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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험은 어떻게 기억으로 기록되는 걸까?




▲ 세계적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메멘토'는 진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레너드가 주인공이다. 그는 불과 수 분 전에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새로운 기억을 습득하지 못하는 것. 해마가 손상되면 방금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새로운 학습이 불가능하다. 과연 우리 뇌는 어떤 과정으로 기억을 갖는 걸까?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어제 냉장고에 넣어둔 사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는가? 3일 전 먹은 점심 메뉴는? 작년, 재작년 혹은 3년 전 오늘 나는 누구를 만났을까? 어제의 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만 그보다 오래전 일은 뿌옇게 기억된다. 아니, 어떤 구체적인 대상이나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그저 흘러가는 장면들에 불과할 때도 있다. 만약 한 번의 경험도 모조리 우리 뇌가 기억한다면 어떨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문구가 저절로 감사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두뇌는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계속 우선순위를 정하곤 한다.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뇌는 다음 세 가지 이유에 입각해 집중에 돌입한다. '나와 연관성이 있는지', '중요한 일인지', '내가 관심 있는 일인지'의 경우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면 두뇌는 집중과 기억이라는 굳이 힘든 작업을 시작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뇌는 한 번 기억한 것을 적극적으로 잊게 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여전히 과학자들의 도전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최근 뇌 연구는 기억의 획득과 상기뿐만 아니라 기억을 지우는 메커니즘까지 접근한다고 하니 머잖아 기억을 USB에 담아 넣고 빼는 게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

짧은 기억과 긴 기억, 그 차이는?

기억은 유지되는 시간에 따라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구분된다. 사람들은 24시간이 지나면 들었던 것의 80%는 잊어버린다. 단기기억에 해당한다. 장기기억은 반복적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잊어버리지 않고 평생 기억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외운 구구단을 나이가 들어도 외울 수 있는 이유는 구구단 공식이 장기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지속 시간 외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은 더 깊은 차원인 분자 수준으로 내려가 보면 다르다. 완전히 딴판이다.


▲ 위 그림은 뇌가 기억을 생성하고 삭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뇌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보관(인출)하기도 하고 삭제(망각)하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 LG블로그]

단기기억은 뇌의 신경세포(뉴런)와 신경세포 사이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지 신경세포 회로 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이 좀 더 많이 나와 일시적인 잔상으로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뀔 때는 신경세포에서 회로를 만드는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면서 새로운 신경회로망이 생긴다.

장기기억은 매순간 쌓인다. 장기기억은 지식과 경험의 측면 뿐 아니라 추억으로 뇌 속에 저장된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모든 기억이 장기기억이 되지는 않는다, 뇌는 단기기억 중 불필요한 것은 삭제하고 꼭 필요한 것만 장기기억으로 챙긴다. 기억이 언제까지나 뇌에 남아있어도 행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뇌의 선택과 집중의 과정의 결과에도 해당한다.

기억의 제조공장이자 단기기억의 저장고, 해마

기억이 뇌 안에 등록되고 저장되는 방식을 처음 설명한 사람은 캐나다의 유명한 심리학자 도널드 헤브 박사다. 그는 1949년 뉴런(신경세포)과 뉴런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가 서로 연결되면 하나의 회로가 만들어지는데, 이 회로가 바로 기억일 거라고 예측했다.


▲ 해마는 학습, 기억 및 새로운 것의 인식 등을 담당한다.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을 전환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미지출처: 구글]

기억이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라면 그 흔적을 만드는 부 위는 해마다. 대뇌변연계의 양쪽 측두엽에 위치한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는 중추기관이자 기억의 제조공장이다. 새로운 정보를 인식하고 단기기억/서술기억(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억, ex 어제 도서관에 갔다 등)을 관장하는 뇌 기관이다.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정보를 기억할 수 없다. 주로 좌측 해마는 최근의 일을 기억하고 우측 해마는 태어난 이후 모든 일을 기억한다.

기억은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가 뇌로 들어오면 정보들이 조합되어 하나의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부터 해마가 작용한다. 뇌로 들어온 감각 정보를 해마가 단기간 저장하고 있다가 대뇌피질로 보내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것. 우리가 보거나 들은 정보들이 해마를 거쳐 다시 대뇌피질로 보내지는데, 이것이 장기기억이다. 그러니까 해마는 추억과 지식의 기억을 만들거나 일시적으로 보존하는 단기기억의 창고인 셈이다.

장기기억의 핵심은 뉴런 사이의 연결 고리, 시냅스

신경과학자들은 기억을 '뉴런 사이의 일정한 연결 패턴이 저장된 것'이라 정의한다. 그동안 학자들은 기억이 뇌의 어느 부분에 저장되는지, 기억의 물리적 실체는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여러 학설을 제시해왔다. 그러기를 100년, 학계는 시냅스에 기억이 저장된다는 헤브 가설을 유력하게 지지하고 있지만 기술적 한계로 그의 가설은 실험으로 확인되지 못했다.

최근 뉴런 사이의 접합 부위인 시냅스 중 일부에 기억이 저장된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지난 4월 27일자 사이언스에 깜짝 놀랄 연구결과가 실린 것. 서울대학교 강봉균 교수팀은 하나의 뉴런에 연결된 수천 개의 시냅스들을 종류별로 구분할 수 있는 '듀얼 이그래스프(dual-eGRASP)' 기술을 개발하고 기억의 저장 위치를 찾고자 해마를 연구했다. 그 결과 수많은 시냅스 중에서도 학습에 의해 구조적·기능적 변화가 있는 '기억저장 시냅스'를 명확하게 찾아냈다. 기억이 어디에 저장되는지 그 위치를 규명한 것이다.


▲ 기억 형성에 참여한 기억 저장 세포와 일반 세포의 수상돌기 비교(왼쪽). 기억 저장 세포의 수상돌기에 있는 시냅스 중 기억저장 시냅스는 노란색 형광 표지를 띤다. 서울대학교 강봉균 교수 연구진은 형광 단백질을 이용한 시각화 기법으로 기억 형성에 참여한 특정 시냅스들을 식별하는 데 성공했다. 빨간색 수상돌기 위 노란색 형광 표지가 있는 지점이 기억 저장 시냅스가 있는 곳이다.
[이미지출처: 강봉균 교수 연구진]

우리가 겪는 경험은 시냅스가 지닌 가소성(plasticity. 새로운 시냅스를 만드는 능력)에 의해 기억으로 뇌 안에 새겨진다. 시냅스 가소성은 외부의 열이나 힘에 따라 변형되는 플라스틱처럼 자극으로 인해 신경망이 강화되거나 약해지는 성질을 말한다. 즉 지식이나 경험이 쌓이면 새로운 신경이 성장하고 새 신경 연결망이 추가되면서 뇌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시냅스 연결 패턴들은 우리가 과거의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변화가 일어난다. 시냅스가 더욱 견고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거나 새롭게 형성되기도 한다. 학습을 할 때에도 시냅스에 일정한 물질적,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다. 생리학계의 권위자인 영국의 찰스 세링톤(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은 기억을 대뇌피질의 뉴런에 섬광이 스쳐가듯 충격파가 지나가며 복잡한 시간적 공간적 무늬를 짜넣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시점에 뇌가 겪은 시·공간적 흥분무늬를 다시 재생해 엮어내는 것이 바로 장기기억인 것이다. 결국 장기기억의 핵심은 시냅스인 셈이다.

가장 강력한 기억을 만드는 감정, 그리고 학습과 관계

그렇다면 시냅스에 깊이 새겨져 가장 오랫동안 머릿속에 존재하는 기억은 어떤 걸까. 우리의 일반적인 기억을 서술기억으로 생각한다면 이보다 오래 그리고 강력하게 지배하는 기억은 습관에 녹아 있는 절차기억이다. 이보다 더 강력하게 잊히지 않고 일상을 지배하는 기억은 감정기억이다.

편도체는 감정을 관장하는 뇌 부위다. 공교롭게도 편도체는 기억중추인 해마와 바로 붙어 있는데 이 때문에 기억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도 덩달아 함께 활성화되는 것. 따라서 감정이 동반된 기억은 더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 있다.

이제 학습과 감정, 그리고 기억을 연결시켜 보자. 이를테면 무엇인가를 읽을 때 자신의 감정을 담아 읽어보자. 그것만으로도 기억이 오래 남아 학습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즐겁게 공부하는 긍정적 사고는 뉴런 사이의 회로 연결 가능성을 높여 주어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를 학습능력과 연결시키려면 스스로 감정을 잘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신기하게도 감정을 자제하고 무표정하게 있으면 단기기억력이 감소한다고 한다. 영화를 볼 때 즐겁고 웃긴 장면이 나오거나 슬픈 장면이 나올 때 웃거나 울지 못하게 감정을 억제하면 영화에 대한 기억력이 떨어진다. 감정을 억제하면 소수의 세포만이 기억과정에 참여해 기억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정적 감정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아주 쉬운 기억도 인출하기가 힘들다.


▲ 독일 괴팅겐 대학의 게르트 뤼에 심리학과 교수는 기분이 밝은 그룹과 우울한 그룹의 학습능력 차이를 측정하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두 그룹에 자연과학에 관한 책을 읽게 한 뒤 학습 결과를 테스트해보니 기분이 좋은 그룹이 우울한 그룹보다 훨씬 더 높은 학습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이왕 하는 공부, 즐겁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지출처 : 구글]

나는 잔다! 그리고 기억을 정돈한다!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기억을 만들기 위해선 감정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방금 배웠다. 장기기억을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선 반복학습도 중요하다. 기억한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다시 떠올려 보는 것. 보고 들은 내용을 다시 뇌에 입력하면 신경회로가 굵어지고 강화되면서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변화한다. 많이들 알고 있는 7시간 이내, 7일 이내, 30일 이내 이렇게 3번 이상 복습하라는 공부법은 반복에 의한 학습 효과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 수면과 학습의 상관관계는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결과를 내 놓은 연구주제다. 충분한 수면은 기억력 향상에 아주 중요한 조건이다.
(이미지출처: 조선닷컴)

충분한 수면 또한 장기기억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하다. 시험기간 벼락치기 방식이 자신에게 꼭 맞는 사람도 있지만 오랜 시간 자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뇌를 지치게 만드는 공부법이다. 대뇌 신경세포가 지치게 되면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되어 집중력이 떨어진다. 대뇌의 신경세포는 일정 시간 이상 계속 자극을 받으면 불응기가 와서 잘 반응하지 않기 때문. 따라서 불응기는 지친 대뇌 신경세포를 쉬게 하는 자기방어 반응이면서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 저장하는 유용한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잠을 자는 동안 기억들은 정돈되는 과정을 거친다. 해마는 학습을 할 때 가장 눈에 띄게 활성화되는데 꿈을 꾸는 사이에도 활발하게 움직인다. 즉 학습과 꿈꿀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같다는 얘기다. 때문에 수면은 단순히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시기가 아니다. 낮에 있었던 기억이나 과거에 있었던 기억들을 재음미하는 과정이다.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꼭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하거나 다양한 정보들이 서로 연결돼 새로운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생각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학습의 효율을 높이려면 밤을 꼴딱 새는 것보다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복습하는 것이도움이 되는 이유다.

IBS 수면 중 뇌파 조절해 학습 기억력 2배 높여

그렇다면 기억력은 정말 잠과 관련된 걸까? 엄밀히 말해 잠자는 동안의 뇌파와 관련 있다. 그동안 숙면을 돕는 수면방추파가 장기기억 형성에 관여한다고 알려졌지만 수면방추파와 장기기억 간의 명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신희섭 단장 연구팀은 수면 중에만 나타나는 세 가지 종류의 뇌파가 동시에 발생해 공명 상태를 이루면, 학습한 내용에 대한 장기 기억력이 2배 가량 향상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국제학술지 '뉴런'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수면방추파 외에 대뇌피질의 '서파(느린 뇌파)'와 해마의 'SWR파(날카로운 물결 형태의 뇌파)'가 학습과 기억에 관여하는 뇌파로 알려져 있는 것에 착안했다. 먼저 청색광(光)에 반응하는 채널로돕신을 생쥐 간뇌의 시상 신경세포에 발현시켰다. 그리고 생쥐 머리에 꽂은 광케이블로 빛을 쪼여 생쥐의 뇌에서 수면방추파를 발생시켰다. 빛으로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법을 쓴 것이다.

실험 결과 대뇌피질의 서파 발생 시기에 맞춰 빛을 통해 수면방추파를 유도한 자극이 해마의 장기기억을 증진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의 뇌파 분포 양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뇌피질의 서파가 나타나는 시기에 맞춰 수면방추파를 유도하면 해마의 SWR파도 동원돼 결국 세 가지 뇌파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학습 기억을 향상시킨다. 해마에서 생성된 학습정보가 대뇌피질의 전두엽으로 전달돼 장기기억이 강화되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신희섭 단장은 "만약 광유전학 케이블을 삽입하지 않고 인간의 뇌파를 조정할 수 있다면 사람의 학습기억을 높이는 데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 단장팀의 도전적 연구가 우리의 행복 뇌파를 나오게 할 날을 기대해 본다.


▲ IBS 연구진은 대뇌피질의 서파가 나타나는 시기에 수면방추파를 인위적으로 유도해 세 뇌파(서파, 수면방추파, SWR파)가 동조하는 현상이 많을수록 장기기억력이 높아짐을 확인했다.
[이미지출처: IBS]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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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01-30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