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승리』 출간… 연구소가 과학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출판사 계단이 11월 17일 배대웅 작가가 쓴 책 연구소의 승리를 출간했다. 막스플랑크 보안및정보보호 연구소 차미영 디렉터는 “과학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이면에는 연구소라는 제도적 틀과 수많은 연구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 김유수 양자변환 연구단장은 “과학자의 낙원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며 연구소의 승리를 추천했다.
“어디라고요?” “도룡동에 있는 기초과학연구원이요.” 대전역에서 택시를 탄 연구소 직원은 목적지를 말했다. “도룡동에 그런 데가 있었나?” “예전 엑스포과학공원 자리에 있어요.” “아, 어딘지 알겠다!” 국책 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은 대전시민에게조차 익숙하지 않다.
택시 기사는 쓴소리를 뱉었다. “엑스포과학공원 그 좋은 땅을 말이야, 원래 롯데가 들어오려고 했던 거 알아요? 거기에 왜 엉뚱하게 연구소를 지었는지 모르겠어. 뭘 한다는 건지…, 쓸모도 없는 걸.” 엑스포과학공원은 대전세계박람회(Expo)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택시 기사는 롯데테마파크를 유치했어야 하는데 왜 과학기술연구원을 설립했냐고 푸념했다.
대전은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도시다. 대덕연구단지를 조성했던 정부는 1993년 개발도상국가로는 처음으로 엑스포를 개최했다. 엑스포 개최지였던 대전은 당시 과학기반시설과 함께 도로와 하천 등 도시기반시설까지 갖춰 10년을 앞당겨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엑스포과학공원하면 신세계백화점이 떠오를뿐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배대웅 작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소 역사를 다룬 책 연구소의 승리(출판사 계단)를 썼다.
연구소는 어떻게 과학을 발전시키고 산업을 키우며 사회를 바꾸었는가? 독일과 일본, 미국은 연구소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덕분에 부국강병에 성공하고 산업과 사회를 발전시켰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진 독일을 재건하는데 앞장섰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는 서양을 따라잡자는 목표 아래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을 넘나드는 연구 생태계를 구축했다. 원자폭탄을 개발한 미국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등은 미국이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됐다.
과학은 오랫동안 개인의 영역이었다. 아이작 뉴턴은 별을 바라봤고, 그레고어 멘델은 식물을 관찰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체를 해부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과학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을 찾고자 노력했다. 금수저 백수였던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만들었고, 오스트리아 수도사 멘델은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다. 국가는 산업혁명을 계기로 과학에 관심을 가졌다. 부국강병을 위해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만 했다. 궁금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연구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기 산업을 지원하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국가 연구소를 만들자!” 지멘스 창업자 베르너 폰 지멘스는 1881년 파리에서 열린 제1회 국제전기회의에 독일 대표로 참석한 뒤 외쳤다. 이익의 주체인 기업이 연구비를 내는 게 상식인데 나라가 앞장서서 연구비를 내라니? 하지만 독일은 영국, 프랑스와 달리 국가 주도 연구소를 설립했다. 제국물리기술연구소는 1887년 근대 최초 국가연구소가 됐다.
막스 플랑크는 1899년 플랑크 상수(h)를 발견했다. 흑체복사를 설명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양자(Quantum)로 해석해서 뉴턴역학과 고전물리학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오늘날 양자역학의 씨를 뿌린 셈이다. 플랑크가 과학계 난제를 푸는 데 성공하자 영국과 미국도 국가연구소를 설립했다. 영국은 1900년 국립물리연구소를 세웠고 미국도 1901년 국립표준국을 설립했다. 독일 제국물리기술연구소가 국가가 주도하는 과학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빌헬름 2세는 1900년 베를린대학 설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교육과 연구의 분리를 선언했다. “학생을 가르칠 의무가 없는 기초과학 연구소가 필요하다.” 황제 뜻에 따라서 독일은 1911년 카이저빌헬름협회를 출범시켰다. 황제가 부국강병을 위해 만든 카이저빌헬름협회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진 뒤 1948년 막스플랑크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등 군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가는 지원하되 연구 자율성을 존중하는 하르나크 원칙을 준수했다.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공기에서 빵과 죽음을 만든 과학자다.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해서 노벨 화학상(1918년)을 받았다. 암모니아 합성법으로 만든 질소 비료는 농업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인류로 하여금 고질적인 식량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참호전 승리를 위해서 염소를 활용한 독가스도 개발했다.
미국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카이저빌헬름협회가 우라늄 핵분열을 발견하자 독일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에게 원자폭탄 개발을 맡겼다. 이에 뒤질 세라 영국과 일본, 미국도 핵폭탄을 연구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941년 맨해튼 계획을 승인했고, 줄리어스 오펜하이머가 이끈 미국 과학자들은 1945년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원자폭탄을 만들었다.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했다면 오늘날 세계 지도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과학의 근대화, 기술이 만든 도약의 힘, 지구가 하나의 연구소가 되다란 세가지 주제에 맞춰 독일 카이저빌헬름협회와 미국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일본 이화학연구소, 한국 원자력연구소 등의 설립배경과 성장 과정을 소개했다. 연구소의 승리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의 국가 주도 연구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이 강해질수록 한국에 고난이 생겼기 때문이다. 롯데월드가 부국강병을 만들어줄 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