미세유체 시스템. 이 시스템은 마이크로미터(㎛ㆍ㎛는 100만 분의 1m) 크기 지름의 미세한 관 안에 액체방울 흐름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각종 시료를 처리할 수 있다. (출처: IBS)

이들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 네트워크에 액체방울을 일정한 간격으로 흘려보냈다. 두 경로가 완전한 대칭을 이루고 있어 액체방울들이 각 경로를 택할 확률은 50대 50으로 같다. 처음에는 액체방울들이 두 경로로 고르게 흩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액체방울이 줄 지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방향을 바꿔 다른 쪽으로만 줄 지어 이동하는 주기운동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계속 반복됐다.

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의 연구결과, 두 갈래로 갈라지는 네트워크에 액체방울을 일정한 간격으로 흘려보냈더니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액체방울이 줄 지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방향을 바꿔 다른 쪽으로만 줄 지어 이동하는 주기운동(a)이 나타났다. 이를 뒤집어 실험(b)했더니 주기운동의 진폭이 줄어드는 것으로 관찰됐다. (출처: IBS)
▲ 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의 연구결과, 두 갈래로 갈라지는 네트워크에 액체방울을 일정한 간격으로 흘려보냈더니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액체방울이 줄 지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방향을 바꿔 다른 쪽으로만 줄 지어 이동하는 주기운동(a)이 나타났다. 이를 뒤집어 실험(b)했더니 주기운동의 진폭이 줄어드는 것으로 관찰됐다. (출처: IBS)

양쪽 경로로 균일하게 흐르게 한 액체방울에선 주기운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래대로 하나씩 방울을 흐르게 하자 수 분 뒤에 다시 주기운동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네트워크 환경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액체방울의 주기운동이 생긴다고 결론을 냈다.

올게르 시불스키 연구위원은 "미세유체 네트워크는 모세혈관, 잎맥 등 생명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번 연구는 모세혈관에서 적혈구의 이동을 물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실험에 쓰인 네트워크 속 액체방울과 마찬가지로 모세혈관에는 비슷한 지름의 적혈구가 혈관에 꼭 맞게 이동한다. 미세유체 네트워크 전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주기운동이 모세혈관 주기운동을 만들어낸다고 추정하는 이유다.

피꺼솟 할 정도로 화가 난 날엔 차가운 평양냉면 한 그릇 어떨까. 마음도 식히고, 모세혈관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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