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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유전학, 빛으로 뇌의 비밀 풀고 새로운 치료법 찾는다

“빛과 색은 그동안 뇌 속 신경세포(뉴런)들의 활동을 기록하는 데 사용돼 왔지만, 최근 기술 발전으로 빛을 뇌 조직 속의 더 깊은 곳까지 전달할 수 있게 돼, 뇌 질환 치료법 향상의 길을 열게 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6월 '2016년 10대 유망 기술' 중 하나로 광유전학을 꼽으며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광유전학은 빛을 이용해 살아있는 생물 조직의 세포를 제어하고 연구하는 분야로, 핵심기술이 실험적으로 구현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자율주행 자동차(무인 자동차), 개방형 인공지능 생태계, 나노 사물인터넷(IoT) 등과 나란히 올해 10대 유망 기술로 선정됐다.

녹조류 감광단백질 활용, 빛으로 세포를 탐구‧제어하는 새로운 학문


▲ 빛으로 특정 단백질을 가둬서 기능을 차단할 수 있는 '광유도 분자올가미' - IBS 제공

'광유전학(optogenetics)'은 글자 그대로 '빛(opto)'과 '유전학(genetics)'을 결합한 분야다. 기술적으로는 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해 목표 세포에 빛 감지 센서를 붙여 빛으로 세포를 제어하는 것이다. 그동안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는 데 활용돼온 전기 자극과 약물은 목표 세포뿐 아니라 주위의 다른 세포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빛을 이용하는 광유전학 기술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원하는 신경세포만을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됐다.

광유전학을 가능케 한 '빛 감지 센서'인 감광단백질은 '클라미도모나스(Chlamydomonas)'라는 녹조류에서 발견됐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의 게오르크 니겔 교수팀이 빛을 향해 움직이는 단세포 녹조류인 클라미도모나스에서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 '채널로돕신(Channelrhodopsin)을 발견해 관련 논문을 2002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빛을 쬐어주면 클라미도모나스에 전류가 흐르는데, 여러 실험 결과 채널로돕신이란 단백질이 청색 빛을 받으면 전류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채널로돕신을 동물 신경세포에 처음 적용한 사람은 미국 스탠퍼드대의 칼 다이서로스 교수였다. 2005년 다이서로스 교수팀은 채널로돕신을 생쥐의 신경세포에 이식하고 빛을 쪼여 흥분시키는 데 성공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후, 광유전학 기술을 실제 생물에 적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예쁜꼬마선충 조종부터 생쥐 뇌 기억 조작까지

초파리, 꼬마선충 연구에 머물던 광유전학은 2007년 미국 듀크대의 조지 어거스틴 교수가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가진 생쥐를 만들어내면서 뇌 연구에도 본격적으로 적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도네가와 스스무 교수팀의 연구성과다. 도네가와 교수팀은 2013년 빛을 이용해 생쥐 뇌 해마를 자극해 나쁜 기억(전기자극 트라우마)을 떠올리게 만드는 데 성공해 '사이언스'에 발표했고, 2014년에는 생쥐에게 전기자극 트라우마와 빛 자극을 연결짓게 만든(조건화한) 후, 다시 좋은 경험과 빛 자극을 조건화해 트라우마를 잊게 만드는 데도 성공해 '네이처'에 게재했다.

현재 광유전학을 파킨슨병, 정서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의 치료에 적용하려는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일본 이화학연구소와 미국 MIT 신경회로유전학센터 소속 연구진이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알츠하이머 질환 모델 쥐의 뇌에서 신경세포의 연결지점들을 활성화하면, 저장됐던 기억이 복원된다는 사실을 밝혀 '네이처'에 게재했다. 알츠하이머 질환의 기억 장애가 기억 저장의 문제가 아니라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의 문제일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허원도 그룹리더, 단백질‧세포 제어 광유전학 세계 선도


▲ 허원도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그룹리더. - KAIST 제공

광유전학은 뇌 신경세포의 활성 조절뿐 아니라 일반 세포와 단백질의 조절로도 그 응용 분야를 확장해가고 있다. 세포와 단백질 조절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가 바로 허원도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그룹리더다. 허원도 그룹리더 연구팀은 2009년 본격적으로 광유전학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으며, 이후 약 3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광유전학에 필요한 광학기술과 단백질공학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2014년 6월 '네이처 메소드'에서부터 지난 8월 22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까지 독자적으로 개발한 광유전학 기술을 잇달아 발표해 전 세계 광유전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빛으로 세포 내 단백질을 원격 조종하고, 빛으로 뇌신경세포를 자라게 하며, 빛을 이용해 동물세포의 이동을 제어하는 기술들을 개발해 냈다.

먼저 2014년 6월 '광유도 분자올가미(LARIAT, Light-Activated Reversible Inhibition by Assembled Trap)' 기술을 개발해 '네이처 메소드'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식물 애기장대의 청색광수용 단백질인 크립토크롬2(Cryptochrome2)와 이것의 짝 단백질인 CIB1, 인간 세포에 존재하는 다중체 단백질을 조합했다. 동물 세포에 빛을 비췄을 때 커다란 단백질 복합체가 형성되도록 디자인했고, 이 복합체를 올가미로 사용해 그 안에 원하는 단백질을 가둠으로써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예를 들어 이 올가미로 분열, 성장, 이동에 관여하는 다양한 단백질들을 가두어 세포의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같은 달에는 '광유도 뇌신경세포 성장인자수용체(OptoTrk) 기술'을 개발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했다. 빛으로 세포막에 위치한 특정 수용체를 원격 조종할 수 있는 이 기술을 신경세포에 적용해, 빛으로 신경세포의 분화와 성장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빛으로 세포막에 존재하는 성장인자수용체(FGFR1)를 활성화해 신호전달과정을 유도하는 기술인 '광활성세포성장인자수용체 기술(OptoFGFR1)'을 개발, '셀' 자매지인 '케미스트리 앤드 바이올로지' 표지논문으로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신경세포에 빛을 쪼여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표지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진은 세포에 빛을 쬐어 세포막에 있는 칼슘채널의 개방을 유도하는 기술인 '광(光)리모콘'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빛으로 칼슘채널을 활성화해 세포 내로 칼슘 이온을 유입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연구진은 광리모콘 기술로 생쥐 뇌의 칼슘 이온 농도를 높여주면, 기억력이 2배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빛으로 살아 있는 세포 내 칼슘이온을 조절하는 3D 이미지. 지난해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표지를 장식했다. - IBS 제공

지난 8월에는 광유도 분자올가미 기술로 세포의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방향타 단백질'(PLEKHG3)의 활성을 조절, 세포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해 PNAS에 발표했다. 세포 이동에는 여러 종류의 소형 GTP 결합 단백질과 이 단백질의 활성을 조절하는 GEF 단백질이 관여하는데, PLEKHG3은 GEF 단백질 중 하나다. 연구진은 63개의 GEF 단백질에 바이오이미징 기술을 적용해 PLEKHG3가 세포의 진행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방향타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광유도 분자올가미 기술을 방향타 단백질에 적용해 빛으로 세포 이동을 멈추고 재개함은 물론, 빛을 비추는 부위를 조정해 세포의 이동방향도 제어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허원도 그룹리더는 “빛으로 이온, 단백질, 세포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과 연구팀이 개발한 새로운 바이오센서를 이용해 암세포, 신경세포, 실험동물을 연구함으로써 생물학적 발견, 질병 치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오리 로봇' 조종에서 시각장애 치료 임상시험까지

최근에는 광유전학 기술을 동물이나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의 행동 조종에 활용한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서강대,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공동연구팀은 살아 있는 동물세포를 금속, 고무 등에 결합시킨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을 개발해 빛으로 움직이는 데 성공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금으로 만든 단단한 뼈에 광활성 유전자를 가진 쥐의 심장근육세포로 이뤄진 탄탄한 근육을 연결하고, 실리콘고무로 만든 부드러운 피부를 덮어 10원짜리 동전보다 작은 가오리 모양의 로봇을 제작했다. 청색 빛을 쪼이면 전기신호를 만들며 근육이 수축해 별도의 동력원 없이 움직일 수 있음이 확인됐다. 로봇의 성공은 향후 인공심장 개발의 기술적 기반이 될 전망이다.


▲ 별도의 동력원이 없이 빛으로 움직이게 만든 '가오리 로봇'. - 사이언스 제공

앞서 지난해 7월에는 미국 콜로라도대 정재웅 교수팀이 쥐의 뇌에 미세 장치를 탑재한 뒤 빛으로 행동을 조종하는 데 성공해 '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초소형 LED와 원통 모양의 미세한 관을 결합해 머리카락보다 가는 장치를 만들어, LED를 켜 빛을 비추면 도파민이 분비돼 쥐의 움직임을 조정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기술은 장차 알츠하이머, 뇌전증 등 뇌 질환 치료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광유전학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임상시험 단계에 이미 접어든 상태다. 지난 5월 19일 '네이처'는 미국 사우스웨스트망막연구재단 의료진이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린 시각장애인 15명을 대상으로 첫 광유전학 임상시험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인체에 무해한 광활성 바이러스를 환자의 눈에 주입해, 제 기능을 잃은 광수용체세포 대신 빛을 감지해 뇌에 보낼 시각 정보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시험이다. 광유전학 기술을 인체에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유전학 기술로 신경세포, 암세포를 비롯한 다양한 세포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밝혀내고 살아 있는 동물의 세포를 정교하게 제어하는 데 성공한다면, 머지않아 시각장애, 정신질환을 포함한 각종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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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