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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물론, 동안 미모까지···"형광아 잘 부탁해~"

형광단백질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조명이 모두 꺼진 캄캄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들은 어두운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위치를 잘 찾아갑니다. 무대 바닥에 형광 스티커로 위치를 표시한 덕분입니다. 배우의 몸에도 관객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형광 스티커를 붙여두면 상대의 움직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볼 때 딱 좋은 표식인 셈입니다.

형광표지물질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 눈에 잘 띄도록 만들어준다. (사진: Erin Rod(위키피디아))
▲ 형광표지물질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 눈에 잘 띄도록 만들어준다.
(사진: Erin Rod(위키피디아))

생체 물질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는데 사용하는 '형광표지물질'

실험 대상의 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은 과학 연구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피부 노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피부 탄력을 결정하는 '엘라스틴' 단백질을 관찰해야 합니다. 피부 전체에 이 단백질이 얼마나 많이 분포하는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마나 사라지는지 확인해야 하거든요. 나아가서는 분해가 되거나 다른 단백질과 결합하는 것인지도 파악해야합니다.

장영태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부연구단장 연구팀은 이 엘라스틴 단백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형광표지물질을 개발해 생물분야 유명국제학술지 Cell의 자매지, 'Chem' 3월 29일자에 발표했습니다. 이 물질 이름은 '엘라니르(ElaNIR)'인데요, 엘라스틴 단백질에만 딱 붙기 때문에 앞으로 피부 노화를 연구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피부 노화는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관심을 갖는 주제지만 깊이 연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노화를 객관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지표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피부노화의 대표적인 지표인 엘라스틴 단백질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형광표지물질을 이용한다고 해도 기존 형광표지물질은 파장이 짧아 피부를 투과할 수 없었습니다. 형광표지물질이 엘라스틴 단백질에만 골라서 붙어야 하는데 주변 다른 조직에도 잘 붙는다는 단점도 있었거든요.

색방법(H&E, Hematoxylin and Eosin)으로 염색한 피부 조직(왼쪽)은 주변 다른 단백질까지 염색돼 정확하게 관찰하기 어렵다. (사진: IBS)
▲ 색방법(H&E, Hematoxylin and Eosin)으로 염색한 피부 조직(왼쪽)은 주변 다른 단백질까지 염색돼 정확하게 관찰하기 어렵다.
(사진: IBS)

연구팀은 토끼 동맥 조직을 수mm크기로 잘라 슬라이드에 하나하나 붙여 엘라스틴 단백질에 딱 맞는 형광표지물질을 찾아냈습니다. 피부를 투과할 수 있도록 파장이 긴 근적외선(700~900nm)을 내는 형광표지물질을 하나 하나 실험해 엘리니르를 찾아낸 겁니다.

엘리니르를 이용해 엘라스틴 단백질을 관찰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엘리니르를 주사하면 이 단백질이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퍼집니다. 그리고 몸 전체에 있는 엘라스틴 단백질을 찾아 결합하지요. 형광표지물질을 내는 부위를 관찰하기만 하면 몸에 엘라스틴 단백질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태어난지 1달 된 생쥐(왼쪽)와 10달 된 생쥐(오른쪽)에게 엘리니르를 주사한 결과. 노란색이 엘라스틴 단백질이다. 엘리니르는 엘라스틴 단백질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형광표지물질로 눈으로 단백질 분포를 확인할 수 있게 도와준다. (사진: IBS)
▲ 태어난지 1달 된 생쥐(왼쪽)와 10달 된 생쥐(오른쪽)에게 엘리니르를 주사한 결과. 노란색이 엘라스틴 단백질이다. 엘리니르는 엘라스틴 단백질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형광표지물질로 눈으로 단백질 분포를 확인할 수 있게 도와준다.
(사진: IBS)

연구진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엘리니르가 흡수한 빛 에너지 중 일부는 열로 발산되면서 초음파가 발생하는데, 이 초음파를 분석하면 몸속에 엘라스틴 분포를 3차원 영상으로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엘리니르로 염색된 엘라스틴 단백질 3차원 분포 영상. (사진: IBS)
▲ 엘리니르로 염색된 엘라스틴 단백질 3차원 분포 영상.
(사진: IBS)

해파리에서 발견된 형광표지물질···발견 30년 후에야 용도 찾아

오늘날 수많은 과학 연구에서 형광표지물질은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유전학이나 약학, 의학 분야에서 쓰입니다. 세포 이하 단위에서 물질의 이동 경로와 합성 결과를 파악하는데 주로 사용됩니다. 형광표지물질이 처음 발견된 시기는 19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의 생물학자 시모무라 오사무가 그 주인공인데요. 시모무라 박사가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생물은 평면해파리(Aequorea coerulescens)입니다. 평면해파리 역시 스스로 빛을 내는 생물입니다. 시모무라 박사는 이 해파리를 매년 수만 마리를 잡아가며 발광 물질을 연구했습니다. 1962년에 결국 발광 물질을 분리, 정제하는데 성공하고 이름을 '에쿠오린(Aequorin)'이라고 붙였지요.

평면해파리(Aequorea coerulescens)(사진: Totti(위키피디아))
▲ 평면해파리(Aequorea coerulescens)
(사진: Totti(위키피디아))

시모무라 박사는 자신이 정제한 에쿠오린은 푸른색을 내는 발광 물질인데, 살아있는 해파리가 내는 빛은 녹색인 점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에쿠오린을 발표하는 논문에 간단하게 이외에도 녹색 빛을 내는 형광표지물질이 있다고 기술했습니다. 네, 이 녹색형광표지물질이 바로 생물학 연구의 판도를 바꾼 녹색형광단백질(GFP, Green Fluorscent protein)입니다. 시모무라 박사는 GFP를 발견한 공로로 다른 두 과학자와 함께 200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들 덕분에 본격적으로 ‘형광표지물질을 이용해 생체 물질을 직접 관찰’하는 시대가 열린 거지요.

시모무라 오사무, 마틴 챌피, 로저 챈(왼쪽부터). 이들은 녹색형광단백질을 발견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연구한 공로로 200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사진: 네이버)
▲ 시모무라 오사무, 마틴 챌피, 로저 챈(왼쪽부터). 이들은 녹색형광단백질을 발견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연구한 공로로 200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사진: 네이버)

강력한 분자결합쌍을 이용해 원하는 곳 어디에나 염색 척척

GFP는 처음 발견된 뒤 다양하게 연구돼 왔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녹색 외에도 노랑이나, 청록, 적색 등 다양한 형광단백질이 만들어졌고, 이용되고 있습니다. 엘리니르를 만든 장영태 부연구단장만 해도 '만 가지 형광표지물질을 만든 연구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입니다.

형광표지물질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응용분야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은 세포 안에서 자가포식을 하는 소기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성공해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앙케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 International Edition) 1월 25일자에 발표했습니다.

세포는 영양이 부족해지면 분해효소를 가진 세포 소기관이 필요 없는 소기관을 분해한 뒤 재활용합니다. 이 과정을 '자가포식'이라고 합니다. 자가포식은 세포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현상이라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이 주목해왔습니다. 다만 세포소기관이 다른 소기관을 분해하고 흡수하는 과정에서 해당 물질이 산산조각이 나, 실시간으로 관찰하기 어려웠습니다. 형광표지물질을 결합시킨다고 해도 자가포식 과정에서 해당 단백질이 분해돼 버렸으니까요.

연구팀은 쿠커비투릴-아다만탄 분자결합쌍을 이용해 이중으로 형광표지물질을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쿠커비투릴 분자와 아다만탄 분자는 서로 강력하게 결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먼저 형광분자를 매단 쿠커비투릴은 리소좀에, 아다만탄은 미토콘드리아에 결합시킵니다. 자가포식 전에는 각각 다른 색을 내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자가포식이 시작돼 리소좀이 미토콘드리아를 분해하면 미토콘드리아에 붙어있던 아다만탄과 리소좀에 붙어있던 쿠커비투릴이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강력하게 결합합니다. 연구진은 이 단계에서 형광분자가 새로운 색을 내도록 실험을 설계함으로써 자가포식 과정을 완전히 관찰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미토콘드리아에는 붉은 별모양 형광 분자를 단 아다만탄아민을, 리소좀에는 둥근 녹색 형광 분자를 단 쿠커비투릴을 붙인다. 리소좀의 자가포식이 시작되면 아다만탄아민과 쿠커비투릴이 결합하고, 이 과정에서 붉고 둥근 형광 분자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사진: IBS)
▲ 미토콘드리아에는 붉은 별모양 형광 분자를 단 아다만탄아민을, 리소좀에는 둥근 녹색 형광 분자를 단 쿠커비투릴을 붙인다. 리소좀의 자가포식이 시작되면 아다만탄아민과 쿠커비투릴이 결합하고, 이 과정에서 붉고 둥근 형광 분자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사진: IBS)

연구팀은 쿠커비투릴-아다만탄의 결합을 이용해 원하는 곳 어디에나 자유롭게 염색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습니다. 쿠커비투릴은 속이 빈 호박 형태 인공분자입니다. 이 빈 공간에 아다만탄이 들어가면서 강력하게 결합합니다. 이 과정을 주인-손님 상호작용이라고 부릅니다. 주인(쿠커비투릴)이 손님(아다만탄)을 맞이하는 모습이거든요.

이런 강력한 결합력 덕분에 염색하고 싶은 단백질에 아다만탄을 붙인 뒤, 형광분자를 결합시킨 쿠커비투릴을 뿌리면 분자결합에 의해 자연스럽게 쿠커비투릴과 아다만탄이 결합합니다. 단백질은 자연스럽게 쿠커비투릴에 붙어있던 형광분자 색을 띄게 되지요.

주인-손님 상호작용 결합을 이용하면 원하는 단백질에만 골라서 형광 염색을 할 수 있다. a)는 세포 수준에서, b)는 동물 수준(예쁜꼬마선충)에서 형광 염색을 진행했다. 빨간색이 쿠커비투릴-아다만탄 결합을 이용해 형광표지물질을 염색한 부분이다. (사진: IBS)
▲ 주인-손님 상호작용 결합을 이용하면 원하는 단백질에만 골라서 형광 염색을 할 수 있다. a)는 세포 수준에서, b)는 동물 수준(예쁜꼬마선충)에서 형광 염색을 진행했다. 빨간색이 쿠커비투릴-아다만탄 결합을 이용해 형광표지물질을 염색한 부분이다.
(사진: IBS)

형광표지물질과 레이저빔을 결합해 기존 학설 뒤집기도 성공

한편 최근에는 형광표지물질과 다른 분야를 결합해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내놓기도 합니다. 스티브 그래닉 기초과학연구원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은 2017년 12월 효소의 움직임에 대해 기존 학설을 완전히 뒤집는 연구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습니다. 효소는 단백질에 불과하기에 특별한 운동성 없이 무작위로 운동하며 확산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닉 연구팀은 무작위가 아니라 박테리아처럼 특정 방향성을 갖고 움직인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연구팀이 이용한 것은 형광표지물질과 레이저빔입니다. 효소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는 레이저빔을 효소에 쏜 뒤, 효소에 붙어있는 형광입자를 추적하는 방법인 '형광 상관 분광법(Fluorescence Correlation Spectroscopy)'을 씁니다. 이 때 사용하는 레이저 빔의 지름이 250nm나 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효소의 지름은 10nm 밖에 안돼, 효소 움직임을 측정하기에 레이저빔이 지나치게 넓었던 겁니다.

연구팀은 자체 보유한 기술 '자극방출고갈현미경(STED, Stimulated Emission Depletion)'을 이용해 레이저 빔을 50nm까지 줄였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효소 움직임을 파악하게 된 겁니다. 이 기술을 이용해 효소를 관찰하자 흥미로운 사실 두 가지가 발견됐습니다. 하나는 효소가 반응물(기질)의 적은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에는 기질이 높은 쪽으로 이동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겁니다. 또 하나는 '달리기와 뒹굴기' 운동을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달리기와 뒹굴기 운동은 일반적으로 박테리아에서 발견되는 움직임입니다. 박테리아는 영양분을 효율적으로 찾기 위해서 직진 움직임(달리기)을 통해 방향성을 정하고 중간 중간에 무작위 운동(뒹굴기)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효소는 영양분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뒹굴기 움직임을 통해 기질이 적은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연구팀은 효소는 반응물이 아니라 촉매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기질 반대편으로 밀려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테리아는(왼쪽 그림) 포도당(파랑 알갱이)이 있으면 직진 운동(달리기)를 하다가 방향을 바꾸기 위해 무작위 운동(뒹굴기)를 반복해 영양분을 얻는다. 효소(오른쪽 그림)는 기질(녹색 알갱이)이 생성물(노랑 알갱이)로 변하는 곳에 있기 때문에 기질 농도가 적은 쪽으로 움직인다. (사진: IBS)
▲ 박테리아는(왼쪽 그림) 포도당(파랑 알갱이)이 있으면 직진 운동(달리기)를 하다가 방향을 바꾸기 위해 무작위 운동(뒹굴기)를 반복해 영양분을 얻는다. 효소(오른쪽 그림)는 기질(녹색 알갱이)이 생성물(노랑 알갱이)로 변하는 곳에 있기 때문에 기질 농도가 적은 쪽으로 움직인다.
(사진: IBS)

형광표지물질이 본격적으로 과학 연구에 응용되기 시작한 것은 30년이 채 안됩니다. 색을 입히는 이 간단한 기술 덕분에 세포나 단백질 같은 생명의 기초 단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속속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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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01-30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