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1)은 신정부의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는 국정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국정목표인 ‘창조경제 2)’에 대한 정책적 혜안을 얻기 위해 창의성과 창업정신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산·학·연 주요 인사를 방문 하였다. 특히 창조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기초과학의 사회적·경제적 시장화 메커니즘, 기초과학의 거시경제로의 효과적인 기여도 증진 방법, 일반 국민들의 창의성 제고를 위한 정책적 대안 등에 대해 주요 인사들의 의견을 청취하였고, KBS 보도국에서 창의경제에 대한 기초과학의 역할에 대한 이스라엘 사례를 취재3)하기 위해 동행 하였다.


◆ 창조경제와 기초 과학

기초과학의 시장화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우리가 면담한 이스라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기초과학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주었다. 이스라엘 총리실 Dr. Eitan Eliram 수석은 유아기 어린이들에게 호기심이 중요하듯 기초과학을 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스스로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 환경을 조성·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함을 강조 하였다.

즉 최고의 과학자를 영입하고 그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것인데, 이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의 운영 철학과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초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기관인 와이즈만 연구소(WIS : 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의 Prof. Daniel Zajfman 총재도 비슷한 의견을 주었다.

그는 창조를 혁신과 연결하여 생각 할 때 혁신(innovation)은 발명(inventing)과는 다른 차원의 개념으로,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개념적 인식이라는 것을 명백히 이해한 후 출발해야 한다고 하였다. WIS는 최고의 인력을 선발하고 그들에게 연구 자율성을 부여하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으며, 어떠한 주제에 대한 것이든 순위(ranking)를 만드는 것은 의미 없는 행위이고 과학과 사업화(commercialization)는 철저하게 분리하여 각각의 고유 영역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운영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4).

특히 최고의 과학자를 영입하기 위한 정형화 된 행정 절차5)는 있으나 연구단장(Director)의 T/O를 별도로 관리하지 않으므로 최고의 인재를 영입할 때 까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절차는 순수하게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었다.

이러한 운영 철학은 한국의 경우와 크게 다른 부분인데, 특히 한국의 경우 출연 기관 예산 및 T/O가 관련 부처(기획재정부) 차원에서 기획 되고 소관 부처(미래창조과학부)에서 관리되는 등 전형적인 PDS형(Plan-Do-See) 행정 절차 형태를 보인다면, 특별한 연구 영역 없이 최고의 과학자가 영입 될 때 까지 정부의 개입 없이 탄력적으로 운영 되는 부분은 우리가 배워야 할 선진국형 모델이 아닐까6).

창조경제의 관점에서 조명한 기초과학의 경제기여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정부의 역할로 연결 되었다. 이스라엘 산업통상노동부 수석 과학관인 Avi Hasson(장관급)은 산업(industry)와 과학(science) 사이의 구조적 연결고리(structured pipeline)의 효과적 설치가 정부의 역할인 것은 자명하다고 하였다. 특히 와이즈만 연구소의 이스라엘 거시경제에 대한 기여는 상당한 수준임을 인정하였으며, WIS에서 발생한 지식이 산업에 자연스럽게 연결 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임을 강조 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GDP 대비 R&D 투자 규모가 세계 1위인데(한국은 2위), 한국과 다른 점은 정부에 의한 국가연구개발사업 투자 규모가 작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정부는 직접적인 R&D 투자 대신 과학-산업간 인프라 설계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 이라고 하였다.

즉 정부는 관련 법규, 세금 제도, 인적 자원 육성 제도 등과 같은 인프라를 설계·확충 하는 역할과, 기업 생태계(eco-system)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험을 감소화 하는 정책(risk-reduction policy)을 추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스라엘 정부는 R&D의 경우 위험 수준이 높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기초과학에 대한 시각인지 응용 및 개발연구를 포함한 것에 대한 의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초과학’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R&D (Research and Development)의 관점으로 답변한 것으로 보아 응용 및 개발연구를 포함한 의미7)인 것으로 추측된다. R&D 예산 투자 부분에 있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서 발생한 연구개발 수요에 대한 투자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8), R&D 또한 시장 원리(market principle)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철학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러한 철학은 벤처생태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기업 실패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문화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 된다. ‘위험 최소화(risk-minimization)’가 아닌 ‘위험 감소화(risk-reduction)’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도 시장에는 늘 위험이 존재하며 그 위험을 언제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기업의 주요 경쟁우위 요소 중 하나라는 벤처 정신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창조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특히 기초과학과 산업 간의 연결을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이스라엘 관료들의 의견은 몇 가지 관점에서 유의하여 이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된다.

첫째, 정부의 개입 수준이 크게 다르다. 이스라엘 수상은 한국의 대통령과 달리 권한이 제한적이며,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달리 국가연구개발사업(National R&D Program)의 개념이 거의 없다9). 한국의 경우 정부 주도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이 약 15조원(2011년도 기준)에 달하고 있고10), 관련 관리 제도를 연구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연구비 부정사용 등에 대해 엄중 대처하는 등 자율과 책임이 조화된 제도로 개편11) 하는 등 관련제도의 고도화 작업을 추진한 바 있다는 점과 비교 했을 때 한국의 정부 주도 과학기술 정책 및 제도는 많은 부분에서 앞서 간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두 나라의 거시 환경이 크게 다르다. 특히 한국은 정부 및 대기업 주도의 대규모 집단 산업화시기를 통해 압축 성장을 거치며 규모의 경제를 이뤄 냈고 생산된 재화를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는 내수 층이 존재 했으나, 이스라엘의 경우 국방관련 산업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내수 시장의 규모 또한 한국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 실패에 대한 새로운 정의

이스라엘 주요 인사들과 면담 하며 느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실패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우리나라의 경우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경우 많은 벤처기업을 양성해야만 하는 산업 구조(내수 시장 규모가 한국의 15% 수준에 머무르는 점, 삼성과 같은 대기업12)이 존재하지 않는 점 등),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정부 및 대형 민간기업 주도의 거대 산업화 사회를 거치지 않은 경제사, 시오니즘(Zionism)13)으로 대표 되는 유태 민족의 이스라엘 유입 등과 같은 특징이 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용인 수준이 우리나라의 경우와 많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이유이든 간에, 산·학·연의 리더급 인사들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장려하고 그러한 문화가 사회 각층에서 공감을 얻고 있음을 널리 알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스라엘 총리실 Dr. Eitan Eliram 수석은 창조경제와 관련하여 이스라엘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건강 정도를 반영하는 역할(reflective role)과 시장이 건강하지 못할 때 일정 수준의 책임을 지는 역할(responsible role)로 요약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정부가 시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계획·통제 하는 것은 불가능 하며 할 필요 또한 없음을 의미한다.

다만, 오로지 시장 실패(market failure) 상황일 경우에만 정부가 개입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 하되 시장 참여자의 높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기대하는 미국식 경제 정책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한국은 올림픽 세계4위까지 오른 스포츠 강국일 뿐 아니라 삼성·LG와 같은 세계적 수준의 거대 기업을 보유한 이미 충분히 창의적인 국가이며, 다만 실패에 대한 인식 수준을 이스라엘을 통해 배울 수 있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무엇보다 그는‘Come to Israel and fail with us’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하였는데, 실패를 통한 피드백 과정에 대한 노하우에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실패에 대한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유태인 스스로 수난에 대한 학습 효과를 최대치로 이끌어 내는 나름대로의 ‘실패에 대한 긍정적 해석 능력’이 내재화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출장기간 동안 우리 사회가 실패에 대해 가혹한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 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무엇보다 한국은 산업시대(industrial age)를 통하여 고도의 압축 성장을 이뤘기 때문에 그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 최적화로 대표되는 효율성 중심의 경제는 거대 공장화, 규모의 경제, 원가 절감, 절차 중심의 행정문화 등과 같은 특징을 요구하였고, 그것이 석유산업의 부차산업(자동차, 조선 등)의 발달로 연결 되며 경제지표의 수직적 성장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실수가 커다란 재앙14)으로 변할 수도 있는 효율성 중심의 공장 산업이 실패를 용인할 수 없는 문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이미 매뉴얼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산업 시대에 실패(또는 실수)가 회복하기 힘든 무능함으로 인식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일지도 모른다. ‘실패해서는 안 된다’라는 인식은 동시대가 요구했던 너무나 당연한 공감대였으므로, 실패를 용서하지 못했던 우리의 과거를 비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Jewish Network

이스라엘은 Jewish Network로 표현되는, 다른 나라는 갖지 못한 중요한 경쟁우위 요소를 가지고 있다. Yigal Erlich 요즈마그룹 회장은 이것이 Jewish Brain이라는 표현으로 바뀌는 것이 옳다고 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경제에 Jewish Connection이 큰 공헌을 하는 것은 사실 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한국 전체 인구수에도 못 미치는 수(3천만 명)의 유태인이 있을 뿐 이라는 Dr.Eitan Eliram(이스라엘 총리실 수석)의 의견과 일치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네트워크 이상의 강한 정신적 유입 요인이 작용한다는 의미 이고, 그 기저에는 탈무드의 가르침이 있다.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 태생이 아닌 많은 수의 유태인들이 성인이 되어 이스라엘로 들어와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마디로‘출신국’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는 것인데,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아닌 내 믿음의 근원이 존재하는‘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돌아가서 살기를 원하는 유태인의 정신적 귀향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식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구소련 해체 후 약 50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출신 유태인을 이스라엘이 모두 흡수한 것은 놀랍기 까지 하다15).



◆ 창의성 교육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질문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Scott Nearing 자서전 (The Making of a Radical 中)

탈무드를 빼고 이스라엘을 논할 수 없다. 탈무드는 유태인들의 정신적 양식이자 원천일 뿐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 접근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더 큰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식 창의성 교육법’의 중심에 탈무드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최고의 탈무드 학교인 Yeshiva의 대표 랍비인 Arye Hendler에 의하면, Yeshiva는 전 세계의 유태인을 대상으로 탈무드 교육을 전담 실시하고 있는데 특히 ‘학생들 간의 학습(learning from friends)’16)은 탈무드 학교의 독특한 교육 방식 이라고 하였다. 학교 측은 게시판 등을 통해 특정 주제를 부여하고, 학생들은 그 주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문제 해결법을 가져오는 시스템이다.

나름의 문제 해결법을 찾기 위해서 학생들은 자기의 상대와 논쟁(argument)을 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상대를 비판 하거나 자기 방어의 논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 체득한 독창적인 학습법은 학생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큰 자산이 되고 있는데, 특히 ‘호기심 배양’과 ‘문제의 답을 스스로 찾는 해결법’은 학습에 있어 중요한 기본 태도이며 기초과학에 접근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이라는 의견을 주었다.

필자에게 Yeshiva 학교에 입학하여 1~2년 간 집중적으로 탈무드를 공부하는 20대 초반의 미국 출신 유태인 학생들의 입국 동기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특히 커다란 교실에서 큰 소리로 싸우듯 격렬히 논쟁하는 이들의 모습은 기이하기 까지 했는데, 입국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주어진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파트너와 의견을 교환하며 상호 조율 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르는 변증법적 접근 방법이 유태인들의 창의성에 한 몫 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스라엘의 성공은 탈무드에 의한 지적 창의성 연구(intellectual creativity study) 전통이 수세기에 의해 전수 된 것에 이유가 있다는 의견은 히브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Dr. Robert Aumann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유태식 학습법은 여러 학문 분야에 대한 연구로 전파 되는 효과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창의성을 재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호기심을 갖도록 장려 하는 제도적·문화적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 하였다.

특히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과 ‘문제’를 주는 것인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solving problems)은 학습하는 것(learning things)과는 전혀 다른 개념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젊은 학생들에게 문제를 제시하여 호기심을 갖게 하고, 그것을 해결 해 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유도 해 주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실 Dr.Eitan Eliram 수석은 후츠바 정신(chutzpha spirit)17)은 질문하기(questioning)가 핵심인데, 전 세계적으로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방식이 없다면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그는 미국의 선진 교육기관18) 중 일부는 교육 콘텐츠에 대해 스스로 질문 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인터넷 상에 공개하는 방식(open source approach)을 선택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방식이라는 의견을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한국인들은 스스로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실패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미국의 에너지 경제학자인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그의 저서19)에서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과학적 경영의 원칙은 효율성을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중요한 세속적 가치로 만들었다. 이후 최소한의 시간과 노동, 자본을 투입하여 최대의 결과를 산출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지침이 된 것이다. (중략) 그리하여 현대 교육의 주된 사명은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를 배출하는 것 이었다. 따라서 학교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 했다. 하나는 읽고 쓸 줄 아는 노동인구를 창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적인 중앙집권형 조직에 복종 하도록 그들을 준비 시키는 것 이었다.”
<3차 산업혁명(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 Jeremy Rifkin

즉 한국인들은 인쇄물을 읽고 새로운 매뉴얼을 작성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효율적인’ 인재가 필요했고, 피라미드식 거대 조직에 복종할 줄 아는 태도가 부수적으로 요구 되었던 것이다. 필요는 동기를 낳고, 동기는 생각을 바꾸며, 생각이 행동 패턴과 사회 제도를 형성하는 전형적인 패턴이 형성 되었을 뿐이다. 질문하고 사고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 글을 마치며

이번 출장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비교적 짧은 기간(5박 7일) 동안 많은 인사(16개 기관의 주요 리더)를 만나야 했다는 점, 비교적 명확한 미션(‘창조경제’라는 신정부의 주요 키워드를 기초과학연구원의 키워드인 ‘기초과학’과 연결하여 이슈화 하고 그에 대한 이스라엘 산·학·연 리더의 의견 청취)이 있었다는 점, KBS 보도국 기자와 전 일정을 동행하였다는 점 등. 쉽지 않은 일정, 만만치 않은 인터뷰 대상자, 무거운 주제 등 어려운 출장 길 이었지만 우리는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창의성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의 문제 이다. 만약 창의성을 ‘이미 익숙한 정보의 논리적 순서에 변화를 줘서 새로운 논리를 만드는 행위’라고 정의 한다면20), 그것이야 말로 한국이 강한 분야가 아닌가. 다만 엉뚱한 논리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가시적 패배자를 수용하는 문화를 끌어안는다는 전제가 필요할 것이다.

둘째, 연구 자율성의 의미에 대한 해석의 각도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와이즈만 연구소는 높은 수준의 연구 자율성21)을 실현하고 있는데, 기초과학연구원이 국내 최초로 연구단별 자율성을 부여한 실험적 모델을 선택한 만큼 해외의 우수 사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점진적인 발전을 이룰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이 이제는 실패에 대한 관용적 인식을 받아들어야 하는 시점에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미 효율성, 최적화, 속도, 추격자 전략(second-mover-advantage)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비경제적 효용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면, 그리고 임계치(critical mass)에 다다른 지금 시점에 또 다른 외부 자극을 통해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면, 그 외부 자극의 핵심 역할을 기초과학연구원이 할 수 있도록 한 우리나라 정부의 결정은 대단히 고무적 이라는 것이다.


1) 오세정 원장, 유영준 연구지원본부장, 김대인 글로벌협력팀장
2)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는 산업경제(Industrial Economy) 및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 다음 단계의 경제 패러다임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의 창조 활동의 중요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창조 산업’이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경제 시대를 의미한다(노무라 종합연구소, 1990).
3) <시사기획窓 ‘창조경제를 논하라(가제)’>, ‘13.6.11, 밤11시
4) 특히 향후 기초과학의 연구 분야 중 어떤 주제가 각광을 받을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 하므로 연구단의 연구 주제를 별도로 선정하지 않는 운영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5) Letter 발송(advisor) → Faculty feedback → Institution Committee(9명) Review → Judgement (7/9 이상 획득의 경우 pass)
6) Zajfman 총재는 WIS의 경우 전체 예산 중 약 30% 수준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기관은 정권 교체 등 정치적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상당부분의 연구 예산이 ‘기부금’에 의해 운영 된다고 했는데, 이는 Global Jewish Network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기부금은 연구자에게 주어지는(given)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랜트(grant) 제도와 비슷한 의미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7) 실제로 Chief Scientist는 과거 한국 정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갖고 있던 R&D 예산 조정·배분 기능의 최고 책임자 이다.
8)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벤처 자본이 흘러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Yozma Group에 의한 엔젤 투자다.
9) 다만 이스라엘은 기술료제도에 대해 <산업연구개발촉진법> 등 정부 법제를 통해 통제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연구개발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고 한국과 이스라엘에서만 존재한다.
10) 이중 기초연구는 30.7%(약 3조 3,976억원)에 달하고 있다. <조사분석보고서>, KISTEP(2011)
11)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의 전면 개정에 대한 철학으로 두 가지를 제시 한 바 있다(2012)
12) Yozma Group 회장인 Yigal Erlich은 이러한 형태의 대기업의 출현은 한국 특유의 추진력에 의해 만들어 진 독특한 현상으로, 한국 경제에 경쟁력이 있음을 의미 한다고 하였다. 특히 기업이 기술 경쟁력뿐만 아니라 경영 능력(management capability)을 배양해야 하고, 또 그것을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우위(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로 발전시킨 것은 아마도 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경쟁력 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13)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태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민족 운동으로,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1917) 이후 유럽 각국 및 러시아로부터 많은 수의 유태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14) 예를 들어 추진 보조 장치 결함(추진제 누설 방지 장치로 사용되는 고무링 사고)으로 누출 가스에 불이 붙어 공중 폭발한 챌린저호 사고는 작은 실수가 큰 재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지난 60~90년대의 한국 경제는 자동차, 조선, 기계, 석유화학 산업 등 대규모 자본·노동 집약 산업에 대부분 의존 하였고 이러한 산업의 성공 여부는 공정최적화, 효율성 중심의 프로세스, 규모의 경제에 의한 단위 원가 절감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공정 중심의 대규모 작업 환경에서 매뉴얼을 벗어난 사소한 실수는 큰 손실로 연결 되곤 했고, 그렇기 때문에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자’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하기도 했다.
15) 전 이스라엘 산업 통상부 장관인 Ran Cohen은 이를 ‘매우 힘들었던 경험’으로 묘사 하였는데, 만약 한국이 전체 인구의 10%인 500만 명의 해외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어떤 상황일지를 상상해 보라며 반문 하였다. 그 또한 이라크 출신의 유태인이다.
16) 학생이 입학하면 학교 측은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파트너를 찾을 수 있도록 알선 하고 있다.
17) 격식을 차리지 않는 태도와 토론과 질문하는 습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긍정적인 태도 등 유태인 특유의 정신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18) 미국의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다.
19) <3차 산업혁명(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 Jeremy Rifkin(2012)
20) <노는 만큼 성공한다>, 김정운(2011)
21) 기초과학의 수많은 분야 중 어떤 분야가 각광 받을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 하므로 어떤 분야든 최고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자 함, 연구단장 TO는 의미가 없으므로 관리 또한 하지 않음, 기초 과학 예산의 많은 부분이 유태인 기부금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성과에 연연할 이유가 없음 등이 좋은 사례이다.

담당자 이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