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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왜 빛을 사용할까?



빛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물질이다. 진공에서 1초에 30만 ㎞를 이동한다. 이를 광속(光速)이라하는데 지구 둘레가 4만 ㎞이므로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도는 셈이다. 1900년대 초까지 빛은 파동, 전자는 입자로 생각했다. 그러다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광양자 이론을 제안하면서 파동으로 여겼던 빛이 입자의 면도 있음을 알게 됐다.


▲ 이 세상에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
말 그대로 빛의 속도란 그 무엇보다 빠를 수 없는 속도를 은유적이자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출처: pixabay)

빛 입자(光子)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유용한 물질이다. 21세기는 ‘빛의 시대’라고 할 만큼 빛을 이용해 정보를 처리하는 장치들이 주변에 많다. 광케이블 덕에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지인들과 e메일을 주고받는 데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현재 광통신은 광케이블을 통해 빛으로 정보를 이동시키는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빛을 사용하지 않고 전자를 이용해 소리와 메시지를 처리한다.

광통신은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 정보를 처리한다. 현재 광통신의 한계는 전자가 전선이나 전기 회로를 따라 달릴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전자가 복잡한 회로를 통과하면서 병목 현상이 발생해 원래 속도의 절반밖에 내지 못하는 것. 신호를 처리하는 전자소자 자체의 한계와 발열 문제 또한 속도를 느리게 하는 요인이다. 이에 따른 전력비용도 만만찮다.


▲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광통신 시스템은 빛 신호를 복잡한 단계를 거쳐 전기신호로 바꾼다. 만약 빛을 바로 정보로 처리하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광통신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광산업통계시스템)

전기의 상호작용 때문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무선전화기에 상대방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껴들거나 잡음이 들리고, TV 바로 옆에서 컴퓨터를 켜면 TV 화면이 떨리는 등이 그 예다. 전선에 전기가 흐를 때, 전선 주위에 동심원 모양으로 형성된 자기장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때 혼선을 일으키거나 귀중한 정보를 망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빛의 경우는 다르다. 빛은 서로 교차하더라도 간섭이 일어나지 않아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정보 전달에 더욱 이상적이다.

따라서 빠르면서도 안정적인 통신을 위해선 전자보다 빠른 빛으로 직접 정보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광속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정보 처리가 가능해진다. 광자만으로 정보를 저장・연산・처리・제어하는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빛을 직접 사용하기엔 문제가 따른다. 마치 길들이기 힘든 야생마처럼 속도가 빠른 빛은 제어하기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가 자신보다 수천, 수만 배 더 빨리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상대의 말을 제어하기 힘들 뿐 아니라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반면에 전자는 상대적으로 제어하기가 쉽다. 빛보다 느린 전자가 아직 통신에 이용되는 이유다. 빠른 속도의 빛은 특히 ‘양자(광) 메모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큰 골칫거리다. 골칫거리를 해결하고자 과학자들은 인위적으로 빛을 느리게 하거나 멈추게 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빛의 속도가 느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빛의 속도가 느려지는 이유는 어떤 물질을 지나가면서 만났기 때문이다. 궤도를 지나가다 맞닥뜨린 물질의 원자와 에너지를 주고받다 보면 빛의 전달 속도가 느려진다. 이렇게 진공 상태의 빛의 속도에 비해 다른 물질을 지날 때 느려지는 속도의 비율을 바로 ‘굴절률(n)’이라 한다. 굴절률이 크면 클수록 빛의 속도는 느려진다. 굴절률은 물질마다 다르다. 물질에 따라 빛에 반응해 주고받는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물질이 빛을 흡수/반사/투과시키느냐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에너지 준위 차가 빛 에너지와 같은지에 따라 결정된다. 빛 에너지가 원자 에너지 준위의 높이 차와 맞으면 원자는 빛을 흡수한다. 이를 물질과 빛이 공명(흡수공명)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빛과 물질의 준위 차가 맞지 않으면 빛은 원자에 흡수되지 않는다.

원자가 빛을 흡수하는 공명이 일어나면 원자의 굴절률 변화는 매우 커진다. 서로 다른 두 가지 빛에 흡수공명이 일어나는 원자도 있다. 이런 원자의 경우 공명이 일어나는 첫 번째 빛을 원자에 쬐면 원자의 성질이 달라져 두 번째 빛에 대한 공명 특성도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조건에서는 두 번째 공명 빛이 흡수되지 않고 투과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전자기 유도 투과(EIT, Electromagnetically Induced Transparency)’ 현상이다.

남녀가 눈이 맞아 사랑하면 나이와 국경을 초월하는 것처럼 빛과 원자가 눈이 맞았을 때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파장에 따른 물질의 굴절률이 급격하게 변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느림보 빛에 완전 정지까지 가능케 한 연구들

빛을 제어하기 위한 핵심 기술 중 하나가 위에서 설명한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이다. 1990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해리스 교수가 발견한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은 물질의 굴절 변화율이 커지면서 빛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는 원리로 작동한다. 강한 빛을 어떤 물질에 쬐면 물질의 굴절률이 변하는데, 이때 약한 세기의 ‘제어 빛’을 같은 방향으로 쪼이면 흡수되지 않고 물질을 그대로 통과하는 현상을 말한다.


▲ 느린 빛 구현에 성공한
미국 하버드대 르네 하우 박사
(출처: physis central)

그렇다면 실제로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을 이용해 빛을 느리게 만든 연구들이 있을까. 첫 성공은 1999년에 이뤄졌다. 미국 하버드대 르네 하우 박사팀이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을 이용해 파장이 780㎚인 근적외선 레이저를 매질에 통과시킴으로써 빛의 속도를 초속 17m까지 늦추는 데 성공한 것. 이 빛은 진공에서 측정한 속도보다 천만 배나 느려 과학자들은 ‘느린 빛(slow light)’이라고 불렀다.

연구팀이 빛을 느리게 만드는 데 사용한 매질은 루비듐 원자를 435nK(나노캘빈. 캘빈은 절대온도를 의미한다. 0K=-273.15℃)로 냉각시킨 냉각기체다. 도달하기 힘든 극저온 영역의 냉각기체를 사용했기에 느린 빛은 실제 산업에 응용하기 어려웠다.



▲ 르네 박사가 구현하는데 성공한 느린 빛의 모습.
실제 산업에 응용하기 어렵지만 실제 빛을 느리게 만들었다는데 엄청난 연구의 진전을 이뤄냈다.
(출처: physis central)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을 이용해 심지어 빛을 잠시 가둔 연구도 있다. 미국 IBM의 유리 브라초브 박사는 2006년 12월 22일자 네이처 포토닉스에 빛을 지연시키거나 혹은 저장하는 장치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장치는 빛이 지나가는 마이크로 크기의 실리콘 막대 옆에 반지 모양의 실리콘 공진기들이 나열되어 있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빛을 실리콘 막대로 보내면 막대를 따라 가지 않고 반지 공진기에서 빛이 여러 번 회전한다. 빛의 흐름이 지연되는 시간 동안 빛의 정보가 고리 공진기에 보관되는 것이다.

빛을 그대로 신호로 이용하면 응용 분야 무궁무진

이처럼 빛을 신호로 처리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응용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빛을 느리게 하거나 멈출 수 있는 가능성이 실현된다면 어떨까? 많은 연구진들은 기존 전기신호 대신 광신호만을 저장하고 조작할 수 있다면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측한다.

먼저 느린 빛은 광신호를 지연시키는 데 쓸 수 있다. 동시에 너무 많은 광신호를 처리해야 할 경우 광신호를 지연시킬 필요가 있다.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을 이용하면 광신호를 수 마이크로초 지연시킬 수 있다. 물론 현재의 광섬유로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광섬유가 수백만 ㎞나 필요하다. 초고속 광대역의 광스위치, 광버퍼메모리 등도 구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느린 빛이나 정지된 빛은 양자컴퓨터의 실현을 앞당긴다.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컴퓨터로 수백만 년이 걸릴 문제를 단지 수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 현재의 컴퓨터는 0과 1의 데이터를 명확하게 구분해 정보를 처리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데이터를 동시에 갖는 양자 상태로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정보통신의 새로운 혁명을 가져올 꿈의 컴퓨터라 할 수 있다.

한편 과학자들은 느린 빛과 소리의 결합에도 주목하고 있다. 전자기파와 반응하는 기존의 빠른 빛과 달리 느린 빛은 음파에 특이적으로 반응한다. 초음파와 연동하면 빛 진단 치료가 가능해진다. 현재 초음파 의술은 해상도와 대조도(對照度)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어 암 진단에 한계가 있을 뿐더러 치료 행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음파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느린 빛을 활용하면 음파가 마치 텅 빈 공간을 지나가는 것처럼 변형돼 환부만을 환히 들여다볼 수도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이뤄질 수 있다.


▲ 과학자들은 야생마처럼 다루기 어려운 빛을 가두고 느리게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여러 연구들이 빛을 보고 있다.
(출처: flicker)

빛 속도 자유자재로 바꾸는 메타물질, 빛 통제 앞당길까

전 세계 연구계가 빛의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연구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5월 15일 기초과학연구원(IBS) 김튼튼 연구위원은 메타물질과 그래핀을 접합해 빛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가 다시 빠르게 올리는 소자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는 KAIST 기계공학과 민범기 교수팀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이 빛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건 자동차의 속도를 줄일 때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비슷하다. 김튼튼 연구위원은 “자동차(빛)가 고속도로(광섬유)에서 달리던 속도로 도심(빛에서 전기신호)으로 들어왔고, 신호등(소자, 회로 등)을 통해 분배하고 통제해야 하는데, 속도가 빠르면 제어에 어려움이 생긴다”며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늦춰줘야 하는 상황처럼 빛도 느려져야 처리가 쉽다”고 설명한다.

연구팀이 빛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데 활용한 물리적 현상은 전자기 유도 투과다. 보통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은 극저온 환경과 강한 세기의 제어 빛, 그리고 복잡한 실험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따른다. 연구팀은 이를 구현하기 위해 메타물질을 설계해 소자를 만들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뚫린 고리형 구조와 막대구조의 인공 원자를 고분자 형태의 기판에 두 층으로 나눠 만들었다. 이후 고리형 구조와 막대구조 사이의 위치를 조절해 물질의 굴절률을 급격히 바꾸자 빛의 속도가 느려졌다. 25㎛에 불과한 얇은 두께의 이 소자는 상온에서도 작동하며, 강한 세기의 제어 빛이 없어도 전자기 유도 투과와 유사한 현상을 나타냈다.


▲ 연구진은 그림 (a)와 같이 서로 다른 구조의 금속 인공 원자를 설계하고 두 원자 간의 위치를 조절해 메타물질을 만들었다. 이후 연구진은 그림 (b)처럼 서로 다른 구조의 금속 인공 원자 사이의 위치를 조절해 입사광이 흡수되지 않고 투과가 되도록 하였다.
(출처 :IBS)


김 연구위원은 또 느려진 빛을 다시 빠르게 제어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그래핀을 메타물질과 이온 겔 사이에 끼워 넣고 전압을 걸자 물질의 굴절률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래핀은 탄소원자 1개의 두께로 이뤄진 벌집 모양의 소재다. 그래핀에 걸어주는 전압의 세기가 커질수록 급격히 변했던 물질의 굴절률이 완만해지고, 빛의 속도는 다시 빨라졌다. 메타물질로 빛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가 느려진 빛을 그래핀으로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된 셈이다.




▲ 개발한 소자를 들고 있는 김튼튼 연구위원.
소자는 이온겔, 그래핀, 금속 전자기 유도 투과 메타물질, 고분자 기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핀에 전압을 걸어주지 않을 경우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이 발생한다.
(출처: IBS)

이번 연구는 빛의 속도를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연구팀이 구현한 소자는 테라파(테라헤르츠 대역의 주파수를 갖는 빛)를 이용하도록 만들어졌다. 테라파는 이미징이나 분광 기술뿐 아니라 차세대 광통신 소자 개발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최근 몇 년간, 과학자들은 빛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전 세계 여러 연구실에서는 빛의 속도를 늦추거나 정지시키며 빛과 물질 사이의 경계를 조심스럽게 탐색하고 있다. 빛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존재이면서, 여전히 가장 신비로운 존재이고 세상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진정한 문을 열어 줄 빛 입자의 춘추전국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지켜보자.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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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팀 : 백서윤   042-878-8238
최종수정일 2019-01-30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