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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Conferences

오용근과 후카야의
1994년 케임브리지에서의 만남

수학자 오용근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에게 전화를 하면서 약간 긴장했다. 낯선 분야인 수학을 수학자로부터 들으면 이해할 수 있을까해서다. 2월 22일 통화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오 단장은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서울에 있는 나는 포항행 열차를 타는 대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용근 단장과 통화한 건 그가 지난해 11월 책 한 권을 냈기 때문이다. 책 이름은 ‘쿠라니시 구조와 가상 기초 체인’(Kuranishi Structures and Virtual Fundamental Chains). 책 제목에 들어있는 용어가 낯설다. 영어로 된 책이고, 스프링거 출판사가 냈다. 스프링거 출판사는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발행하는 곳이다.

책의 저자가 네 명. 오 단장 말고 다른 세 사람은 일본인 수학자다. 후카야 겐지((深谷賢治 미국 사이먼 기하학-물리학 연구 센터와 뉴욕 스토니브룩 주립대학) 교수와 오타 히로시(일본 나고야대학) 교수, 오노 가오루(교토 대학) 교수다. 수학 이야기보다 인간적인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었다. 일본 수학자들과의 협업 배경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쿠라시니 구조와 가상 기초 체인』
『쿠라시니 구조와 가상 기초 체인』

오용근 단장은 1994년 가을 한 학기 동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새로 생긴 아이작 뉴턴 수리과학 연구소(The Isaac Newton Institute for Mathematical Sciences)에서 초청연구원으로 머물렀다. 그는 당시 미국 위스콘신 대학 수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었고, ‘사교(斜交)기하학’(symplectic geometry) 연구에 몰입하고 있었다.

오 단장은 “1991년부터 나는 사교기하학의 어떤 연구를 하고 있었다. 당시 그 연구를 하는 사람이 거의 나밖에 없었다. 수년 간 혼자 연구했기에 외로웠다. 그리고 나는 벼랑 끝에 선 느낌으로 케임브리지에 갔다. 연구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케임브리지에서 가진 시간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6월에 뉴턴연구소에 도착하고 한달이 되기 전에 결과물이 나왔다. 오 단장에 따르면 이 논문은 라그랑지안 플로어 이론(Lagrangian Floer homology)과 그 이론의 사교 기하학에의 적용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뉴턴 연구소에서 국제 학회가 하나 열렸다. 사교기하학자들이 모였다. 학회 도중 휴게실(Common Room)에서 오 단장은 잠시 동료 수학자들 대여섯 명과 얘기하며 쉬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오 단장이 서울대 수학과(1979년 학번)를 졸업하고 박사공부(1983-1988년)를 했던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학 수학과의 지도교수(앨런 와인스타인 Alan Weinstein)도 있었다.
그때 도쿄대학에 있다며 후카야 겐지 교수가 다가와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했다. 오용근 단장이 “I am Yong-Geun Oh”라고 했더니, 후카야 교수가 반색을 했다. 후카야는 오 단장에게 “당신 논문을 많이 읽었다. 얘기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후카야 겐지 교수. (출처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후카야 겐지 교수. (출처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오 단장에 따르면 후카야는 케임브리지에서 오기 전에 여러 가지 기하학을 하다가, 사교기하학에 막 입문했다. 오 단장은 “후카야는 원래 리만기하학을 했고, 게이지이론(양-밀스이론)도 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미하일 그로모프라는 수학자가 유사정칙곡선(pseudoholomorphic curve)라는 수학적 도구를 도입하면서 사교기하학에 혁명적인 발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후카야는 사교기하학에 관심을 가졌고 그게 케임브리지에 오기 2년 전부터였다”라고 말했다.

오용근 단장은 후카야 교수를 만나서 기뻤다. 그는 “나 말고도 사교기하학의 그 분야를 공부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았다. ‘라그랑지안 플로 호몰로지’를 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라그랑지안 플로 호몰로지가 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오 단장 이해를 위해 지금 꼭 알아야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후카야 교수는 “라그랑지안 플로 호몰로지를 연구하는데, 해석학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당신은 혹시 이런 걸 생각해 봤느냐”라고 물어왔다. 얘기를 듣고 보니, 오 단장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문제였다. 오 단장은 다른 이유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했고 정확히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당시 후카야 교수는 한달 일정으로 뉴턴연구소에 머물렀다. 두 사람은 케임브리지에서 계속 만나면서 사교기하학에 대해 대화했다. 이때부터 오용근 단장과 후카야 교수의 협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두 사람의 첫 공동논문은 그때 후카야 교수가 첫 만남에서 꺼낸 문제를 푼 것으로, 1997년 수학학술지인 ‘아시아 수학 저널’(Asian Journal of Mathmatics) 창간호에 보고했다.

‘쿠라니시 구조와 가상 기초 체인’의 저자 네 명 중 후카야 교수가 가장 나이가 많다. 오 단장에 따르면 후카야 교수가 오 단장보다 두 살이 많다. 다른 두 사람, 그러니까 오타 히로시 교수와 오노 가오루 교수는 후카야 교수의 도쿄대학 수학과 후배들이고, 오 단장보다 연배가 한 두 살 정도 적다.

사교기하학이 무엇인가?

오용근 단장에게 ‘사교기하학’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제부터는 수학 이야기를 들은 시간이다. 오 단장은 “사교기하학의 근원은 고전역학에 기원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해줬다. “아이작 뉴턴이 시작한 고전역학, 즉 뉴턴역학은 거시세계를 기술한다. 양자역학은 소립자 세계를 기술한다. 뉴턴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20세기 초에) 넘어갔는데, 갑자기 뚱딴지 같이 넘어간 게 아니다. 그 중간에 해밀턴 역학(1833년)이라고 있다. 해밀턴 역학이 등장한 건 뉴턴 역학이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뉴턴역학은 19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그런데 계산하고 역학적인 문제를 풀다가 한계에 부딪혔다. 그렇게 되자 수학자는 뉴턴역학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뉴턴 역학을 재구성하게 되었다(그 시기에는 수학자와 물리학자의 구분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상화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이게 수학이다. 뉴턴 역학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기하학적인 구조가 들어오게 된다. 이게 해밀턴 역학이다. 해밀턴역학으로 만드는 기하학적인 작업이 있었기에, 고전역학이 양자역학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 넘어가는 과정을 양자화(quantization)라고 하며, 이게 사교기하학의 시작이다.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총괄하는 기하학이 사교기하학이다. 다시 말하면 사교기하학은 해밀턴 역학의 배경에 있는 기하학이고, 그 기하학적인 구조를 연구하는 분야가 사교기하학이다.”

오 단장이 사교기하학이 무엇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수학사를 배경 지식으로 들려주니 흥미롭다. 사교기하학의 히스토리를 오용근 단장으로부터 계속 들었다.

오 단장은 사교기하학을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박사공부를 할 때(1983-1988년) 접했다. 그의 지도교수인 앨런 와인스타인 교수가 사교기하학자다. 그런데 오용근 박사과정학생이 버클리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2년차이던 해인 1985년 러시아 수학자 미하일 그로모프(2009년 아벨상 수상)가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

(왼쪽) 오용근 단장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앨런 와인스타인 버클리대 교수 / (가운데) 러시아 수학자 미하일 그로모프 / (오른쪽) 러시아 수학자 블라디미르 아놀드
(왼쪽) 오용근 단장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앨런 와인스타인 버클리대 교수 / (가운데) 러시아 수학자 미하일 그로모프 / (오른쪽) 러시아 수학자 블라디미르 아놀드

“유사정칙곡선 관련 그로모프의 논문 프리프린트(preprint)가 1983년에 나왔고, 프리프린트가 학술지에 실린 건 1985년이다. 양자역학에는 불확정성 원리라는 기본 원리가 있다. 가령,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두 개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측정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고전역학에도 불확정성원리와 같은 게 없나 궁금했는데, 그로모프의 ‘유사정칙곡선’은 불확정성 원리의 고전역학적인 근원에 해당하는 걸 설명할 수 있다는 걸 보였다.”

오용근 단장에 따르면, 그로모프의 1980년대 중반 논문은 블라디미르 아놀드(Vladimir Arnold, 1937-2010년)와 그로모프(Michael Gromov, 1943년 생)가 1960년대 초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들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고전역학이 양자역학으로 ‘양자화’했는데, 양자역학에는 ‘불확정성원리’이라는 기본 원리가 있다. 그렇다면 고전역학에도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와 비슷한 원리가 있지 않을까? 오 단장은 “그게 수학이다. 그 질문에 해당하는 ‘명제’를 만들어야 한다. 아놀드와 그로모프가 조임 불가능성 추측’(Non-squeezing conjecture)라는 명제를 구성했다. 그리고 물었다. 이 명제는 참인가? 이게 1960년대 상황이다. 그런데 이후 20년 동안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보여주는 수학적 도구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오 단장에게 명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입자의 위치 정보와 운동량 정보 둘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게 불확정성 원리다. 정량적으로 설명하면, 그 위치측정의 오차와 운동량 측정량 오차를 곱하면 플랑크 상수라는 값보다 커야한다는 것이다. 길이와 위치를 곱한 게 어떤 면에서는 면적이 된다. 즉 불확정성원리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면적보다 크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명제가 된다. 달리 말하면 사교 구조(symplectic structure)의 구조로 측정되는 면적이 뭐 보다 크다는 명제다. 사교 기하학의 핵심적인 구조는 ‘사교 구조’다. 사교기하학은 사교다양체(symplectic manifold)의 기하학이고, 달리 말하면 사교구조가 있는 다양체 위에서의 기하학이다. 리만 기하학에서 ‘길이’가 핵심 단위라면 사교기하학에서는 ‘면적’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로모프는 ‘명제’, 즉 ‘조임 불가능성 정리’(Non-squeezing theorem)를 만들어놓고 20년간 풀지 못하다가 1985년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을 내놓았다. 그 답을 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수학적 도구가 앞에서 언급한 ‘유사정칙곡선’이다. 그리고 2~3년 뒤 독일 수학자 안드레아스 플로어(Andreas Floer)가 나중에 ‘라그랑지안 플로어 호몰로지’라고 불리는 걸 만들어냈다. 오 단장은 “그로모프가 도입한 유사정칙곡선은 해석학, 기하학적인 도구인데, 그걸 해밀턴역학과 결부시킨 게 플로어의 라그랑지안 플로어 호몰로지다. 그로프모의 유사정칙곡선이라는 도구의 발견과, 그걸 가져와 해밀턴역학을 연구하게 됨으로써 전체 사교기하학이 새로워졌다. 사교기하학의 풍경이 1980년대 중반에 완전히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독일 수학자 안드레아스 플로어
독일 수학자 안드레아스 플로어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니, 사교기하학자는 그걸로 할 수 있는 문제들을 풀어냈다. 유사정칙곡선을 갖고 사교기하학자들이 10년 전까지 많은 문제를 풀었다. 그런데 그게 다시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벽을 만났다는 징조는 사실 2000년대 초부터 보였다.

오 단장은 “사교기하학이 어려운 이유는 분야가 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사교기하학이 시작한 건 1980년대 중반이다. 물론 그 전의 사교 기하학은 오래 됐다. 고전역학에서 비롯됐으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모프가 유사정칙곡선을 도입한 이후에는 사교기하학이 해석학적이 되고, 매우 복잡한 구조가 등장하기 때문에, 복잡한 구조를 잘 재구성해서 표현한 언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는 “어떤 현상은 있는데, 그 현상을 말로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언어를 만들어야 했다”라며 “작년에 낸 책 ‘쿠라니시 구조’는 그런 작업을 한 것이다. 유사정칙곡선이라는 해석학적인 도구의 세밀한 구조를 잘 정돈해서 남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언어로 기술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오용근 단장의 연구

오용근 단장 개인은 뭘 연구한 것일까? 오 단장은 “강연을 해도 그로모프의 유사정칙곡선에서부터 설명하다보면 내가 막상하고 싶은 이야기는 잘 못하고 끝난다”라고 웃었다. 그의 연구는 안드레아스 플로어가 개발한 ‘라그랑지안 플로어 호몰로지’에 주목하면서 시작했다. 플로어와는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오 단장이 버클리 대학 수학과 대학원에 들어가서 보니, 플로어가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플로어는 이후 ‘라그랑지안 플로어 호몰로지’를 개발했으며, 이를 갖고 ‘아놀드 추측(Arnold conjecture)’이라는 오래된 명제를 일부 풀어냈다. 앞에서 그로모프라는 러시아 수학자가 1985년에 개발한 ‘유사정칙곡선’이라는 도구를, 플로어가 해밀턴역학과 결부시켜서 풀어낸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이게 바로 ‘아놀드 추론’이다. 아놀드 추측은 러시아 수학자 아놀드가 1960년대에 내놓은 바 있다.

오용근 단장은 “라그랑지안 플로어 호몰로지는 아놀드의 추측이라는 문제 하나를 풀고 끝날 도구가 아니라는 믿음을 당시 나는 갖고 있었다. 플로어 호몰로지를 열심히 습득한다면 플로어 호몰로지를 사교기하학의 중요한 도구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라고 말했다. 오 단장의 플로어 호몰로지 연구는 1988년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던, 버클리 산 위에 있는 수학연구소(MSRI, Mathematical Sciences Research Institute)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1992년 위스콘신 대학 교수가 되었고, 1994년 대서양을 건너 영국 케임브리지로 가, 앞서 이야기한 라그랑지안 이론 발전의 기폭제가 된 논문을 완성하였고 일본 도쿄대학에 있던 후카야 교수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후카야 교수는 당시 도쿄대학 교수였고, 오용근 위스콘신 대학 교수를 만났을 때는 ‘A-infinity-category’ 구조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구조는 후카야 교수가 만들었고, 지금은 ‘후카야 카테고리’라고 불린다. 오용근 단장이 연구하던 분야는 ‘라그랑지안 플로어 호몰로지 이론’인데, 후카야 교수는 ‘라그랑지안 플로어 호몰로지 구조’에 ‘후카야 카테고리’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아냈다. 이 때가 1992년이었다. 오 교수는 “후카야는 후카야 카테고리를 갖고 그걸 해석학적으로 발현시켜야 하는데, 라그랑지안 플로어 호몰로지에 실제로 후카야 카테고리가 있다는 걸 증명하려면 해석학적인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그 일을 하다가 그는 난관에 부딪혔고, 그 난관을 풀 방법을 케임브리지 뉴턴연구소에서 나를 만났을 때 물어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카야 교수는 도쿄대학에서 일하다가 1994년 쿄토대학 정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지난 2013년부터는 미국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에 있는 사이먼스 기하학-물리학 센터 교수로 일하고 있다. 오 단장은 “후카야 카테고리가 사교기하학에 현재 정확하게 필요한 대수적인 언어이다. 이 대수적인 언어를 갖고 지금의 사교기하학과, 사교위상수학이 기술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관문 하나를 또 지나야했다. 대수적인 구조인 후카야 카테고리를, 그로모프의 유사정칙곡선이라는 해석학적인 도구와 접목을 시키는 작업이다. 이걸 시작한 건 안드레아스 플로어이고, 그 작업을 훨씬 더 많이 해서 내놓은 게 후카야-오용근-오타-오노의 책 ‘쿠라니시 구조와 가상 기초 체인’이다.

네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96년 이탈리아 국경에서 가까운 스위스 도시 아스코나이다. 그곳에서 사교기하학의 굉장히 중요한 학회가 1주일간 열렸고, 이번 책의 저자 네 사람이 모두 모였다. 오노 가오루 교수는 사교기하학자이어서, 원래 오용근 교수가 잘 알고 있었다. 오노 교수는 도쿄대학에서 사교기하학으로 박사 논문을 썼고, 나중에 후카야가 사교기하학 연구를 시작할 때 사교기하학을 그에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타 히로시 교수는 아스코나 학회에서 처음 만났다. 네 사람은 그로모프가 만든 유사정칙곡선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각각의 직장으로 흩어졌다. 이때쯤에는 이메일이 보급되었고, 네 사람은 이메일로 협업을 시작했다.

‘쿠라니시 구조’ 책의 뒤쪽에는 참고문헌(reference)이 나온다.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FOOO’로 시작하는 문건이 23건 나온다. FOOO는 이 책 저자 네 사람의 영어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다. 네 사람이 공동연구로 내놓은 논문 등이 23건이나 된다는 건 이들의 긴밀한 협업을 보여준다. 이들은 이번 책에 앞서 다른 책 ‘라그랑지안 플로어 호몰로지 1,2’를 2009년에 낸 바 있다. 그 책은 미국수학회가 한 출판사와 공동으로 내놓았다.

쿠라니시 구조는?

쿠라니시 구조가 뭐라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오용근 단장으로부터 이래저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책 이름속의 또 다른 단어 ‘가상 기초 체인’은 무엇인가? 시간이 한 시간 가까이 지났으나, 오용근 단장의 인내심이 아직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가상 기초 체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할 용기를 냈다.

오 단장이 수학자 그로모프가 찾은 ‘유사정칙곡선’과 미국 이론물리학자 에드위드 위튼의 ‘끈이론’ 연구가 접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걸 ‘그로모프-위튼 불변량’(Gromov–Witten invariant)이라고 한다. 오 단장 설명을 계속 따라 가본다. “그로모프는 유사정칙곡선을 순전히 수학적인 관점에서 1983년에 발견했다. 그런데 미국 고등연구원(뉴저지주 프린스턴 소재)에 있는 잘 나가는 끈이론 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은 ‘비선형 시그마 모델’(nonlinear sigma model)이라는 물리시스템을 연구했다. 1990년대에 보니, 그로모프가 다루는 곡선과, 위튼이 비선형 시그마 모델에서 다루는 구조가 수학적으로 동일했다. 그걸 알게 된 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 하면, 수학과 물리학 양쪽에 혁명적인 발전을 갖고 왔다. 수학자 입장에서는 생각할 게 많아졌다. 물리학자는 방정식을 만들어 해를 구하고 그 해가 현상을 설명하면 만족한다. 수학자는 그렇지 않다. 그걸 끝까지 파헤쳐 모든 걸 알아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방정식 해의 전체집합이 어떤 구조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게 수학자다. 그리고 1990년대에 그런 일이 사교기하학에서 일어났다. 사교기하학이 물리학의 끈이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사교기하학의 유사정칙곡선의 수를 세는 걸 요즘은 ‘그로모프-위튼 불변량’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가상 기초체인’이 무엇인지 하는 설명은 아직 못 들었다. 오 단장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불변량을 세는 걸 일반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가 ‘가상 기초 체인’”이라며 설명을 계속 했다. “일반적으로 뭘 세려면 그 구조를 엄밀하게 정의해야 한다. 그런데 그로모프-위튼 불변량을 일반적인 사교다양체 위에서 엄밀하게 정의하려면 굉장히 복잡한 구조가 필요하다. 그 복잡한 구조가 ‘가상기초체인’이다. 그리고 쿠라니시구조는 ‘가상기초체인’이라는 구조를 정의하는 게 가능하게 하는 그 어떤 기하학 해석학적인 구조다.”

오용근 단장으로부터 수학 이야기는 넘치도록 들은 것 같다. 그는 지치지 않았다. 오 단장이 이끄는 IBS 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 자랑을 마지막으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는 위상수학 이야기를 했다.

“위상수학 예를 들면, 위상수학자가 1930년대에는 위상수학의 문제들을 각개전투식으로 풀었다. 이 문제는 이 방법으로, 저 문제는 저 방법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한계에 부딪혔다.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수학자는 이런 상황을 만나면 분야를 다시 돌아보고 전체적으로 분야를 기술할 수 있는 언어를 발전시키는 단계로 간다. 위상수학자가 그래서 찾아낸 언어가 대수위상수학이다. 대수위상수학이 1950년대에 발전했다. 위상수학에서 대수적인 언어가 호몰로지 이론이다. 호몰로지 이론이 1950년대에 개발되니, 위상수학의 종전에는 다르게 보이던 문제들이 연결되어 보였다. 이 새로운 언어의 발달로 인하여 1960년대 위상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하는)필즈 메달을 위상수학자들이 휩쓸었다. 위상수학에서 1950년대 이후 일어난 일이 지금 사교기하학과 사교위상수학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로모프가 사교기하학의 도구를 발견했고, 그 도구를 갖고 사교기하학의 문제를 수학자들이 열심히 풀다가 벽에 부딪혔다. 난관을 돌파할 언어 개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후카야 교수가 1992년에 발견한 ‘후카야 카테고리’라는 언어가 지금 와서 보니 정확히 그런 언어였다. 그러나 그 언어는 완전히 개발된 게 아니고, 지금도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IBS 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은 2012년에 출발했다. 연구단 시작부터 목표 중 하나가 그런 언어를 개발하고 그걸 사교위상수학에 적용하게 하자는 것이다. 작년에 낸 책이 그것의 중요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우리 연구단 연구원의 절반 이상은 사교기하학과 사교위상수학을 연구하고 있다.”

오 단장은 “그리고 자랑을 하면, 연구단 출신 연구원은 한국의 위상수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수학자이며, 이곳저곳에 많이 진출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수학자 이름을 몇 명 얘기해줬다. 배영진 인천대 교수, 안병희 경북대 교수가 그 중의 일부라고 했다. 감동 있는 취재였다. 전화 통화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통화가 끝나고 나서 핸드폰을 보니 1시간 23분이 지나 있었다. 끝.

오용근 IBS 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장
오용근 IBS 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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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