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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

- 장기 맞춤형 기능을 갖춘 모세혈관의 비밀 -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 유태인 샤일록은 연대 보증을 섰다가 빚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에게 계약서대로 심장에서 가까운 부위 살 1폰드(파운드)를 잘라가겠다고 한다. 위기의 순간, 기지 넘치는 여인 포시아는 '살은 베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라'는 판결을 내린다. 샤일록은 단 한 가지의 사실을 간과한 결과로 전 재산 몰수와 강제 개종이라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된다.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모세혈관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으며 모름지기 동물의 살을 베려면 피를 흘려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골든타임(Golden Time). 생사를 결정짓는 찰나의 시간을 의미한다. 심장이 멈추면 3분 내 다시 심장을 뛰게 해야 한다. 3분의 골든타임이 지나면 뇌는 죽기 시작한다. 인간은 신선한 혈액의 공급 없이 단 몇 분도 살 수 없다. '찔러서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세혈관은 우리 몸 안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한다. 모세혈관이 분포하지 않은 곳은 각막과 수정체, 연골조직 정도뿐이다. 모세혈관은 그야말로 우리 몸의 곳곳에 퍼져 있는 수송로라 할 수 있다. 모세혈관(毛細血管)이란 머리카락 혹은 털처럼 가는 혈관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 모세혈관은 머리카락보다 10배쯤 가늘다(사람의 머리카락 굵기: 보통 0.08mm, 모세혈관의 굵기: 보통 0.005~0.008mm=5~8㎛). 맨눈으로는 볼 수 없다. 현미경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모세혈관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BC460?~BC377?)도, 서양 의학에 1500년 가까이 영향을 미쳤다는 로마시대 의사 갈레노스(129~199)도, 모세혈관은 상상하지 못했다. 1628년에 영국의 생리학자 윌리엄 하비(1578~1657)가 '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기 전까지, 서양에서는 갈레노스의 주장을 정설처럼 받아들였다. 간에서 만들어진 혈액이 심장으로 흘러 들어갔다가 온 몸에 파도처럼 퍼져나가고, 퍼져나간 혈액은 몸 구석구석 영양소를 전달하며 흡수하거나 소비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17세기에 윌리엄 하비는 갈레노스의 주장에 의문을 품었다. '맥박이 한 번 뛸 때 나오는 피의 양은 70ml 정도. 분 당 맥박이 72번 뛰니까 한 시간에 70×72×60=300L! 아니, 간이 한 시간에 300L의 피를 만든다고? 하루라면 7200L? 우리가 먹는 양이 얼만데 그만큼 피를 만든다는 거지? 말도 안 돼! 피는 심장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게 틀림없어!' 하비는 많은 연구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찾아냈다. 심장이 박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유명한 결찰사(結紮絲) 실험을 통해 혈액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비는 온몸을 돌고 심장으로 돌아온 혈액이 어떻게 다시 동맥으로 나가는 지는 밝히지 못했다. 비밀은 금세 풀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인 1661년,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마르첼로 말피기가 현미경으로 개구리의 폐와 방광을 관찰하다가 아주 가는 혈관과 그 속으로 흐르는 혈액을 보았다고 발표한 것이다. 동맥이 모세혈관을 통해 정맥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말피기는 현미경으로 적혈구도 발견했다.


▲ 윌리엄 하비가 행한 결찰사 실험. 결찰사는 채혈 시 팔 위쪽에 묶는 끈이다. 끈으로 팔 위쪽을 매우 강하게 묶자 끈 아래 팔뚝은 차가워지고 창백해졌다. 동맥도, 정맥도 막혔기 때문이다. 끈을 조금 느슨하게 풀자 피부와 가까운 정맥은 막혀있지만 더 깊숙이 있는 동맥으로 혈액이 공급돼 끈 아래쪽 정맥이 부풀어 올라 선명하게 보였다. 정맥에서 볼록한 부분은 판막이 있는 곳이다. 하비는 정맥에 흐르는 혈액을 팔 아래쪽으로 밀어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고 정맥 속 혈액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며 판막이 이를 가능케 함을 믿게 되었다.(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지구 두 바퀴 반을 도는 혈액?

모세혈관을 모두 모아 이으면 그 길이가 얼마나 될까? 물론 실제로 혈관을 모아 이어본 사람은 아직 없다. 단순히 계산하면 혈관의 총 길이는 10만 km에 달한다. 지구 두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 수치가 인간의 혈관을 모두 모세혈관으로 가정했을 때 생긴 오류이며 실제로는 약 6,000 km 정도라고 말한다.1) 6,000km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8번 왕복하는 거리다(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00km). 혈액은 심장에서 나와 갈라지고 굽이치며 그물망처럼 퍼진 6,000km의 길을 돌아 1분 만에 심장으로 다시 돌아온다.

혈액이 흐르는 속도는 지나가는 혈관의 굵기에 따라 다르다. 심장에서 바로 나가는 굵은 대동맥을 지날 때는 초속 150cm로 빠르게 지난다. 평균 초속 50~60cm로 가다가 모세혈관에 다다르면 초속 1mm의 속도로 졸졸졸 흐른다. 가장 가는 모세혈관은 적혈구가 한 줄로 늘어서야 겨우 통과할 정도의 굵기다. 대동맥, 대정맥과 동맥, 정맥을 고속도로에 비유한다면 모세혈관은 잠시 차를 멈추고 짐을 싣고 내릴 수 있는 골목과 같다. 적혈구는 좁은 모세혈관을 서서히 이동하며 확산의 원리에 의해 운반한 산소를 세포에 넣어주고 대사의 결과로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를 빼앗아간다. 혈장은 모세혈관 세포 틈으로 나가 세포들을 적시며 영양소를 전해주고 다시 혈관 안으로 돌아온다. 세 겹이나 되는 막으로 꽁꽁 싸인 동맥이나 정맥과는 달리 단 한 층의 납작한 세포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모세혈관의 구조 덕이다.


▲ 동맥과 정맥, 모세 혈관의 구조. 동맥과 정맥은 크게 바깥막, 중간막, 내피 세포의 세 층으로 되어있지만 모세혈관은 내피세포 한 층으로 되어 있다.(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재주 많은 다섯 형제' 모세혈관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 고규영 단장(KAIST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 연구팀은 모세혈관이 분포된 장기나 조직에 따라 특별한 재주를 갖도록 만들어진다는 그간의 축적된 연구들을 집대성해 사이언스(Scicence)에 게재했다. 그동안 모세혈관은 산소와 영양분을 나르는 수동적인 조직으로 여겨졌으나 이번 연구로 상황과 조건에 따라 기능을 달리하는 능동적인 조직임이 드러났다. 모세혈관은 분포하고 있는 장기에 꼭 필요한 물질을 분비하며 생체 시스템에 반응한다. 때문에 혈관이 망가지면 장기 기능에 이상이 생기고 결국 장기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모세혈관은 혈관내피세포(Endothelial Cells, ECs) 한 겹으로 되어 있으며 어떤 것은 틈이 있어 물질 교환을 더 쉽게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고 단장은 리뷰 논문을 통해 특별한 재주를 가진 다섯 종류의 모세혈관을 소개했다.

먼저 뇌나 눈의 망막에는 혈관내피세포가 틈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연속형 모세혈관(Continuous capillary)'이 분포되어 있다. 뇌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병원균이나 유해물질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철벽을 치고 있다. 확산 원리로 산소, 이산화탄소를 교환할 뿐 불필요한 물질 교환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뇌는 활동에 필요한 포도당이나 DHA, 철분 등을 내막에 있는 특수한 수송체에 실어 혈관으로부터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약을 투여해도 신경계에 영향을 끼치는 건 불가능하다.


▲ 연속형 모세혈관(뇌)

반면 호르몬을 분비하는 갑상선, 부신, 난소 등 내분비샘이나 소장, 신장에는 '창문형 모세혈관(Fenestrated capillary)'이 있다. 호르몬을 만드는 원료 물질(정보 물질)이 필요하고 때로는 내보내야하기 때문이다. 이 모세혈관에는 내피세포 사이에 가림막(diaphragm)이 있고 세포막에는 작은 작은 창문(소창)들이 송송 뚫려 있는데 이 틈으로 작은 분자나 액체 등의 물질이 이동한다.


▲ 작은 구멍들이 많은 내피세포(내분비 장기)

창문형 모세혈관보다 물질이 더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모세혈관도 있다. '굴 모세혈관(Sinusoidal capillary)'은 창문형 모세혈관보다 더 큰 틈이 있다. 혈관과 조직 사이에 위치한 기저막(basement membrane)이 드문드문 끊어져 있어 혈관 안팎으로 물질 수송이 자유롭다. 혈액을 만드는 골수, 소화기관에서 흡수한 영양소를 받아들이는 간, 늙어서 힘이 없는 적혈구와 병원균 등을 죽이는 비장 등에 분포한다.


▲ 큰 구멍과 통로가 많은 내피세포(간, 골수)

눈에도 특별한 모세혈관이 있다. 안압을 조절하는 장치인 쉴렘관(Schlemm’s cannal)은 각막 주변에 위치해있다. 안압을 조절하고 안구의 형태를 유지하는 체액인 방수(房水, aqueous humor)를 적절한 수준으로 정맥을 통해 빼낸다. 일종의 방수배출장치인 셈이다. '쉴렘관에 분포하는 모세혈관'은 혈관내피세포 사이의 틈이 넓고 기저막도 없다. 또한 물주머니(액포) 형태로 액체를 세포 안으로 받아들여 혈관 안팎으로 이동시키는 재주를 가졌다.


▲ 쉴렘관


▲ 각막 주변에 분포해 방수를 배출하는 쉴렘관은 안압조절에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쉴렘관에 분포한 모세혈관은 틈이 넓고 기저막이 없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쉴렘관의 배수 조절기능이 고장나면 녹내장이 발생한다. 최근 혈관 연구단 김재령 연구원과 고규영 단장은 녹내장 발병에 관여하는 신호전달체계를 규명해 임상연구학회지(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에 이를 게재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특이한 모세혈관은 키 큰 내피세포 정맥(HEV, High endothelial venule)에 있다. 보통 납작한 혈관내피세포와는 달리 주사위 모양의 내피세포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림프절로 림프구를 돌려보내는 혈관의 마지막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내피 세포 틈 사이로 이동하는 림프구를 일시적으로 HEV 주머니에 품어 림프구의 양을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능력자다.


▲ 키 큰 내피세포 정맥의 모세혈관 모습. 주사위 모양의 내피세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 덕에 내피세포 틈 사이로 이동하는 림프구를 일시적으로 HEV 주머니에 품어 림프구의 양을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혈관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병 치료의 열쇠 기대

장기별 모세혈관의 각기 다른 재주를 밝히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장기별로 특화된 모세혈관에 이상이 생기면 장기에 문제가 생긴다. 그 결과 질병이 생기는 것이다. 때문에 혈관의 정상적인 형태와 발생 과정을 안다면 비정상적인 혈관으로 인한 질병의 원인을 밝힐 수 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면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도 앞당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안압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녹내장은 실명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쉴렘관의 모세혈관에 문제가 생겨 방수를 제대로 방출하지 못하면 발생한다. 인큐베이터 속에서 나온 미숙아는 급작스럽게 낮아진 산소 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망막의 모세혈관이 지나치게 많아지거나 쇠퇴해 결국 실명에 이르기도 한다. 안구에 분포한 다양한 모세혈관의 비밀을 탐구하는 것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또한 뇌의 모세혈관이 가진 독특한 특성을 보다 자세히 연구한다면 뇌질환 치료법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뇌를 보호하기 위해 극히 제한적인 물질만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뇌 모세혈관의 전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해야만 진일보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한 고규영 단장은 “모세혈관의 형태는 모두 밝혔지만 아직 기능을 완전히 밝히지는 못했다”면서 앞으로 혈관내피세포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더욱 깊이 모세혈관의 세계로 파고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blog.naver.com/ibs_officia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인간 혈관 길이 10만 km는 체내 혈액 총량인 5L를 모세혈관의 단면적(0.0042×3.14=0.00005024mm2)로 나누어 계산한 결과(5L=5,000mL=5,000,000mm, 5,000,000mm3÷0.00005024mm2=99,522,292,994mm)라고 한다. 실제로는 모세혈관에 전체 혈액량의 5%만 흐르고 대동맥, 중동맥, 세동맥, 대정맥, 중정맥, 세정맥의 단면적과 흐르는 혈액량이 각기 다르므로 따로따로 계산하여 더하면 약 6,000km가 된다고 주장한다.(출처: 재밌어서 밤새 읽는 인체 이야기, 시카이 다츠오 지음(더 숲), 65-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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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11-15 02:43