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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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과학의 미래를 꿈꾸다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단장

'우주의 미스터리' 암흑물질 액시온을 찾아서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 재직 당시의 세메르치디스 박사. 그는 정밀입자물리 실험과 암흑물질 액시온 연구를 해왔다. ⓒ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

"우주에서 근본적인 중대 질문(fundamental and big question)은 무엇일까요?
바로 '암흑물질이 무엇이며, 물질과 반물질 사이의 비대칭이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연구에 착수한 IBS 최초의 외국인 연구단장인 야니스 세메르치디스(Yannis K. Semertzidis) 박사가 이렇게 자문자답하며 자신의 연구가 '우주의 미스터리'인 암흑물질, 그리고 물질과 반물질 사이의 비대칭과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물리학회 석학회원이자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의 종신연구원으로 재직해온 그는 정밀 입자물리실험 연구에 대한 우수성과 암흑물질 액시온 연구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IBS 연구단장으로 선정됐다. 세메르치디스 박사가 이끄는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Center for Axion and Precision Physics Research)'은 KAIST 캠퍼스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를 만나 소립자 물리학 분야의 실험 연구로 우주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연구단의 목표에 대해 들었다.

우주 전체의 95%가 '암흑' 상태

우주에서 5% 정도만 우리에게 친숙한 일반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95%는 정체가 불분명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상태이다. 이 가운데 68%는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반발력을 가하는 미지의 에너지인 '암흑에너지'이고, 27%는 빛을 내지 않지만 끌어당기는 중력 효과를 미치는 특이한 물질인 '암흑물질'이다. 암흑물질의 후보 중 하나가 바로 액시온이다.


액시온은 1977년 원자핵 내에 있는 양성자, 중성자의 결합력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가상 입자다. 특히 현재 경희대에 재직 중인 김진의 석좌교수가 1979년 매우 가볍고 수명이 긴 액시온을 제안했다.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로체스터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김진의 교수의 액시온 이론을 듣고 알았다"며 "김 교수가 이론적으로 제시했던 액시온을 우리 연구단이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액시온을 발견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를 중심으로 태양에서 나오는 액시온을 측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워싱턴대를 중심으로 우리 은하 외곽부인 헤일로(halo)에서 오는 액시온을 찾으려는 실험(ADMX)을 추진하고 있다. CERN은 태양망원경을, 워싱턴대는 마이크로 공동(micro cavity)을 각각 이용한다.

IBS 연구단은 '한국형 액시온 실험'으로 이런 경쟁에서 앞서나가려 한다. 연구단은 초전도 양자간섭소자(SQUID)를 이용한 액시온 검출기를 연구, 개발할 계획이다.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힉스 입자 발견 성과와 비교하기 힘들겠지만, 액시온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업적은 한국 과학계의 위상을 높이기에 충분히 큰 업적이 될 것입니다."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액시온과 같은 암흑물질이 우주의 근본 문제라며한국형 액시온 실험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동아사이언스 김상현 기자

▲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액시온과 같은 암흑물질이 우주의 근본 문제"라며 "한국형 액시온 실험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동아사이언스 김상현 기자

인플레이션에 휘말리나?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가 빅뱅이라는 대폭발로 탄생한 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는 급팽창을 겪었다. 많은 우주론학자들은 빅뱅이 남긴 빛인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면 인플레이션의 증거인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지난 3월 17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진이 남극에 있는 바이셉(BICEP)2 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 원시 중력파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바이셉2 관측자료가 액시온을 발견할 전망에 어두움을 드리운다는 것이다. 혼돈 인플레이션의 창시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안드레이 린데 교수가 바이셉2 관측자료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우주 모형의 90%가 사라질 것이며, 인플레이션을 액시온과 함께 다루는 우주 모형의 거의 대부분이 제외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액시온이 생겨나는 과정과 이를 검출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세메르치디스 단장. 그는김진의 교수가 이론적으로 제안했던 액시온을 우리 연구단이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 동아사이언스 김상현 기자

▲ 액시온이 생겨나는 과정과 이를 검출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세메르치디스 단장. 그는 "김진의 교수가 이론적으로 제안했던 액시온을 우리 연구단이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 동아사이언스 김상현 기자

이에 대해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바이셉2의 결과가 확증된다면, 중대한 발견이 될 것입니다. 특히 이것은 차세대 실험의 범위 내에 있을 만한 액시온의 질량을 암시하기 때문에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바이셉2 실험과 그 결과에 대해 몇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확증되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항상 끊임없이 그 일에 열정을 갖고 연구하며, 의구심을 갖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에 나타나는 문제를 설명하려면 암흑물질인 액시온이 존재해야 한다"며 "암흑물질 실험은 실험시설 건립에 수년이 필요하고, 그 후 실험이 시작되고 3~5년이 지나 결과가 나오면 성공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물질이 반물질보다 많은 이유, 양성자로 밝힌다

우주가 인플레이션이라는 급팽창 이후 물질과 반물질이 생길 때는 똑같이 생겼는데, 지금은 물질이 지배하는 우주가 됐다. 원래 물질과 반물질이 쌍으로 만나면 소멸되지만, 어떤 이유 때문에 물질이 반물질보다 많아졌고 그 결과로 물질이 남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물질 덕분에 우주에 은하, 별뿐 아니라 지구, 인간도 탄생할 수 있었다. 왜 우주에는 반물질보다 물질이 더 많은가? 이 문제는 세메르치디스 단장이 이끄는 IBS 연구단이 참여하는 '양성자 전기쌍극자모멘트(EDM) 탐색 프로젝트'와 관련 있다. 양성자와 같은 기본입자가 전기쌍극자모멘트를 갖는지는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과 연관된 미스터리를 푸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1년 세메르치디스 박사는 전 세계 28개 기관의 연구자 89명이 참여하는 국제공동연구팀을 꾸려 미국 에너지부(DOE)에 '양성자 EDM 측정 제안서'를 제출했고, 지금 이 국제공동프로젝트는 DOE의 승인을 받은 상태다. 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미국 에너지부가 5000만 달러의 연구지원금을 대고 있다"며 "양성자 EDM과 관련된 실험은 미국 쪽에서 진행하고, IBS 연구단은 관련 이론을 연구하며 관련 실험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암흑물질 액시온과 양성자 전기쌍극자모멘트를 찾아내는 것은 소립자 세계에서 중요한 난제라고 할 수 있다. 세메르치디스 단장이 이끄는 IBS 연구단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디작은 세계의 난제를 풀어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