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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과학으로 공상과학영화 따라잡기

영화 <스파이더맨:홈 커밍>의 주인공 피터 파커는 거미에게 물려 유전자가 변하면서 ‘스파이더맨’이 된다. 손목에서 거미줄을 쏘면서 휙휙 날아다니며 아이언맨과 함께 악당을 무찌른다. 그런데 거미에게 물리지 않아도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나노 과학만 있다면 말이다.

나노 과학을 이용하면 영화에서 나오는 헐렁하게 입었다가 버튼만 누르면 몸에 꼭 맞게 되는 쫄쫄이 수트, 웹슈터에서 쫙쫙 뻗어나오는 초강력 거미줄을 만들 수 있다. 손바닥, 발바닥만을 이용해 건물 벽을 재빨리 기어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스파이더맨 수트의 비밀

나노 기술과 스파이더맨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그 중심에는 대표적인 나노 물질인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가 있다.


▲ 왼쪽부터 탄소 나노 삼총사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의 구조(출처.위키미디어)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을 이루며 결합한 원자 한 층 두께의 얇은 막이며, 탄소나노튜브는 그러한 막을 빨대 모양으로 둥글게 만 것이다.1)

이 두 가지 물질은 강철보다 수백 배 강하고 매우 가볍다. 이들을 이용해 직물을 만든다면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탄성이 좋고 쉽게 찢어지지 않는 옷을 만들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스파이더맨 수트를 만들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재료는 없다. 스파이더맨 손목에 찬 장치, 웹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미줄도 그래핀이나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더욱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

현실에서는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의 강도를 이용하여 플라스틱이나 금속보다 훨씬 단단한 테니스 라켓이나 낚싯대, 골프채 등을 만들고 있다. 또한 그래핀이나 탄소나노튜브는 전도도가 구리보다 뛰어나고, 열전도율도 자연계에서 가장 뛰어난 다이아몬드와 비슷하며, 유연하고 투명한 성질을 갖는다. 이를 이용하여 얇고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초강력 배터리와 섬유, 생체 센서 등 수 많은 최첨단 장치가 개발되고 있다.

2016년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 연구진은 그래핀을 뛰어 넘는 3차원 그래핀의 합성법을 개발해 네이처紙에 게재, 세계를 놀라게 했다. 3차원 그래핀은 2차원 그래핀의 기존 장점은 고스란히 유지하며 넓은 반응면적으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이차전지의 음극제, 고효율 여과막 등 다방면에 활용이 가능해 산업계를 한 차원 발전시킬 물질로 평가 받고 있다.


▲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 연구진이 합성에 성공한 3차원 그래핀. 2차원 물질인 기존 그래핀의 강점은 고스란히 가지면서 반응면적이 넓어 더욱 다양하게 응용이 가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미세 털, 미세 돌기가 갖는 초능력 파워


▲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과 그 발바닥에 나 있는 미세한 털. 오른쪽 맨 아래 그림이 세타에 나 있는 나노크기의 무수한 스페출라이다

스파이더맨에게는 수트와 거미줄도 있지만, 손과 발로 빌딩 벽을 재빨리 올라가거나 천장에 붙은 채 거꾸로 기어 다닐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이것도 나노 과학으로 실현 가능하다. 끈끈이 없이도 나무든 벽이든 네 발로 착 달라붙어 어디든 기어오르는 작은 동물, 게코도마뱀의 발을 흉내낸 장갑과 부츠를 만드는 것이다.

게코도마뱀은 길고 납작한 발가락 밑면에 주름처럼 보이는 빨판이 결을 이루고 있고, 이 빨판에는 1mm2당 무려 1만 4천 개의 세타(seta)라는 솜털이, 그 솜털 위에는 또 나노크기의 스페출라(spatula)라고 하는 주걱 모양의 미세한 털이 무수히 나 있다. 게코도마뱀은 발을 한 번 내딛을 때마다 수십억 개의 미세한 털과 벽면 사이에 반데르발스 힘2)이 생겨나 중력과 수직 또는 반대 방향으로 쉽게 붙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활용한 접착테이프, 벽을 기어오르는 로봇이 발명된 데 이어 얼마 전 미국 과학자들은 게코도마뱀의 나노 털을 흉내 낸 장갑을 개발하여 이 장갑을 낀 건장한 성인 남성이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 (왼쪽) 미국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이 2014년 게코도마뱀의 나노 돌기를 모사해 만든 특수 장갑을 시험하는 장면. 몸무게 70kg의 학생이 장갑을 착용하고 유리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을 수백 번 시도했지만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출처: BBC), (오른쪽)연잎에 나 있는 미세 돌기에 빗물이 맺혀있는 장면

자연 속 나노 세계를 모사하여 활용하는 대표적인 또 다른 예는 연잎에 나 있는 미세 돌기다. 연잎은 비를 맞아도 빗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질 뿐 절대로 젖지 않는다. 연잎을 전자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수백 나노미터의 미세 돌기가 무수히 나 있는데, 이 돌기 덕분에 놀라운 방수 효과와 자기 세정효과를 갖고 있다. 1977년 독일 본대학 빌헬름 바르틀로트 교수가 이를 발견하고 ‘연잎효과(lotus effect)’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물이나 오염이 절대 묻지 않는 옷, 물속 저항을 줄여 기록을 크게 향상시켜주는 수영복, 물때가 끼지 않는 화장실 등의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영화 같은 나노 기술 이야기, 현실화되나

히어로는 스파이더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교적 최근의 히어로물 주인공, 앤트맨을 떠올려보자. 그는 개미만 한 크기로 몸집을 줄일 수 있어 악당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강점을 지녔다. 만약 인간의 몸속을 돌아다니며 바이러스와 싸우고, 망가진 세포를 고치는 ‘나노 로봇’이 개발된다면 어떨까?

정확히 이러한 로봇의 개발을 내다봤던 과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릭 드렉슬러다. 1986년, 에릭 드렉슬러는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이라는 책을 통해 나노 기술 이론을 최초로 정립하며 이 분야의 ‘선구자’로 불리게 된다. 에릭 드렉슬러는 이 책에서 인류가 언젠가 원자나 분자를 하나하나 원하는 위치에 끌어다가 원하는 물질을 만드는 ‘나노 생산 공정(assembler)’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예언했다. 또한, ‘세포 수리 공정’이 인류를 노화와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세포를 수리하는 나노 로봇’이 구현될 날은 요원하지만 의료를 위한 나노 기술은 ‘나노 바이오’ 또는 ‘나노 생명공학’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한발자국 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나노 기술로 암 조기 진단과 부작용 없는 치료를 한방에

나노 기술을 이용하면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암세포에게만 치료 약물을 도달하게 할 수도 있다. 방사선 치료나 화학치료 등의 기존 암치료법은 암세포 뿐 아니라 정상세포에도 큰 손상을 가한다. 이 때문에 각종 부작용이 일어나는데, 나노입자에 항암제를 가둬놓고 암세포에 도달했을 때만 터지도록 하는 '나노 약물 운반체'로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미국 MIT 공대의 로버트 랭어 박사가 암세포에 도달했을 때에만 작용하는 나노 항암제를 개발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 연구단이 비슷한 원리의 '나노 미사일', '나노 수류탄'을 개발하였다.


▲ 나노 수류탄의 개념도. 나노 수류탄은 암세포를 만나면 표면의 전하가 음에서 양으로 변하면서 암세포에 숭숭 뚫려 있는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마침내 표면보다 낮은 종양 내부에 도착하면 수류탄처럼 터지면서 산화철과 광감각제를 쏟아내는 데 산화철은 MRI에 반응해 암세포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 신호에 따라 외부에서 레이저를 쏘아주면 광감각제가 다량의 활성 산소를 만들어 암세포를 죽이게 된다.(광역학 치료)

암은 조기 진단이 매우 중요한 병이다. 나노수류탄은 암 조직에 도달하면 3㎜도 안 되는 초기 종양조직을 MRI와 형광 영상을 통해 진단할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치료제의 역할도 수행한다. 암이 진행되어 포도알 크기가 되면 그 안에는 1조 개의 세포가 들어 있다는 점을 볼 때 조기치료는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암 등 각종 질병 진단을 할 수 있는 바이오칩도 개발 중이다. 엄지손톱만한 칩으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 요인을 알아낼 수 있는 DNA칩이나 신약개발, 질병 진단에 이용하는 단백질칩이 이미 개발되었으며 가장 난이도 높은 기술인 ‘랩온어칩’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랩온어칩은 초미세 회로의 반도체 기술과 나노기술, 생명공학기술 등 첨단기술을 집적하여, 갖가지 질병 검사에 필요한 실험장치나 도구를 엄지손톱만 한 칩 위에 모아 놓은 것을 말한다. 이를 이용하면 피 한방울이나 극소량의 조직만 있어도 암 등의 질병 유무를 판독할 수 있다. 앞으로는 수질검사, 영양 성분 검사 등에도 바이오칩이 활용될 전망이다.

이 외에도 의료 및 바이오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나노 기술은 무궁무진하다. 나노 물질의 형광성과 방사선 비투과성 등을 이용해 초음파 촬영이나 엑스선(X-Ray) 투시의 조영제로 활용되고 있다. 나노바이오센서는 내쉬는 날숨을 분석해 폐암이나 당뇨를 진단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나노 초박막으로 인공장기 이식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이 연구되기도 한다. 나노입자의 항산화성, 항균성 등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도 널리 개발되고 있다3). 나노바이오센서를 의류나 인체에 부착하여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의료진 등에게 알려주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노화와 죽음의 요인을 제거하는 나노로봇


▲ 혈관을 날아다니는 나노로봇 이미지(출처.www.theleonardo.org)

그러나 이 모든 기술 중에서도 가장 궁극적인 나노 바이오 기술은 에릭 드렉슬러가 말한 ‘세포를 수리하는 나노 로봇’일 것이다. 엄청나게 똑똑한 컴퓨터를 실은 나노 로봇이 몸 속을 돌아다니면서 암 세포가 하나라도 생겨나려고 하면 죽이고, 막힌 혈관을 뚫고, 병균이 들어오면 잡아먹고, 세포에 고장이 나거나 돌연변이가 생기면 당장 고치는데 사람이 병들어 죽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드렉슬러의 나노로봇이 현실에서 구현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하지만, 관련된 기술은 속속 개발되고 있다. 나노로봇이 몸 속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려면 로봇에게 동력을 부여하는 모터가 중요하다. 1999년 미국 코넬 대학교의 카를로 몬테마노 교수에 의해 인간 세포가 사용하는 에너지인 ATP를 공급받아 움직이는 나노 모터가 개발되었다. 코넬 대학교 연구진은 2000년엔 이 모터를 이용한 나노 기계도 만들었다. 뒤이어 나노 엘리베이터, 나노 컨베이어벨트, 나노 프로펠러도 속속 개발되었다.
나노 과학으로 당겨질 수명 200세 시대, 어쩌면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나노 과학의 새 장을 연 것은 탄소로 이루어진 나노 물질을 줄줄이 발견하면서다.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은 1985년 미국의 리처드 스몰리와 로버트 컬, 영국의 해럴드 크로토가 발견한 풀러렌. 탄소 원자 60개가 자기조립하여 축구공처럼 둥근 구조를 이룬 물질이었다. 1991년 일본의 이지마 스미오가 탄소 6개로 이루어진 육각형들이 균일하게 서로 연결되어 빨대 모양을 하고 있는 탄소나노튜브를, 2004년 영국의 안드레 가임,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탄소 원자가 6각형의 벌집 모양으로 결합되어 한 층을 이루고 있는 물질인 그래핀을 발견했다.

2) 원자나 분자와 표면 사이에 발생하는 끌어당기는 힘

3) 2017년 7월, 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 연구단 현택환 단장과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이승훈 교수 연구진은 항산화, 항염증 작용이 탁월한 세리아-지르코니아(CeZrO2) 나노입자를 합성해 패혈증 치료제로써 효과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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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11-15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