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가 대덕이 다양한 융합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빅뱅’을 가속화하는데 앞장섰다.
정부출연연구기관 30개, KAIST·UST 등 연구중심대학, 첨단벤처 1400개, 전국 제일의 연구개발인력 집적도…. 지표상의 대덕은 파산 직전의 미국경제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실리콘밸리처럼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기대주로 손색이 없다. 다만 출연연·기업·대학 등 대덕의 집단지성이 '빅뱅'을 만들어내는 데 부족했던 단 한 가지, '소통과 협업'을 이끌어낼 원동력이 필요했다. 을 주제로 한 초청강연과 열띤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IBS와 대덕넷이 공동주최하는 '상상력포럼D'는 대덕의 집단지성이 다양한 융합시너지를 내는 불쏘시개로서 기대감을 모으며 순항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5월 15일 UST 사이언스홀에서 두 번째로 열린 포럼은 오후 3시 시작시간에 앞서 이미 100여 명의 연구원과 기업인, 학생들로 성황을 이뤘다. 포럼에서는 소통과 협업을 주제로 한 초청강연과 열띤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 유진녕 원장 "창조하려면 소통과 협업부터"
유진녕 LG화학기술연구원 원장은 'LG화학연의 협업 문화와 사례'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대덕이 창조경제의 진앙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원장은 "메모리반도체, 조선 등의 산업은 패스트 팔로워 전략에 따라 성공한 분야"라며 "이들 산업은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 없이 쫓아가기만 하면 됐다. 우리 기업문화가 효율 중심, 즉 질문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문화로 고착돼온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유 원장은 "이런 문화는 쫓아가는 데는 유용하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데 독(毒)이 된다"며 "앞으로 남이 하지 않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문화에 대한 혁신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의 대표적 오픈이노베이션 전도사로 알려진 유 원장은 LG화학연의 협업경영 사례를 참석자들에게 소개했다. LG화학연은 과학기술계의 고질병으로 불리는 폐쇄성을 벗고 공유를 통한 시너지를 선택하는 결정으로 첨단기술 개발을 거듭 성공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 오픈이노베이션 성공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유 원장은 '연구원의 6가지 특성'에 대한 파이낸셜타임즈의 기사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연구원들은 ▲자율적 분위기를 중시하고 관리자의 감독을 싫어한다. 또 ▲고도의 기술개발 활동에서 자아를 성취하고 ▲최신 기술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뒤쳐진다 생각하면 좌절한다. ▲연구원 집단의 윤리의식에 충실하고 회사충성도는 낮다. ▲조직 목표에 열광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방향이 잡혔다 생각하면 무섭게 집중하고 ▲독립심이 강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불안감을 조성해 연구에 차질을 빚게 된다고 한다.
2005년 1월부터 LG그룹의 R&D 총책임자 역할을 맡은 후 가장 역점을 둔 부문이 바로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이 같은 연구원들의 특성을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유 원장의 선택은 연구원들의 특성을 반영한 '내부 연구원들간 협업'이었다. 자기 연구만 알던 연구원들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일이 녹록치 않았지만 오픈이노베이션 경영을 선언한 이후 8년 남짓 꾸준히 노력을 지속한 끝에 LG화학연은 현재 과학기술계의 고질병인 나홀로 연구문화(NIH 증후군)을 보란듯이 깨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간연구소로 발돋움하게 됐다.
유 원장은 "LG화학연의 혁신과 협업 문화가 대덕 연구현장 곳곳에 널리 퍼지길 염원한다"며 대덕특구의 오픈 이노베이션 활성화를 위해 두 가지를 제언했다.
그는 먼저 산학연이 서로 같은 역할을 두고 경쟁하지 않는 바람직한 역할 재정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기관별 분산 정보를 통합화하는 방안과 중장기적 협업 프로그램의 도입을 참석자들에게 제안했다.
◆ 새 프로그램도 대거 선보여
패널발표에 나선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은 "연구원의 특성과 예술가의 특성이 비슷한 데 놀랐다"며 과학기술을 작품활동에 응용하고 있는 나탈리 미에바크, 에드워트 칸 등의 현대미술가들을 소개하며 문화예술계와 과학계간 이종 융합의 흐름을 설명했다.
양동렬 KAIST 교수는 "먼저 기관 내에서 소통해야 외부 소통도 가능하다는 유 원장의 강연을 들으며 35년간 학교에 근무하며 겪은 소통 문제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며 "대덕이 가진 역량의 30~40%밖에 성과가 안 나오는 큰 이유도 소통의 문제인 만큼 다가오기보다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경수 핵융합연 책임연구원은 "핵융합 연구하는 우리가 융합의 원조"라는 말로 참석자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그는 "대덕의 연구원들이 하나를 잘하기 위해,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집중하다보니 그만큼 소통이 안됐던 게 사실"이라며 "소통은 마음을 합하기 위해 마음을 나누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보다 진일보한 소통에 힘써야 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들도 대거 선을 보였다. 신설된 '대덕 주민 줌인' 코너에서는 유치과학자인 정연세 IBS 사업관리실장이 중이온가속기 구축을 위해 20년 미국생활을 단칼에 정리하고 돌아온 사연을 소개했다.
국가를 위해 새로운 형식의 가속기를 만들어보자는 요청이 왔을 때 '바로 이 일이다' 싶어 보름만에 짐을 꾸려 귀국했다는 정 실장은 미국 페르미랩에서 LHC 실험을 주로 해왔다. 그는 사실 가속기와는 거리가 먼 입자 물리를 전공한 검출기 분야 권위자다.
정 박사는 "우리나라가 기술력이 있다. 빨리 중이온 가속기를 구축해서 세계적인 연구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실험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기초과학 레벨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연구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연구자들도 라온을 통해 연구 수준을 한 층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대덕의 신참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대덕 원로과학자인 장인순 박사는 따뜻한 과학마을 공동체 설립을 위해 시도되고 있는 '벽돌 한장'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장 박사는 "대덕특구가 조성된지 40주년을 맞는다. 대덕의 구성원들이 그동안 국가적 수혜의 대상이었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지원해야 움직이는 수동적 문화에서 공동의 꿈과 목표를 향해 특구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으는 능동적 문화로 진화해야 하는 시점이다"며 "벽돌 한 장은 대덕에 사는 과학자와 기업인, 교수, 뜻이 있는 대전 시민 등 구성원들이 주축이 돼 지역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동네 만들기를 지향한다. 대덕특구의 협력적 삶을 통한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