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 기해년 맞이 기획]
수명↑ 기억력↑, 뇌·몸 동안 만드는 연구
선조들은 (대부분) 옳다. 마음먹고 3일간만 열심히 한다고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랬던가. 호적상 나이는 한 살 더 먹을지언정 몸과 마음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 엊그제인데….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이르다. 우리에겐 새로이 새해 다짐을 시작할 날이 남아있다. 새해를 알리는 민족대명절 '설'이다. 원래 십이간지는 음력으로 세는 거랬다. 마침 복을 불러온다는 '황금돼지'의 해가 시작되니(이 글, 과학 칼럼 맞다) 다시 한 번 나이 거꾸로 먹기를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몸과 마음이 어려지는 비법, 이것만 알면 '돼지~'
▲ 동전 채우듯 하나씩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샌가 나이를 거꾸로 먹는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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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각 세포는 만들어지고, 제 역할을 하다가 수명이 다 되면 사멸한다. 건강한 상태라면 세포가 죽는 속도와 생겨나는 속도가 비슷하지만 몸이 안 좋거나, 나이가 들면 세포가 죽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즉 세포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고 잘 죽지 않는지가 노화를 풀 핵심열쇠다.
▲ 노화를 막는 '불로장생' 약은 없다. 다만 과학자들은 노화를 이해하고, 조금 늦추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출처 : 위키미디어)
그렇다면 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것 같으니 미리 설명하고 가려고 한다. 물론 잘 죽지 않는 세포도 있다. 암세포다. 즉, 세포는 적당한 시기에 죽고 새로운 세포에게 그 역할을 넘겨야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노화는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온 주제다. 세포 사멸을 일으키는 과정을 밝히기 위해 DNA나 단백질 수준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돼 왔다. DNA는 노화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담고 있고, 노화 관련 단백질 역시 이 유전자들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은 이보다 더 작은 수준에서 노화의 실마리를 찾아왔다.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DNA의 이중나선을 푼 뒤, 리보솜이 이 DNA를 읽어서 RNA 가닥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RNA에 담긴 정보에 따라 각각 서로 다른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연구진은 DNA와 단백질의 중간 과정인 RNA에도 노화의 비밀이 담겨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RNA는 DNA에서 전사된 단일 가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는 DNA처럼 이중나선 구조를 가질 수도 있다. 이 이중나선 RNA는 유전자에 영향을 줘 발현을 억제하기도 한다. 이 현상은 미국의 과학자 앤드루 파이어와 크레이그 멜로가 발견했는데 두 사람은 이 연구로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만큼 대단하고 중요한 연구란 뜻이다.
IBS 연구진은 이런 이중나선 RNA의 구조와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RNA 이중나선분리효소에 주목했다. DNA가 이중나선분리 효소에 의해 두 가닥으로 나뉘듯, RNA 역시 해당 효소에 의해 구조와 기능이 바뀐다.
▲ 예쁜꼬마선충(C.elegans). 다 자라면 약 1mm인 생물로 미생물을 잡아먹고 산다. (출처:미국국립보건원)
이 효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누가 뭐래도 직접 실험해보는 것이 제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실험동물, '예쁜꼬마선충(C. elegans, 이름에서부터 엘레강스하다!)'이 주인공이다. 연구진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HEL-1' 효소가 많아지면 수명이 18%나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대로 임의로 수명을 2배 늘린 돌연변이 예쁜꼬마선충에 이 효소를 억제하면 수명이 약 39% 단축됐다.
이유는 해당 효소가 인슐린 신호 조절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을 결정하는 수명조절유전자는 인슐린 신호에 의해 조절되는데, HEL-1이 인슐린 신호를 멋대로 조절하면서 수명이 변하게 됐다.
▲ 예쁜꼬마선충은 아주 우아하고 훌륭한 실험동물이다.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은 야생형 선충과 오래 살도록 만든 돌연변이 선충에 RNA 이중나선분리효소(HEL-1)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다. (출처: IBS)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획기적인 연구지만 당장 독자 여러분께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두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첫째, 이 효소는 신경과 장의 수명에는 영향을 줬지만 정작 겉모습과 직결되는 근육이나 피부 조직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주름살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둘째, 예쁜꼬마선충은 아주 우아하고 훌륭한 실험동물이지만 이 실험동물에게서 확인된 사항이 사람에게 응용되기 까지는 아주 많은 추가 연구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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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는 것이 드러나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다. 가사 몇 번 훑어보면 외워지던 노래가 아무리 따라 불러도 기억이 안 난다. 전화번호? 계좌번호?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게 됐다. 해가 갈수록 까마귀 고기라도 먹은 듯(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글은 과학 칼럼이 맞다) 깜박 잊는 일이 많아졌다.
▲ 잘 자는 것만으로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면, 신생아처럼 하염없이 잠만 잘 수 있을 것 같지만…. (출처: Pixabay)
기억력을 올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잘 자면 된다. 컴퓨터가 휘발성 램 메모리에 띄워놨던 정보를 롬 메모리에 영구적으로 저장하듯 '수면'이라는 과정을 통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단장 신희섭)은 자는 동안 뇌파를 조절하면 학습 기억력을 2배가량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있다면 기억했다가 잠자고 일어나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된다는 획기적인 연구다. 그러나 완전히 기뻐하기엔 이르다. 연구진이 실험에 사용한 기억은 공포 기억이기 때문이다. 설마 무서운 기억으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믿는다.
장기 기억은 뇌의 해마 부위에서 담당한다. 학습한 내용이 장기 기억으로 유도되는 과정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밝혀졌다면 대한민국 수험생들이 진작에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간뇌의 시상 부위에서 발생하는 수면방추파가 장기 기억에 관여할 것이라는 가설 정도가 있을 뿐이다. 수면방추파 외에도 대뇌피질에서 발생하는 서파, 해마에서 나오는 SWR파가 학습과 기억에 관여하는 뇌파로 알려져 있었다.
연구진은 이 점에 착안해 실험을 설계했다. 기억 같은 뇌 실험에서 많이 쓰이는 실험동물은 생쥐다. 텍스트로 설명하면 길이만 길어지고 더 어려울 테니 그림으로 대신 한다. 실험 설계는 아래 그림과 같다.
위 같은 실험을 진행한 뒤 환경과 소리를 다르게 하면서 쥐의 반응을 보면 공포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간은 같고 소리가 나지 않는데 공포를 느낀다면 환경과 전기충격의 연관성을 기억하는 것이므로 해마에 의한 장기 기억으로 전환됐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공간은 다른데 소리에 공포를 느낀다면 전기 충격과 직결되는 연관성을 기억한 것이므로 해마에 의존하지 않는 기억으로 본다.
생쥐의 행동은 얼어붙는 것으로 판단했다. 공포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잘 전환된 쥐는 대뇌 피질의 서파 발생 시기에 맞춰 수면방추파를 유도한 쥐였다. 다른 생쥐들에 비해 무려 2배나 더 잘 기억했다. 대뇌 피질 서파가 나타나는 시기에 맞춰 수면방추파를 유도하면 해마의 SWR파가 동원되면서 세 뇌파가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세 가지 뇌파가 동조하면 해마에서 생성된 학습 정보가 대뇌피질의 전두엽으로 전달돼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 서파와 수면방추파, SWR파가 동시에 복합적으로 나올 때 기억은 장기 기억으로 잘 전환된다. 세 뇌파는 모두 잘 때만 나오는 뇌파다. 잘 자야 기억력도 좋아진다. (출처: IBS)
이 설명은 반대 실험에서도 적용이 가능했다. 공포 기억이 만들어진 생쥐에게 반대로 실험했다. 기억을 떠올리는 뉴런을 억제하면서 서파와 수면방추파, SWR파가 동시에 발생하지 않도록 조절했더니 공포 기억을 잘 회상하지 않게 됐다.
특정 기억을 빠르게 장기 기억으로 바꿀 수 있다면 상당히 많은 사람이 편해질 지도 모른다. 다만 시간은 더 필요하다. 생쥐는 수술적인 방법을 이용해 뇌파를 직접 조정할 수 있었다. 사람이 도움을 받으려면 뇌파를 조정할 수 있는 더 안전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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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뇌파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방법도 있다.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또 다른 연구다. 뇌세포를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만들어서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인데 빛 을 이용했다.
세포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외부와 물질 교환이 필요하다. 영양분을 받아들이거나 내보내기도 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호에 따라 알맞은 활동을 한다. 세포막에 있는 칼슘 채널은 칼슘 이온을 내보내거나 들여옴으로써 세포 활동을 조절한다. 칼슘 채널을 많이 열어 칼슘 이온이 세포에 많이 들어가면 세포 활동이 활발해지는 식이다.
▲ 뇌에 청색빛을 쬐어주자 칼슘 채널이 활성화 되면서 뇌에 있는 신경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출처:IBS)
이온이 드나들 정도로 작은 채널을 조절하는 실마리는 '빛'이다. 연구진은 식물의 광수용단백질과 칼슘채널을 조절하는 동물 단백질을 결합해 칼슘 채널이 빛에 반응하도록 했다. 식물의 광수용단백질은 빛을 받아들이는 단백질로, 특히 청색 파장에 반응한다. 청색파장을 받아 식물단백질이 반응하면 결합돼 있는 칼슘채널 조절 단백질이 움직이는 식이다.
이 기술을 이용해 뇌 부위에만 선택적으로 칼슘 이온 농도를 높이자 쥐의 단기 기억력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조금 옆길로 새보면 이렇게 단기 기억력을 높인 다음 자면서 뇌파 3가지(서파, 수면방추파, SWR파)를 동시에 유도하면 장기 기억으로 전환돼 누구보다 뛰어나고 남들보다 빠르게 더 많은 양을 학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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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목표로 '운동'을 꼽는 이유는 실제 나이보다 젊은 몸을 만들고 싶기 때문일 거다. 꾸준한 운동만이 몸짱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렇다, 누구나 입과 글로는 가능하지! 한 때 인터넷을 달궜던 '몸짱 소'처럼 쉽게 근육이 붙으면 얼마나 좋을까.
▲ '몸짱 소' 벨지안 블루. 육종을 통해 근육이 극단적으로 많은 소를 만들어 냈다. (출처: ERIC FORGET)
몸짱 소의 정식 품종은 '벨지안 블루'다. 19세기 벨기에 육종업자들이 교배를 통해 만들었다. 일반 소보다 크기도 크고 근육량도 많다. 다만 육종 대부분이 그렇듯 이런 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십 년에 걸쳐 근육이 많은 소끼리 계속 교배를 한다. 실패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유전적으로 유사한 동물을 교배하면서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열성으로 잠복돼 있던 각종 유전병이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형태로 제대로 육종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육종의 단점은 정확히 유전자를 골라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몸짱 동물을 만들 때는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식이다. 유전자 가위 같은 유전자 편집 최신 기술을 사용하면 수십 년이 걸리던 육종과 달리 쉽고 간단하게(?) 가능하다.
가령,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유전자인 MSTN이 대상이 될 수 있다. 동물이나 사람 중 특별한 노력이 없는데도 근육이 과하게 생긴다면 이 유전자가 돌연변이인 경우가 많다. 2015년에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단장 김진수)과 중국 옌벤대가 이 유전자를 제거해 '몸짱 돼지'를 만든 바 있다. 다만 유전자가 불안정한 부분이 있어 수명이 길지 않았다. 근육이 많아 새끼 크기가 커 태어날 때 어미 돼지가 출산하기 어려워했다는 윤리적인 문제도 있어 본격적인 사육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연구진은 이 돼지를 당장 사육하기 보다는 정자를 제공해 일반 돼지와 교배해 근육량이 많은 새끼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 MSTN 유전자를 제거해 몸짱으로 태어난 돼지. 몸짱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출처: Xi-jun Yin(네이처))
유전자 편집 기술이 육종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만 모든 기술이 그렇듯 유전자 편집 기술 역시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인간을 포함해)다양한 생물의 게놈 지도가 완성되었다 한들 염기 서열 순서가 밝혀진 것 뿐이다. 이 배열 속에 숨어있는 각각 유전자들의 역할과 다른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하게 밝혀졌을 때야 비로소 유전자 편집 기술이 본격적으로 일상 속에 들어올 수 있다. 약 하나를 만드는 것도 수십 년이 걸려야 간신히 안정성을 인정받고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일상 속에 들여오는 것은 아직도 먼 미래의 이야기다.
▲ 이렇게 복잡한 뇌파 측정기도 아직은 '측정' 수준이다. (출처: Chris Hope(플리커))
(먼 훗날…) 인간에게 도움이 될 연구를 소개하다 보면 같은 반응이 되돌아온다. '그래서 제 유전자는 언제 바꿀 수 있나요?' '예쁜꼬마선충 연구가 나한테까지 오려면 손자의 증손자까지 가도 모자랄 듯' 등.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기초과학이다. 당장에 내 삶에 끌어올 수 있다면 실용 학문이다.
뇌파를 조절해 기억력을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지만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실험 대상이 쥐였던 것은 둘째고, 아직은 뇌파를 제대로 측정하는 것조차 어렵다. 센서와 전선이 잔뜩 붙은 모자를 쓰고 자느니(뇌파를 잘 측정하기 위해 안에 머리를 밀거나 젤을 범벅해야 한다는 사실은 일단 미뤄두자) 그냥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는 것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될 거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 여러분도 오늘 밤에는 스마트폰을 잠시 미뤄두고 숙면을 취하길 기원한다. 잠은 만병통치약이다. 지쳤던 뇌와 피부, 근육이 쉬면서 재생하는 시간이다. 과학이 발달해 기술이 돼 우리 곁으로 오길 기다리는 것보다는 잘 자는 것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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