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세계로의 다리를 놓는 이론과학자

주자르 씽나 IBS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 영사이언티스트펠로

커피와 트랜지스터, 양자 기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학자들이 있다. 커피 잔 속 커피 분자는 주변의 커피 분자들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전자기기 속 트랜지스터도 다른 부품들과 선으로 연결돼 있다. 이렇게 많은 개체들로 이뤄진 시스템을 공통적으로 서술하는 학문이 있다. 바로 통계물리학이다.
“이 분야의 아름다운 점은, 복잡한 세부사항을 모르고도 대부분의 시스템이 따르는 행동양식을 알수 있다는 것이죠.”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에서 독립 연구를 꾸려나가는 영사이언티스트펠로(YSF), 주자르 씽나 연구위원을 만났다.


주자르 씽나 인터뷰영상

세계는 열린 시스템

“처음에 물리학을 시작했을 때는 천체물리학으로 시작했어요. 화려한 천체 현상들과 우주의 신비로움에 매료됐었죠. 하지만 나중에는 전 우주를 아울러 설명할 수 있는 체계에 빠져들었어요.”

우리는 사회에서 많든 적든 주변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물질도 마찬가지다. 분자는 이웃한 분자들과, 전자부품은 이웃한 부품들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입자나 에너지를 교환하는 시스템을 ‘열린시스템’이라고 한다. 열린시스템은 통계물리학의 하위 분야 중 하나인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처럼 에너지를 주고받는 열역학적 시스템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제 일은 기본적인 물리 법칙에서부터 시스템을 서술하는 모형이나 방정식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시작해요. 그 뒤에는 이를 숫자 코드나 알고리즘으로 변환합니다. 알고리즘을 슈퍼컴퓨터에 입력하고 나서, 방정식의 결과로 어떤 물리 현상이 나타나는지 연구하는 것이죠. 손으로 쓰는 오래된 방식과 고성능 컴퓨터를 쓰는 최첨단 물리학의 좋은 조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는 자신이 하는 연구가 ‘복잡한 시스템을 설명하는 틀’이라고 답한다. 열린 시스템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물리법칙으로 단순하게 설명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나온 이론들은 우리 세계, 특히 오늘날의 기술적 장치들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이를 테면 전자 소자는 지난 수십 년 간 점점 작아져, 더 적은 전력으로 빠르게 작동하는 컴퓨터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소자를 이루는 요소들이 작아지면서 양자효과가 나타났다. 인류는 개체가 무척 많거나 대상의 운동이 무척 복잡한 경우를 다루기 위해 통계물리학을 발전시켜 왔지만, 개체들이 극도로 작은 양자 체제의 통계물리학은 아직 우리의 이해 범위 밖에 있다. 양자세계 자체가 베일에 싸여 있는 셈이다.

양자 세계를 향해 놓는 다리

“저는 인류 진화의 역사적인 순간 중 하나는 산업혁명이었다고 생각해요. 산업혁명의 시작에는 증기기관을 이해하기 위한 물리학이 있었죠. 물리학자들이 에너지와 일, 힘과 온도 개념을 정의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면서 통계물리학을 개척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물리학자들은 카르노, 톰슨, 줄 등이 연구했던 평형 상태의 열역학을 양자 체제로 옮길 수 있을 것으로 직감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양자 체제에서 열역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중요할 겁니다. 우리는 이 분야가 산업혁명과 비슷한 일종의 '양자 혁명'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최종 목표를 묻는 질문에 씽나 연구위원은 이 분야 많은 연구자들이 양자 혁명을 목표로 갖고 있다고 답했다. 복잡하고 정교한 로켓이 뉴턴 법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단순한 이론 하나로 훨씬 향상된 기술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양자점(quantum dot)으로 만들어진 초격자다. 복잡한 양자 네트워크의 일종인데, 여기서 양자 대칭을 다룬다. 최근 씽나 연구위원은 양자 대칭을 이용해서 해당 시스템의 열과 전류를 제어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음을 밝혔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이 양자 원리로 작동하는 기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의 양자 장치도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작은 부품들이 필요할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양자 규모에서 전류를 제어할 수 있다면, ‘양자 스위치’라고 불리는 작은 양자 부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류를 켜거나 차단하는 장치죠. 우리 컴퓨터도 스위치를 기본으로 한 연산 소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일단 양자 스위치가 가능해지면 훨씬 큰 기기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이론의 역할

주자르 씽나

양자 세계를 완전히 알게 되고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길은 아직 멀다. 실험실에서 양자 세계를 다루는 것도 아직 시작 단계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양자 세계를 가장 처음 탐험하는 사람들은 이론과학자인 셈이다.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론물리학을 하고 있을까.

“저희 일은 전혀 적용할 수 없는 추상적인 이론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실험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고 결과를 해석하도록 도움을 주는 데 있습니다. 아직까지 실험가들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 혹은 지식이 부족해 빠뜨린 영역을 탐험하는 것이 이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세계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돕는 것이죠.”

IBS 커뮤니케이션팀
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