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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우면서 부드럽지 않은 연성물질(soft matter)

- 액정부터 그레눌라까지 놀라운 연성물질의 세계 -

“소금과 같은 단순한 결정은 거의 완전한 질서의 예입니다. 소금 속의 원자 또는 이온은 서로에 대해 정확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통의 액체는 그 반대인 완전한 무질서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액체 내의 원자와 이온은 완전히 무질서한 양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위의 두 예들은 질서와 무질서 개념의 극단입니다. 자연에서는 더욱 미묘한 형태의 질서가 있는데 액정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 1991년 노벨물리학상 시상 연설 중1)

액정이 부드러운 물질(soft matter)이라고?

1991년 노벨물리학상은 연성물질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피에르 질 드젠(Pierre Gilles de Gennes, 2007년 사망)이 수상했다. 액정과 고분자 연구에 큰 진척을 가져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드 젠은 액정 분자들의 규칙적 배열을 설명하는 특별한 방법을 발견했다. 액정은 특정한 임계온도 근처에서 수학적 규칙에 따른 패턴이 나타나, 특이한 광학적 성질을 지닌다. 그는 액정 물질의 질서를 기술하는 방식을 일반화했다. 자성 물질 또는 초전도 물질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 199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피에르질 드 젠(Pierre-Gilles de Gennes, 1932~2007) 교수.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액정과 폴리머의 규칙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노벨 물리학상, 2010. 1. 18, 바다출판사))

우리 일상에 익숙한 액정은 연성물질이다. 연성물질은 말 그대로 부드러운 물질을 말한다. 고체와 액체 중간에 해당하며 분자 사이의 결합에너지가 낮아 외부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 액정의 발견은 약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8년 오스트리아 식물학자 프리드리히 리차드 라이니처(Friedrich Richard Reinitzer)가 식물의 콜레스테롤 성분을 분석하던 중 발견했다. 이 물질은 상온에서는 투명한 액체지만 145도로 가열하면 불투명해지고, 179도에 이르면 다시 투명한 액체가 된다. 녹는점이 두 개인 것이다.

액정이라는 이름은 독일의 물리학자 오토 레만(Otto Lehman)이 붙였다. 특수 편광 현미경으로 액체처럼 보이나 고체결정처럼 편광된 빛에 의해 영향을 받는 물질을 관찰하던 중 ‘액체(liquid)와 결정(crystal) 중간 상태’를 액정이라 명명했다. 이후 독일의 D 포르랜더(D. Vorlander)는 화학 분야 연구로 많은 액정 물질을 합성했다. 1920년 무렵에는 약 250종 이상의 액정 물질이 보고되었다.

별다른 응용기술이 없던 액정 연구는 1960년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63년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J.L. 퍼거슨(J.L. Ferguson)이 액정을 사용해 서모그래피(Thermography, 물체 표면의 농도를 색의 변화로 측정하는 방법)를 고안하고, 1968년 미국 RCA사의 G.H. 헤일마이어(Heilmeier)가 전기장 속에서 액정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발견하며 활발해졌다. 1970년대 이후 전자손목시계, 전자계산기 등에 적용되기 시작했고 지난 수십 년간 TV, 모니터 등 디스플레이 분야의 핵심소재로 급부상했다.

특히 최근 2~30년 동안 디스플레이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분자의 배열이나 구동원리에 따라 매번 새로운 액정디스플레이(LCD)가 등장하며 산업의 판도가 바뀌기도 했다. 3D TV는 물론 곡면형태의 디스플레이까지 기술이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액정의 활용이 디스플레이의 산업을 이끈 것이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 액정물질이 디스플레이 산업의 필수소재가 된 이유가 뭘까? 액정 자체의 특성에 다시 주목해보자. 액정 분자 배열은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이다. 어떤 방향으로는 불규칙한 액체 상태와 같지만 다른 방향으로는 규칙적인 결정 상태의 중간 형태이다. 전압과 온도에 따라 분자의 배열이나 결정 구조가 변하는 광학적 성질도 있다.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강점을 이용해 투명한 전극이 부착된 얇은 유리관 사이에 액정 물질을 넣고 전기를 흘려보내면 빛이 난다. 액정 분자의 배열이 바뀌면서 빛을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전류의 세기에 따라 빛의 강약도 조절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의 소형화에는 액정 물질의 공이 컸다. 결과적으로 오늘 날 대형 디스플레이가 가정에 들어오게 된 건 액정 물질의 특이성에서 기인한 셈이다.


▲ 액정의 특이한 분자 배열 구조는 디스플레이를 발전시키는데 핵심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첨단 기술을 적용한 디스플레이가 매일같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출처. Man With The Muckrake, Wikimedia Commons)

연성물질은 TV 속에만 있지 않다

액정 외에도 우리 주변엔 연성물질이 많다. 대표적인 종류가 콜로이드(colloid)이다. 버터, 우유, 오렌지주스, 마요네즈, 빵, 요구르트 등은 콜로이드 분산 액이다. 우유나 흙탕물은 액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양한 입자들이 녹아있는 형태이다. 버터도 고체처럼 보이지만 고체는 아니다.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다. 우리 몸을 채우고 있는 혈액도 우리 몸 자체(membrane, bio-materials, proteins)도 콜로이드로 이뤄졌다. 매일 사용하는 치약(gel), 화장품(emulsion), 면도 거품(foam)도 콜로이드의 다른 종류다.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공간의 벽도 수성 페인트(water-based colloidal paint)가 칠해져 있을 것이다.

분자나 이온보다 크고 지름이 1nm~1,000nm 정도의 미립자(1cm의 10만 분의 1, 1000만 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작은 입자!)가 기체 또는 액체 중에 분산된 상태를 콜로이드 상태라 한다. 용질이 용매에 완전히 녹아 있는 용액과 달리 콜로이드는 입자가 균일하게 퍼져 용매 속에서 떠다닌다. 콜로이드 입자가 골고루 퍼져 있는 용액을 콜로이드 용액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뿌옇게 보인다.

신기하게도 콜로이드 용액에 빛을 쏘면 빛이 만드는 통토를 관찰할 수 있다. 안개 속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뚜렷이 보이는 현상이 이 때문이다. 이를 틴들 현상이라고 한다. 콜로이드 입자가 가시광선(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을 산란시켜 일어난다. 소금물이나 설탕물과 같은 용액에서는 빛이 그냥 투과해 빛이 지나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 콜로이드 용액에서는 틴들 현상(tyndall effect)이 나타난다. 순수 용액(왼쪽 노란색)과 달리 콜로이드 용액(오른쪽 빨간색)에서는 빛이 지나가는 통로가 선명히 보인다. (출처.nicerweb)

콜로이드는 산업적으로 활용가치가 무궁무진한 핵심소재다. 염안료, 도료, 잉크, 접착제, 계면활성제 등 전통 산업분야뿐 아니라 정보산업, 바이오, 환경산업 등으로 활약분야를 넓히고 있다. 특히 콜로이드 나노 소재는 바이오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고기능성 화장품에 적용할 수도 있으며 효과적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전달체로의 개발도 가능하다. 친환경 수성 도료 및 접착제, 광촉매, 세정제 등 환경 분야 산업에서도 고기능성 소재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연성물질은 고전적인 물질 상태인 고체, 액체, 기체의 개념을 깨는 접점에 존재하고 있다. 학계에선 물리, 생명, 화학의 교집합에 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연성물질이 갖고 있는 개념은 어렵지만 응용되는 분야를 살펴보면 이해가 비교적 쉽다. 화장품, 페인트, 식품 첨가제, 연료 첨가제, 타이어 등에도 연성물질이 응용되고 있다.


▲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연성재료. 화장품, 페인트, 요거트, 피, 젤리(출처.pixabay)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은 뭘 연구할까?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연성물질은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연구 분야도 다양하다. 콜로이드, 생체 연성재료 등 연성재료의 성질에 따라 파생된 분야가 많다. IBS의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은 이름처럼 연성물질을 다루는 연구단이다. 연구단은 연성물질을 물리학과 화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단의 연구주제를 하나씩 살펴보며 연성물질의 분야를 잠시 엿보도록 하자.

콜로이드 분야는 연성물질의 중심 분야라 할 수 있다. 마이크로 수준의 콜로이드 입자를 관찰함으로써 복잡한 물리현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능성 열역학, 자기 조립, 상변이 등을 실험실에서 재현하고 새로운 물리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콜로이드 조립 방식을 연구함으로써 유연한 전자소자나 약물 전달체 등 실제 생활에 응용 가능한 연구도 수행할 수 있다. 최근 연구단은 최소한의 광학집게만으로 콜로이드 입자 구조를 조립하는 방법을 개발한 바 있다.

고분자(polymer) 역시 콜로이드와 마찬가지로 연성물질 중 핵심 연구 대상이다. 고분자 물리학은 연성물질의 아버지인 드 젠 교수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는 고분자의 물리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선 통게 역학(statistical mechanics) 및 화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을 이끄는 스티브 그래닉(Steve Granick) 단장은 최근 그래핀 주머니를 이용해 유기 고분자의 움직임을 보는 연구를 수행했다. 매우 얇고 투명한 그래핀 사이로 고분자가 있는 액체를 채워 넣고 관찰하는 방법이다. 우리 몸의 생체 내 고분자의 움직임 등을 연구하는데 매우 유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 자세히 보기)

자기조립(Self-assembly)은 개별 단위가 모여 조직된 구조(organized structures)를 형성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분야다. 자기조립은 개별적인 입자 간 상호작용 혹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발생한다. 자기조립은 자연계에서 흔히 발생하는데, 연성물질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스티브 그래닉 단장 연구팀은 지난해 콜로이드 입자들이 벌과 새처럼 팀워크를 지어 움직이는 ‘스마트 물질’을 개발했다. 인공적으로 제작한 미세입자들이 상호작용하며 생명체처럼 조직적인 형태를 갖춰 이동하고, 군집하고, 체인 형태를 만든 것이다.(연구 자세히 보기)한편 연구단 내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Bartosz A. Grzyvowski) 그룹리더(인터뷰)가 이끄는 연구팀은 다른 접근방식(dynamic self-assembly)으로 입자를 조립했다. 회전하는 원통 내 자성 입자들을 넣고 외부에서 자기장을 가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만들어 올해 6월 학계에 보고했다. 또한 다양한 나노입자의 조립과 움직임도 연구한다.


▲ 출처 : 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생체 연성물질(biological soft matter) 분야는 세포골격의 합성과 움직임을 연구하는 분야다. 세포는 세포골격(왼쪽 사진에서 빨간색 부분)에 의해 구조와 형태가 유지된다. 세포골격은 세포의 내부 구조를 만드는데, 이 중에서도 미세섬유(actin filament)는 스스로 조립하기도 하고 분해하기도 하는 특징이 있다. 세포골격의 구조 형성과 유지는 세포 움직임을 결정한다.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의 프랑소와 암블라흐(Francois Amblard) 연구위원(사진 오른쪽)은 미세섬유의 역학을 연구 중이다. 미세섬유는 끊임없이 자라고 사라지며 물질 수송하는 과정에서 미세하게 진동한다. 산란 분광법(light scattering spectroscopy)으로 모터 단백질(motor protein)에 의한 변동을 관찰할 수 있음을 제안했다. 이 외에도 암블라흐 연구팀은 광자를 이용한 연성물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단의 조윤경 그룹리더(인터뷰)도 생체 물질을 다룬다.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 물질인 엑소좀, DNA를 비롯한 생체 물질들이 세포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밝힌다. 그들이 탐구할 우리 세포의 비밀이 궁금해진다.

표면과 계면(surfaces and interfaces)은 두 가지 상(phase)이 서로 접촉할 때 관찰된다. 액체-고체 표면의 물리학 혹은 그래눌라(고체 응집) 물리학 연구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래눌라 물질은 매우 흔하지만 아직 관련 물리학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지진으로 집이 지하로 가라앉은 이유는 건물 밑에 기반으로 다진 흙이 물에 젖어 흘러 내렸기 때문이다. 부실공사가 아니라 물과 모래 사이의 그래눌라 물질이 압력으로 인해 붕괴된 것이다.(더 자세한 이야기는 연성물질 Talk: 휴가 이야기(2) 모래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표면과 계면 분야는 서로 다른 물질 상태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물리 현상을 풀어내려고 노력 중이다.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은 다양한 연성물질만큼이나 다양한 연구자들이 모여 연구하는 곳이다. 우리 주변의 생체 물질 그리고 연성물질의 물리 현상이 지닌 과학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부드럽지만 부드럽지 않은 연성물질을 연구하는 곳. 콜로이드 입자처럼 빛나는 팀워크를 발휘하고 자기조립하는 입자들처럼 유연한 사고를 갖춘 곳이라면 매일이 새로운 발견이 가득할 것 같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NAVER 지식백과: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_노벨 물리학상 ‘액정과 폴리머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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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11-15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