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똑똑한 컴퓨터는 무슨 일을 할까

IBS 슈퍼컴퓨터 '알레프'야~ ​
지구를 부탁해!

일반 자동차보다 더 빠르고 잘 달리는 차를 스포츠카라고 부릅니다. 엔진 출력이 좋고, 저항이 적도록 역학적으로 외형을 설계합니다. 스포츠카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초고스펙 스포츠카는 '슈퍼카'로 분류됩니다.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것 같은 엔진 소리와 100m 밖에서도 특별한 외관은 '슈퍼'라는 별칭이 붙는 이유를 짐작케 합니다. 그렇죠, '슈퍼'는 말 그대로 탈 일반급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2019년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 전시된 페라리 F8 트리뷰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속력을 올리는 데 고작 2.9초 밖에 걸리지 않는 슈퍼카. (출처: Alexander Migl, 위키미디어 커먼스)
▲ 2019년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 전시된 페라리 F8 트리뷰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속력을 올리는 데 고작 2.9초 밖에 걸리지 않는 슈퍼카. (출처: Alexander Migl, 위키미디어 커먼스)

첫 번째이면서 동시에 무한을 뜻하는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

자동차에게 슈퍼카가 있다면 사람에게는 슈퍼맨(요즘 대세는 아이언맨인듯하지만!)이 있고, 컴퓨터에게는 '슈퍼컴퓨터'가 있습니다. '슈퍼'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말합니다. 네, 오늘은 슈퍼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4월 25일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 본원에서 'IBS 슈퍼컴퓨터 개통식'이 열렸습니다.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를 정식으로 소개하고 활용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알레프(ALEPH)는 히브리어의 첫 글자로, 알파벳에서는 A, 숫자는 1을 의미합니다. 수학에서는 '무한∞'을 의미하고요. IBS의 첫 번째 슈퍼컴퓨터이자 알레프를 이용해 계산한 수치 정보를 이용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과학적 이론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담아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알레프는 IBS 기후물리 연구단(단장 악셀 팀머만)을 시작으로 이론물리, 계산 과학등 기초과학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데 본격적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합니다.

IBS 본원 데이터센터에 설치된 알레프(ALEPH). (출처 :  IBS)
▲ IBS 본원 데이터센터에 설치된 알레프(ALEPH). (출처 : IBS)

슈퍼컴퓨터의 성능은 플롭스(Flops, 1초에 실행할 수 있는 연산 명령수, 연산속도)라는 단위를 이용해 표현합니다. 다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자랑하기 때문에 그냥 플롭스를 쓰지는 않습니다. 미터의 1000배인 킬로미터가 있고, 또 그 1000배인 메가미터(길이 단위에서는 이쯤 되면 천문학 단위라 광년이나 파섹과 같은 특수 단위를 쓰긴 합니다)가 있는 것처럼 플롭스도 1000배 단위로 킬로(103), 메가(106), 기가(109), 테라(1012), 페타(1015) 순으로 단위가 존재합니다. 슈퍼컴퓨터는 1015플롭스인 페타플롭스(PF)를 단위로 사용합니다. 1초에 1000조 연산이 가능하단 뜻입니다.

알레프의 연산속도는 1.4377 PF입니다. 이렇게 숫자로 보면 감이 잘 안 오실 텐데요. 76억 지구인 전체가 손에 계산기를 들고 각각 19만 건을 계산하는 양입니다. 단 1초 만에 말이지요. 혼자서 한다면, 1초에 1번 계산을 한다고 쳐도 4558만 9167년이 걸립니다. 참고로 인류도 아니고 포유류가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약 1000만~1500만 년 전입니다. 애초에 '슈퍼'라는 명칭이 붙은 컴퓨터의 연산 속도를 사람과 비교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합니다.

동시대 컴퓨터 중 최고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슈퍼컴퓨터'​

현대에서야 무엇이든 해주는 만능 기계가 됐지만 컴퓨터는 본래 계산을 대신하는 용도로 개발됐습니다. '계산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computare'에서 유래됐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컴퓨터(=계산을 도와주는 도구)의 역사를 찾아보면 기원전부터 사용해왔던 주판이라거나, 17세기에 만들어진 파스칼 계산기 등 재미있고 신기한 다양한 발명품이 등장합니다. 찾아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우리는 '슈퍼'를 이야기하고 싶은 만큼 자잘한 발명품은 다 건너뛰고 본격적으로 컴퓨터의 시대를 시작한 발명품이 등장한 1940년대로 가보겠습니다.

최초의 컴퓨터(?) 주판. (출처: Dave Fischer, 위키미디어 커먼스)
▲ 최초의 컴퓨터(?) 주판. (출처: Dave Fischer, 위키미디어 커먼스)/p>

1939년 세계 최초 전자식 컴퓨터 'ABC(아타나소프 베리 컴퓨터, Atanasoff-Berry Computer)'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전자식 컴퓨터가 등장합니다. 1944년에는 영국에서 '콜로서스(Colossus)'라는 컴퓨터가 개발돼 세계 2차 대전 중 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에 쓰였습니다. 바야흐로 대 컴퓨터 시대의 서막이 열린 거지요.

1940~50년대의 얼리어댑터의 필수품(?), 에니악. 무게만 30톤 급의 크고 아름다운 본체를 가졌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스)
▲ 1940~50년대의 얼리어댑터의 필수품(?), 에니악. 무게만 30톤 급의 크고 아름다운 본체를 가졌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 시대의 컴퓨터 기술의 정점은 1946년에 나타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의 존 에커트와 존 모클리가 포탄의 탄도를 계산하기 위한 컴퓨터를 개발했습니다. 이름은 에니악(ENIAC, 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 연산속도는 약 5kF(킬로플롭스, 1초에 연산명령을 1000회 수행)으로 당시 사용하던 다른 컴퓨터보다 약 1000배 정도 성능이 좋았습니다. 1944년은 세계2차대전의 막바지였는데, 전쟁 중에는 탄도를 계산하고, 그 뒤에는 1955년까지 수학이나 우주선, 날씨 예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됐습니다.

진짜로 '슈퍼컴퓨터'라고 불릴만한 컴퓨터는 1964년, 미국의 CDC사가 내놓은 'CDC 6600'입니다. 세이모어 크레이가 설계한 컴퓨터로 1MF(메가플롭스, 1초에 연산명령 100만 회 수행)급 연산속도를 가졌습니다. 이후 세이모어 크레이는 CDC를 떠나 크레이 리서치(Cray research) 사를 설립합니다. 크레이 리서치는 현재에도 슈퍼컴퓨터 제작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IBS의 알레프 역시 크레이 리서치의 제품을 이용했습니다.

사실 슈퍼컴퓨터라고 불리는 과거 컴퓨터의 성능은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들과 비교를 하면 지극히 하찮습니다. 에니악의 kF급이나 CDC 6000의 MF급 연산 속도는 감히 비교할 것이 못됩니다. 예를 들면 1988년에 등장한 슈퍼컴퓨터 Cray Y-MP는 1GF(기가플롭스, 1초에 연산 명령을 10억 회 수행)로 연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오늘날 우리가 쓰는 가정용 컴퓨터는 스펙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0기가플롭스(GF, 1초에 연산명령을 10억 회 수행)나 테라플롭스(TF, 1초에 연산명령을 1조 회 수행) 급입니다.
네, 당시의 최고의 컴퓨터라도 시간이 지나 더 좋은 것이 나오면 슈퍼컴퓨터라는 이름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세계 Top 500대가 진짜 '슈퍼컴퓨터'​

컴퓨터의 발전 속도는 어마무시하게 빠릅니다. 20세기 중반에야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바뀌는 등 전자 기술의 기반이 닦이기 전이었지만 CPU를 여러 대 사용하는 방식으로 슈퍼 컴퓨터의 성능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렸습니다.

최근에는 전기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다른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2000년대에는 거의 2~3년 마다 '세계에서 가장 계산을 빨리하는 슈퍼컴퓨터'의 이름이 바뀌는 중입니다. 2011년에는 일본의 '게이(京)'가, 2012년에는 미국의 세쿼이어(Sequoia)로, 같은 해 하반기에는 미국의 타이탄(Titan)이…. 뒤를 이어 중국의 톈허-2(天河-2), 선웨이 타이후라이트(神威太湖之光) 미국의 서밋 순으로 슈퍼컴퓨터 세계 1위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2011년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과 후지쯔가 개발한 슈퍼컴퓨터 '게이(京)'. 세계 최초로 10PF의 벽을 넘었다. (출처: Toshihiro Matsui, 위키미디어 커먼스)
▲ 2011년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과 후지쯔가 개발한 슈퍼컴퓨터 '게이(京)'. 세계 최초로 10PF의 벽을 넘었다. (출처: Toshihiro Matsui, 위키미디어 커먼스)

슈퍼컴퓨터의 성능은 컴퓨터의 연산능력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인 린팩 벤치마크를 이용해 측정합니다. 측정 결과는 TOP500 홈페이지(https://www.top500.org)를 통해 공개가 됩니다. 그리고 보통 500위 랭킹에 드는 컴퓨터를 '슈퍼컴퓨터'라고 지칭하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더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나오면 더 이상 슈퍼컴퓨터라고 부르기 어려워지는 것을 반영하는 셈입니다. 매년 6월과 11월에 새로운 랭킹이 공개가 되는데요, 현재 올라와 있는 랭킹은 2018년 11월 버전입니다. 여전히 미국의 서밋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시에라(미국), 선웨이 타이후라이트(중국), 텐허-2A(중국), 순으로 이어집니다. 서밋은 지난해 6월 1위에 랭크됐는데, 이 기록이 언제 바뀔지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자료 출처: TOP500.org, 단위: 페타플롭스, PF
▲ 자료 출처: TOP500.org, 단위: 페타플롭스, PF

10위권 순위만 보면 미국이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전체 랭킹을 보면 막상 그렇지도 않습니다. 슈퍼컴퓨터 500대 중 가장 많은 기기를 갖고 있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절반에 가까운 227대가 중국에 있습니다. 한 때 슈퍼컴퓨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던 나라인 미국은 2016년 이후 중국에게 추월당했습니다.

자료 출처: TOP500.org
▲ 자료 출처: TOP500.org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18년 11월 500위 랭킹 안에 슈퍼컴퓨터 6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은 13위에 랭크된 누리온으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센터에 설치된 국가슈퍼컴퓨터 5호기입니다. 82, 83위에 나란히 랭크된 누리와 미리는 기상청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 설치된 국가슈퍼컴퓨터 4호기고요. 334, 335위에는 민간기업이 보유한 슈퍼컴퓨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IBS의 알레프는 445위 성능입니다.

에너지와 첨단 소재를 연구할 목적으로 개발한 미국의 슈퍼컴퓨터 서밋(Summit). 이론적으로 연산속도는 무려 187PF에 달한다. 현재 약 143PF의 성능을 내고 있으며 업그레이드를 통해 성능을 끌어 올리고 있다. (출처: Carlos Jones, 위키미디어 커먼스)
▲ 에너지와 첨단 소재를 연구할 목적으로 개발한 미국의 슈퍼컴퓨터 서밋(Summit). 이론적으로 연산속도는 무려 187PF에 달한다. 현재 약 143PF의 성능을 내고 있으며 업그레이드를 통해 성능을 끌어 올리고 있다. (출처: Carlos Jones, 위키미디어 커먼스)

인간이 계산하기 불가능한 자료, 슈퍼컴퓨터로 해결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년 전 일기예보와 지금의 일기예보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강원도 홍천군과 춘천군의 날씨를 별도로 예보하면서 동시에 시간대 별 날씨를 알려줍니다. 이런 예보가 가능한 것은 오랫동안 쌓여온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경향성을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한 문장으로 설명했지만 이 안에 담긴 의미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지역, 분 단위로 온도와 습도, 기압, 풍향, 풍속, 강수량 등 각종 기상 요소를 측정한 자료를 수십 년 동안 누적해 쌓은 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맞는 수치 예보 모델을 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당장 피부에 와 닿는 예시로 날씨를 들었지만 이런 계산이 필요한 분야는 날씨만이 아닙니다. IBS 기후물리 연구단은 슈퍼컴퓨터 알레프를 이용해 날씨보다 더 큰 영역인 기후 변화 연구를 진행합니다. 지구 전체를 영역으로 삼아 복합지구시스템모델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과거와 현재, 미래의 기후 변화를 연구할 예정입니다. 이 연구를 토대로 엘리뇨나 몬순 같은 전지구적인 기후 변화의 비밀을 풀고 대륙 빙하 감소나 해수면 상승같은 기후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나올 지도 모릅니다.

기후뿐만 아닙니다. 현대 물리학의 핵심 난제를 해결하려는 지하실험 연구단이나 순수물리 이론 연구단도 알레프를 통해 기존 장비로는 불가능했던 연구를 함으로써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동안 풀지 못했던 암호를 풀 수도 있고, 세포 실험 시뮬레이션 같은 생물학 성과를 얻어낼 지도 모릅니다.

1988년 우리나라는 처음 슈퍼컴퓨터 1호기를 도입해 일기예보와 3차원 한반도 지도 제작, 자동차나 항공기 부품 설계, 원자력 발전소 안전성 분석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했습니다. 그 뒤로 차례로 도입한 다른 슈퍼컴퓨터들은 여러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준 뒤 일부는 제 역할을 마친 뒤 퇴역을 하고 일부는 여전히 현역으로서 과학자들의 보조 두뇌로 활동하는 중입니다. 이제 막 가동을 시작하는 알레프의 향후 응용 분야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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