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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Atom)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원자 한 개 크기 초소형 반도체 등장할까?

분기별로 새로운 PC 모델이 등장하고, 매달 성능이 향상된 메모리가 개발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 때, 21세기 반도체 혁명을 설명하는 ‘무어의 법칙’이 등장했다. 인텔의 창업자인 무어는 반도체칩의 트랜지스터가 18개월 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을 제안했다. 무어의 예측대로 반도체 산업의 발전 속도는 엄청났다. 한동안 무어의 법칙은 유효한 듯 보였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과 연구 개발은 현재 기로에 서있다.

반도체가 작아지는데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반도체 소형화의 문턱으로 여겨져 온 수준은 5 나노미터(nm, 10억 분의 1m)다. 전 세계 연구진은 5 나노미터보다 더 작은 반도체를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답보 상태에 빠졌다. 산업계는 신소재나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초소형 반도체는 만들 수 없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편 반도체 산업의 정체를 뚫을 수 있는 혁신의 주인공으로 ‘원자’가 뜨고 있다. 세계의 많은 연구진이 원자에 주목하고 있다.


▲ 왼쪽 사진(사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은 최초의 컴퓨터인 애니악(ENIAC) 이후 1946년 등장한 최초의 전자식 데이터 저장장치 셀렉트론 튜브(Selectron Tube)다. 진공관의 일종으로 초기형은 256bit, 후기형은 4096bit를 저장할 수 있었다. 초기형은 한글 약 16자, 후기형은 256자를 쓸 수 있는 용량이다. 한편 오른쪽 이미지(사진 출처. Pixabay)는 원자의 구조를 나타낸다. 원자의 중심에는 (+)전하를 띤 양성자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이 존재한다.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하를 띤 전자가 궤도를 그리면서 돌고 있다. 큰 진공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까지 정보를 쓰고 읽는 기술은 불과 50년 만에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원자선에 원자 지나간다, 길을 비켜라

‘원자선(atomic wire, 原子線)’은 진공 상태에서 실리콘과 같은 반도체 표면에 1~2 나노미터 굵기로 형성되는 금속선이다. 선폭이 원자 1~3개 크기에 불과할 정도로 가늘다. 말 그대로 원자가 지나가는 선이다. 과학자들은 원자선이 반도체 5 나노미터의 벽을 깰 수 있는 대안기술이 될 거라 전망하고 있다.

상상일 뿐일까? 아니다. 원자선을 이용한 반도체는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원자선이 미래 반도체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증거들이 연구를 통해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나온 연구를 종합하면, 가느다란 원자선에 저장되는 양의 정보는 기존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전력소비량과 발열량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이기까지 하다.


▲ 인듐 원자선에 갇힌 전자의 분포, 연구진은 이 연구로 카이럴 솔리톤의 개념을 제시했다.

원자선 연구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과학자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의 염한웅 단장이다. 염 단장은 원자선이 전자 하나를 이동시키는 전선 역할을 하는 것뿐 아니라 원하는 정보를 넣었다 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원자선 연구의 개척자다. 염 단장은 2015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에서 인듐 원자선에서 전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씩 이동시켜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인듐 원자가 사슬처럼 엮인 선폭 1 나노미터의 원자선을 구현하고, 전자를 흘려보냈다. 인듐 원자선은 원자구조의 조합에 따라 순서 배열이 달라지고, 방향성을 갖도록 할 수 있다. 이 때, 각 원자 사슬 양 끝 사이에 생긴 좁은 경계를 솔리톤이라고 하며, 솔리톤에 하나의 전자가 갇히게 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원자 사슬의 구성 요소인 원자들의 순서를 바꿔주면 솔리톤이 방향성을 갖고 이동하면서 갇힌 전자도 같이 이동하는 것이다. 마치 무빙워크가 움직이면 위에 서 있는 탑승자도 함께 이동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연구진은 원자선을 이용해 간단한 논리연산까지 할 수 있음을 학계에 보고했다. 2017년 2월 염 단장은 포스텍 김태환 교수와 공동 연구로 4진수 연산이 가능한 인듐 원자선을 구현해 <네이처 피직스>에 이를 발표했다. 염 단장은 <사이언스>에서 발견한 솔리톤을 당시 ‘카이럴 솔리톤(방향성을 지녀 인듐 원자선을 지나가는 솔리톤)’으로 명명했다. 연구진은 추가로 세 종류의 카이럴 솔리톤을 구현했으며 서로 연산이 가능함을 확인했다. 또한 솔리톤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인 ‘0’과 세 종류의 카이럴 솔리톤을 조합하면 4진수 연산이 가능함을 밝혔다.

기존 전자소자는 0과 1을 사용한 이진법을 기본으로 작동한다. 연구진은 4진수 연산이 가능한 솔리톤 연구가 발전한다면 이진법 연산보다 훨씬 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저장하고 연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통해 전자기기 소형화는 물론 발열, 전력 소비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원자로 만든 USB 가능할까?

우리가 매일 쓰는 USB는 정보를 옮기고 다른 전자 기기로 쉽게 옮길 수 있는 유용한 이동형 저장매체다. 이동형 저장매체의 시초는 디스켓이었다. 한글문서의 저장 기능 아이콘이 디스켓 모양인 이유다.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형태로 저장매체는 변화해왔다.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손가락 크기의 USB도 미래에는 다른 형태일 지도 모른다. 원자로도 USB를 만들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어딘가에 담는다는 원리를 생각한다면 원자 자체에 정보를 저장할 순 없을까? 이 물음에 답하고자 과학자들은 원자에 정보를 저장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원자에 정보를 저장하는 세상, 상상해보자. 꿈 속에서나 일어날 일로 보이지만 과학자들은 현실 속에서 원자에 정보를 저장하는 연구를 진전시키고 있다.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안드레아스 하인리히(Andreas Heinrich) 단장 연구팀은 2017년 4월 <네이처>에 원자 1개에 1비트를 읽고 쓰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인리히 단장은 단일 원자의 위치와 양자 상태 제어 연구의 선두주자다. 단장을 비롯한 연구진은 전자주사터널현미경(STM)을 이용해 원자 한 개로 1비트의 디지털 신호를 구현하기 위한 연구 중 홀뮴(Ho) 원자 한 개로 1비트를 안정적으로 읽고 쓰는데 성공했다.


▲ STM 탐침이 홀뮴 원자에 약한 전류를 흘려 스핀을 읽고 있는 모습(왼쪽 사진). STM에서 나온 강한 전압 펄스가 스핀의 방향을 바꾸고 홀뮴 원자에서 나온 자기장이 철 원자에 영향을 미쳐 반대 방향을 갖게 하는 모습(오른쪽 사진).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현재 상용화된 메모리의 경우 1비트를 구현하는데 약 십만 개의 원자가 필요한데 반해 하인리히 단장 연구팀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단 1개의 원자만으로 1비트를 구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원자 하나로 1비트 구현하는 것이 안정적으로 성공한다면 지금까지 상영된 모든 영화를 USB 메모리카드 한 개 크기의 칩에 담고도 남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손톱만한 USB라면 얼마만큼의 정보를 담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원자 제어해 양자컴퓨터 구현 앞당긴다

원자의 세계가 도래하면 꿈의 컴퓨터 ‘양자 컴퓨터’ 구현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양자컴퓨터란 슈퍼컴퓨터가 수백 년 걸릴 계산을 수초 만에 해낼 수 있다. 현재 컴퓨터가 2진법으로 1비트를 표시하는데 반해,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해 ‘큐비트’라는 양자 비트를 기본단위로 구동한다. 양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작은 에너지 덩어리다. 양자는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라는 특수한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기존 컴퓨터의 비트는 0 또는 1 중 하나의 값밖에 갖지 못하지만,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는 0이면서 동시에 1인 00, 01, 10, 11과 같은 네 가지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 캐나다의 디웨이브 시스템사가 개발한 디웨이브는 양자 컴퓨팅 기술 개발 경쟁에 불을 붙였다. IBM, 구글, MS 등도 양자 컴퓨팅 기술 개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상용된 양자 컴퓨터는 캐나다 연구진이 시범적으로 만든 디웨이브(D-Wave)를 들 수 있지만 아직은 전 세계 연구진이 인정하는 상황은 아니다. 이를 안정적으로 검증할만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가 실제 만들어지려면 최소한 1만개의 큐비트 소자로 구성된 회로가 필요하다. 많은 연구진들은 당장의 양자컴퓨팅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큐비트 50개를 가진 양자컴퓨터가 지구상 현존하는 모든 슈퍼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합친 것보다 클 것으로 예상한다.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의 능력보다 월등함은 물론 우위를 점할 날이 머지않았다.

양자컴퓨터 구현과 더불어 전 세계 연구진들이 주목하고 있는 연구주제가 또 있다. 바로 통신이다. 연구진들은 양자와 광자의 성질을 이용해 안전한 통신을 구현하고 있다. 현재 사용 중인 통신망은 디지털 신호가 기반이라 도청에 취약하다. 만약 양자통신이 보급되면 복제나 감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완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신호는 수십만 개의 광자로 이뤄져 도청해도 잡아내기가 어렵다. 반면 양자 통신망은 단일 광자를 기반으로 해 통신 과정에서 누군가 도청을 시도하면 광자의 상태가 변한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누군가 통신 내용을 알아내려 하면 정보가 쉽게 깨져버리는 것도 보안성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양자 암호는 무작위로 생성되고 한 번만 읽을 수 있어 공유하는 송신자와 수신자만 정보를 읽을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 그 기술 구현을 빠르게 앞당기는 것은 ‘상상력’이다. 유명한 공상과학(SF) 영화인 백투더퓨처, 스타트렉, 스타워즈 등에 등장하는 미래형 기술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준다. ‘설마 되겠어?’라고 자유롭게 펼치는 상상력이 연구의 단초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실현가능한 기술이 등장하기도 한다. 백투더퓨처에 등장하는 전자안경이나 호버보드가 실제 개발돼 판매중일 정도로 SF에서 허무맹랑해보이던 기술이 실제 등장해 과학기술계의 발전을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양자컴퓨팅이나 양자암호통신 분야 연구자들은 어떤 세계를 상상하고 있을까? 그들의 상상력이 이 세계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기대된다.


▲ 인기 SF 드라마이자 영화인 스타트렉은 현대 과학기술의 인큐베이터라는 얘기가 있다. 스타트렉에는 이미 영상통화, 3D 프린팅, 홀로그램, VR 등 현대 첨단 기술들이 등장했다. 사진은 스마트워치를 이용해 통신하는 모습. 과학자들에게 상상력은 미래의 기술 구현을 앞당기는 기폭제와 같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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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11-28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