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수 IBS 양자변환연구단장, 일본 리켄 사례 통해 연구자 참여 거버넌스 중요성 강조

2026-06-29 QCR News
김유수 IBS 양자변환연구단장, 일본 리켄 사례 통해 연구자 참여 거버넌스 중요성 강조

2009년 일본 민주당이 55년만에 자민당 무너뜨리고 집권하면서 '사업 효율화'를 명목으로 국가 예산을 대폭 삭감키로 했다. 과학기술 예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계 1위를 달리던 리켄(이화학연구소) 슈퍼컴퓨터 개발비가 20% 삭감 대상에 올랐다.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한 민주당 국회의원이 던진 질문이 논란에 불을 붙였다. "2등 하면 왜 안 되냐?" 예산을 줄여도 2등이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1위를 유지하던 슈퍼컴퓨터가 예산 부족으로 순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움직인 건 정부도, 연구소 경영진도 아닌 연구자들이었다. 리켄 연구원회의는 퍼블릭 코멘트 제도에 주목했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중대한 정책을 시행하기 2개월 전 반드시 국민 의견을 받고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여론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연구원회의는 리켄 소속 연구자 3500명은 물론, 그들의 가족들에게까지 퍼블릭 코멘트 제출을 독려했다. "이래서 안 된다"는 과학적 근거를 담은 의견이 쏟아졌다. 슈퍼컴퓨터가 왜 필요한지, 2등으로 떨어지면 무엇이 문제인지, 과학기술 투자가 왜 중요한지를 일반 시민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여론이 과학계로 쏠리며 정부는 예산 삭감을 철회했다. 리켄의 슈퍼컴퓨터 '케이(京, Kei)'는 2011년 세계 1위에 올랐다.

28년간 리켄에서 연구자이자 연구원회의 대표간사로 활동하다 지난해 9월 광주과학기술원(GIST) IBS 양자변환연구단 단장으로 부임한 김유수 교수는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옳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로 변화를 느낄 때, 진짜 바뀌는 것을 봤을 때 움직인다"고 강조했다.

출연연과학기술인협회의총연합회(회장 김진수, 이하 연총)는 27일 오후 대덕테크비즈센터 1층 콜라보홀에서 '연구자 참여 거버넌스 구현'을 주제로 26년 연총 대담회를 가졌다. 이날 대담회는 연총 회원을 비롯해 출연연 출신 시니어 연구자들이 참석해 김유수 박사에게 일본의 사례를 질문하며 논의를 펼쳤다. 

◇ 리켄 거버넌스, 복수 조직의 견제와 협력

김유수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에서 전기화학 석사를 마친 뒤 도쿄대 공대 응용화학과에서 박사를 받고 1999년 리켄 연구원이 됐다. 광화학, 재료화학, 표면화학, 나노화학을 두루 거쳤다. 그는 "여러 경험을 학문적으로 거쳤다"고 표현하면서 "2022년 도쿄대 교수가 됐고, 2024년 9월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인 최초 리켄 수석과학자인 김 교수는 현재 광주과학기술원(GIST)에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변환연구단 단장을 맡고 있다.

김 교수가 28년간 경험한 리켄의 거버넌스는 한국 출연연과는 여러가지로 다르다. 1917년 설립된 리켄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를 모델로 한 일본 대표 기초연구기관이다. 정부 출연금과 보조금이 절반씩 들어가지만, 2002년 이전까지는 '특수법인' 지위로 정부 간섭을 최소화했다.

핵심은 복수의 조직이 제도적으로 인정받으며 역할을 나눈다는 점이다. 정관에 명시된 이사회, 과학자회의 외에도 연구원회의, 노동조합, 후생회가 존재한다. 과학자회의는 PI 중 오래 재직하고 영향력 있는 약 50명으로 구성돼 이사장에게 제언하며 연구경영에 관여한다. 연구원회의는 PI와 일반 연구자 모두를 포괄하는 대의기구로 리켄 연구진 3500명을 대표한다. 노동조합은 PI를 제외한 연구자와 행정·기술직의 임금·인권 문제를 다룬다. 후생회는 복지를 전담한다.

일본은 PI가 되면은 자신의 연구실을 갖게 되고 예산에 따라 인력도 고용한다. 물론 연구 책임도 PI에게 있다. PI의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고 강하다. PI는 연구원으로 있다가 공모를 통해 되거나 PI로 채용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연구원회의와 노조는 서로 견제하지만 협력도 중요시한다. 연구원회의 총회 때마다 과학자회의나 이사회 인사들이 와서 함께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노조 집행부와 연구원회의 집행부가 굉장히 밀접하게 소통하면서 서로 영역을 나눴다. 배타적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협력하면서. 입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게 수준 높은 얘기도 할 수 있고 정책 제안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코로나 이후 구조가 변했다. 2020년 이후 이사회와 연구원회의 사이가 소원해졌다. 과학자회의조차 연구자가 경영에 '참여'가 아니라 '관여하는 정도'로 축소됐다. 이사장 권한이 대통령처럼 집중되면서 과학자회의가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내부 비판도 나오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각각의 기구를 인정하며 협력을 위한 소통채널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원회의가 만든 변화는 정책 대응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요구했지만 실현되지 않던 소내 탁아소 설치도 연구원회의가 해냈다. 김 교수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계속 거부당했다. 그런데 몇 년 뒤 연구원회의가 구체적 제안을 했다"면서 "탁아소를 만들면 몇 년 안에 불필요한 비용이 상쇄된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길게 보면 소내 탁아소가 훨씬 이득이이었다. 중기계획 7년에 딱 맞아떨어져서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현장 중심의 정책 제안에 지속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게 경영진의 중기계획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지를 디자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4년, 리켄 연구자들이 다시 움직인 계기가 생겼다. 여성 연구원의 STAP 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었다. 젊고 미모의 여성 연구자라는 점 때문에 일본 언론은 사건을 가십처럼 다뤘다. 연구 내용보다 그의 외모, 사생활, 패션이 뉴스의 중심이었다.

연구원회의는 자체적으로 사건을 분석했다. 연구부정이 어떤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했는지, 어떻게 재발을 막을 수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를 언론과 공유했다. 연구윤리, 멘토링 시스템, 연구실 문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가 전환되기 시작했다. 연구원회의는 사회 분위기를 예능에서 과학으로 바꿨다.

김 교수는 "3500명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신뢰 관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협상 상대로 인정받으려면 현장 연구자들의 신뢰와 지지 획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3500명 대표성, 10년 걸려 구축

리켄 연구원회의의 힘은 대표성에서 나왔다. 일본 전역 6개 캠퍼스를 10개 선거구로 나눠 각 2명씩 선출된 20명이 2년 임기로 활동한다. 임기를 1년씩 엇갈리게 해 항상 40명(신임 20명+연임 20명)이 함께 움직인다.

김 교수는 "대표성 확보에 10년 이상 걸렸다. 센터마다 소규모 연구자 조직들이 있었는데, 하나씩 설득했다. 센터를 돌면서 중앙화시키는 데 10년이 걸렸다"면서 "그 과정에서 현장 연구자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경영진과 협상할 때 '진짜 대표'로 인정받았다"며 연구진의 실천과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구원회의의 실질적 권한도 강력했다. 과학자회의로부터 연간 2억 엔(약 18억 원) 예산을 받아 풀뿌리 연구를 직접 심사하고 배분한다. 외부 연구비 탈락 과제나 초기 아이디어를 살리는 '버텀업 안전판'이다. 연구현장에서 초기 아이디어 연구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배분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톱다운 연구비 배분이 우세해진 상황에서도, 연구원회의는 철저하게 버텀업으로 운영한다. 탑다운과 버텀업은 대립 개념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운영비는 자체 조달한다. 김 교수는 "연구비로는 회식을 할 수 없다. 매번 모일 때마다 회비를 내고, 각 센터 운영회의를 찾아가 기부를 부탁한다"면서 "연구원회의가 연구소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보고하고, 마지막에 모금통을 돌리면 PI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낸다. 연구소 본부에서도 매년 300만 엔 정도 준다"고 밝혔다.

◇ 2002년 전환점, 정부 주도 구조로

리켄도 거버넌스 변화를 겪었다. 전환점은 2002년이었다. 김 교수는 "2002년 이전에는 특수법인이었다.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철저했다"면서 "이사장이 정부 지시를 거부할 수도 있었고, 정부가 이사장을 자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독립행정법인으로 전환되면서 달라졌다. 그는 "각자 알아서 운영비를 만들어내라는 메시지가 정부에서 나왔다. 정부 지원이 상대적으로 줄고, 자체 운영 자금이 잘려나갔다"고 설명했다.

연구자 환경도 바뀌었다. 그 이전에는 굳이 외부 경쟁 연구비를 딸 필요가 없었다. 연구소가 충분히 줄 테니 연구에만 전념하라는 분위기였으나 2002년 이후 대학 연구자들처럼 외부 연구비를 따오기 위해 연구제안서를 열심히 쓰는 문화가 됐다.

김 교수는 "최근에는 인센티브 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워낙 일본 급여 수준이 낮으니까, 어떤 연구비는 그 안에서 몇 퍼센트를 자기 급여로 가져갈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생겼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국 출연연의 PBS 폐지에 대해 신중하게 입장을 표했다.  그는 "PBS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뉴스를 보고 공부를 했다"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금방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예산이 100이 있는데 지금까지 인건비로 10을 주다가 PBS 폐지로 20을 주게 됐다면, 연구비를 10 줄여야 한다. 파이의 크기를 키우지 않는 한 연구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인건비를 과제에서 분리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전체 예산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단기 성과 요구가 강화되면 연구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완충 장치다. 그는 "전환기에는 연구자가 숨 쉴 수 있는 안전판이 반드시 필요하다. 연구원회의의 시드머니 같은 것, 씨앗을 뿌려서 싹이 트게까지 해주는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정책 수용성이 낮은 이유에 대한 질문에 김 교수는 냉정한 답을 내놨다. 그는 "정책은 본질적으로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 정책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비판에 익숙하다. 지적하면 조금 흔들릴 뿐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서 수요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비판에 그치지 말고 실행 가능한 대안, 선택지를 공급자 입장에서 생각해서 끊임없이 제안해야 한다. 여러 케이스를 디자인해서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인적 교류도 언급했다. 공급자 입장의 사람이 수요자 쪽에 몸을 담는 것도 중요하고, 수요자의 사람이 공급자 쪽에서 수요자 기분을 잃지 않고 정책을 입안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 연대는 '생존 장치', 세대 간 연대는 작은 성공부터

이번 간담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키워드는 '연대'다. 김 교수는 연대를 도덕적 가치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연대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수단이다. 연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느껴야 한다"면서 "연대를 해야 된다는 말보다 '연대해서 이만큼 바꿔봤다'는 경험을 공유하면 거기서 조금 더 커져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연연이 당면한 과제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하나가 해결 안 되면 다음에 나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 '하나'가 여러 개일 수도 있다"면서 "연대해서 성과를 내기 쉬운 것 하나만 딱 잡아서, '우리가 연대하면 바뀔 수 있다'는 경험을 함께 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연구 평가 시스템에 대해서도 전망을 내놨다. 그는 "AI시대로 아카데미아가 분기점에 와 있다. 정량적 평가, 임팩트 팩터나 논문 편수 같은 것들이 사실 크게 의미 없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올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이나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흐름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일본 물리학자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 박사의 말을 인용하며 연구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니시나 박사는 일본 소립자물리학의 아버지로, 그의 제자 중 8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정작 본인은 받지 못했지만, 첫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다시 환경을 만듭니다."

김 교수는 "이 순서가 중요하다. 일단 환경이 중요하고, 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후세를 위해 다시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라면서 "저는 이 순환이 계속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이고, 연구자가 성장하는 방식"이라고 역설했다.

김진수 연총 회장은 "일본 사례가 모든 답을 주지는 않지만, 연구자 참여가 실제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며 "연구자협의체가 경영협의체와 동등한 위상을 갖고 실질적인 정책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연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