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장으로 뇌기능 원격·정밀 제어한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매그니토(Magneto)’는 자기장을 이용해 주변 금속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집채만 한 트럭을 내던지고,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는 등 가공할만한 위력을 자랑한다. 이처럼 자기장을 이용하면 무선, 원격으로 금속을 조종할 수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 연구단 이재현 연구위원(연세대 고등과학원 교수)과 천진우 단장(연세대 교수) 연구팀은 자기장을 이용해 뇌기능을 원격으로 정밀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 산란기를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 등 많은 동물들에게는 회귀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의 뇌 속에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자기 수용체(Magneto-receptors)’가 있어,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여 이동한다는 가설이 오래전부터 제시됐다. 연구진은 동물의 자기 수용체를 모방한 ‘나노나침반(nano compass)’를 개발했다. 나노나침반은 외부자기장에 감응하여 정확히 5pN(피코뉴턴)1)의 회전력을 발생시키도록 설계됐다.
이어 쥐의 우뇌 운동 피질에 나노나침반과 세포 활성을 조절하는 ‘피에조-1(Piezo-1) 이온 채널2)’ 유전자를 주입했다. 피에조-1은 물리력에 반응해 문이 열렸다 닫히며 세포 내로 유입되는 칼슘이온의 양을 조절한다. 피에조-1이 열려 칼슘이온이 다량 유입되면 그만큼 세포가 활성화된다. 피에조-1이 칼슘이온이 드나드는 문이라면, 나노 나침반이 내는 회전력은 문을 여는 힘인 셈이다.
자기장을 가해주자 나노나침반이 회전하며 5pN의 회전력을 내고, 이에 반응한 피에조-1 이온 채널이 개방되어 칼슘이온이 세포 내로 유입됨으로써 우뇌 운동 피질 부위의 뇌세포가 활성화되었다. 이에 따라 쥐의 왼발 운동신경이 활성화되어 반시계 방항으로 운동하며, 운동능력이 약 5배 향상됐다. 좌뇌 운동 피질을 자극한 경우 시계방향으로 운동 능력이 증가됐다. 요컨대 자기장을 이용해 살아 있는 동물에서 선택적으로 뇌세포 활성을 제어할 수 있음을 최초로 증명한 것이다.
연구진이 개발한 자기 유전학 장치는 MRI장비와 같은 크기(중심지름 70 cm)에서도 구동이 가능하며 사람의 뇌나 전신에 25mT(밀리 테슬라3))의 자기장을 전달할 수 있다. 기존 뇌세포 제어에 활용되던 광유전학(opto-genetics) 기술은 생체 투과도가 낮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자기장은 침투력이 강하기 때문에 연구진이 개발한 기술은 파킨슨병, 치매, 암처럼 몸 속 깊은 곳에 발생한 난치병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 나아가 원하는 세포를 선택해 활성화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운동신경 뿐 아니라 시각, 후각 등 다양한 뇌기능을 향상시키거나 면역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를 이끈 천진우 단장은 “나노 자기 유전학은 원하는 세포를 유전공학으로 선택해 무선(wireless)·원격(remote)으로 뇌 활성을 제어하는 연구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뇌의 작동 원리 규명과 질환 치료 등 뇌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뇌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니, 설레기도 하지만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백신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백신은 개발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있었지만, 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처음 자동차가 출시됐을 당시 사람들은 말도 없이 혼자 움직이는 마차(Horseless Vehicle)라며 타기를 꺼려했다. 사고도 많이 났다. 그러나 자동차는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준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지속적인 바이러스와 백신 연구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한 고효능의 백신을 만들어냈다. 자동차의 경우 안전벨트, 브레이크 등 안전장치를 개발하고 교통 법규를 정립해 안전성을 더할 뿐 아니라 친환경자동차 개발로 환경오염 문제까지 해결하고 있다.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 미국의 공학기술자이자 기업가 헨리포드는 “실패란 더 현명한 방법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Failure is simply the opportunity to begin again, this time more intelligently)”라 했다. 과학기술은 양날의 검이라, 그것이 현실화되었을 때 부작용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과학기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네이처 머티어리얼즈(Nature Materials)’에 1월 29일 1시(한국시간) 게재됐다. IBS 커뮤니케이션팀 1) 피코뉴턴(pico-newton) : 피코(pico)는 10-12을 나타내는 접두어로서, 피코뉴톤은 1뉴톤 (1N)의 1조분의 1에 해당하는 힘. 2) 이온 채널(ion channel) : 채널이 열리고 닫힘에 따라 세포 내부의 이온농도를 조절하는 막 단백질. 특히 뇌세포(뉴런) 에서 이온 채널의 개폐를 통해 신경 신호를 전달함. 3) 밀리 테슬라(milli tesla) : 밀리는 1/1000을 뜻하는 접두어. 테슬라는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일반적인 스피커에 내장된 자석이 약 1테슬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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