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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동반자, 다양한 실험모델

“초파리에게 고맙다.”
마이클 로스배시 교수(미국 브랜다이스대)는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소식을 전해 듣고 가장 먼저 “초파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가 고작 오래된 과일에나 꼬이는 자그마한 초파리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 일상에서 초파리는 귀찮고 하찮은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과학자들에게는 과학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일등 공신이나 다름 없다.

로스배시 교수는 밤낮에 따라 인체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생체주기를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연구에 쓰인 실험동물이 초파리였다. 로스배시 교수가 초파리에게 고마움을 표한 이유도 생체주기 연구에 초파리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사용된 실험동물은 287만 마리에 달한다. 대전시 인구(150만명)의 약 2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정부에 신고 되지 않은 실험동물까지 합하면 그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을 것으로 보인다.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쥐뿐 아니라 예쁜꼬마선충, 애기장대, 제브라피시, 초파리, 원숭이 등도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다양한 연구에서 실험모델이 사용되는 이유는 인간을 대상으로 모든 실험을 감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 혹은 새로운 치료기법을 적용하는 임상시험, 위험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실험 등은 동물 실험이 선행되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 동식물들을 찾기 시작했고 동반자인 실험모델들을 만났다. 인간과 비슷한 유전정보를 공유하면서도 생애주기가 짧아 연구에 용이하고 상대적으로 비용도 적게 드는 실험 모델들을 찾은 것이다.

식물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애기장대


▲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은 애기장대로 식물의 삶과 생애 주기를 연구한다. 사진은 꽃잎과 꽃받침이 떨어진 애기장대.
(출처: IBS)

식물의 생애주기 연구에 주로 사용되는 실험모델은 애기장대다. 애기장대는 장점이 많다. 생장 주기가 4~6주로 매우 짧아 다른 식물에 비해 연구 진행 속도가 빠르다. 또한 자화수분(한 꽃 안의 수술에서 꽃가루를 받아서 암술에 수정시키는 것)이 가능해 곤충이나 바람 같은 수분 매개자가 없어도 온실에서 키울 수도 있다.

애기장대의 활용분야는 노화나 식물 연구 등 다양하다.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은 2017년 12월 애기장대로 식물의 노화과정을 조절하는 활성산소 발생 메커니즘을밝혀 국제학술지 <셀 리포트(Cell reports)>에 보고혔다. 활성산소의 양이 늘어나면 식물의 단백질 기능 저하가 유발되거나 노화를 일으키거나 세포가 죽는데 이 과정을 애기장대로 관찰해 원인을 파악한 것이다. 연구진은 애기장대 잎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포막 단백질인 RPK1유전자 발현이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을 이끄는 남홍길 단장은 식물의 생애주기를 연구하는 세계적 연구자로 2009년 애기장대에서 식물의 노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아 ‘오래살아’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연구단은 애기장대를 이용해 식물의 생존 전략과 후세대에 유전자를 잘 전달하는 전략, 노화 연구 등에 집중해 연구를 수행 중이다.

애기장대는 작물의 유전자 교정실험에도 이용되고 있다.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은 DNA를 사용하지 않고 유전자가위(CRISPR Cas9 or CRISPR Cpf1) 식물의 유전자를 교정하는데 성공했다. 일반 작물에 적용하기 전, 대표 식물모델인 애기장대에 유전자가위를 적용해 식물의 유전자가 교정되는지를 살펴본 연구였다. 애기장대 외에도 다양한 식물들이 연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야생 담배, 페츄니아, 해바라기 등도 식물과 곤충과의 관계, 꽃가루와 꽃향기, 식물과 일조량 등을 연구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 식물팀이 키우고 있는 애기장대
(출처: IBS)

작지만 활용도 만점, 예쁜꼬마선충

전체 길이 1mm의 작은 선충도 유전체 연구에 쓰인다. 흙속에서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예쁜꼬마선충(C.elegance)은 몸이 투명해 살아있는 상태에서도 체내 변화를 관찰하기 쉽다. 냉동보관이 가능해 장기간 보관할 수 있어 실험에 용이하다. 사람과 유전정보의 특성이 닮아 노화, 발생, 신경질환 등을 연구하기 위한 모델동물로 많이 활용된다. 몸집은 작지만 활용도 만점의 실험모델이다.


▲ 예쁜꼬마선충의 움직임, 예쁜꼬마선충의 영문명은 우아하다는 표헌을 포함한 C.elegance다.
(출처: IBS)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은 예쁜꼬마선충으로 노화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2015년 7월, 연구진은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 RNA이중나선 분리효소인 HEL-1이 생명체의 수명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예쁜꼬마선충에서 HEL-1을 과다발현시키면 수명이 최대 18% 증가하고, HEL-1 단백질 기능을 저해시키면 수명이 39%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말 그대로 HEL-1만 조절하면 수명을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단은 같은해 11월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을 예측하는 지표를 개발하기도 했다. 예쁜꼬마선충이 성체가 된 뒤, 6일이 지나면 예외 없이 순간 최고 운동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관찰해 건강수명을 측정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되었다. 수명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부각되고 있는 요즘, 예쁜꼬마선충에서 얻은 건강수명의 개념이 인류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연구가 궁금하다.


▲ 연구진은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의 하체운동능력의 최고치를 수치화해 개체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SPPB 테스트 방식을 응용해 예쁜꼬마선충의 운동능력 측정법을 개발했다. 운동능력 측정 배지에서 선충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선충의 운동능력을 계산한 뒤 운동속도 최고치(Maximum velocity, MV)를 측정한다. MV는 개체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지표다.
(출처: IBS)

유전학 발달의 1등 공신, 초파리


▲ 초파리는 유전공학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빨간 눈과 빛나는 날개로 표현된 초파리 일러스트
(출처: The Wonderful fruit fly)

초파리는 유전학의 발달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전학 연구에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초파리는 크기가 2~3mm로 좁쌀만큼 작지만 유전자가 사람의 절반가량인 약 1만3000개에 이른다. 게놈도 완전히 해독되었으며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의 경우, 인간 유전자와 약 75%가 비슷하다. 암이나 비만 등 다양한 유전형질을 가진 초파리를 쉽게 만들 수 있어 인간의 질병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런 이점 때문일까. 다양한 초파리를 원하는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의 요구에 초파리 은행도 설립되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블루밍턴 인디애나대학의 초파리 은행이다. 이 외에도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대만 등에도 다양한 초파리를 자랑하는 은행이 들어서 있다.

관상용 보단 실험용, 실험실에 사는 제브라피시

초파리나 예쁜꼬마선충 등이 실험에 널리 사용되지만 갖고 있지 않은 하나가 있다. 바로 척추다. 앞선 실험모델가 가진 한계를 보완하는 새로운 모델이 등장했다. 푸른색과 흰색 줄무늬를 가진 물고기, 제브라피시다. 제브라피시는 척추가 있으면서 인간과 유전자 구성이 비교적 비슷해 실험동물로 각광받고 있다.

제브라피시가 동물실험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으로 비교적 최근이다. 역사가 짧지만 전세계 수많은 연구자들이 제브파리시를 실험에 활용하고 있다. 제브라피시의 유전자 염기서열은 인간과 75% 정도 일치하며 유전자 수도 2만 5천 여개로 사람의 2만여 개보다 많아 복잡한 연구에 적합하다. 몸체가 투명해서 수정란 초기발생 과정을 관찰하기도 쉽다. 관찰을 위해 굳이 제브라피시를 죽여 샘플 형태로 가공하지 않아도 실험과 관찰이 동시에 가능하다. 체외수정하면서 일주일에 약 100개 이상의 알을 낳아 번식이 빠르다. 무엇보다 생쥐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실과 비교할 경우, 유지비용이 10분의 1에 못 미칠 만큼 저렴해 실험동물로 이용하기에 매우 장점이 많다.


▲ 생의학 연구에 매우 중요한 실험모델로 부상한 제브라피시는 척추를 갖고 있다. 사진은 수정 후 36시간 된 치어(왼쪽),
수정 후 48시간 된 치어(오른쪽)를 촬영한 것이다. 배아가 투명해 기관 발달 및 질병 발병 메커니즘을 관찰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출처: IBS)

제브라피시 외에도 최근 킬리피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킬리피시는 아프리카에서 우기에 내린 비로 생기는 물웅덩이에서 사는 물고기로 생태적 특성이 흥미롭다. 눈에 띄지도 않던 킬리피시의 작은 알은 물웅덩이에서 부화해 몸길이 6cm의 물고기로 자란다. 킬리피시는 부화한지 2개월이 지나면 노화가 시작되고, 노화 과정도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다. 과학자들은 이런 킬리피시의 특성에 주목해 인간의 노화과정을 연구하고자 노력 중이다.

이 구역의 대표 실험동물은 바로 생쥐

흔히 생명분야 실험실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상들이 있다. 흰 가운, 스포이드, 각종 약병, 실험용 파란장갑 그리고 생쥐다. 국내 실험동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생쥐다. 포유류인 생쥐는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개체를 키울 수 있다. 원숭이 등 영장류는 번식에 수년이 걸리지만 쥐는 1~3년이면 세대교체가 가능해 번식과정이 포함된 실험을 진행하기 용이하다. 특히 쥐는 질병 연구에 다양하게 이용된다. 암에 걸린 쥐, 고혈압이나 당뇨를 앓는 쥐, 비만 쥐 등 다양한 질병모델로도 개발되고 있다. 질병모델 쥐는 약물의 안정성이나 독성 평가에도 활용된다. 행동방식 연구에도 쥐가 주로 사용된다.

지난해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쥐를 대상으로 실험해 설치류에서 최초로 사회적 행동을 관찰해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생쥐도 질서를 만들고 이를 지키면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사회규칙을 만든다는 내용으로 연구진은 연구진은 생쥐들이 쾌감을 얻기 위해 보상구역에 몰려 다니면 오히려 정해진 시간 내 쾌감자극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을 인지하고, 두 곳의 보상구역을 서로 나누어 맡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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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95% 비슷한 실험동물, 영장류

침팬지나 원숭이 등으로 대표되는 영장류는 인간과 유전자가 95% 이상 같은 실험동물이다. 따라서 영장류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는 비교적 인간에게 적용할 때 설치류나 어류에 비해 위험이 낮다고 판단된다. 과거 설치류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던 사례가 잦았다. 그 중 임산부의 입덧 방지용 약으로 인기를 끌었던 ‘탈리도 마이드’를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설치류에서는 부작용이 없어 약국에서 판매가 허용되었지만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산부에게서 팔 다리가 짧거나 아예 없이 아기가 태어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동반되었다. 인간과 설치류의 유전적 차이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이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신약이나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면,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단계가 동반되어야 한다. 체내에 작용하는 약물의 경우, 영장류 대상 실험이 필요하다.

IBS 나노입자 연구단은 MRI 촬영에 사용되는 조영제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2011년 연구진은 현재 널리 쓰이는 조영물질인 가돌리늄을 대신해 산화철 나노입자를 차세대 조영제 후보물질로 제시했다. 산화철은 촬영부위를 어둡게 만드는 음성 조영제로, 사용 시 주변 조직과 혼동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연구진은 음성 조영제로 사용되던 7nm(나노미터, 10억분의 1미터)의 산화철 나노입자가 3nm로 작아질 경우 자성이 약해져 양성 조영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산화철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연구성과를 보고했다. 그리고 최근 균일한 2nm 직경의 산화철 나노입자 기반의 양성 조영제를 대량 합성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을 고안했다. 양성 조영제를 원숭이, 개 등 영장류를 대상으로 적용해 안전성을 실험한 결과, 뇌졸중 등 뇌질환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연구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에 실렸다.


▲ 산화철 나노입자 조영제를 이용해 동물의 혈관을 조영한 사진.
a와 b는 개의 전신 혈관, c는 개의 상반신 혈관, d는 원숭이의 상반신 혈관 조영 사진이다.
(출처: IBS)

그러나 영장류는 인간과 너무 비슷하다는 점에서 윤리적 딜레마에 갇히기도 한다. 지능이 높고 감정표현이 풍부한 동물인 영장류를 무분별하게 실험대상으로 삼을 경우, 윤리적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2015년부터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를 동물실험 대상에서 금지시켰다. 최근 <사이언스(Science)> 지에서는 행복한 실험동물이 더 좋은 연구결과를 나타내는지 살펴봤다. 연구결과를 위해서라도 사육 환경이 변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과학은 실험동물과 함께 진화의 길을 걸었다. 과학자들이 연구의 길을 걸을 때, 함께 걷는 반려의 존재들이 실험모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 실험실에서 다양한 실험들이 이뤄지고 있다. 온실에선 혹독한 환경에서 싹을 틔우기 위해 각종 식물의 씨앗들이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고, 투명한 배지 위에서는 예쁜꼬마선충의 움직임이 기록되고 있으며 투명한 배아의 제브라피시는 형광 단백질이 부착된 채 자라고 있다. 철저하게 통제된 환경 속, 케이지 안 톱밥과 동고동락하는 생쥐도 있으며 MRI 실험을 위해 거대한 자석 안으로 들어가는 원숭이도 있다. 실험모델은 과학자들의 반려존재로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영향을 끼쳐 왔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 이면에 수많은 실험모델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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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